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식탁 - 진화론의 후예들이 펼치는 생생한 지성의 만찬
장대익 지음 / 김영사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서평다윈의 식탁

진화론은 살아있다.

 

 

다윈 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진화론입니다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화론 하면 다윈 이후의 학자들(심지어 동시대 진화론자들까지도)을 떠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진화론은 학교에서 잠시 가르치고 말 뿐이죠그러나 이런 형식으로 남아있는 낡은 지식으로서의 진화론은 죽어있는 것입니다.

 

부제를 보니까 진화론의 후예들이 펼치는 생생한 지성의 만찬이라고 써져 있네요이 책은 낡은 지식으로서의 죽어있는 진화론이 아닌 다윈 이후에 발전을 거듭하고그것이 좋은 영향이든 나쁜 영향이든 사회의 다른 분야들과 생생하게 영향력을 주고 받으며 발전해온아니 진화해 온 진화론에 대한 것입니다살아있기 때문에 다윈 이후 150년간 변화했고적응했으며스스로의 모순과 끊임 없이 제기되는 난제들을 풀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죠마치 살아있는 동물과 같습니다. (동물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변화하고 적응하며생체내의 갈등들을 중재하고 균형의 범위 내에 넣기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합니다그것이 바로 살아있는 생물의 특징이겠죠.)

 

어쨌든 이 책에서 장대익 교수는 상당히 특이한 용어를 사용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런 용어를 만들어낼 필요까지 있었나 싶은데…) 그것이 식탁하다tablize라는 용어입니다말하자면 모두가 식탁에 둘러앉아 생생한 지성의 만찬에 참여한다는 의미인데이것은 논쟁을 이야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아무래도 논쟁을 하다 보면 분위기도 험악해지고 하니 식탁에 둘러 앉아 먹을 것이라도 먹어가면서 자유로운 분위기로누그러뜨려진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해보자는 의도였던 것 같네요 (인간은 혈당량이 높아지면 신경이 좀 무뎌지는 법이죠). 나름 재미있는 발상입니다.

 

다윈의 식탁은 현존하는 또는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최고의 진화론 학자들을 모셔놓고일종의 팩션(faction = 사실fact + 허구fiction; 사실에 바탕을 둔 허구형식을 취하여 이들 간의 논쟁을 통해 현재까지 진화론이 진화해 왔던 궤적을 돌아보고현재 진화론의 쟁점들을 부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각 장의 제목 역시 흠이 유발을 위해 다소 원색적이거나또는 생각을 유발할만한 방식으로 붙여졌는데

 

1장 강간도 적응인가?’에서는 자연선택의 힘이 과연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우선 한 집단 내에서 강간이 자손을 남기기 위한 적응행위였나에 대한 논쟁으로부터 시작해서어떤 형질을 자연선택으로 만들어진 적응이라고 간주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통해언어의 진화에 대한 논쟁을 보여줍니다다시 정리하면 자연선택으로 산출된 형질즉 적응과 그렇지 않은 것 간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자연계에 얼마나 많은 적응들이 존재하는지인간의 마음과 행동의 어떤 부분들이 적응인지에 관한’ (p42) 문제들에 대해 개괄합니다.

 

2장 이기적 유전자로 테레사 수녀를 설명할 수 있나?’ 에서는 협동의 진화에 대해다시 말해 도킨스가 말하는 이기적 유전자를 가지는 인간이 또는 집합적 군집 사회를 유지하는 개체가 어떻게 이타성을 보일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을 보여줍니다여기서 꽤 재밌는 이야기들이 나오는군요물에 빠져죽는 레밍들(책에서는 나그네 쥐들)이 사실은 집단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멍청해서 그렇다는 것일벌의 생식능력 상실은 알고 보면 자신과 75%의 유전자 상동성을 갖는 동료 개체를 위한 것이라는 주장또 호혜성에 대한 논의에서는 게임이론까지… 그리고 이 장에서 진화론의 계통도에서 유전자 선택론과 구분되는 다수준 선택론이 소개 됩니다.

 

3 '유전자에 관한 진실을 찾아서’ 에서는 2장의 유전자에 관한 논쟁을 이어 받아서 유전자가 과연 유전체의 전체인가에 대한 논쟁을 벌입니다이에 대한 논의를 위해 다소 기술적인 문제들(유전자의 세부적인 구성물들에 대한 설명특히 호메오 박스)까지 건드려 전제를 깔아놓은 후 실질적으로 유전자는 그 자체로는 한계가 있다는 주장(세포 구성물들 수준의 한계발생학적 수준의 한계한걸음 더 나아가 환경의 영향)과 그럼에도 유전자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다는 주장까지 역시 중요한 논쟁들을 다룹니다.

