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도시 이야기 허밍버드 클래식 M 5
찰스 디킨스 지음, 김소영 옮김 / 허밍버드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올리버 트위스트>를 읽은 후 찰스 디킨스의 작품세계에 큰 매력을 느꼈던 터라, 이번에 허밍버드에서 나온 <두 도시 이야기>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페이지 수는 690여 쪽에 달하지만, 판형 자체는 성인 손바닥만 한 크기로 작아서 귀여운 느낌이 드는 책이다. 두께와 무게감이 조금 있긴 하지만 크기가 작으니 가방에 쏙 넣어다니며 읽기에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표지 디자인도 멋드러지게 돼있다. 프랑스 혁명기의 영국과 프랑스라는 시대적, 공간적 배경에 걸맞게 영국의 시계탑과 깃발이 달린 프랑스의 성이 그려져있고, 18세기를 떠올리게 하는 문양으로 그림을 둘러싼 후 상단에는 단두대 그림을 자연스럽게 연결시켰다. 표지 그림만 자세히 봐도 이 책이 어떤 시간과 공간을 그리고 있는지 명확히 알 수 있을 정도다.



주석도 친절하게 잘 달려 있어서 좋았다. 주석 없이 단순히 직역만 했더라면 모르고 지나쳤을 시대적 특징이 많았을텐데, 21세기 한국인으로서 알기 어려운 것들을 잘 풀어서 주석에 적어주어서 책을 읽는 재미가 배가되었다. 찰스 디킨스 작품답게 시대를 그 누구보다도 현실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해주는데, 친절한 주석 덕분에 그 매력을 놓치지 않을 수 있어서 김소영 번역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많지는 않지만 중간중간 일러스트도 등장한다. 그림풍이 책의 어두운 분위기와 잘 어울리고 장면을 잘 보여주어서, 내용을 읽어내려가며 머릿 속에서 영화처럼 재생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그림의 양이 조금 더 많아도 좋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찰스 디킨스는 이 작품에서 특유의 극사실적인 묘사와 함께 유머감각도 보여준다. 읽어내려가며 피식피식하게 되는 표현들도 있었고, 무척 사실적인 묘사들을 통해서는 마치 그 시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직접 도시를 보고 냄새까지 맡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인물들은 개인적으로 밋밋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꽤 있었지만, 시드니의 경우에는 초반부터 뭔가 공감도 되고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우울하고 시니컬한 면이 인간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끝나지 않는 코로나 상황에서 벗어나 프랑스 혁명기로 생생하게 시간 여행을 떠나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영화와는 다른 생생함을 맛보게 해주는 찰스 디킨스의 소설의 세계로 말이다.



* 이 리뷰는 네이버 이북카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러스트로 바로 이해하는 가장 쉬운 마케팅 - 대학 4년간 배우는 내용을 한권에 담았다! 일러스트로 바로 이해하는 가장 쉬운 시리즈
조사연 옮김, 히라노 아쓰시 칼 감수 / 더퀘스천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학 시절, 인문계열 수업 위주로만 시간표를 짜기 바쁜 골수 문과생이었던터라 상경계열 수업은 들어본 적이 별로 없었다. 경제학원론을 한번 들어봤다가 데인 후론 더더욱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학창 시절 그리도 멀리했던 회계, 마케팅 등 상경 계열 지식들이 왠지 조금씩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요즘은 인스타그램을 켜거나 구글검색만 해도 내게 적합한 광고가 뜨는 걸 보면서 대체 어떤 방식으로 마케팅이 이뤄지는 것인지 알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검색해보면 어려운 마케팅 용어들만 나와서 괜히 창을 닫게 되던 중, 실용적인 책들을 깔끔하게 내는 출판사라고 알고 있는 더퀘스천에서 <(일러스트로 바로 이해하는) 가장 쉬운 마케팅>을 냈다는 걸 알고 반가운 마음으로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일러스트를 사용해서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마케팅 개념과 용어를 풀어준다는 것이다.


