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 공산주의의 이념
오늘 내 목표는 – 몇 가지 설득력이 있기를 희망하는 근거들을 위해 – 내가 공산주의의 이념(Idee)이라는 이름을 부여하는 지성적 작용을 설명하는 것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이러한 구축에 있어 가장 까다로운 부분은 가장 일반적인 것, 즉 이념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것인데, 이것은 단순히 정치적 진리들에만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이 경우에 이념은 공산주의의 그것이다), 모든 진리에 관한 것이다(이 경우에 이념은 플라톤이 에이도스[eidos]나 이데아[idea]라는 이름으로, 또는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선의이데아[Idee de Bien]라는 이름으로 전달하고자 했던 어떤 것의 근대적 형태이다). 나는 공산주의의이념에 관해 가능한 한 분명하게 말하기 위해, 이러한 일반성의 상당 부분을 암시적인 채로 내버려 둘 요량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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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적 이념>>의 작동은 세 가지 기본적인 구성요소들을 필요로 한다. 즉, 정치적 구성요소, 역사적 구성요소 그리고 주체적 구성요소를 말이다.
먼저 정치적 구성요소. 이것은 내가 하나의 진리, 즉 정치적 진리라고 부르는 것에 관련된다. 내가 제시한 중국의 문화 혁명(하나의 정치적 진리, 만일 그런 것이 있다면) 분석에 관해, 영국의 일간지 옵저버Observer에 글을 기고한 한 비평가는, 오로지 이 중국 역사의 에피소드(물론, 그에게 있어, 불길하며 유혈이 낭자한 혼란인)와 나의 확실한 관계만을 인정하며, 영국의 경험주의적 전통이 <<이념적 정치의 전횡에 대한 전적인 자만에 대항하여 [옵저버 지의 독자들에게] 예방주사를>> 놓았다는 점으로 인해 자부심을 느낀다고 평할 수 있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요컨대 그는 사실상 <<이념 없이 살라>>는 오늘날 세계 내에서 지배적인 명령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를 만족시키기 위해, 나는 정치적 진리가 결국 순수하게 경험적인 방식으로 기술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서두를 떼고자 한다. 즉,그것은 새로운 사유와 새로운 집합적 해방의 실천이 일어나고, 실존하며, 결국에는 사라지게 되는 구체적으로 날짜가 기록된 시퀀스라고 말이다.2 우리는 또한 몇 가지 설명들을 제시할 수 있다. 말하자면, 1792년부터 1794년까지의 프랑스 혁명, 1927년부터 1949년까지 중국에서 일어난 인민해방 전쟁, 1902년부터 1917년까지 지속된 러시아의 볼세비즘(la bolchvisme), 그리고 – 불행히도 옵저버 지의 비평가는 아마도 나의 다른 모든 예들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겠지만 – 1965년부터 1968년까지의 문화대혁명이 그런 예들일 것이다. 그런 이후, 명백하게, 말하자면 철학적으로, 우리는 여기에서, 내가 존재와 사건L’Etre et l’evenement 이래로 제시해왔던 그런 의미에서, 진리의 절차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이다.잠시 후 이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여하간에 모든 진리 절차는 그 진리의 주체를 규정한다는 점에, 즉 또한 경험적으로도 개인으로 환원불가능한 주체를 규정한다는 점에 유의하도록 하자.
P183 두번째 문단
이어서 역사적 구성요소에 대해 살펴보자. 연대적인 추정은 이를 드러낸다. 어떤 진리의 절차는 국지적 형식 아래 그 지지가 공간적이며, 일시적인 그리고 인류학적인 인류의 전체적인 변전 내에 기입된다. <<프랑스의>>라던지 또는 <<중국의>>라는 수식어들은 그 국지화의 경험적 색인이다. 그 수식어들은 실뱅 라자뤼스(cf. 앞의 주석을 볼 것)가 <<정치의 역사적 양상들>>에 대해 말하며, 그저 <<양상들>>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실제로 어떤 진리의 역사적 차원이 있는데, 비록 진리가 최종심급에 있어 보편적이거나(내가 예를 들어 윤리학Ethique이나 성 바울 또는 보편주의의 정초Saint Paul ou la foundation de l’universalisme에서 그 말을 제시했던 의미에서) 또는 영원함에도(내가 세계의 논리Logiques des mondes나 철학을 위한 두 번째 선언Secnod Manifeste pour la philopsophie에서 말하기를 선택했던 그대로) 불구하고 말이다. 우리는 특히, 진리에 의해 결정된 전형(정치적인, 그러나 또한 사랑의, 예술적인 또는 과학적인)의 내부에서, 역사적 기입이 다른 진리들 사이의 관계들을 포함하며, 따라서 전체적인 인간에 속한 다른 지점들 내에 상황지어진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특히 진리에 앞서 창조될 다른 진리들에 관한 어떤 한 진리의 소급적인 효과들이 실존한다. 이 모든 것이 진리들의 시간을 가로지르는(trans-temporelle) 개방성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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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주체적인 구성요소가 나온다. 관건이 되는 것은 하나의 단적인 인간 동물로 정의되는, 그리고 명백히 모든 주체로부터 구분되는 인간동물이 정치적 진리 절차의 한 부분이 되는 결정3을 위한 가능성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러한 진리의 투사가 될 가능성인 것이다. 나는 세계의 논리에서, 그리고 철학을 위한 두 번째 선언에서 보다 간단하게, 그러한 결정을 통합(incorporation)으로 기술한다. 말하자면, 개별적 신체들(corps)과 그들이 사유, 정동, 활동적인 잠재성으로부터 끌어내는 모든 것들이 하나의 다른 신체, 즉 진리-의-몸(le-corps-de-verite)에 의해, 생성 중인 진리에 의해 주어진 세계 내에서의 물질적 실존의 원소들이 된다. 그것은 한 개별자가 개별성(또는 동물성, 그 둘은 같은 것이다)에 의해 부과된 경계들(이기주의, 경쟁, 유한성…)을 넘어설 수 있음을 선언하는 계기이다. 그 사람은 전적으로 그 사람인 그대로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통합을 통해, 새로운 주체(Sujet)의 활동적인 부분이 될 수 있다. 나는 그러한 결정을, 즉 그러한 의지를 주체화라 명명한다.4 더욱 일반적으로, 주체화는 언제나 한 개인이 그 사람에게 고유하며 중요한 실존에 관하여 그리고 그러한 실존이 배치되는 세계에 관하여 진리의 장소를 고정하는 운동이다.
