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참혹한 대한민국'_북한이탈여성들의 미투

 2020-07-24 16:34 교보블로그에 실었던 글

 

'나의 참혹한 대한민국'_북한이탈여성들의 미투

https://newstapa.org/article/bzBVH

https://news.v.daum.net/v/20200723191702818

 

 

[변화] 군검찰, '북한이탈여성 성폭행' 정보사 군인 불구속 기소

https://newstapa.org/article/NNuw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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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6‚25전쟁 파병대가로 조선반도를 일본의 식민지로 넘겨줄 것 요구

 2020-07-18 20:02  교보블로그에 실었던 글

 

 일본 625전쟁 파병대가로 조선반도를 일본의 식민지로 넘겨줄 것 요구

일본 지난 조선전쟁에 군사분야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인력을 파견

자주일보 | 기사입력 2020/07/16 [14:45] http://www.jajuminbo.com/2593

 

오늘 자(716) 조선중앙통신사 논평에 따르면 지난 1950625일 조선전쟁에 미국이 일본의 조선전쟁에 일본의 군대 및 전쟁 관련 일반인 및 군수지원과 관련된 파병을하라고 했을 때 일본 고위 정객들이 맥아더사령부에 수차례 청원서를 보내어 파병 대가로 조선반도를 다시 일본의 식민지로 넘겨줄 것을 요구하다.”라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사진은 조선의 대륙간탄도 미사일 화성14호 발사장면이다. © 이용섭 기자

오늘 자(716) 조선중앙통신사 논평에 따르면 지난 1950625일 조선전쟁에 미국이 일본의 조선전쟁에 일본의 군대 및 전쟁 관련 일반인 및 군수지원과 관련된 파병을하라고 했을 때 일본 고위 정객들이 맥아더사령부에 수차례 청원서를 보내어 파병 대가로 조선반도를 다시 일본의 식민지로 넘겨줄 것을 요구하다.”라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조선중앙통신은 조선전쟁이 발발한지 70년이 되는 오늘까지 전쟁의 비화는 계속 밝혀지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조선중앙통신은 얼마전 일본의 교또신붕은 조선전쟁시기 미군땅크를 비롯한 군수물자수송에 종사한 한 일본인의 증언을 공개하였다.”라면서 그는 전쟁시작부터 정부가 민간인들까지 강제징용하여 조선반도에로 군수물자를 조달하였으며 당시 내려진 엄한 함구령으로 90고령에 이른 지금까지 사실을 밝히지 못한 데 대하여 실토하였다.”라고 일본이 1950년 조선전쟁에 비단 군사적인 분야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수많은 일본인들을 파병 내지는 파견하였음을 지적하였다.

이어서 조선 중앙통신은 일본이 미국에 추종하여 조선전쟁에 적극 가담한 범죄적사실은 이미 비밀이 아니라고 그동안 남측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극비밀 사항을 조선에서는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는 점을 언급하였다.

계속해서 중앙통신은 일본은 조선 전쟁이 일어나자마자 본토 전역을 미제침략군의 병참, 출격, 보급기지로 내주었으며 국가적 힘을 총동원하여 인적,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라고 언급하면서 황군출신자들은 물론 의용군,지원병,구호반등 각종 명목으로 수많은 인원을 징집하여 조선전선에 투입하고 정찰, 안내, 소해, 공습, 의료 등 전반적 군사행위들에 직접 참가하였으며 지어 미제의 치 떨리는 세균전 만행에까지 가담하였다.”라는 충격적인 사실들을 밝혔다.

중앙통신은 패망 5년도 못 되어 또다시 침략전쟁에 뛰어든 일본의 행태는 전투력보유와 교전권, 참전권을 박탈한 국제협약과 전수방위를 명기한 자국 헌법에 대한 난폭한 위반이며 평화를 지향하는 인류의 염원에 대한 도전이다.”라면서 일본이 조선전쟁에 군대를 파견하고 지원 전반적 군사 행위들에 참가한 것은 패전국으로서 참전권(參戰權)을 박탈한 국제협약 및 전수방위를 명기한 일본 헌법에 대해서도 난폭한 위반이여 평화를 지향하는 인류의 염원에 도전하는 행위라고 강력히 비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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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앙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일본은 국제사회의 규탄과 비난이 두려워 오늘까지 참전 사실을 공개, 시인하지 않고 있으며 조선 전쟁의 특등참전국, 전범국인 저들의 죄행을 역사의 망각 속에 묻어버리려 하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그러나 일본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집요하게 추구하며 재침야망실현에 몰두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섬나라 반동들의 범죄적 정체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논평에서 “2001년 미군의 기밀문서에 의해 조선 전쟁 시기 일본 고위 정객들이 맥아더사령부에 수차례 청원서를 보내여 파병 대가로 조선반도를 다시 일본의 식민지로 넘겨줄 것을 요구하였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폭로되였다.”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밝혔다.

이어서 조선중앙통신은 “2011년에는 일본 외무성이 공개한 외교문서자료를 통하여 1969년 당시 수상이었던 사또가 조선반도유사시일본이 후방을 맡을 것을 미국에 자진하여 제기하였던 사실이 드러났다.”라고 하여 일본은 패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등에 엎고 여전히 조선반도를 자신들의 식민지로 다시 만들기 위해 온갖 망동을 부리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까밝혔다.

