박노자씨의 글 중에서 이런 글이...

   2009-08-08 08:58   교보블로그에 실렸던 글

 

 

 

인간은 너무나도 불완전하고 무력하다.

우리는 남이 만들어준 옷과 음식을 그대로 입고 먹는 것처럼, 남들의 생각과 관념들도 알게 모르게 일상적인 언어나 교육, 언론, 책 등을 통해 그대로 받아 들인다.

우리에게 말로 표현되지 않은 또는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에게 존재하지도 않는다. 반대로 일단 표현체계가 잡히면, 우리는 그 표현대상물의 존재를 별로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는 탈출할 줄 모르는 언어의 포로들이다. 조금이나마 일상 언어의 늪에서 벗어 나려면 무슨 일을 접하든 그 이면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역사에서 양 쪽의 고통을 아울러 생각해서 자기의 고통으로 알라는 것을 의미한다. 조건도 단서도 없는 자비심(너그러움) 외에는 소속집단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집단언어’의 올가미에서 벗어나게끔 도와주는 힘은 없다.


보편적인 의식들은 그 사회의 법적구조에 의해 만들어 지기도 하고, 법의 제정에도 영향을 주기도 한다. 따라서 보편적인 의식을 확장하는 것이 중요한 반면, 법적구조의 건실함 역시도 중요하다.

 

 

언어의 한계와 부조리를 알고 사용해야 한다!

언어란 우리의 관념을 지배할 뿐만 아니라 세계(공동체)를 구축하는 체계이자 질서다,  그 세계의 우주관, 윤리관, 가치관 등이 함께 관념 속으로 딸려 들어오게 한다. 무의식을 구조화한다. (어느 책에서)

 

 

한마디,

 

박노자씨가 탈근대, 탈민족을 외치는데...  상당히 수긍이 간다.

고 박경리님도 돌아가시기 전에 그런 말을 남긴 것으로 아는데...

 

우리의 주변에서 사람들의 무의식적 언어습관과 의식 속에서 나오는 모두 동일하다시피한 습관적(변화없이 확고하게 고착된) 세계관이 그런 외침을 하는 이유를 알게끔 아주 꼭 들어 맞는 것들을 너무도 많이 관찰하고 있다. 고착된 의식은 무섭다. 변화는 꿈에도 꾸기 어렵고 오히려 심각한 파괴성과 되풀이 특성을 지닌다.(그래서 권력자인 부모는 변하지 않으므로 내가 변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 것이리라. 권력집단이 변화하리라고 기대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고도 어리석기까지 한 일이리라. 일단 인간은 힘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면 그때부터는...)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시민들이 보다 바른 즉, 틀리지 않은, 왜곡되지 않은  많은 자료들을 읽고 조사하고 서로 주고 받는 토론을 하면서, 바른(왜곡되지 않은, 거짓이 아닌) 앎을 알아 나가는 과정이 전혀 없이, 그저 국가라는 모호한 기구에 의해 학교를 통해서 인간성을 망각하고 소위 말살해 가는 형태의 물건과 상품을 다루듯이 다루어지고 길러진 것 같다는 생각이 굳어진지 오래된다. 나의 세대보다도 다음 세대는 이것이 더욱 심화되어 가고 있음이 느껴지며...

 

수용하기 한계를 넘어선지 오래되어 사람들이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타산된 관계로 결국에 가서는 정신적으로 소외와 외로움에들 많이 힘들어 하는 것 같다. 그 가운데 남을 심리적으로 착취하고 옭아메면서 자신을 찾고 유지하려는 듯한 아우성들이 여기저기 어디에서나 보인다. 바로 저 분들은 이런 것들을 보고 미래의 우리의 모습에 대한 심각성을 불러 일으키고자 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앎 자체로만은 변화가 어렵다. 권력자들의 통찰과 진지함과 수치심이란 것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없으면...   스스로 낮은 자리와 초라함이란 기분과 감정을 이겨 내려고 하지 않고는 ... 

 

 


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를 짜증나게 하는 정신폭력

 2009-08-07 11:42   교보블로그에 실렸던 글

 

 

 

☞ 지능적 정신폭력, 지능적 정신폭력자(=조작자)!

교묘하게 정신작용을 일으켜 무력화시킨 후에 자신에게 의존하게(매달리게) 만든 뒤 자신의 심리적욕구(열등감의 회복과 자존감 향상, 비교 우월감 등) 등을 충족시키기 위해 마음대로 조종․통제․지배하는 행위. (: 극심한 가학증, 보상폭력, 파시즘, 마소키즘, 새디즘-마조키즘). 그가 지능폭력을 이해하고 고치겠다고 맹세하더라도 다시 그 말을 토론할 의지가 없다면 그 자의 말은 믿지마라.


불확실성 (Uncertainty) 

일반화 (Generalization)

투사 (Projection), 주관의 객관화, 심리학적 계략, 다른 사람에게 책임 전가하기 :

판단, 판결, 평가 내리기(Judgement)

조작 (Manipulation) : 제발요, 고마워요, 미안해요, 죄송해요 등

교묘한 공격을 부드럽게 하기(Sneak attack)

이중메세지 (Double message) 

대화 끊기, 소통단절 (Cutting communication) 

이중속박 (Double bind)

칭찬하기와 깍아내리기 (Building you up & Cutting you down):

 

 

여기서 한마디,

약 4년 남짓 극심한 가학을 받아 오면서 따돌림, 증오캠페인, 협박공갈, 욕설, 뒤집어 씌우기, 약올리며 재미있어 하기, 재산탈취, 이방인들 끌어 모아 맹목적인 가학행위 등을 당해 오면서도 오히려 침착하게 침묵을 유지하며 일관성을 유지하며 병리적 현상을 단 한두마디 정도만을 알리려한 결과는 무엇인가? 트라우마...  존재자체를 가지고 노는 행위는 어떻게 이렇게 지속될 수 있을까?  자기 스스로 만들어 내는 환상의 노에는 인간만이 가능하지 않을까? 전쟁의 잔혹성은 인간의 유아기 때의 마술적 사고로부터 온다던데...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모두 흙이 되어가는 것은 이겨낼 수 없으리라.