P185 두번째 문단
나는 세 가지 기본적 원소들의 추상적 전체화를, 즉 진리의 절차를, 역사적인 귀속(appurtenance)과 개별적인 주체화를 <<이념>>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즉각적으로 이념의 명료한 정의를 제시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이념은 진리 절차의 단독성과 역사(Histoire)의 재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주체화다.
우리가 붙잡고 있는 사례에서, 우리는 이념이 한 개인에게 있어 단독적인 정치적 과정에 대한 그의 참여(그의 진리-의-몸에 대한 연루)가 또한 어떤 의미에서는 역사적 결정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념을 통해, 그 개인은, 새로운 주체의 원소로서, 역사의 운동에 대한 그의 귀속을 실현한다. <<공산주의>>라는 말은 약 2 세기 동안(바뵈프[Babeuf]의 <<평등한 자들의 공동체>>이래로 지난 세기의 80년대에 이르기까지) 해방의 정치 또는 혁명적 정치의 전장 내에 위치된 이념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이름이었다. 공산주의자가 된다는 것, 그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확정된 국가 내에서 공산주의 정당에 속한 투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산주의 정당의 투사가 된다는 것은 모든인류 전체의 역사적 방향설정에 대한 수백만의 행위자들 중 하나가 된다는 것이었다. 주체화는 공산주의의 이념에 속한 그 원소 내에서 국지적 귀속을 집합적 해방을 향한 인류의 행진이라는 정치적 절차와 막대한 상징적 영역에 연결시켰다. 시장에 전단을 돌리는 것 또한 역사의 무대 위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었다.
P186 두번째 문단
따라서 우리는 <<공산주의>>라는 말이 왜 순수하게 정치적인 이름이 될 수 없는가를 알게 된다. 말하자면, 그 말은 주체화를 지탱하는 개인에게 있어 실제로 정치적 절차를 그 절차 이외의 다른 것에 연결 짓기 때문이다. 그 말은 더 이상 순수하게 역사적인 말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우연성(contingence)으로 환원할 수 없는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아는 효과적인 정치적 절차가 없다면, 역사는 비어있는 상징체계(symbolism)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역사는 또한 순수하게 주체적인 또는 이데올로기적인 말 일 수 없다. 실제로 주체화는 정치와 역사 <<사이에서>>,상징적인 전체성 내에 있는 단독성과 그 단독성의 투영(projection) 사이에서 작동하며, 그 물질성들과 그 상징화들이 없이 없다면, 주체화는 결정의 상태에 이를 수 없다. <<공산주의>>라는 말은 이념의 지위를 지니는데, 그것은 통합으로부터, 그리고 따라서 정치적 주체화의 내부로부터, 그 말이 정치, 역사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종합을 나타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바로 공산주의를 개념으로 이해하기 보다 작용으로 이해하는 편이 더 나은 이유다. 공산주의의 이념은 오로지 개인과 정치적 절차의 가장자리에서 정치의 역사적 투영에 의해 지탱되는 주체화의 그러한 구성요소로서만 실존할 뿐이다. 공산주의의 이념은 또한 그리고 동시에 역사 가운데로의 투영인 개인의 정치적-주체-됨(devenir-Sujet-politque)을 구성하는 것이다.
P187 두번째 문단
내 친구 슬라보예 지젝의 사변적인 영역을 향해 내가 이동하게 되기는 하지만5, 나는 라깡의 세 가지 주체의 심급들 – 실재, 상상계 그리고 상징계 – 의 등재 내에서 전반적으로는 이념의 작용을, 그리고 특정하게는 공산주의의 이념을 정식화하는 것이 이를 해명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우선 진리의 절차 그 자체가 이념을 지탱하는 실재라고 가정할 것이다. 우리는 다음으로 역사가 오로지 상징적 실존만을 가진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실제로, 역사는 나타날 수 없다. 나타나기 위해서는 세계 내에 귀속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역사는, 인간들의 변전의 전체로 상정되는 이상, 효과적인 실존 내에 그 자체를 위치시킬 수 있는 세계를 가지지 않는다. 역사는 사후적인 서사적 구성이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실재를 역사의 상징계(le symbolique) 내에 실재를 투영하는 주체화가 어떠한 실재도 그 자체로 상징화되지 않는다는 중요한 이유로 인해 상상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실재(le reel)는 결정된 세계 내에, 그리고 내가 재검토하게 될 것들에 관한 매우 특정한 조건들 아래에 실존한다. 그러나 그것은, 라깡이 반복해서 말했던 것처럼, 상징화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역사의 상징적 서사 내에 진리 절차의 실재를 투영할 수 있다는 것은 <<실재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로지 상상적으로만 그럴 것이나, 이는 그것이 무용하거나, 부정적이거나, 또는 부질없는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며,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반대로, 개인은 이념의 작용 가운데 <<주체로6>> 구성되기 위한 자원을 찾는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할 것이다. 이념은 허구의 구조 내에서 진리를 드러낸다. 공산주의적 이념이라는 특정한 경우에, 이 이념은 관여하는 진리가 해방적인 정치의 시퀀스 일 때 작용하는데,우리는 <<공산주의>>가 이 시퀀스를 (그리고 따라서 이 시퀀스의 투사들을) 역사의 상징적 질서 내에서 드러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다시 말해서, 공산주의적 이념은 개별적 주체화가 정치적 실재의 단편을 역사의 상징적 서사 내에 투영하는 상상적 작용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념이 (예상되는 것처럼) 이데올로기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타당하다7.
