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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동, 자기만의 방 - 여행자의 마음으로, 여행자의 집을 꾸리는 삶
한량 지음 / 북노마드 / 2019년 2월
평점 :
원서동, 자기만의 방
이 책은 작가 한량이 원서동에 ‘자기만의 방’이라는 에어비엔비 숙소를 운영하면 쓴 에세이다.
독립출판물로 나온 책이 북노마드에서 새옷을 입고 나왔다.
이 숙소는 자신이 여러 나라에서 지낸 경험에 모티브를 얻어 마련했다고 한다.
원서동 집을 얻느라 부동산을 끼고 돌아다닌 이야기 부터 집을 남편과 함께 손수 꾸미고 가꾸는 과정. 첫 손님과 외국에서 오는 여러 손님들 이야기까지. 내가 꼭 집에 초대받아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편안히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 같아 좋았다.
책을 다 읽고 떠오른 단어는 ‘단정하다’ 였다.
단정하다 : 깨끗이 정리되어 가지런하다
이런 사람이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숙소도 좋겠다 싶을 정도로 글이 단정했다.
좋은 에세이는 좋은 사람이 쓴다고 믿기에, 좋은 에세이, 사람을 알게 돼서 좋았다.
좋은 글, 문장이 참 많다. 미리 얘기하면 그 감흥이 덜할까 몇개만 소개한다.
특히 나는 사대문 안에 있는 집을 샀다는 사실에 감격했는데, 그건박완서 선생님의 작품을 너무 많이 읽은 이유일지 모른다. 바뀌지 않는 정경. 개발 제한과 고도 제한이 있는 동네. 허물 수 없는 궁궐과 미술관과 도서관이 있는 곳. 그게 내 안에 잠재한 영원성에 대한 갈망을 건드렸다. 영원을 추구하는 것을 담고 있는 작고 아담한 집. 이곳에서 하고 싶은, 할 수 있는 많은 재미난 일이 떠올랐다. 앞으로 일어날 우여곡절을 아직 모른 채.
P. 34
이 문장을 읽으며 나도 신혼집 구할 때 생각을 했다. 결혼 전 이사했는데 신랑과 내 짐을 용달차에 실어올 정도로 짐이 없고 단촐했다. 동생이 도와주고 신랑이 애써서 청소하고 아무것도 없는 집에 이불만 깔고 누웠을 때 기분이란. 누우면 냉장고가 닿는 원룸에서 4년을 살았던 기억에 모든 게 다 내것같았다. 우리나라에서 특히 집은 구하기 힘들지만 그 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도 못한다. 요즘도 또 재계약이 다가오니 고민이다. 어떤 곳으로 가야할지. 연장할 수 있을지. 그래서 작가가 부러웠다. 이런 곳은 얼마나 좋을까. 궁궐, 도서관, 미술관이 가까이 있다니.
집 안팎을 들고 나는 나의 동선은 현재형으로 묘사하면서, 식물들의 자람은 과거형으로 그리게 된다. 인간이 관찰하기에는 너무 느린 속도라 그렇겠지. 언제나 지나고 보니 훌쩍 커있다. 지나고 보니 훌쩍, 나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 오월도 중순이 코앞이다. 언제나 무럭무럭 자라고 싶다. 마음도, 생각도.
P105
식물은 과거형이라니.. 이 문장에 감탄했다. 그래 맞아. 그렇지. 식물을 그렇게 못키우고 키우면서도 이 문장에 또 식물을 기르고 싶어졌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 자랄까. 난 뭘 좋아하고 잘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됐다.
한량 작가는 지금 삼청동에서 숙소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 이야기도 언젠가 책으로 나오겠지. 그때는 꼭 나오자마자 읽고, 단정한 이야기 또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