 

4장 진화는 1경주인가넒이 뛰기인가?’ 에서는 진화가 점진적인 방식을 따라 이루어졌는가 (점진론아니면 갑작스레 한번에 뛰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는가 (단속 평행론에 대한 논쟁을 보여줍니다이 장에서 흥미 있었던 것은 다수준 선택론 및 단속평행론적 계통에 있는 학자들이 진화의 불완전성에 대해 주장하고근대적 종합 이후 불완전 했던 발생학을 몰아내고 진화론의 진행방향에서 우위를 차지했던 유전자 선택론 계열의 학자들이 이를 방어하는 형식으로 논쟁이 진행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사실 도킨스도 지적하고 있지만 굴드의 단속평행론의 주창으로 창조론 진영의 진화론 공격의 빌미가 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5장 박테리아에서 아인슈타인까지’ 에서는 진화를 과연 진보로 볼 수 있을 것인가그리고 그 정점에 과연 인간을 놓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을 보여줍니다그리고 이 장에서는 도킨스의 진화가 진보라는 입장을 지지하는 다윈주의의 입장에 반하는 굴드 진영이 우세를 보였다고 할 수 있겠네요.

 

6장은 간단히 진화의 계통도를 보여주고 7장으로 넘어가 도킨스와 굴드가 각각 종교는 왜 정신적 바이러스인가?’ 라는 제목과 다윈의 진화론은 왜 불완전한가?’라는 제목으로 강연하는 내용입니다왠지 제목만 놓고 볼 때 도킨스가 약간 돌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여하튼 도킨스의 종교가 기생적인 밈(meme)이라는 이야기를 받아 굴드는 사회역사적 맥락에 대해 이야기를 하네요.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굴드는 근대적 종합이라는 시기를 거쳐 유전학과 분자생물학의 수혜를 받으면서 불완전했던 발생학을 떼어놓고 앞으로 나갔던 다윈의 적자들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이니까요도킨스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다윈주의 진화론 자체에 매달려 이를 방어하려 한다면 굴드는 그 진행방식에 폭을 넓혀 이전에 무시되었던 발생학 등 다윈주의 진화론 외의 것들을 고려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진화론 자체에 대한 반론이냐 그것은 아니겠죠일단 굴드도 진화론자입니다단지 도킨스와 같은 유전자 선택론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이것은 무슨 이야기가 되는가… 바로 진화론이 진화론 연구를 수행하는 폭 넓은 과학자 사회를 구성했고그 안에서 건전한 논쟁이 진행된다는 것입니다창조론 또는 그 이후에 나온 유사 창조론지적 설계는 이런 논쟁을 할 수 있는 건전한 과학자 사회를 생략하고 있습니다이들이 논쟁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지적 설계 주창자들 내부의 과학자 사회에서 제기되는 지적 설계 자체에 대한 이상상태에 대한 문제들이 아니라이들이 적으로 삼고 있는 진화론 진영이기 때문입니다앞으로 지적 설계 진영 내에서 어떤 과학자 사회가 구성되고 그 안에서 논쟁들이 생겨 발전해 나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적어도 현재와 같이 정치적교육적 공작과 다른 과학자 집단에 대한 공격만을 일삼는 모습이 유지되어서는 미래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 합니다.

 

사실 이 장대익 교수는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이 진화론-지적 설계 문제로 올 해 초에 상당히 방대한 분량의 글들을 종교학자신학자 각각 한 분과 논의를 진행한 일이 있습니다또 장대익 교수는 원래 집안이 기독교인 집안으로 대학원에서 진화론을 공부하면서 자신의 신앙에 회의가 들어 기독교 신앙을 포기한 전력이 있습니다말하자면 진화론에 의해 자신의 신념을 형성하고 어릴 적부터의 신앙을 버린 셈인데그런 의미에서 우리 나라 사회에서특히 우리 나라 교회 사회 내에서는 상당히 특이한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여하튼 그 때부터 상당히 주목을 하고 있었는데 이런 재미있지만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책을 내신 것을 보니 반갑습니다.

 

물론 이 책은 지면과 수준을 고려해서 논쟁들을 단순히 요점만 정리하고 질문들을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썼으며각 장의 논쟁은 딱 거기까지만 갑니다그 이상은 없다는 이야기죠하지만 그런 것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왜냐이 책은 다윈 이후 논쟁의 맥락을 짚어주는 책이고 그러기 위해 과학에서 질문들을 정확히 드러내 주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이에서 더 나아가 보다 자세한 논쟁을 보고 싶다면 에피타이저에 있는 서지 목록들을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학자의 꼼꼼함이 묻어나는 부분입니다.) 책의 나름 재미있는 상황을 설정하여 현실에서 있기 어려운 상황을 구상하고 논쟁을 잘 전달하는 소설과 같은 문체로 진화의 중요한 문제들을 한번 둘러볼 수 있는 좋은 책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