이어서 중앙통신은 지난해에는 유엔군사령부가 조선반도유사시전투력제공 국가에 일본을 포함시키는 문제를 추진하다가 내외의 강력한 항의와 규탄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라고 하여 유엔군이라는 가면을 쓴 미국 역시 제 2의 조선전쟁이 발발하면 일본을 전쟁에 또 다시 참여시켜 기어이 조선반도 전체를 자신드의 완전한 식민지 국가로 만들려는 교활하고 악랄한 시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였다.

계속해서 조선 중앙통신은 모든 사실은 한사코 조선전쟁 가담 죄행을 시인하지 않는 섬 나라 반동들의 행위의 근저에 제2의 조선침략 전쟁을 꾀하는 범죄적 흉계가 도사리고 있음을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라고 하여 또 다시 조선반도를 자신들의 식민지로 만들려는 흉계를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그 실현을 위해 망동을 부리를 일본을 비판하였다.

그러면서 중앙통신은 천년 숙적 일본은 역대로 저들이 감행한 조선 침략전쟁이 모두 패전으로 끝난 역사적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라면서 또 다시 조선반도를 자신들의 식민지로 만들려는 망상을 하고 있는 일본에 대해 강력히 경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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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다음과 같이 일본에 대해 오늘의 조선은 과거 보총 한 자루 없었던 망국노가 아니다. 조선은 세계 그 어떤 적들이 덤벼들어도 단 매에 때려부실 수 있는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강국이다. 만약 일본이 조선반도에 그 어떤 군사적 망동이라도 부리게 된다면 그 순간 일본열도는 바다 속으로 가라앉아 버릴 것이다.”라고 늘상 경고해오고 있다.

마지막으로 조선중앙통신은 죄악에 죄악만을 덧쌓아온 일본의 만고죄행을 우리는 반드시 천 백배로 결산하고야 말 것이다.”라고 일본의 망동에 대해 강력히 경고하였다.

우리는 위와 같은 일본에 대한 경고를 귀 등으로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 본인이 파악한 조선의 군사력은 조선이 언급하는 것 이상의 세계 최강의, 차원이 다른 군사과학기술과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는 조선에 대한 이 점도 항상 염두에 두고 민족의 문제, 통일의 문제를 대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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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전의 역사에서 교훈을 찾으라 논평 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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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의 력사에서 교훈을 찾으라

--조선중앙통신사 론평--

(평양 715일발 조선중앙통신)

조선전쟁이 발발한 때로부터 70년이 되는 오늘까지 전쟁의 비화는 계속 밝혀지고있다.

얼마전 일본의 교또신붕은 조선전쟁시기 미군땅크를 비롯한 군수물자수송에 종사한 한 일본인의 증언을 공개하였다.

그는 전쟁시작부터 정부가 민간인들까지 강제징용하여 조선반도에로 군수물자를 조달하였으며 당시 내려진 엄한 함구령으로 90고령에 이른 지금까지 사실을 밝히지 못한데 대하여 실토하였다.

일본이 미국에 추종하여 조선전쟁에 적극 가담한 범죄적사실은 이미 비밀이 아니다.

일본은 조선전쟁이 일어나자마자 본토전역을 미제침략군의 병참,출격,보급기지로 내주었으며 국가적힘을 총동원하여 인적,물적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황군출신자들은 물론 의용군,지원병,구호반등 각종 명목으로 수많은 인원을 징집하여 조선전선에 투입하고 정찰,안내,소해,공습,의료 등 전반적군사행위들에 직접 참가하였으며 지어 미제의 치떨리는 세균전만행에까지 가담하였다.

패망 5년도 못되여 또다시 침략전쟁에 뛰여든 일본의 행태는 전투력보유와 교전권,참전권을 박탈한 국제협약과 전수방위를 명기한 자국헌법에 대한 란폭한 위반이며 평화를 지향하는 인류의 념원에 대한 도전이다.

일본은 국제사회의 규탄과 비난이 두려워 오늘까지 참전 사실을 공개, 시인하지 않고있으며 조선 전쟁의 특등참전국, 전범국인 저들의 죄행을 력사의 망각 속에 묻어버리려 하고있다.

그러나 일본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집요하게 추구하며 재침야망실현에 몰두하고있는 현실속에서 섬나라 반동들의 범죄적 정체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2001년 미군의 기밀문서에 의해 조선 전쟁 시기 일본고위 정객들이 맥아더사령부에 수차례 청원서를 보내여 파병 대가로 조선반도를 다시 일본의 식민지로 넘겨줄 것을 요구하였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폭로되였다.

2011년에는 일본외무성이 공개한 외교문서자료를 통하여 1969년 당시 수상이였던 사또가 조선반도유사시일본이 후방을 맡을것을 미국에 자진하여 제기하였던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해에는 유엔군사령부가 조선반도유사시전투력제공국가에 일본을 포함시키는 문제를 추진하다가 내외의 강력한 항의와 규탄을 불러일으킨바 있다.