오늘날 <<공산주의적>>이라는 말이 더 이상 어떤 하나의 정치를 규정하는 형용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실재와 이념 사이의 단락(court-circuit)은 잘못 형성되었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서사시적이면서도 동시에 끔찍한 한 세기의 경험들을 필요로 했던 표현들을, 즉 <<공산주의정당>> 또는 – <<사회주의 국가>>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피하고자 했던 모순어법인 – <<공산주의 국가>>와 같은 표현들을 야기했다. 우리는 이러한 단락(court-circuit)에서 마르크스주의의 헤겔적 기원으로부터 온 오랜 과정의 효과를 볼 수 있다. 헤겔에게 있어 실제로, 정치의 역사적인 노출은 상상적 주체화가 아니며, 그것은 실재 그 자체다. 왜냐하면 그가 착상했던 그대로의 변증법에 있어 결정적인 공리는 <<참은 그 자체의 변전이다>>, 또는 동일한 것에 상응하는 <<시간은 개념의 현존재[etre-la]다>>라는 것이다. 따라서, 헤겔적인 사변적 유산에 의하여, 우리는 <<공산주의>>라는 이름 아래 실행되는 혁명 정치적 시퀀스들의, 또는 집합적 해방이 지닌 상이한 파편들의, 역사적 기입이 역사의 의미에 따라 발전하는 그것들의 진리를 드러낸다고 생각할 근거가 있다. 역사적 의미에 대한 진리들의 이러한 잠재적 종속은 사람들이 <<진리 안에서>> 공산주의적 정치에 대해, 공산주의 정당에 대해 그리고 공산주의적 투사들에 대해 말할 수 있도록 이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날 이러한 형용사화를 경계해야만 함을 안다. 그런 경향과 싸우기 위해, 나는 여러 차례 역사는 실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자면 진리들에 다른 의미가 없다는, 특히 역사라는 의미가 없다는, 나의 진리 관념에 부합하는 주장을 단언해야만 했다. 그러나 오늘 내게 있어 그 판단은 명확히 말해져야만 한다. 확실히, 역사의 다른 실재는 없으며, 따라서 역사가 실존할 수 없다는 것은 참이며, 선험적으로 참이다. 세계의 불연속은 나타남의 법칙이며, 따라서 실존의 법칙이다. 그렇지만, 조직된 정치적 행동의 실재적 조건 하에, 거기 있는 것,그것은 공산주의적 이념, 즉 지성적 주체화에 연결된, 그리고 실재와 상징적인 것 그리고 이데올로기적인 것을 개인적인 층위에 통합시키는, 작용이다. 우리는 그 이념을 모든 술어적 사용으로부터 풀어내어 회복시켜야만 한다. 우리는 이념을 구원해야 하지만, 그러나 또한 실재를 모든 이념과의 직접적인 융합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오로지 공산주의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결국 터무니 없는 그러한 정치 만이 개인들의 주체-됨의 가능적 역량으로서의 공산주의적 이념에 의해 구원될 수 있다.
P190 두번째 문단
따라서 실재적-정치, 상징적-역사, 상상적-이데올로기라는 삼중성 내에서 이념을 식별하기 위해서는 진리들로부터, 즉 정치적 실재로부터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나는 상당히 추산적인 그리고 상당히 단순한 형식 하에 나의 통상적인 개념들을 상기시키는 것으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P191
나는 특정한 상황에 대해 실존하는(만일 우리가 존재와 사건[1988]이나 철학을 위한 선언[1989]에 준거한다면) 또는 특정한 세계 내에 나타나는(세계의 논리[2006]나 철학을 위한 두 번째 선언[2009]에 준거한다면) 그러한 신체들과 언어들의 정상적 배치 내에서 일어나는 단절을 <<사건>>이라고 명명한다.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사건이 상황에 내부적인 가능성의 실현이라거나, 또는 세계의 초월적인 법칙들에 의존적이지 않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사건은 새로운 가능성들의 창조다. 사건은 단순히 객관적으로 가능한 것들의 층위에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것들의 가능성에 위치한다. 또한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터인데, 상황 또는 세계에 비추어 볼 때, 사건은 그 상황 또는 그 세계의 합법성의 구성에 대한 엄격한 관점으로부터 전적으로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을 개방한다. 만일 라깡에게 있어 실재 = 불가능성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즉각적으로 우리는 사건의 본질적으로 실재적인 차원을 알게 된다. 우리는 또한 사건이 그 자체의 가능적 미래로서의 실재의 도래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정확하게 가능한 것들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제약의 체제를 <<국가[Etat]>> 또는 <<상황의 상태[etat de la situation]>>라고 명명한다. 우리는 마찬가지로 국가가, 가능한 것의 분명한 규정으로부터 볼 때, 주어진 상황 내에서, 그 상황에 속한 고유하게 불가능한 것을 규정하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국가는 언제나 가능성의 한계이며, 거기에서 사건은 무한화(infinitisation)다. 예를 들어, 오늘날 정치적으로 가능한 것들이라는 관점에서 국가를 구성하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자면, 자본주의적 경제, 정부의 헌정적 형식, 소유와 상속에 관련한 법들(사법적인 의미에서), 군대, 경찰 등이 있을 것이다.우리는 당연히 알튀쎄르가 <<국가의 이데올로기적 장치들>>이라고 명명했던 – 그리고 공통적인 목적을 통해 규정할 수 있었던, 말하자면 공산주의적 이념이 하나의 가능성을 지정하는 것을 금지하는 – 것들을 포함하는 그 모든 배치들과 그 모든 장치들을 통해, 어떻게 국가가 통상적으로 강제력을 통해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은 것을 구별하는지를 알게 된다. 명백하게 그로부터 사건은 국가의 힘으로부터 감산되는 것으로서 도래하는 어떤 것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P192 두번째 문단