 


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파탄주의' 이혼판결 (퍼온글)

 2009-08-05 12:08   교보블로그에 실렸던 글

 

 

 

'파탄주의' 이혼 판결     ◎ 세상만사◎   2008.11.11 13:55  찬 바람


고위 관료직에서 물러난 A씨는 얼마 전 옛 애인과 만나 새로운 사랑에 빠졌다. 30년 전 '배경'을 보고 결혼했던 아내와는 애정이 없었다. A씨는 별거에 들어간 뒤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그러나 복수심에 불탄 아내는 이혼에 응하지 않고 있다. 재벌가 사위 B씨는 바람둥이로 소문났다. 재산을 노려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하면서 일부러 난봉을 피운다. 아내는 이런 사실이 알려지기를 꺼려 이혼에 합의해주지 않고 있다.


▶ 이런 경우 A씨나 B씨가 이혼 요구 소송을 내면? 현행 민법이나 대법원 판례로는 이길 수 없다. 혼인을 파경에 빠뜨린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이혼을 요구할 수 없게 돼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가정 파탄 책임자가 이혼까지 요구하면 상대방이 이중의 고통을 당한다는 점을 들어 책임 없는 배우자의 이혼 요구만 받아들이는 판례를 유지해왔다. 법률 용어로는 '유책(有責)주의'라 한다.


▶ 유책주의는 세계에 유례가 드문 이혼 시스템이다. 많은 나라들이 '책임에 관계없이 결혼이 파탄에 빠진 경우' 이혼을 허가해주고 있다. 이혼 사유를 폭넓게 해석하는 것이다. 이를 '파탄(破綻)주의'라고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영국은 벌써 1969년에 유책주의를 버렸다. 일본은 우리와 비슷한 민법체계와 혼인제도를 갖고 있지만 이혼만큼은 파탄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 우리 법원에서도 파탄주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서울가정법원은 그제 종교문제로 아내와 별거하게 된 30대 남자의 이혼 소송에서 "혼인관계가 이미 파탄이 났다"며 이혼을 허가했다. 불륜이나 폭력처럼 파탄의 직접적 책임이 있는 배우자가 낸 소송에서도 이혼을 허가해주는 판결이 1·2심에서 잇따르고 있다. 법원 내부 통신망 게시판에도 '파탄주의로 가야 한다'는 글들이 올라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 파탄주의를 옹호하는 판사들은 "국가가 '죽어버린 혼인'에 호흡기를 달아놓고 '살아나라'고 해봐야 소용없다"고 말한다.  과거 남편에게 쫓겨나는 아내를 보호하려고 만든 유책주의가 지금 '여성 상위' 시대엔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책임 소재를 따지다 보면 적대감만 커져 양육을 서로 떠미는 등 자녀에게 피해가 돌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파렴치한 파탄 책임을 지닌 배우자가 새로운 판결 경향을 악용하는 일은 막아야 한다. 그러려면 재판부가 사례마다 세심히 살펴야 할 것 같다. 풍속이 달라지고 시대가 바뀌어도 지킬 것은 지켜가는 이혼재판이어야 한다.

 

 

 

 

나도 한마디,

 

우리들 중 결혼이 무엇인지, 부부와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가족이 무엇인지, 사랑과 양육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시간을 가지고 공부해 보고 충분히 이해하고 그 길을 가는 이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한참 나중에 알고 보니 그저 부모와 주변 사회에서 보고 배운 것이 전부였다는 생각에 정말 국가라는 권력기관은 무얼 위해 존재하고 무얼 하는지 그 똑똑하다는 많은 지성인들은 뭐하고 있었는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외국에선 유책주의를 버린지 오래이고 파탄주의를 체택하고 있어서, 그리고  파탄주의를 옹호하는 판사들(이른 바, 권력자들)은 "국가가 '죽어버린 혼인'에 호흡기를 달아놓고 '살아나라'고 해봐야 소용없다"고 말한다고들 하는데, 과연 판사라고 하는 그들도 삶과 자녀와 가족과 사랑, 그리고 인간 심리와 동기와 행동과 본성들에 관한 지식과 통찰을 얼마나 하고 있을까요?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신이 아닌 한 국가도 제 삼자인 부부문제를 죽어버렸다고 판단하는 것 자체가 권력자들의 오만적인 시각이라는 것", 그리고 "신이 아닌 한 제 삼자인 부부문제를 제 삼자의 시각으로 판단과 판결을 누가 그렇게 자신있게 내리겠습니까'라는 의미에서 오히려 제 삼자는 눈에 보이는 지극히 위험성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가장 너그럽고 중립적으로 다루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보는 시각과 판결은 제 삼자이므로 절대로 옳을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나는 당사자 부부이지도 않고 다만 불완전 투성이의 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밖에서 일견 쳐다본 정도로만으로 말입니다. 국가도 국가라는 권력을 가진 몇 몇 불완전한 인간이 움직입니다. 그 인간들의 판단과 판결에는 오류(실상은 의도적 오류)가 있을 수 밖에 없고 그로인한 안보이는 폭력과 그 폐해는 심각하게 누구도 알아차릴 수 없도록 전파되고 누적되고 있습니다. '죽어버린 혼인'이란 숨겨진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는 것들에 대한 제 삼자의 지각의 병목현상인 경우가 대다수라는 겁니다.  부부문제는 복잡한 현상들의 집합체로서 명백히 위험성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제 삼자가 개입하여 해결해야 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그래서 법원(권력기관)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파탄주의를 중요한 이슈로 하는 것이 아닌 조정의 전문성과 실속성과 활동성이 무엇 보다도 우선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가사법원의 조정과 조사는 비전문성과 졸속성 내지는 형식성, 심지어는 심리적으로 병리적인 사람들이 병리적인 사람들을 상대로 공무라는 이름으로 업무처리만을 목적으로 하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판사들 조차도 가사법원의 경우 가족학이나 심리과학 그리고 복지학 등을 공부한 사람들이 수행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요성을 감안한다면...