모든 사실은 한사코 조선전쟁가담죄행을 시인하지 않는 섬나라반동들의 행위의 근저에 제2의 조선침략전쟁을 꾀하는 범죄적흉계가 도사리고있음을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천년숙적 일본은 력대로 저들이 감행한 조선침략전쟁이 모두 패전으로 끝난 력사적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죄악에 죄악만을 덧쌓아온 일본의 만고죄행을 우리는 반드시 천백배로 결산하고야말것이다.()

<저작권자 자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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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지고 왜곡된 미쳐버린 과거와 역사가 현재를 실체화하고 재현한다. 일제와 미제의 유산!

 2020-07-13 21:06 교보블로그에 실었던 글

 

 

"일제 앞잡이가 영웅 되면 대한민국이 뭐가 되겠나"

정희상 기자 입력 2020.07.09. 09:55 https://news.v.daum.net/v/20200709095506265

 

맞아 죽더라도 잘못된 군 역사 하나는 바로잡겠다고 각오했다. 독립군과 조선인을 죽이고, 전공을 과장해 스스로 영웅이 된 백선엽이 국립현충원에 묻힌다면 역사의 후환을 면치 못할 것이다.

시사IN 조남진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박경석 예비역 준장은 나쁜 것까지 가지고 가는 보수는 참된 보수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박경석 장군(88·예비역 육군 준장)은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야전에서 두루 거친 노병이다. 한국전에서는 화랑무공훈장을, 베트남전에서는 최고 무공 수훈인 충무무공훈장을 수여했다. 그는 이른바 육사 생도 2출신이다. 195061일 첫 4년제 정규 육군사관학교 생도로 입교했다가 20여 일 만에 6·25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임관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전장에 투입됐다. 박경석과 함께 포천 전투에 참가한 동기생 330명 중 86명이 초기에 전사했다. 17세의 초급장교였던 박경석도 전투 중에 수류탄 파편에 맞아 몸의 왼편을 크게 다친 와중에 인민군 포로가 됐다. 그가 포로가 된 뒤 부대에서는 전사자로 처리한 다음 서울 동작동 국군묘지(국립현충원)에 가묘를 설치했다. 집에서는 장례식까지 치렀다. 지금도 동작동 국립현충원 15-2묘역에는 고 육군 소위 박경석의 묘가 그대로 남아 있다(박경석은 지금도 우울할 때면 자신의 묘지를 찾아가 상한 마음을 달랜다고 한다).

인민군 10사단에 포로로 잡힌 박경석은 심문을 받다가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석방됐다. 이후 원대 복귀한 그는 1950년 겨울 평창 전투에 참가해 큰 전공을 세우고 무공훈장을 받았다. 베트남전에서는 맹호부대 초대 재구대대장(강재구 소령 추모 대대)’을 맡아 전공을 세웠다. 귀국해서 군 생활을 휴전선 등 야전에서만 보내던 그는 박정희 정권 아래 독버섯처럼 자라던 군내 정치 사조직에 맞서 입바른 말을 곧잘 했다. 이 일로 일찌감치 정치군인들 눈 밖에 난 박경석은 1975년 늦깎이 장군으로 진급한 뒤 1980년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차장을 끝으로 군을 떠났다. 당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한 전두환 신군부가 그에게 진압 부대에 무공훈장을 수여하도록 심사를 맡아달라고 강요했다. 그는 단호히 거부하고 스스로 군복을 벗었다.

야전 군인 박경석은 초급장교 시절부터 숨은 문인이라는 특이한 이력도 갖고 있다. 그는 육군 대위 때 필명 한사랑(韓史郞)’으로 등단해 틈틈이 시와 소설을 썼다. 산전수전 다 겪은 야전 경험을 토대로 지금까지 총 83권의 저서를 냈다. 이 가운데는 한국전쟁과 베트남전 시기 명장으로 꼽히는 김홍일과 채명신 등 원로 장성 15명에 대한 평전과 회고록도 포함돼 있다. 현재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등 전국의 군 시설 11곳에는 박경석의 시비가 들어서 있다.

군 예편 이후 문인이자 군사평론가, 군사연구자의 길로 들어선 박경석은 왜곡되고 굴절된 한국 군사(軍史)를 바로잡는 데 일생을 바치겠다고 다짐한다. 6·25전쟁 과정의 가짜 영웅실태를 조사하고, 일본과 중국을 오가며 국군 창설 초기 친일파와 독립군 장교를 연구했다. 특히 6·25전쟁 영웅으로 알려진 백선엽이 일본군 간도 특설대에서 독립군을 토벌하는 데 앞장서고 일왕에게 충성을 다짐했던 숨은 행적을 추적하는 데 오랜 기간 매달렸다. 더 나아가 한국전쟁 과정에서 육탄 10용사’ ‘육탄 5용사라는 일본군과 비슷한 영웅담이 만들어진 배경에 대해서도 꼼꼼한 사실조사를 벌였다. 그는 6·25 영웅담이 상당수 날조·과장되었다고 주장한다. 당시 일본군 출신 지휘관들이 부하의 죽음을 자신의 공적으로 미화하기 위해 역사를 왜곡했다는 것이다.