나는 상황 내에서(세계 내에서) 하나의 사건의 결과로부터 연속된 조직화를 <<진리의 절차>> 또는<<진리>>라고 명명한다. 우리는 그런 이후에 하나의 본질적인 우연성이, 즉 그러한 조직화의 사건적 기원의 우연성이 모든 진리에 공-외현한다는 점에 유의할 것이다. 나는 국가의 실존으로부터 오는 결과들을 <<사실들>>이라고 명명한다. 우리는 그 완전한 필연성이 언제나 국가의 편에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의 진리가 순수한 사실들에 의해 구성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한다. 진리의 사실적이지 않은 부분은 진리의 방향설정에 속하며, 우리는 그것을 주체적이라 말할 것이다. 우리는 또한 진리의 물질적 <<신체>> – 주체적으로 방향 지어진 것으로서의 – 가 하나의 예외적인 동체라고 말할 것이다. 거리낌없이 종교적 은유를 사용하여, 나는 기꺼이 진리-의-몸이, 그 안에서 사실들로 환원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것으로 인해, 영광의 신체(un corps glorieux)로 명명될 수 있다고 말하고자 한다. 정치적으로 새로운 집합적 주체의, 다수적 개인들의 조직의 그것인 그 신체와 관련하여, 우리는 그러한 신체가 정치적 진리의 창안에 참여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한 창조가 활성적인 세계의 상태(l’Etat du monde)와 관련하여, 우리는 역사적 사실들을 말할 것이다. 역사적 사실들에 의해 구성된역사 그 자체는 결코 상태/국가의 힘으로부터 감산되지 않는다. 역사는 주체적이지도 영광스럽지도 않다. 차라리 역사는 국가의 역사라고 말해야만 한다.8
P193 두번째 문단
그런 이후 공산주의적 이념에 관한 우리의 주제로 되돌아갈 수 있다. 만일 이념이, 개별자에게 있어,특정한 실재적 진리가 역사의 상징적 운동에 상상적으로 투영된다면, 우리는 이념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진리를 현시한다고 말할 수 있다. 또는 달리 말하자면, 이념이 어떤 사실들을 진리에 속한 실재의 상징들로서 현시한다고 말이다. 따라서 공산주의의 이념은 우리가 혁명적 정치와 그것의 정당을 공산주의가 필연적인 결말이었다는 역사적 의미의 재현 내에 기입하는 것을 승인할 수 있었다. 또는 정의상 연약한 가능한 것의 창조를 권력의 육중함으로 인해 상징화하는 것에 상당하는 <<사회주의의 조국>>을 말할 수 있도록 말이다. [p193-194] 실재와 상징계 사이에서 작동하는 매개인 이념은 언제나 개인에게 사건과 사실 사이에 위치하는 어떤 것을 제시한다. 그것이 바로 공산주의적 이념의 실재적 지위에 관한 끝없는 토론들이 난관에 봉착하는 이유다. 관건이 되는 것은 칸트적 의미에서 현실적 효력은 없지만 이성적 합목적성을 우리의 지성(entendement, 이해력)에 고정시킬 수 있는 규제이념인가? 아니면 혁명 이후의 새로운 상태(Etat)의 세계에 관한 행동을 통해 점차적으로 실현해야 하는 계획인가?그것은 하나의 유토피아, 위험한 그리고 또한 범죄적인 유토피아인가? 아니면 역사의 이성이라는 이름인가? 이념의 주체적 작용은 단순하게 구성되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이런 유형의 논의를 잘 이끌어갈 능력이 없다. 이념의 주체적 작용은 그것의 절대적으로 실재적인 조건으로서 해방의 정치를 이루는 실재적 시퀀스들의 실존을 둘러싸지만, 그 작용은 또한 상징화에 적합한 역사적 사실들을 담은 팔레트의 배치를 상정한다. 그 작용은 사건과 그것으로부터 조직된 정치적 결과들이 사실들로 환원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진리의 절차를 상태/국가의 법에 종속시킬 것을 말하지 않는다). 이념은 사라지고,빠져나가며, 잡을 수 없는 것을 진리의 생성(devenir) 내에 역사적으로 고정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고정은 오로지 그러한 불확실하고, 사라져버리며, 빠져나가는, 그리고 잡을 수 없는 차원을 그것의 실재로 인정하는 한에 있어 이념인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공산주의적 이념이 <<정확한 이념들은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마오가 했던 것처럼 대답하는 이유다. 즉, <<정확한 이념들>>은 실천으로부터 온다고 말이다(정확한 이념들이란 상황 내에 있는 진리의 노선을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우리는 명백히 <<실천>>이 실재의 물질적 이름이라고 이해한다. 그러므로 정확한 (정치적) 이념들의<<진정한(en verite>> 생성을 역사 내에 상징화하는 이념, 즉 공산주의의 이념은 결국 실천 그 자체(실재의 경험에 대한)가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천 그 자체로 환원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바로 실천은 실존이 아니라 활성적인 진리가 드러나는 프로토콜이기 때문이다.
P195 두번째 문단
이 모든 것이 우리가 결국 정반대의 형식을 취하는, 즉 국가(Etat)의 형식을 취하는 해방의 정치 진리들로부터 진리들을 드러내는 데까지 이르게 될 수 있었다는 것을 설명하며, 어느 정도는 정당화한다. 진리의 절차와 역사적 사실들 간의 이데올로기적(상상적) 관계가 관건이 되는 이상, 왜 그 관계를 끝까지 밀고 나가기를 주저하며, 왜 사건과 국가 사이의 관계가 관건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는가? 국가와 혁명, 그것은 레닌의 매우 유명한 텍스트의 제목이다. 그리고 이 텍스트에서 관건이 되는 것은 국가와 사건이다. 하지만, 레닌은 그러한 논점에 관해 마르크스를 따라서 혁명 이후의 문제가 될 국가가 국가의 소멸에 관한 국가, 무-국가(non-Etat)로의 전이를 조직하는 국가이어야만 한가고 조심스럽게 말한다.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공산주의의 이념은 언제나 국가의 힘으로부터 감산된(soustrait) 정치의 실재를 <<다른 국가>>라는 역사적 형상 안으로 투영할 수 있다. 말하자면, 그 본질이 소멸하는 것인 이상, 이 <<다른 국가>> 또한 국가의 힘으로부터, 따라서 그것의 고유한 힘으로부터, 감산된다는 의미에서, 그 감산(soustraction)이 이 주체화 작용에 내부적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말이다.