 

파탄주의를 시행하는 외국들의 경우 수십년간 많은 이들이 이혼에 대한 폐해(특히 이혼자녀와 사회문제화)를 엄청난 양의 대학교재와 임상자료들로서 발표하고 있고 심지어는 비판적인 시각이  없는 곳이 없는 정도인데 어찌하여 좋지 않은 것들까지 그리도 쉽게 외국의 사례를 들먹이며 게슈탈트 심리학에서 말하듯이 '치아공격성'이란 도구를 철저히 대 보지도 않고 아크로메가리 현상이라 듯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그리도 빠르게 들여 오는지 정말로 모르겠습니다. 미국과 영국 등지의 연수를 보내는 이유가 그런 것일까라는 정말 도움이 되는 것일까라는 의문마저 듭니다. 일백 수십년 전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는 모양새로 느껴지고 다가옵니다.

  

파탄주의의 원조인 그들이 하는 말 중 "사람을 죽이기는 쉬워도 살려내기란 불가능하다"는 말들을 합니다. 가족에 관한 일은 그런 식의 논리보다는 교육과 치유가 가장 우선해야 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구한말 그리고 식민지시기의 소위 엘리트라는 지성인들이 저지른 실수들을 언제까지나 반복하고 대풀이하시려는지...  이 실수들이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어 바른 선택을 가로 막는데도 정작 이를 아는 이들 그리고 변화시키려는 이들은 많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그래도 권력은 없지만 뜻을 가지고 오랜 동안 여러 분들이 참다운 방향들을 가르키는데도 이를 볼 수 없는 눈 뜬 장님들이 다름 아닌 바로 권력자들이라는 겁니다. 권력자들의 속성이라는 것이 바로 그렇다는 겁니다. 이 중에는 부모도 강력한 힘을 가지고 그리고 병리적인 자아도취적 속성이 강한 권력자 중의 권력자라는 것입니다. 상당히 많은 이들이 이 문제들에 관하여 상세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이를 계산된 이익과 이기적 목적으로 악용하여 왔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모두 알고 있는 정도로 보편화되었습니다.

 

개인의 문제는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하기가 어렵고, 개인의 병리는 그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라는 체계 속에서 움직이는 체계의 병리로서, 그 체계 속의 속한 한 개인을 통해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합니다. 병리현상이 가속화 되면 그 다음은 어다로 갈까요. 이는 소위 선진제국들의 자료들을 보면 명백히 보입니다. 예로 가부장제의 해체로 세대간 경계가 없어지면서 자녀들이 부모의 존재 조차도 인정하지 않는 그런 조류 말입니다. 앞으로는 더 심해지겠지요. 더욱이 외국의 경우 성폭행 사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녀가 부모를 상대로 성폭행 고소를 하고 재판을 하는 경우 등등 ... 소외와 중독과 도착적 행위들 이 만연할 수 밖에 없고 이들로 인한 소위 나르시시스형, 마키아벨리형, 사이코패스형 인간들을 더 많이 길러내는 결과가 되고 있음을 봅니다. 결국 어떤 관습적인 문제의 타파는 법이나 힘(권력)을 동원하여 이루는 것이 아닌 교육과 치유로 다가가야 할 과제라는 것입니다.

 

'행복의 공식'의 저자인 슈테판 클라인은 인도의 인구 3천만의 케랄라를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모범이 되는 곳으로 지적했습니다만... 

다음 세대가 우리의 희망이라는 말들을 합니다만 과연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부모는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인간은 유아기와 어린 시절 그리고 사춘기 부모와의 관계를 가지고 삶 전체를 살아간다는 것이 널리 잘 알려진 사실인데 그렇다면 결혼과 부모가 된다는 것과 유지한다는 것이 나와 남을 위해 공동으로 살아가는 공동체 사회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는 짐작이 가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느새 작은 목소리일 뿐임을 느끼게 되었고 , 적응하기 위해 방어적 개념을 넘어선 이기적 태도를 가져야 하고, 책임감이라는 도덕적 의식도 내려 놓아야 하는 그런 상황에 다다렀다는 생각을 하게 될 뿐입니다.

 

(일면을 보게 되는 댓글)

 

서울 가사 법원의 문제점이 있습니당..신대섭님|08.11.09|

잘 잘 못도 모르면서 판단을 한는 판사들이 문제입니당. 억울하게 판결이 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더군요.. 특히 국제 결혼하는 남성분들 힘을 합하여 일부 판사들의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법원에게 바란다...09.01.16|

법원에게 바랍니다. 항상 약한 자에게 강하게 강한자에게 약하게 벌을 주는 악법이 어디 있는 것인지요...?? 처음 부터 판결할때 1개인의 판사의 생각만을 가지고 판결하게 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습니다. 1차 판결부터 2-3명의 판사가 판결을 했으면합니다. 한 사람이 판결은 편견과 편협적인 판결 일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모순된 판결 시스템때문에 억울하고 손해를 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또한 판사분들도 잘 못된 생각과 자아를 가지고 있는 판사는 퇴출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제도를 만들어주세요. 제발요.....대법원장님게 바랍니다


