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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가을
요한 하위징아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2년 8월
평점 :
세의 가을
(중세는 암흑기가 아니었다)
중세의 가을은 참고문헌과 주석을 제외하고 630페이지에 이른다.
(주석들을 포함하면 780여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다)
이 책은 상당히 재미있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단, 어느정도 중세와 유럽사회에 대한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전제로 한다. 중세의 가을은 책의 분량이 상당할 뿐만 아니라 글자와 글자의 간격도 빽빽한 편이라 페이지마다 수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게다가 작가는 마치 그 시대에 살아봤었던 것 처럼 상당히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책 내용 일부 인용).
궁정 주방은 일곱개의 거대한 아궁이를 갖춘 엄청난 곳이었다. 이 주방에는 당직 요리장이 아궁이와 조리대 중간에 놓인 안락의자에 앉아서 주방 안의 모든 활동을 감시한다. 그는 한 손에 커다란 나무주걱을 들고 있는데, 두가지 목적에 사용되었다. "하나는 조리대에서 만들어지는 수프와 소스를 맛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걸 휘두르면서 주방의 일하는 소년들을 닦달하여 일을 제대로 하게 하는 것이고 또 필요시에는 그들의 영덩리을 때리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본 배경지식에 대한 친절한 설명은 부재하기 때문에 나처럼 기본적인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로 책을 읽는다면, 다소 공황상태에 빠질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도 내가 무엇을 읽고 있는지 망각하는 상태)
특히 초반에는 책의 내용에 몰입하여 책의 내용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 못하고, 표면의 글자만 의식적으로 읽고 있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통독하듯이 읽었다.
(역사적인 배경에 대한 기본 소양이 부족하다면, 통독하는 것이 일독을 하는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통해 중세의 시대상황과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느끼는데에는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중세의 독특한 문화와 그러한 문화적 배경에 대하여 책에서는 섣불리 답을 하지 않는다. 다만 그러한 사실을 자세하게 묘사함으로 인해 독자들로 하여금 그 당시에 사람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했을까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거나 고민 할 수 있게 인도한다.(물론 중간마다 요한 하위징아는 저자의 생각을 서술하거나 힌트를 주기는 한다)
개인적으로는 중세사람들의 명예와 열정 그리고 영성과 겸손에 대하여 인상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허세와 잔인성에 대하여는 생각할 거리등을 제공해 주었던 것 같다.
책의 내용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중세 후기의 잔인한 사법 처리가 우리의 관심을 끄는 부분은 그 변태적인 메스꺼움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법 집행으로부터 중세인들이 느꼈던 둔감하면서도 동물같은 만족감, 시골장터같은 떠들썩한 여흥이 우리에게 충격을 준다. 몸스시의 시민들은 도둑들의 우두머리를 거열하는(사지를 찢어죽이는) 광경을 보기 위해 그 우두머리의 몸값으로 엄청난 비용을 기꺼이 지불했다. (중략) 사람들은 반역죄로 체포된 고위 행정관들의 고문 받는 광경을 구경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희생자들은 어서 처형해 달라고 간원했지만, 당국은 처형을 가능한 한 연기했다. 구경꾼들이 그 희생자가 추가 보문을 당하는 광경을 구경하는 걸 너무나 좋아했기 때문이다.
중세의 생활은 너무나 강렬하고 다채로웠기 때문에 피 냄새와 장미 냄새의 뒤섞임을 견딜 수 있었다. 지옥 같은 공포와 어린애 같은 농담 사이에서, 잔인한 가혹함과 감상적인 동정사이에서,
사람들은 여기저기로 비틀거리며 갔다. 그들은 어린애의 머리를 가진 거인 같았다. 모든 세속적 즐거움에 대한 절대적 부정과, 부유함과 증거움에 대한 광적인 열망, 이런 두 양극단 사이에서 그들은 살았다.
책을 통해 중세사람들의 생활 모습과 그들의 생각을 통하여 여러가지 측면에서 사유하게 되었다.
중세시대의 사회와 사상은 근대와 현대의 사상과 많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한 차이들를 통하여 내가 평소에 생각했던 것보다도 1) 인간은 사회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또한 2) 그 사회와 사상의 흐름을 통해 근대와 현대로 넘어오는 과정도 확인 할 수 있었다.
통독을 했다고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역사적인 배경소양이 부족하여 숲을 보면서 독서 했다기 보다는 나무를 보면서 독서를 한 것 같다. 전체적인 흐름에 대한 이해보다는 개별 사건에 치우쳐서 독서를 하게 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향후에 역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다시 한번 재독 해 보고 싶은 책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