P196 두번째 문단
그것은 모든 혁명적 정치 내에 있는 고유한 이름들이 지닌 결정적인 중요성을 사유하고 인정해야 한다는 그러한 맥락 내에 있다. 그 중요성은 사실상 사변적이며 역설적이다. 한편으로, 확실히, 해방의 정치는 본질적으로 익명적 대중들의 정치이며, 그것은 이름 없는 자들(sans-noms)9의, 국가에 의해 거대한 무의미함에 붙들려 있는 자들의 승리다. 다른 한편으로, 해방의 정치는 처음부터 끝까지 역사적으로 그것을 규정하는, 그것을 재현하는 고유한 이름들에 의해 식별되며, 다른 종류의 정치가 그런 것 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그런 경향을 보인다. 왜 이런 고유한 이름들의 연속이 있는가? 왜 혁명적 영웅들의 이 영광스러운 만신전인가? 왜 스파르타쿠스, 토마스 뮌쩌, 로베스피에르, 투쌩-루베르튀르, 블랑퀴, 마르크스, 레닌, 로자 룩셈부르크, 마오, 체 게바라, 그리고 너무나 많은 다른 영웅들이 있는가? 그것은 그 모든 고유한 이름들이 역사적으로, 개인의 형상, 즉 신체(corps)와 사유의 순수한 단독성의 형상을 통해, 정치의 사라지는 시퀀스들로 이루어진 드물고도 동시에 소중한 그물망을 진리로서 상징화하기 때문이다. 진리-의-몸의 미묘한 형식주의는 여기에서 경험적 실존으로서 읽을 수 있다. 평범한 개인은 그 고유한 개별성의 매개로서의, 그가 그로부터 유한성을 돌파할 수 있는 증거로서의 영광스럽고 전형적인 개인들을 발견한다. 수많은 투사들의, 반란자들의, 병사들의 익명적 행동은 재현불가능한 그것 자체를 통해 고유한 이름의 단순하고 힘있는 상징 내에서 유사해지고 하나로 셈해진다. 따라서, 고유한 이름들은 이념의 작용에 참여하며, 우리가 언급했던 자들은 다른 단계들 내에서 공산주의의 이념을 이루는 구성물들이다. 주저하지 말고 이렇게 말하자. 스탈린 <<개인 숭배>>에 관한 흐르시초프의 비난은 잘못된 것이며, 민주주의라는 허울 아래, 우리가 지난 수십년 동안 조력했던 공산주의의 이념의 효력상실을 고지했다고 말이다. 스탈린에 대한 그리고 그가 가졌던 국가의 공포정치적 비전에 대한 정치적 비판은 엄격한 방식으로, 혁명적 정치 그 자체의 관점으로부터 주도되어야만 했으며, 마오는 그의 여러 텍스트들을 통해 그 이상을 그려냈다10. 실제로 스탈린적인 국가의 지도자 집단을 옹호했던 흐르시초프는 반대로 그러한 방향으로 나가지 않았으며, 스탈린이라는 이름 아래 실행된 공포정치(la Terreur)에 대해 말하는 것에, 즉 정치적 주체화에 대해 고유한 이름들이 지닌 역학에 대한 모호한 비판에 만족했다. 그로 인해 흐르시초프 그 자신이, 10년 뒤에, 반동적 인간주의의 <<신철학자들[nouveaux philosophes]>>이 의탁하는 기반이 되었다. 그로부터, 만일 정치적 반동이 특정한 이름으로부터 그 상징적 기능이 박탈할 것을 요청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기능 자체를 제거할 수 없다는 매우 귀중한 교훈이 따른다. 왜냐하면 이념은 – 그리고 그것이 직접적으로 대중적인 무한을 지시하므로, 단독적으로 공산주의적 이념은 – 고유한 이름들의 유한성을 필요로 한다.
P198 두번째 문단
가능한 단순하게 요약해보자. 진리는 정치적 실재다. 역사는, 고유한 이름들의 보고로서도, 상징적 장소다. 공산주의의 이념이 지닌 이데올로기적 작용은 역사의 상징적 허구 내에 있는 정치적 실재의 상상적 투영이며, 여기에는 고유한 이름의 하나(l’Un)에 의해 셀 수 없이 많은 대중들의 행동이 드러내는 재현의 형식 아래 있는 허구 또한 포함된다. 그 이념의 기능은 진리의 절차의 규율에 개인적 통합을 지지하며, 그들 자신의 눈에 진리-의-몸 또는 주체화 가능한 신체의 일부가 됨으로 인해 개인이 생존의 상태적 제약들을 초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P199
이제 우리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왜 이 모호한 작용에 의존해야만 하는가? 왜 사건과 그 결과들은 또한<<개인 숭배>>의 변형들을 수반하는 사실의 형식 아래, 그리고 흔히 폭력적인 사실의 형식 아래 드러나는가? 해방의 정치가 취하는 이 역사적 가정은 왜 그러한가?