가사법원은 여성법원이고, 이혼법원이며, 겉핣기식 심리로 인심판결하는 법원이라는 평들은 변호사들에게 조차 듣을 수 있는 말들이고도 이미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지 오래됩니다. 고의적으로 남성 쪽의 분명한 증거물들은 무시하고, 있지도 않은 사실들을 새로 만들어서 판결하고, 그게 법이라고 하면서 힘(권력)으로 일축해 버리고, 심지어는 판사가 책임회피성 발언을 하는 정도들도 겪습니다. 심리를 도대체 하지도 않은 것 같다는 변호사의 말도 나오기까지 합니다. 모든 변호사들이 이혼사유가 없다는 판단에도 가사법원은 판사의 재량권이라는 것으로 사실을 왜곡시키고 사실을 무시하고,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만드는 것이 왜 그래야 하는지 지극히 의문시 됩니다. 이러한 실정이므로 상당수의 여성들이 이혼전문 변호사라는 이름의 변호사와 함께 이를 악용하고 무조건 끝까지 파탄났다고 주장하면서 온갖 무리한 언어유희와 지나친 짓들을 다 햐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내부적으로는 여성 쪽에 불륜이 의심되만). 결국 법원이 이혼을 크게 부추키는 겪이 되고 있다는 겁니다. 거의 아버지들은 말 그대로 벌어다 놓은 돈 다 내놓고 나가 죽던지 말던지 하라는 국가권력의 명령(?)인 듯 합니다. 이것은 정말로 아닌 것 같습니다.  국가권력에 여성들이 대거 이동하게 되면서 감정적이고도 나르시시즘적인 권력다툼으로 가는 것 같은 의구심을  떨쳐 버리기가 어렵습니다. 민법이 정한 이혼사유 6호의 남발은 명백한 권력남용이며, 6호의 남용은 국가권력이 안방의 중요한 자리까지 침범하고 들어와서 부부간의 사소한 문제까지 강제하는 분명한 인권유린(개인으로서 행복할 권리 침해)입니다. 법원이란 권력기관은 6호를 남발하면서도 또 한 쪽으로는 거대기업에는 굴복(혜택)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저항하는 무력한 시민은 폭력을 동원하여 살상까지 하는 이율배반적이고도 지극히 부도덕한 모습 그 자체를 보입니다. 그것은 국가가 아닌 국가라는 권력을 업고 가는 부도덕하고 권위적이며 거짓과 기만을 서슴없이 행할 수 있는 단지 부도덕하고 무책임하며 자아도취적인 사람들의 행위일 뿐입니다. 사법패밀리란 말이 그냥 나오는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공공성이란 개념은 권력기관부터 사라진지 오래됩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역사의 대물림이자 되풀이에 불과한 넘을 수 없는 극복하기 어려운 무의식의 각본이라는 겁니다. 거짓말, 아니면 억압, 그리고 책임안짐, 바로 그 자체입니다.  

 

 


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가족의 부모-자녀의 관계 중에서

 2009-08-04 15:52   교보블로그에 실렸던 글

 

 

 

장모의 말 중에서

내 딸은 내 분신이요, 친구요, 남편이요, 동지요, 딸이라는 말....

 

홀시어머니의 말 중에서

내 아들을 내 남편 같이 생각하고 있고, 남편이나 다름없다는 말....

 

아내의 말 중에서

남편 보다는 딸이 더 마음이 통하고 의지가 된다는 말...

 

어머니의 말 주에서

너를 낳아 주고, 키워 주고, 사랑해 주었는데...

 

어머니의 말 중에서

할머니(자신의 어머니)가 불쌍한 사람이다라는 말...

 

어머니의 말 중에서

너희들이 나에게 해 준 것이 뭐가 있니라는 말...

그리고 형제가 중요하지 자식이 중요하냐라는 말...

 

 

 

삶은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것이라고 합디다.

그리고 자연의 극히 미미한 일부의 존재로서 삶은 그 자체가

기적이고 가슴 벅찼던 경험이라고도 하기도 하고...

실존적인 문제들은 자신만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불쌍한 것이 아닌

누구나 가지고 있는 문제로서 부모된 자는 자녀에게 이를 부담이 되게

하여서는 안된다고 하며.... 태어나 주어 고맙고 있어주어서 고마울 뿐이라고...   

 

 

 

모성애의 파괴적인 면들로 위협적인 모성애, 모성애 결핍, 모성애 중독이

잘 알려져 있듯이, 아버지 못지 않게 어머니의 해독은 외부적으로 나타나는 폭력 못지 않게 수동적 폭력의 피해가 엄청나다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여권운동의 궁국은 여성과 남성의 진정한 해방이 아닌 가부장제에서 모권제로의 권력이동으로 가고 있는 현상들이 도처에 만연해 있음을 어느날 뒤통수 맞고 눈 떠보니 보이덥디다.

 

부모와의 관계는 태어나서 죽을 때가지 그 사람의 운명을 좌지우지한다.

겉으로든 내적으로든...  참으로 살기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또, 온전히 살아나가기 어렵게도 합니다. 부모를 극복하지 못한 삶에는 자신의 삶이 들어 가 있을 자리가 없다. 부모를 위한, 부모를 대리한, 부모의 삶이 내 삶이 되는 것. 나라는 존재는 없음을 의미하는 것. 그리고 있는 것 같이 생각되면서 ....