2010년 무렵 이명박 정부는 백선엽을 한국군 최초 명예원수(5성 장군)로 추대하려고 시도했다. 이때 박경석은 자신이 필생의 과업으로 모아온 친일 행적 근거자료 등을 토대로 앞장서 반대했다. 외로운 그의 외침에 쟁쟁한 군 원로들이 동참했다. 이런 기세에 눌린 이명박 정부는 결국 백선엽 명예원수 추대 작전에 백기를 들었다.

민족사 최대 비극인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또다시 백선엽이 소환됐다. 이번에는 그의 사후 국립현충원 안장을 둘러싼 논란이다. 박경석은 이 논란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대전 유성구에 사는 박경석 장군 자택을 찾았다. 80대 후반의 고령임에도 시종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인터뷰에 응한 그는 한국전쟁 70주년이 되도록 백선엽 미화에 매달리는 보수 진영에 대해 가짜를 알면서도 신봉하면 참된 보수가 아니다라고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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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출신 장교들을 연구해오셨는데.

일본 군대 출신 장교라고 무조건 척결 대상으로 보지는 않는다. 비록 일본군 출신이라 해도 독립운동을 직접적으로 탄압하지 않고 해방 뒤 잘못을 인정한 다음 대한민국에 기여한 장군들도 많다. 자칫 잘못하면 백선엽 때문에 그분들까지 한꺼번에 매도당할까 하는 걱정이 없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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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출신 사이에도 차이점이 있다?

그렇다. 과거 잘못을 인정하고 안 하고는 천지 차이다. 이종찬, 이한림 장군은 일본군 출신이었지만 과거 잘못을 구체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했다. 김종오 장군도 부끄럽다고 고백했다. 그분들은 백선엽처럼 간도 특설대에 근무하거나 독립운동가를 혹독하게 다룬 적이 없다. 그러나 백선엽, 정일권 같은 일본군 출신은 끝까지 제대로 사과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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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 특설대 근무가 문제인 이유는?

일제 만행을 담은 역사 화보에서 사람 목을 칼로 베는 장면이 바로 간도 특설대가 조선 사람 죽이는 모습이다. 오랑캐의 손으로 오랑캐를 잡는다는 이이제이 전법을 적용해 조선인 손으로 조선인을 잔인하게 제압하라고, 일본군이 만든 부대가 바로 간도 특설대다. 백선엽은 간도 특설대에 지원병으로 들어간 사람이다. 일본과 중국에서 관련 증거서류를 다 확보했다. 국내에 나도는 백선엽의 간도 특설대 활동 증거는 모두 내가 수집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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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를 어떻게 입수했나?

일본에 건너가서 간도 특설대 연구 전문가인 다나카 히사이로 박사를 만났다. 그가 모든 관련 자료를 넘겨줬다. 보니까 기가 막혔다. 백선엽은 한국군 생활을 마친 박정희~전두환 정부 시절에 일본을 오가며 기자들과 인터뷰하고, 일본어판 회고록까지 냈더라. 일본 만주군관학교 동기생들 모임에 나가서 간도 특설대에서 근무한 게 영광이라는 연설도 했다. 독립군과 조선인을 죽인 것도 군인으로서 임무를 수행한 거라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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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은 1993년 일본에서 간도 특설대의 비밀이란 회고록을 출간했다. 그는 이 책에서 우리가 전력을 다해 독립군을 토벌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이 늦어졌던 것도 아닐 것이고, 우리가 일본을 배반하고, 오히려 항일 게릴라가 되어 싸웠다고 해도 대한민국 독립이 빨라졌으리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이 사실이었고,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라는 소회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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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 같은 일본군 출신을 중용한 이승만 정부의 책임이 크지 않나?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군 출신을 활용했지만 나름 최소한도의 안전장치를 두었다. 국방부 장관을 광복군 출신 독립운동가인 이범석 장군으로 앉혔다. 일본군 출신들에 대해선 후보생으로 받아 한국군 소위에서부터 시작하는 코스를 밟게 했다. 건국과 창군 초기에 어쩔 수 없이 일본군 출신을 썼지만 원칙은 지켰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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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이 야심차게 밀어붙이던 백선엽 명예원수 추대를 좌절시켰는데.

간도 특설대에서 독립군을 잡았던 사람이 초대 명예원수가 되고, 영웅으로 부각된다면, 대한민국이 뭐가 되겠나? 대한민국 최초의 명예원수 추대라면 그 의미와 상징성이 매우 크다. 6·25전쟁 참전 원로 장군들이 백선엽 영웅화를 이구동성으로 반대했던 이유도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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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이 저지른 친일행위보다 6·25전쟁의 공을 더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6·25전쟁사를 모르는 일반인, 특히 정치인들은 마치 낙동강 다부동 전투에서 백선엽이 인민군을 다 막아서 대한민국이 구출된 것처럼 주장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낙동강 전선이 240였다. 그 전선에서 한국군 5개 사단과 미군 3개 사단, 8개 사단이 합심해서 방어해낸 것이다. 백선엽은 그중 일부분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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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방어에서 미군도 큰 역할을 했다.