가장 단순한 근거는 평범한 역사(histoire), 즉 개인적 삶의 역사가 국가 내에 잡혀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삶의 역사는 그 자체로 결정도 선택도 없이 고전적으로 가족, 일, 조국, 재산, 종교, 관습들 등에 의해 매개되는 국가의 역사의 일부다. 그 모든 것에 대한 예외라는 영웅적인, 그러나 개인적인, 투영은 – 하나의 진리 전차가 그런 것처럼 – 또한 타자들과의 분할에 있으며, 그것은 예외로서만이 아니라, 또한 그 이후로 모두에게 공통적인 가능성으로 드러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념의 기능들 중 하나는 예외를 실존들 가운데 평범한 것 안에 투영하는 것, 즉 단지 실존할 뿐인 것에 어느 정도의 전대미문의 것을 채워 넣는 것이다. 내 주위에 있는 개인들에게, 남편이나 부인, 이웃과 친구, 동료들에게 또한 만들어지는 중인 진리들이라는 멋진 예외가 있음을, 우리가 국가의 제약에 의해 우리의 실존들의 형식에 대해 예정되지 않았음을 확신시키는 것 말이다. 물론, 종국에는, 오로지 진리 절차의 가식 없는, 또는 투사적인, 경험이 이러 저러한 사람들이 진리-의-몸에 들어가기를 강제할 것이다. 그러나 그를 이러한 경험이 주어지는 지점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그를 진리에 중요한 것에 대한 구경꾼으로, 그리고 따라서 이미 반은 행동하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이념의 매개와 분할은 거의 언제나 필수적이다. 공산주의의 이념은(그것에 어떤 다른 이름을 부여하더라도 거의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인데, 말하자면 어떠한 이념도 그 이름에 따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것을 통하여 국가의 불순한 언어로 진리의 절차를 말할 수 있는, 그리고 따라서, 한 동안, 국가가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규정하는 강제력의 선들을 옮길 수 있는 그런 것이다. 가장 평범한 몸짓은, 정황에 대한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그의 집에서 멀리 떨어진,그의 코드화된 실존적 특질들로부터 거리가 먼, 예를 들자면, 말리 출신 노동자들의 숙소나 공장 입구에서 이루어지는, 진정한 정치적 회합에 누군가를 데려가는 것이다. 정치가 발생하는 장소에 오게 될 때, 그는 그의 통합(incorporation)을 또는 그의 후퇴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 장소에 가기 위해서는, 이념이 – 그리고 2세기 동안, 또는 아마도 플라톤 이래로, 그것은 공산주의의 이념이다 –그를 재현의 질서, 즉 역사의 그리고 국가의 질서 안으로 이미-옮겨(pre-deplacer) 넣어야 한다. 그 상징은 실재의 창조적인 미끄러짐(fuite)을 지지대 삼아 상상적으로 도래해야 한다. 참된 것의 연약함은 우의적(allegorique) 사실들을 이데올로기화하고 역사화 한다. 어두운 방에서 행해지는 네 명의 노동자들과 한 명의 학생의 빈약하지만 중요한 토론은 순간적으로 공산주의의 차원으로 확장되며, 따라서 참된 것(le Vrai)의 국지적 구축의 계기가 될 수 있고, 또한 이미 그 계기가 되어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참된 것은 상징의 확장을 통해 가시화 되며, <<정확한 이념들>>은 이 거의 비가시적인 실천으로부터 도래한다. 외딴 교외에서 이뤄진 다섯 사람의 회합은 그 덧없음의 양식으로 영원한 것이다. 그로 인해 실재는 허구의 구조 내에서 드러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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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근거는 모든 사건이 갑작스러운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면, 사건은 사실로서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며, 결국 사건과는 모순적인 국가(Etat) 역사 내에 기입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문제를 다음과 같이 표명할 수 있다. 왜 그러한 갑작스러운 것들을 준비해야 하는가? 그리고 이번에는, 아무리 우리가 이미 실제로 과거의 사건에 영향을 받은 투사들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진리-의-몸 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문제는 실존한다. 분명히, 우리는 새로운 가능성들의 배치를 제안한다. 그러나 도래하는 사건은 우리에게도 또한 여전히 불가능한 것으로 남아있는 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최소한 이데올로기적으로, 또는 지성적으로, 새로운 가능성의 창조를 예상하기 위해, 우리는 이념을 가져야만 한다. 말하자면 당연히 우리를 투사들로 삼는 진리의 절차가 실현하는 가능성들의 새로움을 포함하는, 그리고 실재적 가능성들인, 그러나 또한 우리가 아직 생각해 보지 못한 다른 가능성들의 형식적 가능성을 포함하는 이념을 말이다. 이념은 언제나 새로운 진리가 역사적으로 가능하다는 단언이다. 그리고 불가능을 가능의 방향으로 강제하는 것이 국가(Etat)의 힘으로부터의 감산을 통해 실행되는 이상,이념은 이 감산적 과정이 무한하다는 것을 단언한다고 말할 수 있다. 말하자면, 우리가 실제로 투사로 참여하는 이동을 포함하는 그 이전의 이동들이 아무리 급진적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국가에 의해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사이에 고정된 분할의 선이 한 번 더 이동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공산주의적 이념의 내용들 중 하나는 – 그리고 새로운 국가(Etat)의 기능을 통해 이를 수 있는 목적으로서의 공산주의라는 주제에 반하는 그것은 – 국가의 소멸이 의심의 여지 없이 모든 정치적 행동 내에서 가시화 되어야 하는 원칙이지만(국가에 대한 모든 직접적인 포함, 국가에 대한 모든 자금 요구, 모든 선거에 대한 참여 등을 불가피하게 거부하는 것으로서의 <<국가로부터 거리를 두는 정치>>라는 정식이 표현하는), 다른 한편으로, 언제나 새로운 정치적 진리의 창조를 통해 상태적인, 따라서 역사적인,사실들과 사건의 영원한 결과들 사이에 그어지는 분할의 선이 이동할 것이기에, 그 소멸이 또한 영원한 과업이 되는 이유인 것이다.
P202 두번째 문단
그로 인해 우리는 공산주의의 이념에 대한 동시대적 변경에 관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게 된다11. 공산주의의 이념에 대한 오늘날의 평가는, 내가 말했던 것처럼, 그 말의 위치가 더 이상 <<공산주의적 정당>>이나 <<공산주의적 체제들>>와 같이 형용사의 위치일 수 없다는 것이다. 사회주의-국가의 그것과 같은 당-형식은 이제 이념의 실재적 지지를 보증하기에 부적합하다. 뿐만 아니라 그 문제는 중국의 문화 혁명과 모호하게 명명된 프랑스의 <<68년 5월>>이라는 이전 세기의 60년대와 70년대의 중요한 두 사건에서 우선적인 부정적 표현을 발견했다. 이어서, 그 문제는 이전에 실험되었고 여전히 실험되고 있는, 전적으로 당-없는 정치에 의존하는 새로운 정치적 형식들로부터 이러한 표현을 발견한다12. 그렇지만, 집합적 층위에서, 세계화된 자본주의가 지지하는 부르주의적 국가의 – 소위 <<민주주의적>>인– 근대적 형식은 이데올로지의 장 내에서 경쟁상대가 없는 것으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30년 동안, <<공산주의>>라는 말은 완전히 잊혀졌고, 실제적으로 범죄적 기획과 동일시 되었다. 그것이 바로 정치의 주체적 상황이 그다지도 불명확하게 되었던 이유다. 이념이 없다면, 인민의 대중들의 방향상실은 불가피하다.