 

모든 이혼은 부모와의 내적 및 외적 밀착관계(미분리-융합 즉, 미분화)로 부터 발생되며, 그것은 자아도취적 소유욕과 지배욕에서 비롯되어 다음세대에 정신적 황폐함과 짐을 지워버리는 행동이라는 것. 오직 자기 자신의 욕구와 결핍의 충족을 위하여 어린 자녀들을 희생시키는 동물에게도 없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라는 것... 인간이라며는 조금씩 실존적 운명에 체념이란 미덕을 쌓아나가는 계기가 되는 것이 노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러한 노년을 바라보면서 그것으로부터 지혜를 배우고 이를 공경하는 마음으로 보게 되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이심전심일거라.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 유일한 동물이 아닌 단지 신경세포회로와 호르몬의 노예란 말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되곤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래도 바람직한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존재한다. 다만 남의 세계에서라고 느껴질 뿐이며, 나에게 그 세계가 온다한들 나에게는 그 바람직한 것이 불평과 불만으로 변해 있을 뿐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살아 있는 한 끝이 없는 듯하다.

특히 인간의 세상에서...

 


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어느 이혼자녀의 부탁 (퍼온 글 둘)

 2009-08-04 13:39  교보블로그에 실렸던 글

 

이혼을 생각하시는 분들 읽어 주세요... (퍼온 글 : NICK, seok7***)

저는 30대 초반의 직장인 입니다.

글을 올리는 이유는 이혼을 생각하시는 자녀를 가지고 계시는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은게 있어서 입니다.


제가 중학교 1학년에 진학할 즈음에 부보님께서 이혼을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여자가 생기셨죠. 이혼 후 저를 포함한 3남매는 아버지를 따라 갔습니다. 3년 후 고등학교 진학 즈음에 아버지가 우리를 혼자 키우기가 힘들다며 다시 어머니와 재혼을 하셨습니다. 어머니 또한 우리 때문에 재혼을 하셨지요. 그러나 자식들 때문에 하신 거라 정상적인 생활은 아니었습니다. 다시 제가 대학을 진학할 때 부모님은 별거를 시작하셨습니다. 지금 10년 넘게 별거 중이십니다.


요지는 정상적인 인격체로 성장하기 위한 가장 소중한 시기에 저희 3남매는 크나큰 정신적 고통과 방황으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혼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도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아들이라는 책임감으로 대학도 진학했고 회사도 다니고 있지만 누이와 동생은 평범한 인생을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걸 다 부모님 책임으로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누이와 동생은 아버지를 보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 시기에 부모님께서 조금만 길게 생각해셨다면 자식들이 지금 보다는 조금이나마 나은 환경에서 살고 있지 않나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아직 결혼은 해보지 않았으나 이런 경험으로 말씀드리면 무슨 이유든지 간에 이혼을 생각할 때에는 엄연히 한 가정의 구성원들인 자식들에 대한 생각을 빼놓아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만의 문제이든 서로의 문제이든 간에 일단 서로 사랑해서 결혼도 하고 자식이 생겼다면 적어도 그에 대한 책임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혼을 절대로 하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적어도 자식들이 정상적으로 성장하여 자립할 수 있을 정도가 될 때까지만 이라도 참고 인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자립은 할 수 있지요.


부모들의 이혼이나 불화가 있는 가정은 자식들이 그렇지 않은 가정의 자식들 보다 쉽게 잘못된 길로 빠져드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아실꺼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저도 그럴뻔 했으니까요.


저희 남매는 나이차가 크지 않은 터라 다들 결혼할 때가 지났으나 결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물론 경제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보고 배운것이 있어서 인지 결혼의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혼을 생각하고 계시는 님들 자식이 없다면 당장 이혼을 해도 상관이 없지만

자식이 있다면 한번 더 생각해보고 행동하시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혼하면 절대 안보겠지 하시겠지만 나중에 늙고 힘이 없어지면 자식에게 기대야 하는데 지금처럼 자식하나만 낳고 키우는 시대에 결국에 다시 만날게 될거라 생각합니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없습니다. 다만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심사숙고하시라고 글을 올립니다.


순수하게 제가 경험하고 느낀점 그리고 생각을 표현한 글입니다.




이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이런 것이다.


이글 읽고 우리 아이가 받을 상처생각하며 이혼결심 확실히 접었습니다.

어느분 말씀처럼 오직 애들만 생각하고 남편한테 눈감고 자존심버리고 열심히 살아 보렵니다. 아래쓴 이는 다행이 정신사고가 제대로 박힌 경우이지만 사춘기때 가정불화로 생기는 애들의 방황 정말 무섭습니다. 우리 어머니들 용기있는 글 읽으시고 화이팅 합시다아!!!!~


퍼온글


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까요.

중산층이 몰락하기 시작한 2000년대 초쯤.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정말 한 순간에 집이 몰락 할 수 있다는 걸아는 순간. 정말 늦고 말죠. 항상 절망과 방황의 시간에서 보낸 나날이 아직도 기억에 새록새록 남아 있어요.

이제부터 저의, 그리고 저희 집의 아주 평범하고 뻔 한 얘기를 시작 해보려 합니다.


사실 저희 집은 원래 그렇게 못사는 편이 아니었어요. 남들 사는 만큼 살고 남들 먹는 만큼 먹으며 남들 입을 만큼 입는 아주 지극히 평범한 집안 이였죠.

제가 중학교 들어 갈 때쯤 그러니까 1998년쯤 이었죠……. 저희는 32평짜리 아파트에서 정말 나름대로 행복하게 잘 지냈습니다.

 

그때 생각해보면 얼마나 꿈같고 그리운지 몰라요. 나름대로 20년 동안 일궈온 피혁 염색 업체를 하시는 아버지와 다른 어머니들과 다를 바없이 언제나 아주머니들과 전화를 붙잡고 통화하길 좋아하는 어머니, 한창 사춘기로 예민한 누나와 나. 이렇게 오손 도손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우리 집에서 돈이란 건 더 이상 필요 하지도 않았죠. 사실 더 있으면 좋겠지만 뭐 교육비도 넉넉한 편 이었고 매일 주말마다 아버지는 우리 가족을 대리고 갈비 집과 맛집을 돌며 외식을 시켜주고 엄마 결혼기념일에는 장미꽃을 안겨주던……. 그랬어요. 정말 행복했죠.