미국 공군 B29 폭격기가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미 연합군 8개 사단을 지휘하면서 불퇴전의 결의로 앞장섰던 미군 워커 장군의 공도 컸다. 워커 장군은 나중에 교통사고로 작고했지만 우리 정부도 낙동강 전선의 공로를 기려 그의 이름을 딴 워커힐 호텔까지 만들었다. 훗날 일각에서 백선엽이 낙동강 전선을 혼자 사수한 것처럼 과장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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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과장했나?

6·25전쟁 공로를 과장해 스스로 영웅화한 주역은 백선엽 자신이었다. 그는 군복을 벗은 뒤 박정희 정부 때부터 30년간 전쟁기념관에 사무실을 두고 출근하면서,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자문위원장을 자원해 맡았다. 참전하지 않고 당시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아이고, 백선엽 장군이 내신 6·25 관련 책이니까라며 덮어놓고 찬양했다. 그러나 참전 장군들은 다 안다. 그분들은 백선엽 장군을 영웅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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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의 진짜 영웅이 있다면?

당시 전쟁기를 통틀어 김홍일 장군과 김종오 장군 정도를 꼽을 수 있다. 김홍일 장군은 중국 정규군 중장 출신으로 일제 말기 임시정부 광복군 참모장을 지냈다. 6·25전쟁 초기 김홍일 장군 아니었으면 대한민국글자가 없어질 뻔했다. 이 역사가 아직까지 너무 묻혔다. 일본군 출신 백선엽 때문에 묻혔다. 국민들이 거의 모른다.

연합뉴스1955927일 제1군사령부 주최 전군사격대회에 참석한 정일권 육군참모총장(앞줄 가운데)과 각 군단장. 앞줄 맨 오른쪽이 당시 1군사령관이었던 백선엽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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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힌 이야기는?

6·25 개전 초기 국군이 무너져 내렸다. 개성의 1사단장 백선엽 대령은 전날 서울 육군회관 파티에 외출 나갔다가 6·25가 터진 그날 오전까지 부대에 나타나지 않았다. 사단장이 없는 동안 닥친 전쟁에서 1사단은 속수무책 후퇴했다. 임진강 남쪽의 일부 병사들이 고향 집으로 달아나버릴 정도로 부대는 엉망진창이 됐다. 백선엽에겐 가장 수치스러운 순간이었다. 유재홍 준장의 의정부 7사단도 무너졌다. 춘천 지구를 방어하던 김종오 대령의 6사단만 제대로 싸우며 3일을 버텼다. 김종오 대령은 (전쟁 발발 전부터) 위기의식을 느끼며 철저히 대비하고 있었다. 대대장 이상 계급에 대해 전부 외박을 금지해두었다.

1사단과 7사단이 붕괴되자 김홍일 장군이 군 원로회의를 소집해 신성모 국방부 장관과 채병덕 총참모장을 앞에 두고, (북한군에 쫓겨 내려오는) 부대를 수습해서 한강 방어선을 구축하자고 주장했다. 신성모와 채병덕은 반대했다. 대구·광주·대전의 후방 3개 사단을 서울 근방으로 불러올렸지만 올라오는 족족 인민군의 공세에 붕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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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디에서 싸웠나?

그때 나는 육사 생도로서 포천 전투에 나갔다. 부대가 완전히 붕괴되어 86명이 계급·군번도 없이 전사했다. 후퇴해서 수원으로 내려와 특공대를 모집해 한강 방어선에 참가했다. 광복군 원로인 김홍일 장군이 신성모·채병덕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만든 방어선이었다. 김홍일 장군이 한강 방어선을 적극 주장하니까 이승만 대통령이 그를 시흥지구 전투사령관으로 임명했다. 김홍일은 장교와 헌병을 진두지휘하면서, 1번 국도와 야산을 통해 썰물처럼 퇴각해 내려오는 국군 패잔병을 수습해 만든 임시 사단을 한강에 배치했다.

그해 628일 서울을 점령한 인민군이 이틀을 주춤한 이유가 있다. 우선 북측은 한강 이북 서울 중심부를 점령한 것만으로도 대한민국을 다 차지한 거나 다름없다고 자만했다. 당시 북측은 인민군 2사단이 춘천에서 국군 6사단을 물리친 뒤 이천을 거쳐 수원 남방에 포위망을 구성해서 한국군을 궤멸시키는 작전을 세웠다. 그런데 춘천에서 (김종오의) 국군 6사단이 잘 버티며 그 작전을 무산시켰다.

아주 교묘하게 맞물렸다. 김홍일 장군이 한강 방어를 안 했거나 춘천에서 김종오 대령이 인민군을 막지 못했다면 나라가 무너지는 판국이었다. 두 사람의 작전이 맞아떨어지면서 대한민국의 운명을 가르는 사흘을 얻은 것이다.

  <o:p></o:p>

개전 직후 사흘이 중요했던 이유는?

미국 조야에서는 초기 전세로 판단할 때 참전 시점이 늦었다고 봤다. 오키나와로 이승만 정부를 망명시킨다는 말까지 돌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김홍일과 김종오가) 초반 3일을 벌면서 미군과 유엔군의 참전 결정에 실마리를 제공한 것이다. 대한민국 구출의 발판이 마련되었다. 김홍일 장군과 김종오 대령의 공로는 백선엽의 초기 행각에 대비해보면 철저히 과소평가되었다. 이런 구체적인 전쟁사를 요즘 군인이나 군사 전문가들은 잘 모른다. 백선엽 영웅 만들기에 가려져버렸다.