표지에 두 시간만 투자하면 된다고 적혀있는데, 83개의 꼭지를 하나하나 꼼꼼히 읽다보니 두 시간으로는 사실 어렵겠다 싶지만, 그만큼 쉽게 썼다는 뜻으로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시작하며' 꼭지에서 "마케팅과 판매는 다릅니다."(p2)라고 적힌 문장을 봤을 때만 해도 물음표를 던졌는데,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이 의문이 해결되었을 뿐만 아니라, 마케팅의 세계가 내 예상보다 더 심도있고 다채로운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장래 꽃집 경영을 꿈꾸는 경제경영학부 신입생 마리 씨가 교수, 현직 경영자, IT 기업 현직자 등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마케팅에 관해 한 꼭지씩 배워가는 형식을 띠고 있다.


매 꼭지마다 일러스트가 깔끔하고 직관적으로 잘 나와 있고, 무엇보다도 적절한 예시를 잘 들어주기 때문에 마케팅 이론을 이해하는 데에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덕분에 처음 책 표지에서 본 STP, 4P, 3C 분석, PPM, SEO/SEM 등 외계어처럼 느껴지는 용어들도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전혀 어렵지 않고 자연스러운 개념으로 느껴져 신기했다.



읽으면서 재미있었던 지점은 여러 곳이었다.


일단 2장에서 정보를 정리하는 여러 프레임워크들을 소개해 준 것이 너무 좋았다. 마케팅은 단순히 광고를 띄우거나 판매하는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외부 분석과 내부 분석, 3C 분석, PEST 분석, SWOT 분석, 파이브 포스 분석, 가치 사슬 분석 등으로 시장 안팎과 기업 내부까지 샅샅이 여러모로 분석하는 틀이 있다는 것이 흥미롭고 멋지게 느껴졌다. 창업을 준비하거나, 다니는 회사의 새로운 활로를 개척해보려는 사람이라면 이 분석 틀들을 제대로 활용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고 유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장 15번째 꼭지인 BOP 마케팅도 흥미로웠다. 세계 인구 74억 중 72%에 달하는 50억 명이 빈곤층이라고 하는데(2007년 조사), 이 빈곤층의 성장을 도와 시장에 참여하게 만든다는 마케팅 기법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한 개에 몇 천 원 하는 비누를 일회용 사이즈로 작게 만들어 인도 빈곤 지역에 판매한 힌두스탄 유니레버의 사례가 참신했고, 왠지 창업 욕구가 솟아오르는 느낌도 들었다.(^^;)



6장 4번째 꼭지 'ZARA에는 왜 늘 신상품이 있을까?'도 재미있었다. 일단 기존 의류 사업과 SPA 모델의 차이점을 그림으로 잘 보여주었다. 그리고 ZARA의 SPA 비즈니스 모델은 생산부터 판매의 모든 과정을 ZARA에서 직접 주도하고 같은 제품을 다시 판매하지 않는 등의 희소성 전략을 사용하여 소비자들의 발걸음을 이끌고 현금 흐름까지 건전하게 한다는 등의 장점을 설명해주니, ZARA가 얼마나 멋진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인지 새삼 알 수 있었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모든 물건과 서비스를 직접 충당할 수는 없는 시대이기에, 우리가 사는 일상에는 각종 마케팅 원리와 기법들이 늘 함께하고 있는 것 같다. <가장 쉬운 마케팅>을 읽으며 그러한 마케팅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어서 즐거운 시간이었다.


시간은 많이 없고 두꺼운 마케팅 원론은 읽고 싶지 않지만 마케팅에 대해 궁금한 모든 독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 이 리뷰는 네이버 이북카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검찰을 떠난 이유 - 검찰 부패를 국민에게 고발하다
이연주 지음, 김미옥 해설 / 포르체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몰랐던 검찰의 현실에 대해서 낱낱이 고발하는 책이었다.

다만 저자 개인의 정치적 성향을 그대로 드러내는 부분이나,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비유 표현 등을 반복한다거나 하는 지점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평소 업무상 검찰과의 접촉이 있거나 이야기를 전해들을 때, 의아한 지점들이 생기곤 했다.

