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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찬의 뻔뻔한 생각책 - 유쾌한 이노베이션 생각 수업
정효찬 지음 /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애플북스)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정효찬의 뻔뻔한생각책
(유쾌한 이노베이션 강의)
하버드대학의 인기강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책으로 엮어져서 몇년전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른 후 상아탑의 유명한 수업들이 책을 통해 그 문턱을 낮추고 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당신은 전략가입니까'등 당장 생각나는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들도 여러권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대부분이 해외, 특히 미국의 명문대학의 강의 대한 책들이 그 주류를 이뤘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온라인 매체인 TED등을 통해 먼저 알려진 강의가 책으로 편찬되었기 때문이고, 세계적인 대학이 북미에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난 항상 아쉬웠다. 국내에서도 이런 좋은 강의들이 책으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런데 드디어 국내대학의 수업을 소재로 한 책이 나와 반갑다.
다름 아닌 한양대학교의 정효찬교수의 '유쾌한 이노베이션'이라는 강의를 소재한 '뻔뻔한 생각책'이다. 이 책의 제목의 '뻔뻔'은 2가지 중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염치없이 태연하다는 의미인' 뻔뻔'하다는 것과 재미있고 유쾌한 'FunFun'하다는 의미가 그것이다.
이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제1강 자기증명 이후에 창조다
제2강 창조는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제3강 상식과 비상식의 경계를 허물다
제4강 소통과 융합으로 더 큰 세상을 만나다
뻔뻔한 생각책은 기상천외한 수업을 엮은 책이다.
만우절 미션을 비롯하여, 다양한 팀별과제를 통해 학생들이 생각과 발상을 전환해 나가는 과정을 엮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혁신과 통찰, 창의력을 기르고자 하는 것이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여러가지 재미있는 삽화도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이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그림체인데 이노베이션을 모토로한 모모기업의 광고에 많이 나올 법한 유쾌한 그림들이다. 우리 뇌는 이런 유머를 통해 이완되고 그러면서 더 기발한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덧붙임.
1. 학부를 졸업한지 한참이 지났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는 수업들이 있다. 그런 수업들은 교수님들의 강의가 주를 이루는 한방향 수업이 아닌 내가 참여했던 양방향 수업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런 수업들의 단점은 학점을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학번이 될 수록 기피하게 되는데, 지나고 보면 이런 생각하는 법과 협동하는 법, 발표하는 방법을 요하는 수업이 막상 사회에서는 더 도움이 됨을 알 수 있다. 학부때 이러한 수업을 많이 듣지 못한 것이 아쉽다.
2. 아쉬운 점도 있다. 재미와 혁신에만 몰입한 나머지 학문적인 기반이 너무 부족한 느낌이 있고, 그나마도 뒤로갈수록 몰입도가 떨어진다. 이런 점은 혁신, 창의의 숙명이기도 할 것이다.
본문의 내용을 일부 인용하면,
국어, 영어, 수학, 역사, 과학, 예술 등의 과목을 통해 주입된 수많은 정보는 서로 교류하고 융복합되어 응용되기 위한 기본 재료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입된 정보의 양이 많을수록 응용 범위가 넓어지고 다양해진다. 삶을 살아가는 다양한 무기를 장착하는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정보가 서로 교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정보의 양과 정확성만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결국, 학생들로 하여금 암기한 정답만을 토해내도록 하고 있다. 장착한 다양한 무기듸 특징만 알고 있는 셈이다. 적절한 곳에 사용하지 못하고.
어쩌면 왜곡된 예술교육 때문인지도 모른다. 질문한다는 것은 자신을 표현한다는 것이고 예술의 본질은 자기표현이기 때문이다. 예술에는 나의 생각, 나의 마음 나의 생활환경, 심지어 나의 건강 상태까지도 무의식적으로 복합되어 자신만의 고유한 표현방식으로 드러난다.
어린 시절 우리의 예술교육이 어땠는지 돌아보자. 우리의 예숙교육은 잘 그린 그림과 못 그린 그림을 명확히 구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어떤 친구의 그림이 칭찬받으며 교실 뒤 벽에 붙을 때 내 그림은 뭘 그린 건지 모르겠다는 핀잔과 함께 스케치북 속으로 숨어버리고 만다. 그러면 그림을 다시는 그리지 않겠다는 다짐이 뒤따른다. 아이의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다 못한 부모들은 소문이 짜한 미술학원을 찾거나 개인교습을 통해 아이의 잃어버린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누가 봐도 잘 그렸다고 말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이때가 바로 우리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잃어버리는 순간이다.
아빠들에기는 왜 이런 통찰의 능력이 없는 것일까?
사회활동을 주로 하는 아빠들은 명확하고 정확하게 의사전달을 해야만 한다. 그래서 '이성과 논리'라는 도구를 사용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전달해야 오차없이 업무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어설픈 억양, 눈빛, 몸짓을 신뢰하지 않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창의력교육은 최종적으로 '통찰력'으로 귀결된다. 재미있는 일이다. 타고난 통찰력을 교육으로 인해 잃어버렸는데, 이제는 그것을 되찾기 위해 다시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