P203 두번째 문단
그렇지만, 여러 가지 징후들로부터, 그리고 특히 현재 이 강연에서, 그 반동적인 시기가 완결되었음이 나타난다. 역사적인 역설은,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20세기로부터 물려받은 문제들 보다 19세기의 전반기에 검토되었던 문제들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1840년 무렵에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파렴치한 자본주의에, 그것이 사회들을 합리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 유일하게 가능한 방식이라는 문제에 대면하고 있다.모든 곳에서 가난한 자들은 존재의 과오이며, 아프리카인들은 뒤떨어졌고, 미래는, 말하자면, 서구 세계의 <<문명화된>> 부르주아지들에게, 일본인들과 같이 동일한 궤적을 따라가는 사람들에게 속해 있다고 암시한다. 오늘날 그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부유한 나라들의 동일한 내부에서 극심한 비참함으로 매우 잘 알려진 지역들을 발견한다. 우리는, 사회적 계급들 간에서와 마찬가지로 나라들 사이에서, 엄청나게 증대되는 불평등을 보게 된다. 제 3세계의 촌부들 사이에서, 한편으로는 우리의 <<발전한>> 사회들의 실업자들과 가난한 임금 노동자들 사이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서구적>> 중간 계급에 속한 사람들 사이에서, 주체적이고 정치적인 단절은 절대적이며, 일종의 증오에 찬 무관심을 통해 나타난다. 정치적 권력은 그 어느 때 보다, 현실적인 위기가 <<은행들을 구원한다>>는 유일한 모토로 드러내는 것처럼, 오로지 자본주의의 권력에 토대를 둘 뿐이다. 혁명가들은 청년 대중의 넓은 부분들과 반목하고, 약하게 조직되어 있으며, 허무주의적 절망에 의해 사로잡혀 있으며, 대다수의 지식인들은 굴종적이다. 이 모든 것에 반대하여, 또한 이후에 유명해진 1847년의 공산당 선언Manifeste du parti communiste의 시기에 마르크스와 그의 친구들만큼이나 고립되어, 우리는 더욱 수가 늘어나 노동자 및 인민의 대중들 내에서 새로운 유형의 정치적 과정들을 조직하고, 실재 내에서 공산주의적 이념의 되살아난 형식들을 지탱할 모든 수단을 강구한다. 19세기 초와 같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후에 그렇게 될 것처럼 – 20세기 전체에 걸쳐, 너무나 무모하고 교조적이었던 것처럼 –, 이념의 승리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의 실존과 그것의 표명의 기한들이다. 우선, 공산주의적 가설에 대한 힘있는 주체적 실존을 부여하는 것, 그것이 오늘 이곳에 모인 우리가 우리 자신의 방식으로 이행해야 할 과제인 것이다.그리고 그것은 흥미로운 과제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언제나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사유의 구축과 국지적이고 단독적이지만 보편적으로 전이가능한(transmissible) 진리의 단편들에 대한 실험을 조합하여,우리는 공산주의적 가설이라는, 또는 보다 정확히 말해서 공산주의의 이념이라는, 새로운 실존을 개인적 의식 내에서 보증할 수 있다. 우리는 그 이념이 실존하는 세 번째 시기를 만들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으며, 따라서 그렇게 해야만 한다.
주
1. 이념이라는 주제는 내 작업에서 차차 나타나게 된다. 그 주제는 분명히 <철학을 위한 선언>에서 내가 착수한 작업에 이념의 본성에 대한 새롭게 재개된 탐색을 요구하는 ‘다수의 플라톤주의’라는 이름을 붙였을 때인 80년대 후반에도 이미 현존하고 있었다. <세계의 논리>에서, 이 탐색은 하나의 명령으로 나타난다. ‘참된 삶’은 우리에게 모든 이념이 결여된 삶을 살라고 명령하는 오늘날의 민주주의적 유물론이라는 규범에 대립되는 것으로서의 이념에 따라서 사는 삶으로 이해된다. 나는 이념의 논리를 <철학을 위한 두 번째 선언>에서 훨씬 더 자세하게 검토했는데, 여기에서 이념화라는 개념이, 그리고 이에 따라, 이념의 작동적인 또는 실행적인 가치가 도입된다. 이것은 플라톤 저작 사용의 르네상스와 같은 어떤 것에 대한 다면적인 헌신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예를 들자면, ‘오늘날을 위해: 플라톤!’이라는 제목으로 지난 2년간 진행되었던 나의 세미나라던가, 나의 영화 기획 <플라톤의 삶>, 그리고 2010년까지 완성하여 출간하고자 하는 나의 <국가> 편의 전체 번역 – <도시국가(공산주의)에 관하여>라는 이름을 다시 붙이고 9장으로 다시 구분한 – 과 같은 플라톤에 대한 책에 의해서 말이다.
2. 내재적 종결로 운명 지어진 시퀀스들로 가장된 정치의 희소한 실존은 <이름의 인류학L’Antthropologie du Nom(Seuil, 1996)>에서 실뱅 라자뤼스에 의해 매우 강력하게 단언된다. 그는 이러한 시퀀스들을 <<정치의 역사적 양상들>>로 지칭하는데, 이 양상들은 어떤 유형의 정치와 그것의 사유 사이의 관계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다. 진리 절차에 대한 나의 철학적 설명은 외관에 있어 이것과는 매우 다른 것이다(사건과 유적임[genericity]이라는 개념은 라자뤼스의 사유에서는 완전히 결여된 것이다). 나는 <세계의 논리>에서 내 철학적 기획이 정치 그 자체의 입장에서 설명된 정치에 대한 사유를 개진하는 라자뤼스의 기획과 어떤 의미에서 결코 양립할 수 없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그에게 있어서도 역시 분명하게 양상들의 시간적 틀이라는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 대해 주지할 것.
