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이상희 옮김 / 책만드는집 / 201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데미안

(성장통 : 어른이 되는 과정)

 

중학교때 감명깊게 읽었던 소설 칸에 늘 적었던 소설의 제목이 헤르만헤세의 "데미안"이었는데,

(아마 데미안의 주인공이 그 당시 나의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을 했던 기억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벌써 십수년의 세월이 지나 데미안을 다시 읽게 되었다.

(당시엔 데미안인 청춘소설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다시 만난 데미안은 무척 철학적이었다)

 

사실 데미안의 주인공은 싱클레어라는 소년이다. 그리고 싱클레어는 다름아닌 이 책의 작가 헤르만헤세의 어린시절을 모티브로 삼은 인물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보면 데미안은 헤르만헤세의 자서전에 소설의 형식을 가미한 팩션이라고 볼 수도 있을것이다. 

각설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이름은 "싱클레어"가 아닌 "데미안"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의 제목이자 책에 등장하는 주요인물인 데미안은 다름아닌 싱클레어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친 친구의 이름이다. "막스 데미안" 중성적이고 선과 악이 공존하는 듯한 이 이름에 어울맞게 데미안은 신비한 이미지로 싱클레어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두 개의 세계

카인

강도

베아트리체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야곱의 투쟁

에바 부인

결말의 시작

 

성경에 나오는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통해 이 소설은 기존의 체제와 그를 벗어나고픈 욕망을 지닌 청소년의 심리상태에 대하여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적어도 나의 심리와 비교해 보았을 때는 상당히 날카롭다. 왜냐하면, 십수년이 지나 어른이 된 지금 내가 "데미안"을 읽고 어린시절의 심리를 생각해 낼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마치 독자의 마음을 너무 잘 읽고 있어서 다음장을 읽은 것이 두려울 정도로 선과 악의 심리에 대하여 잘 묘사하고 있다.

 

본문의 내용을 일부 인용하면,

 

내 인생의 목표는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아주 밝고 깨끗하고 굉장히 뛰어나며 정돈된 것이었지만, 그것에 이르는 길은 매우 멀었으며 그곳에 이르기 위해서 학교에 다녀야 하고 공부를 해야 하고 시험을 치러야 했다. 그러나 그 길은 항상 다르고 어두운 세계 곁을 지나가야 했는데 그곳을 통화하다 그곳에 머물거나 잠기는 일도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나는 이러한 길을 갔던 탕아들의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읽었다. 이러한 책에는 상상 아버지와 선으로 돌아가는 것이 구원받는 훌륭한 일이라고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도 이러한 것만이 좋은 것, 선한 것, 그리고 원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한 자와 탕아들이 나오는 이야기 부분이 더욱 흥미로웠고, 솔직히 말해 어떨 때는 탕아가 속되하고 다시 구원받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말하지 않았고 생가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단지 어떤 식으로든 존재하는 것, 즉 감정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예감과 가능성에 불과했다. 하지만 나는 악마를 상상할 때 그가 변장을 했든 안 했든 간에 길위나 시장, 음식점에 있는 것으로 생각될 뿐 절대로 우리집에 있다고는 생각 할 수 없었다.

 

나는 데미안의 얼굴을 보았다. 나는 단지 제 나이에 맞는 어린아이의 얼굴이 아닌 어른의 얼굴을 하고 있는 데미안을 본 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그 이상을 보았으며, 그의 얼굴이 단지 어른스러운 것이 아니라 다른 어떤 것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느꼈다고 확신했다. 그 안에는 여자의 얼굴 같은 것이 있었던 것도 같다. 그러나 순간 어른 같지도 아이 같지도 않은, 늙은 것 같지도 젊은 것 같지도 않은 어쩌면 천 살을 더 먹었거나 혹은 시간을 초월한, 우리가 사는 곳과는 다른 시간의 흐름에 의해 인장이 찍힌 사람의 얼굴은 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만약 동물이라면, 또는 나무나 하늘의 별이라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른이 되어 그 당시 내 느낌에 대해 지금 말하는 것을 그때에는 정확하게 이해하지도 못했고 정확하게 느끼지도 못했지만, 무언가 비슷한 것을 느끼긴 했다. 아마도 그는 아름다웠을 것이다. 아마 그는 내 마음에 들었거나, 아니면 내 마음에 반감을 일으켰을 수도 있다. 그것 또한 정확히 구분할 수 없었다. 단지 내가 보았던 것은 그가 우리와는 다른 사람이고, 그는 동물이나 유령과도 같았으며, 또는 환영같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정확히 어땠는지도 모르겠으나 그는 우리 모두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달랐다.

 

데미안은 왜 고전이 오랜세월을 두고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지 고전의 위대함을 다시 일깨워준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데미안을 읽으면서 어린시절에는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아니 생각할 수조차 없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동안 나의 삶의 방식과 사고가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어린시절에는 생각도 못했을 만한 선과 악 그리고 관습과 일탈, 종교에 대한 생각이 이 책 데미안을 읽는동안 새롭게 재해석 되었다. 작가 헤르만 헤세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 책을 썼는지도 부분부분 깨달아지는 것이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데미안을 읽다보니 헤르만헤세의 내면이 투영되어 보이는 것 같다. 신학을 전공했었던 그의 관념과 환경 그리고 삶 속에서의 갈등이 내가 과거에 생각했었던 생각들과 묘하게 오버랩 되면서 작가의 통찰력과 인간의 속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좋은 시간이었다고 생각된다.

 

소설은 체질상 잘 읽는 편이 아니지만, 

(뭔가 결론이 없는 텍스트를 읽는 느낌과 비현실적이다라는 느낌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고전을 읽을 때면 생각치도 못한 깨달음과 사색의 시간을 주는 것 같다. 데미안과 같은 고전명작은 읽어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깨닫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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