  <o:p></o:p>

백선엽의 1사단 병사들이 개전 초기에 인민군 전차를 육탄 돌격으로 막았다는데.

일본군 출신 일부 장군들이 스스로를 전쟁 영웅으로 미화하기 위해 과장하고 날조했다. 적 전차를 육탄으로 부쉈다는 심일 소령과 육탄 5용사’, 적 토치카를 맨몸으로 파괴하고 장렬하게 산화했다는 육탄 10용사사건이 대표적인 해프닝이다. 육탄 10용사 중에서 한 병사가 북한 방송에 나와 귀순 월북을 종용한 사건은 (우리 군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이런 영웅들을 기리는 동상이 아직도 육사에 그대로 남아 있고, 교과서에도 실렸는가 하면 군가까지 만들어 불렸다. 그 뿌리는 일본 군국주의에 있다.

  <o:p></o:p>

어떤 뿌리인가?

일제하 초등학교 교과서에 태평양전쟁에서 적의 전차를 파괴하고 목숨을 던진 육탄 3용사의 영웅담이 게재돼 있었다. 당시 조선 청소년들에게 그 글에 감동하라고, 혈서를 쓰라고 강요하면서 일왕에 대한 충성을 다짐시켰다. 그 영웅담은 일본 패전 후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백선엽 같은 일본군 출신 장군들이 똑같은 수법을 6·25전쟁사에서 되풀이한 것이다.

  <o:p></o:p>

백선엽 장군이 6·25전쟁 가짜 영웅 만들기에 개입했다는 근거가 있나?

일본군 출신 장군들이 나에게 구체적으로 육탄 용사 영웅 만들기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일본군 출신인 손 아무개 장군이 나에게 직접 그러더라. “월남전 영웅으로는 강재구 소령이 있지만, 일본군 출신 중엔 영웅이 하나도 없지 않으냐. 백선엽 장군이 직접 나서서 타당성을 주장하시는데 박경석 장군이 좀 도와달라.”

심일 소령에 대해서는, 내가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차장으로 당연직 공적심사위원장을 맡았던 1980년대 초반의 1차 조사 당시, ‘이미 허구가 드러났다고 거절했다. 그랬더니 나를 백선엽 장군 방으로 데려가더라. 백선엽은 그 자리에서 나에게 심일 소령을 영웅으로 만들자고 이야기했다. 나는 할 수 없다고 거절하며 그 자리를 나와버렸다. 그런데 3년쯤 지나니까 육군사관학교에 심일 소령 동상을 세우고 심일상을 제정했다. 내가 손 장군한테 전화해서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 손 장군은 백선엽 장군이 참모총장한테 특별히 부탁해서 성사시킨 거니까 그런 줄로만 알고 잠자코 있어달라고 했다.

역사의식 없는 역대 국방 수뇌부들이 만든 어이없는 해프닝이다. 육사, 삼사 등 군 간부 양성기관에서는 소위 백선엽 도서 코너를 따로 만들어 그를 칭송한다. 백선엽이 낙동강에서 싸워 혼자 대한민국을 지킨 영웅으로 만들어지니까, 이명박 전 대통령은 한국전쟁 60주년 기념으로 3개 프로젝트를 밀어붙였다. 하나는 명예원수 추대, 하나는 백선엽상 제정, 그리고 정부가 공적으로 간행하는 백선엽 회고록. 3개 프로젝트가 이명박 정부에서 결정됐는데, 내가 앞장서서 막았다. 백선엽 영웅화 반대 선언문을 발표했다. 당시 살아 있던 6·25 참전자들이 울분을 토하며 합류했다.

  <o:p></o:p>

백선엽 지지 세력의 방해가 만만치 않았을 텐데.

맞아 죽더라도 잘못된 군 역사 하나는 바로잡고 죽겠다고 각오했다. 독립군을 잔인하게 죽인 일제 앞잡이가 대한민국의 초대 명예원수가 된다면 대한민국이 뭐가 되겠나. 대한민국 건국이념은 어떻게 되나. 자칫 북한의 6·25 남침이 일제 잔재 소탕 전쟁으로 정당화되면 어떻게 하나? 이걸 바로잡지 않으면 이 나라가 세계적 웃음거리로 전락하는 거다.

보수 진영 내에서는 백선엽을 이순신 장군이나 홍범도 장군에 빗대 칭송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청춘을 야전에서 바친 군인으로서 스스로 보수라 자처하지만 나쁜 것까지 가지고 가는 보수는 참된 보수가 아니다. 가짜와 거짓은 털고 가야지, 속이고 갈 순 없다.

  <o:p></o:p>

백선엽 장군의 국립현충원 안장 논란을 어떻게 보나?