3. 이념(Idee)이 개별적인 참여(engagement)을 둘러싸는 결정, 선택, 의지(the Will)의 그러한 측면은 피터 홀워드의 작업들에서 더욱 더 잘 드러나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 범주들이 더욱 가시적인 프랑스와 아이티의 혁명들에 대한 준거가 이제 그 모든 작업들에 출몰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4. 1982년에 출간된 내 책 주체의 이론Theorie du Sujet에서, 주체화 및 주체적 과정들의 개념쌍은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그것은, 브루노 보스틸즈가 그의 작업들(최근에 출간된 훌륭한 주석을 싣고 있는 전술된 책의 영역본이 포함된 작업들)에서 주장하는 그대로, 내가 점차적으로 그 책의 변증법적 직관들 중 일부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의 징조이다.
5. 슬라보예 지젝은 아마도 오늘날 라깡의 공헌에 가장 가까이 인접해 있으면서도 동시에 끈기 있으면서도 정력적으로 공산주의의 이념의 회귀를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사상가일 것이다. 이것은 그의 진정한 스승이 헤겔이며, 그가 전체(Totalite)라는 모티브에 해석을 종속시키기를 그만 둔 이상, 헤겔에 대한 전적으로 새로운 해석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철학에는 공산주의를 구원할 두 가지 길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말하자면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그의 텍스트들에 대한 반복적인 검토의 대가로(그것이 내가 실행하는 것인데) 헤겔을 단념하는 것, 또는 하나의 다른 헤겔을, 미지의 헤겔을 제시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지젝이 라깡을 논거로 하여 행하는 일이다(라깡은 줄곧, 우선은 명시적으로, 이어서 비밀스럽게, 훌륭한 헤겔주의자였다고 지젝은 우리에게 말할 것이다).
6. <<주체로>> 산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에서 이해된다. 첫 번째 의미는 <<불멸적인 것으로 살라>>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번역된 금언과 같다. <<(으)로[en]>>라는 말은 <<마치 그런 것처럼>>을 의미한다. 두 번째 의미는 위상학적이다. 말하자면 통합이란 실제로 개인이 진리의 주체-몸(le corps-sujet) <<내에서>>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미묘한 의미들은 세계의 논리가 결론짓는 진리-의-몸에 대한 이론에 의해 해명된다. 내가 인정해야만 할 것은 그것이 결정적인 결론이기는 하지만,여전히 너무나 압축적이고 난해하다는 점이다.
7. 기본적으로, <<이데올로기[ideologie]>>라는 닳아빠진 말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간단한 방법은 그것의 형성에 가장 가까운 것에 의존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념[Idee]에 속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적[ideologique]>>이다.
8. 역사가 국가의 역사라는 것은 실뱅 라자뤼스에 의해 정치적 지성의 장에 도입된 테제이나, 그는 그 모든 전개들을 추가로 발표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또한, 국가에 대한 나의 존재론적-철학적 개념 – 80년대 중반에 도입된 – 이 다른 (수학적) 증명과 (메타정치적) 운명에 의해 표명되었음을 말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만, 중요한 지점에 관해 공존가능성이 유지된다. 말하자면, 어떠한 정치적 진리의 절차도, 고유한 본질에 있어, 국가의 역사적 활동들과 혼동될 수 없다는 지점에 대해서 말이다.
9. <<이름 없는 자들[sans-noms]>>과 <<몫 없는 자들[sans-part]>>, 그리고 마침내, 오늘날의 모든 정치적 행동들 내에서, <<등록증 없는[sans-papier]>> 노동자들의 조직적인 기능, 이 모든 사람들이 부정적 현시에, 또는 보다 독점적으로 말해서, 해방의 정치의 인간적 영역에 속한다. 자끄 랑시에는,특히 19세기의 이러한 주제들에 대한 철저한 연구로부터, 철학적 장 내에서, 지배적 분류에 귀속되지 않는 것의 민주주의적 영향력에 대해 특별히 강조했다. 이러한 관념은 실제로 적어도 프롤레타리아를 유적인 인류로 정의하는 1844년 수고(Manusrits de 1844)를 쓴 시기의 마르크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 이유는 프롤레타리아에게는 부르주아지들이 (오늘날 사람들이 말하는 그대로, 예의 바른,정상적인, 또는 <<정직한>>) 인간(Homme)을 정의하는 기준인 재산의 소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 관념은, 민주주의의 혐오(La haine de la democratie)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랑시에르가 <<민주주의>>라는 말에 대해 단언하는 구원의 기본에 대한 것이다. 나는 우리가 그 말을 매우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의견을 따르지 않는데, 달리 말하자면, 어쨌든 공산주의의 이념을 통한 우회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 논의는 시작되었고, 계속될 것이다.
10. 스탈린에 관한 마오의 텍스트들에 대해서, 분명히 <<소비에트 모델 또는 중국의 길>>이라는 부제로 후치시(Hu Chi-hsi)가 번역하여 소개한 소책자 마오쩌둥과 사회주의의 구축Mao Tse-Toung et la construction du socialisme을 참고한다. 나는 세계의 논리의 도입부에서 참된 것의 영속성이라는 이념에 의해 방향 지어진 주석을 제시했던 바 있다.
11. 공산주의의 이념이 지닌 세 가지 단계들, 특히 직접적으로 정치적으로 되는 것을(강령, 당 그리고국가라는 의미에서) 시도했던 그 단계(두 번째)에 관해, 우리는 사르코지는 무엇에 대한 이름인가?(De quoi Sarkozy est-il le nom?)라는 제목을 붙인 정황들 4권(Circonstances 4)의 마지막 장들을 참조할 것이다.
12. 새로운 정치적 형식들의 경험은 과거 30년 동안 여러 차례 그리고 열정적으로 진행되었다. 1980-81년에 폴란드에서 진행되었던 솔리다르노시치(Solidarnosc) 운동, 이란 혁명의 첫 번째 시퀀스, 프랑스의 정치 조직(l’Organisation politique), 멕시코의 자파티스트 운동, 네팔의 마오주의자들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고갈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관련된 운동의 예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