 

저는 외식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아버지가 하던 말을 잊지 못해요.

"내가 더 대학 갈 때쯤에는 빌딩 하나 사서 너 대학 보내고 너희 누나 유학도 보내 줄께. 그리고 우리 마누라 여행도 시켜줘야지."

그게……. 그게. 영원히 이뤄질 수 없는 소망인줄 그 나이에는 미처 몰랐습니다.


제가 중2 때 저희 아버지 공장에 불이 났습니다. 공장 전체가 전부 다 타버렸죠. 직원의 용접 실수로. 아버지의 모든 것이 다 타버렸습니다.

더욱이 당시는 불경기 인 겨울철. 그나마 잇던 오더도 전부 펑크 내 버리고 아버지는 부도 직전의 회사를 겨우 겨우 지탱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어지는 불경기와 경제 침체로 수출을 주로 하시던 아버지의 공장은 점점 쇠락 해 졌고 200명 가까이 되던 그 낳은 직원이 하나 둘 떠나 20명도 채 안남게 줄어 버렸습니다.저희집에는 빨간 딱지가 붙여졌고 결국 집 팔고 이사를 가기로 한 거죠.


그리고 저희는 이사를 갈 수 밖에 없었죠. 학교에서 차타고 30분은 가야할 곳으로 간 우리 남매는 그 때부터 방황하기 시작합니다.

우리 누나요. 사실 공부 잘했어요. 저보다 머리도 좋고 수재죠. 그런데 그놈의 사춘기가 뭔지 속칭 노는 분들과 어울리며 방황하기 시작했습니다.(뭐 잠깐이지만.) 저는 어땠을 까요. 누나처럼 애들과 어울려 다닌 건 아니지만 학교나 학원 땡땡이치며 놀기 바빴고 독서실보단 피 씨 방과 편의점을 돌며 지냈습니다. 마침 우울증으로 심해져 있던 어머니. 생활비가 원 500에서 200으로 줄고 다시 200에서 100도 간간히 벌어오다가 어느 날부턴 생활비를 못 주시더군요…….

 

남들보다 뒤떨어진다는 자괴감인지 어머니도 나약하게 무너져 갔습니다. 게다가 중3에 들어 저 또한 심한 우울증을 앓았기 때문에 더욱 힘들었죠.(자살 시도도 한두 번 한 게 아닙니다. 한번은 약먹고 방에 문 잠긴걸. 누나가 보고 말렸었죠. 다행히 제가 착각해서 수면제인줄 알고 먹은 약이 감기약인걸 알았을 때 어이없어 엄청 웃었습니다. ㅡㅡ;)


우리 집의 사정은 점점 악화 되었습니다. 잇따르는 반품과 바이어들의 계약 이탈 등으로 아버지의 공장은 점점 무너져 갔습니다. 점점 생활비를 못 가져다주는 날이 많아 졌고 고등학교 입학 할 때쯤 많은 생활비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주위 분들에게 빌려서 쓴 것이었죠. 더 이상 나아질 것이 없던 불경기에 정말 절망 밖에 없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인지 고등학교를 당시 꼴통으로 불리던 학교로 가게 되었고. 저희 누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서울로 전학 가게 되었습니다.(통학하며 지내죠.) 거기서 마침 그 학교 특활 산업 이였던 미술을 할 수 있었던 저는 여러 고마운 선배들과 친구들, 선생님들을 만나 정신을 차리고 " 나라도 대학 가야지" 라고 생각 하게 되었죠. 당시 미술이라는 것에 대해 관심도 적었던 저는 사실 대학이라는 목표가 더 컸던 게 사실이죠. 뭐 지금은 제 전부지만.


하지만 저희 집에는 두 사람 다 공부 시킬만한 여력이 어려웠습니다. 아무리 특화 화된 미술부라도 그 재료비건 회비건 단돈 몇 십만 원도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2~3달씩 밀려서 내곤 했습니다. 뭐 내게 돈 내라고 하는 선생님에게는 (선생님의 입장에서도 그런 말하기 쉽진 안았을 테죠 .) 제가 매일 깜박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깜빡하겠습니까. 뭐 그래도 그때 까지만 해도 그렇게 문제 될 건 없었어요.

 

그나마 희망이 있다고 믿었죠. 더구나 아버지 회사가 부도가 난건 아니고 앞으로 여러 오더들도 있다니까…….그거 믿고 공부도 진짜 열심히 했습니다.

선생님께 얻어서 본 해설 문제집 여분들과 얻어 쓴 문제집, 그리고 딸랑 단과 하나 끊어 놓고 빈 강의실에서 자습을 해야 했습니다. 주위 학원 선생의 눈치와 모멸감을 뒤로 한 채 , 꿋꿋하게 혼자서 오직 공부 만 할 뿐이었죠. 그것도 여의치 않을 때는 학교에서 밤늦게 까지 자습하면서……. 고1부터 그렇게 공부 해온 전 덕분에 내신은 전교에서 밑바닥을 돌다가 점점 상위권을 유지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에 고1때 치룬 중간고사떄 등수가 전교생 284명중 280등이었죠. 그러다 고2말쯤엔 전교에서 5등 안에 들 정도로 올려놨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머리가 좋냐. 절대 아닙니다. 저 사실 머리 나빠요. 사실 저희 학교 애들이 공부 안한 것도 있고, 문제가 비교적 다른 학교들 보다 쉬운 것도 있죠. 그래도 죽어라 교과서만 외우면서 공부했습니다. 누구라도 중간고사를 한 달~ 한 달 반 동안 준비하면서 교과서만 달달 외우면 적어도 내신은 좋게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희망은 고2 말쯤 무너졌습니다. 아버지의 회사는 더욱더 어려워 졌습니다. 직원도 채 10명도 안남게 되었고 이제 오더가 와도 하지 못하는 수준까지 이르렀습니다. 당시 고3이었던 저와 재수생이었던 저희 누나. 문제집 값과 학원비 도 벅찼습니다. 그나마 머리가 있던 저희 누나는 공부라도 열심히 했지만 문제집이 없어 매일 친구 선배에게 빌리거나 엄마에게 잔소리 하며 떼쓰기 바빴고, 애초에 대학에 목숨 건 저도 문제집 살 돈이 없어 선생님께 해설 문제집을 얻어 쓰며 공부 했습니다.