비록 현행법상으로 백선엽이 현충원에 묻힐 자격을 가졌다 하더라도 내가 후손이라면 극구 만류하겠다. 그가 만일 국립현충원에 안장되면 역사의 후환을 면치 못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묻힐 곳이 없는 것도 아니지 않나. 백선엽 장군에게는 현충원 대신 인천에서 선인학원으로 형제애를 나눈 동생 백인엽씨가 묻혀 있는 가족묘가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한다

 정희상 기자 minju518@sisain.co.kr

     

“백선엽, 日서 ‘간도특설대 강연’, 영웅대접…기록 다 있다”박경석 장군 “‘조선사람 죽였다고 독립 늦어지나, 안 죽였다고 빨라지나’ 기록도
민일성 기자 | balnews21@gmail.com
[출처: 고발뉴스닷컴] 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0543
  

눈송이 2020-08-07 답글
적극적 반민족주의자 백선엽은 어떻게 '국립묘지'로 갔나
[민교협의 시선] 안현태에서 백선엽까지...국립현충원, 그 모순과 혼란에 대해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72017550629577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백선엽 '셀프 영웅화', 연구자들 비판없이 받아적었다"
https://news.v.daum.net/v/20200807050711406
"백선엽은 조작된 영웅" 참전군인이 말한다
https://news.v.daum.net/v/20200720050616613
'대장' 백선엽을 '중장급' 명예사령관으로 임명한 미군의 이중성[한국군 코멘터리]
https://news.v.daum.net/v/20200720060846395

 

눈송이 2020-07-21 답글

美, ‘친일·양민학살’ 백선엽 적극 애도.. 왜?
[기고] 일본의 한반도 강점에 동의한 역사적 배경이 평가 기준
[출처: 고발뉴스닷컴] 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0575
친일·양민학살 백선엽을 미국이 적극 애도하는 까닭은?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71615411762368

눈송이 2020-07-16 답글

[백선엽 관련 영상] 백선엽 부대가 우리 가족을 죽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time_continue=1&v=AzHGPX-jD5o&feature=emb_logo

눈송이 2020-07-16 답글

백선엽, 참군인 청빈한 삶?..강남역 수천억대 건물 아들명의 소유(한겨래, 오승훈)
https://news.v.daum.net/v/20200716050602700

눈송이 2020-07-14 답글

http://tbs.seoul.kr/player/replay.do?playType=AOD&fileUrl=rtmp://58.234.158.60:1935/FMAOD/mp4:fmaod/2020-07/20200713_073000_PG2061299A.mp4&channelCode=CH_A&programId=PG2061299A&boardCate=05&bseq=25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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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이 고위직? 경악"..국회서 '친일이 애국' 공무원 질타(한민호?)

 2019-08-21 21:36  교보블로그에 실었던 글

 

 

 

 

"이런 분이 고위직? 경악"..국회서 '친일이 애국' 공무원 질타

홍지용 기자입력 2019.08.21. 20:44

https://news.v.daum.net/v/20190821204416754

 

[앵커]

어제(20일) 뉴스룸은 문화체육관광부의 현직 고위 공무원이 "친일하는 것이 애국이다" 이런 글을 여러차례 올려서 징계위에 회부됐다는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이 문제가 오늘 국회에서도 논란이 됐습니다.

홍지용 기자입니다.

[기자]

JTBC 보도로 알려진 문화체육관광부 한모 국장의 친일 막말 논란이 국회로 이어졌습니다.

[정세균/더불어민주당 의원 : '지금은 친일하는게 애국이다'…개인 페이스북인 모양인데, 이런 보도가 있었는데 사실입니까.]

[박양우/문화체육관광부 장관 : 네, 방금 말씀하신 것은 어제 방송에 나온 것이고요.]

국민을 모욕하는 듯한 표현을 거리낌없이 한 데 대해 박양우 문체부 장관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습니다.

[정세균/더불어민주당 의원 : 아니 근데 어떻게 이런 분이 고위공무원단까지 올라갈 수가 있어요. 혹시 다른 분도 이런 비슷한 분이 있습니까. 저는 아주 경악했습니다.]

[박양우/문화체육관광부 장관 : 제가 알기로는 저희 부처에서는 없습니다.]

지난 2016년 막말 논란을 일으킨 교육부 공무원 사례도 언급됐습니다.

[신동근/더불어민주당 의원 : 교육부 나향욱 정책기획관 발언 알고 계시죠. (문체부 한 국장은) 한두 번도 아니고 반복적으로 이런 행위를 하고 있다는 말이죠.]

5급 이상 고위공무원의 징계는 인사혁신처 중앙징계위에서 결정됩니다.

문체부는 문제가 된 한모 국장에 대한 징계를 요청했고 인사혁신처는 10월 초 징계수위를 정할 예정입니다.

한 국장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징계위에 회부된 것은 사실이지만 무분별한 반일 선동에 대한 분노의 뜻을 표현한 것 뿐이라고 해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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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되지 않은 과거, 어느 국책 연구원장이 공개석상에서 '천황페하 만세'를 외쳤다더만은 .... 