 

특히 당시 수험생이던 전 그 1년이 지옥 보다 더 괴로 얻습니다.

문제집 살돈도 없고 종합반 끊을 돈도 없던 저는 그렇다고 독서실 간 돈. 당연히 없죠. 집에 전화건 인터넷이건 신문이건 끊긴 건 오래고. 난방도 끊겼죠. 일시적이지만 전기랑 가스 까지 끊겼던 적도 있었습니다. 난방도 안 되는 아파트에서 추운 겨울을 찬물로 씻으면서 수험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군대 가신 분들 초겨울에 군대서 그렇게 씻어 보셨으니 얼마나 곤욕인줄은 아실 겁니다. 그래도 11월은 참을 만한데 한 1월쯤 되니까. 진짜 힘들더군요…….전 아파트 관리비가 그렇게 무서운 건지 몰랐습니다. 하기야 관리비만 반년정도 밀렸으니…….


하지만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건 아버지였죠. 무너지는 공장과 위축되는 자신 때문에 아버지의 의처증은 날로 심해져 갔습니다. 더욱이 어머니 또한 우울증이 정말 심하셨기 때문에 매일 인터넷에 빠져 채팅과 고스톱에 빠져 살고 실제로 번개 까지 하려고 했습니다( 도중에 아버지께 걸려 둘이 싸우셨죠.).매일 아주머니들과 어울려 술 마셔 취해 오는 날이 많았고 그 것 때문에 아버지는 번개서부터 시작된 불신이 이어져, 어머니를 계속 의심하며 싸우고 때리고 화해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일주일에서 월요일 에는 엄마가 늦게 들어오면 화요일 날 밤에 싸우고 일요일 날 가까스로 싸우고 월요일 에는 다시 술에 젖은 엄마

 

그리고 반복. 그리고 점점 다가오는 수험생의 압박과 스트레스. 아까도 썻아시다 시피 저희 학교는 당시 비평중화 되어 선발했던 학교기 때문에 당시 꼴통이라거나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이 많이 온 학교 이었습니다. 당연히 맘 잡고 공부만 하는 절애들이 좋아 할리 없죠. 주위의 시기심과 질투로 가득한 학교. 나름대로 맘 잡은 애들끼리는 치열한 경쟁. 늘지 않고 제자리를 머무는 그림. 늘어가는 선생님의 핀잔과 집안의 불화. 불확실한 미래. 점점 멀어지는 친구들. 저는 학교에 있으나 집에 있으나 제게 쉴 곳이란 없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수능보기 약 한달 반 전, 중간고사 보기 바로 전날 사건이 터지고 맙니다. 그 날도 어김없이 아버지가 집에 먼저 오시고 엄마는 또 술에 절어 늦게 오십니다. 저는 내일 시험을 대비해 일직 자는 중이었죠.

 

자다가…….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문을 박차고 나가보니. 아버지는 가위로 엄마를 치르려고 하더군요. 또 그놈의 의처증입니다. 저는 몸으로 막아섰죠. 결국 이내 두 사람의 힘을 못이긴 아버지는 혼자 벽을 거위로 뜯으며 자해하기 시작합니다. 경찰이 오고, 난리가 났죠. 이렇게 매일 저희 남매는 아버지 때문에 공포에 떨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누나는 당시 그 스트레스 때문에 관절이 틀어지기도 했고, 저 또한 그 때 부터 지금까지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집 현관문에 인기척만 들려도 심장이 멎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들어오면 우리는 각자 방에서 나올 수 없었습니다.

 

이혼 하려고 엄마랑 아버지는 법원에 수십 번도 더 가셨습니다. 그 때마다 할머니 주위 친척들이 설득해보고 당시 제가 이혼만은 안 된다며 눈물로 말렸었죠. 우리 중학교 때 그대로 돌아 갈 수는 없냐고. 제발 그때로 돌아가면 안 되냐고. 이게 먹혔는지 아닌지. 가까스로 이혼만을 막은 채 결국 어머니와 아버지는 각방을 쓰시거나 결벌하시기도 했습니다.


이런 집에서 공부가 되겠습니까. 안되죠. 그래서 아까 쓴 것처럼 집이 아닌 학교에서, 학원에서 눈치 보며 공부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도중 하늘이 가엽게 여겨 저는 대학 수시2학기에 붙게 되었습니다. 그땐 정말 기뻤죠. 그날은 전 잊지 못합니다. 온 가족이 껴안고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이제 너 고생 끝이다. 미안하다. 우리 땜에 맘고생 많았지. 그때만은 우리 집이 중학교 때로 돌아 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달라질 것 은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회사는 결국 부도가 났습니다. 음행 대출 납부 기일을 지키지 못했고. 결국 아버지는 그렇게 무너지셨습니다.

제 등록금. 저희 아버지가 내주신거 아닙니다. 사실 저희 어머님 친구가 저희 집 사정을 아셔서 대신 내주신 겁니다. 그것도 등록금 내는 바로 마지막 날 마감 1시간 전에 낸 것입니다. 전 그날 만해도 아 돈 없어서 대학 못가는 줄 알았습니다.