 

 

눈송이 2021-09-18                        

한민호 전 문체부 국장
“나 스스로 친일파라고 여러 번 공언했다. 지금은 친일을 하는 것이 애국이다”라는 글을 올린 것을 비롯하여, “내가 한국인이라는 게 부끄럽다”, “이런 미개한 나라 구더기들과 뒤섞여 살아야 한다니” 등의 글을 올렸다고 한다. 출처 : 뉴스페이퍼 http://www.news-pap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58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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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백선엽 예방에 전우용 “독립운동가 잡던 만주군 이용, 일제 수법”

 2019-06-11 21:21 교보블로그에 실었던 글

 

 

황교안, 백선엽 예방에 전우용 독립운동가 잡던 만주군 이용, 일제 수법

김어준 황교안 박수치고 담화까지 발표한 박근혜 국정교과서도 김원봉 높이 평가

[출처: 고발뉴스닷컴] 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78572

승인 2019.06.11 10:28:52수정 2019.06.11 11:11:31 민일성 기자 | balnews21@gmail.com

  <o:p></o:p>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0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군사 편찬연구 자문위원장실에서 백선엽 예비역 대장을 예방, '백선엽의 6.25 징비록' 책을 선물 받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o:p></o:p>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백선엽 예비역 대장을 만나 북한군 창설에 기여하고 6·25 남침의 주범 가운데 한 명인 김원봉이 국군의 뿌리가 됐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며 문재인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황 대표는 10일 오후 서울 용산전쟁기념관 군사편찬연구 자문위원장실에서 백 예비역 대장을 예방해 백선엽 장군님께서 우리 국방의 초석을 다지셨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황 대표는 백 장군님이 우리 군을 지켰고, 오늘에 이르게 됐다는 사실이 명백한데 김원봉이라는 사람이 군의 뿌리가 된 것처럼 말을 하고 있어 안타깝다저희가 잘 막아내도록 하겠다고 했다.

  <o:p></o:p>

백선엽 예비역 대장은 6.25 전쟁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지만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군관을 양성하던 봉천군관학교 출신이다. 또 만주에서 항일투쟁을 벌이던 조선인과 중국 팔로군을 토벌했던 간도특설대 장교로 복무해 친일반민족행위자에도 등재돼 있다.

황 대표가 약산 김원봉 선생을 비판하고 있지만 박근혜 정부 시절 우파 인사들이 만들었던 국정 역사교과서에는 12차례나 언급돼 있다. 김원봉 선생을 김구, 신채호 선생에 버금가게 비중 있게 다뤘다.

2015113일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는 국정교과서 고시 확정대국민 담화에서 편향된 역사 교과서를 바로 잡아야 학생들이 우리나라와 미래 역사에 대한 확실한 정체성과 올바른 역사관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o:p></o:p>

20158월 당시 새누리당 기관지인 새누리비전은 독립투사들을 시대별로 조명한 기사에서 김원봉 선생과 의열단에 대해 언급했다.

한국당 소속 박일호 밀양시장은 2016년부터 김원봉 생가터를 매입해 지난해 3월 의월기념관을 열었다. 박 시장은 약산은 밀양의 영웅이라고 평가하며 올해 의열기념공원과 의열탑도 만들겠다고 밝혔다.

  <o:p></o:p>

2015113일 오전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가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 국정화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o:p></o:p>

황 대표의 행보에 역사학자 전우용 교수는 SNS에서 하필 만주군 장교 출신 백선엽씨를 찾아가 조선의용대가 우리 국군의 뿌리라는 건 말이 안 되는 얘기라고 주장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 교수는 독립운동가를 잡기 위해 만주군 장교를 이용하는 수법은 누구에게 배웠을까라며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수법, 참 질기게도 오래 간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교활한 수법의 명맥이 이어지는 건, 배우는 자들이 계속 나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o:p></o:p>

김어준씨는 11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황교안 대표, 나경원 원내대표 모두 박수쳤던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교과서는 김원봉에 대해 이렇게 다루고 있다고 되짚었다.

의열 투쟁을 전개한 대표적인 단체로 의열단이 있다. 의열단은 김원봉 등의 주도로 결성됐다. 독립운동 세력이 임시정부를 결집한 것처럼, 조선의용대 본부 병력이 광복군에 합류하였고 김원봉은 부사령에 임명되었다.”

이어 김씨는 최근 한국당이 북한 정권 눈치보기라고 비판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기념사는 이렇게 언급한다고 비교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광복군을 창설해 일제에 선전포고를 했다. 이후 광복군에 김원봉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되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결집했다. 통합된 광복군은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이고 한미동맹의 토대가 되었다.”

그러면서 김씨는 뭐가 다른가라며 그럼 이 광복군이 국군 창설의 뿌리가 아니라는 건가? 아니면, 국군이 한미동맹의 토대가 아니라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o:p></o:p>

또 나경원 원내대표의 북한 눈치보기도 말이 안 된다며 김씨는 김원봉은 한국전쟁 직후 북한에 의해 숙청됐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황 대표가 백선엽 장군을 국군의 뿌리라고 한 것에 대해 김씨는 우선 문 대통령은 국군의 뿌리는 김원봉이라고 하지 않았다. 의열단이 광복군에 합류했고 광복군이 국군의 뿌리라고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씨는 국군의 뿌리를 어떻게 내세워도 친일을 한 군인을, 그것도 독립군을 때려잡던 군인을 내세우는지 모르겠다부끄럽지 않은가보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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