 

전 입학 때 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좀 모았습니다. 버스비가 없어서 자전거로 30분 걸어서 1시간 걸리던 길을 매일 걸어가며 주말이고 공휴일이고 알바로 조금이라도 더 벌려고 일했습니다. 그 돈, 중 제가 쓸 건 제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MP3하나가 전부입니다. 나머지요? 당연히 생활비다 가스 비니 뭐니 이런데 썼죠.


대학 와서 새로운 애들도 만나고 좋은 친구들 좋은 선배들 때문에 저 또한 많이 변했습니다.(이자를 빌어 말하는데 오늘 훈련소 간 내 친구 녀석. 고맙다. 이말 진짜 하고 싶었어.) 하지만 집안 사정은 . 더 나빠졌죠.

전 기숙사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반년동안 집안 사정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없었습니다. 단지 몆주마다 갈 때 마다 생긴 부셔진 문짝과 가구들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집에 가려고 하는데 집에서 오지 말랍니다.

집에 넘어 갔습니다. 빨간 딱지가 2번째로 붙여진 셈이죠. 이번엔 완전 틀린 것 같습니다. 강제 추방. 그거 아실 겁니다. 집이 넘어가게 되면 아저씨들이 강제로 내쫒습니다. 가구나 이런 거 대충 싸가지고 용역업체분들이 실어서 밖에다 내버린다고 하더군요. 그가 싸가지고 제가 기숙사에 잇는 동안 어머니와 아버지는 여관방을 전전하시고 누나는 친구네 집에 얹혀살았다고 합니다.

그때 누나한테 예기 처음 얘기 들었을 때. 화장실에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

정말 미안하고 죄스럽고.


그러다 어머님 친구께서 급하게 구해주신 10평짜리 사글세로 겨우 들어가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사글세에 와서 아버지의 의처증은 나아 질 줄 몰랐습니다. 전 그레도 그 고생을 했는데 둘이 가까워졌겠지 했는데 아니더군요.

어느 날 집에서 전화가 한번오더니 뚝 끊깁디다. 그래서 누나에게 전화하니까 "야. 난 이제 엄마건 아빠건 없다. 그냥 우리 둘만 있는 거야. 알았지" 하며 끊는 겁니다. 그리고 통화 두절. 새벽2시에 택시 타고 가보니 엄마는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외가로 피신 해있고 아버지는 집에서 담배만 뻐끔 뻐금 피며 오히려 자기가 잘했다는 듯 저에게 설교 하더군요……. 그때 아버지를 저는 지금까지도 납득하기 힘듭니다. 그렇게 까지……. 아버지가 미웠던 적은 없습니다. 어떻게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까지 하더군요.


뭐 그레도 겨우겨우 화해시킨다고 했지만 엄마는 아버지랑 이혼하기도 굳히고 계셨습니다. 그때 까지만 해도. 더 이상 살 생각 없다며. 저도 더 이상 막지 못했죠. 그렇게 하시라고.


그리고 엄마는 본격적으로 일을 하시기 시작하셨죠.(그전부터 준비 하던 것이지만.) 그리고 1년이 지났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지금 중국에 엔지니어로 가계십니다. 가서 돈은 사실 못 벌어 옵니다. 오히려 엄마에게 손 벌린 돈이 더 많죠. 엄마는 지금 고춧가루 판매업 하십니다.(아직 직원이시라 한 달에 100만원도 채 못 버십니다. 오해 하지 마세요.)(안심하세요. 중국산 불량 고추 가루는 절대 판매 하지 않는 식약청 허가 받고 정식으로 영업하는 업체입니다. 중소업체지만…….저희 집 김치도 저희 고춧가루로 담가 먹습니다. ㅡㅡ;)

 

그 곱던 손이 지금은 고추가루때문에 트고 달아서 갈라지고 상처투성이 몸을 보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저희 누나요? 지금 다시 공부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나빠질래 나빠질 경제 상황도 아니니 어디 한번 해보겠다고 하더군요. 저도 응원 을 아끼지 않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 사실 관계가 완전히 회복 되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전보단 많이 좋아졌습니다. 자랑도 마찬가지고요. 사실 지금 전 아버지를 납득하며 용서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해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끔 들여오는 안부 전화가 전부긴 하지만……. 그래도 엄마는 가끔 아버지 예기 하시면서 그리워하시는 것 같아요. 뭐 자주 한국에 오시긴 해도……. 없으면 허접해 하시는 거 보면. 다행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그런 전…….


어떻게 보면 저도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외형도 외형이지만 생각이…….

이 지경까지 됬는데 더 잃을 게 뭐냐 생각도 들고. 앞으로 공부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제 손으로 여행도 가고 기회만 된다면 유학도 가고 싶어요.


하지만 사실 확실하진 않아요. 앞으로 더욱 고난은 올 수 있고, 더 힘든 시련도 얼마든지 마련 돼 있으니까. 그래도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꿋꿋이 버텨 가겠죠. 그래도 지금은 얼마다 좋은데요. 적어도 난방도 되고 따뜻한 물도 나오니까요.


이젠 저는 절대 저 혼자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제주위에 많은 분들이 ㅁ낳을 얘기들과 격려. 충고들로 말이죠. 세상에는 만 가지 사람이 있으면 만 가지 이야기가 있고 만 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구중 한가지일 뿐이죠.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 비관할 틈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바에 미래를 생각하는 편이 더 낫다고 말이죠.


여러분 정말 긴 글인데 여기 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 중에선 저보다 어려우신 분들도 엄청 많으실 거 에요. 정말 존경하며, 서로 힘내자고 말하고 싶어요. 세상에는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오는 법이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 말 하고 싶어요. 우리 식구들……. 사랑해요. 진심으로. 더 힘내서 열심이 살자고요…….


불루스마치


 


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