그들의 사고방식이나 조직문화를 안다면, 이해하여 대처하거나 수인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던 중

전직 검사가 <내가 검찰을 떠난 이유>라는 책을 썼다는 소식을 듣고 펼쳐보게 되었다.


제목부터 강렬하다.

쉽게 가질 수 있는 직업이 아닌 만큼, 저자가 검찰이라는 조직에 속했을 때 그 설렘과 기대감은 얼마나 컸을까.

자신이 한때나마 몸담았던 조직을 이렇게 출판까지 해가며 비판하려 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목차에서도 알 수 있듯 책은 전체적으로 검찰의 치부를 낱낱이 고발하는 책이다.

저자가 페이스북에 게시했던 글을 수정해서 실은 만큼, 글이 읽기 어렵거나 하지 않고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사건 배당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인사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등등 읽어 내려갈수록 페이지는 잘 넘어가지만 한숨이 푹푹 나온다.

이렇게까지 권력과 재물에 집착하는 지도부와 조직의 모습이 안타깝고,

열심히 일하는 평검사들이 안타까워 보였다.


그러나 책을 읽으며 의아한 부분들도 있었다.

검찰조직의 성향을 비판하는 논조와는 별개로,

갑자기 조국 동생에 대한 수사는 '복수'라고 표현한다든지,

정경심에 대한 수사가 검찰의 몰아가기 수사라고 비판한다든지 하는 지점에서는

이 글이 출판된 책인지 페이스북 포스팅을 프린팅한 쪽제본인지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검찰의 몰아가기를 원망하며 눈물어린 문장들을 썼는데 이 부분도 그랬다.

저자 개인의 정치적 성향은 충분히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출판물이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은 다소 당황스럽게 느껴졌다.


매 꼭지마다 뒤에 '팩트체크'라고 해서 칼럼니스트가 추가 설명을 달았는데,

상자 제목만 보면 팩트만 적어야 할 것 같지만 저자의 꼭지에 대해 같은 의견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내용이 많이 담겨있곤 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책은 검찰조직에 대한 비판을 담은 책이기는 하지만,

표지에서 '공수처가 출범해야 하는 이유다!'라고 적은 것처럼

공수처의 필연성에 대해 강조하고 국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만들어진 목적이 더 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이 책에는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비판이 많이 실려있는데,

어제(12월 1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추미애 장관이 보란듯이 이 책의 표지를 보이며 꺼내서 읽었다는 기사를 보고는 그 생각에 더 무게가 실려 안타깝게 느껴졌다.


전직 검사가 조직의 매커니즘을 고발한 의미있는 책이지만,

정치적 부분이 섞여들어가며 책의 빛을 바래게 하는게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이런 책이 많지 않기에, 그런 의미로 읽을 가치는 충분할 것 같다.


* 이 리뷰는 네이버 이북카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토피아 (라틴어 원전 완역본) - 최상의 공화국 형태와 유토피아라는 새로운 섬에 관하여 현대지성 클래식 33
토머스 모어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인적으로 올해의 책으로 꼽고 싶을 만큼 흥미롭게 읽었다. 고전을 원전 그대로 읽는 것이 얼마나 흥미롭고 즐거운지를 느끼게 해 준 책이다. 어떤 면에서는 <유토피아>의 북 세미나에 참여하고 온 느낌도 든다.



유토피아에 대해서는 모두가 행복한 이상국가의 모습을 제시한 이상향 소설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로 라틴어 원전 완역본을 읽고 나니 그 구체적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1. 번역과 주석



먼저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멋진 번역과 주석이다. 박문재 번역가의 실력이 좋다는 것은 다른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를 몇 권 접해서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작품에서는 엄청난 실력을 보여주셨다고 생각한다.


토머스 모어는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답게, 그리스 로마 시대, 그 중에서도 특히 그리스 시대에서 배울 점을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에 적용하고자 했고, 이 작품에도 대부분의 인명과 지명, 관직명 등이 그리스어나 라틴어로 나와 있다. 박문재 번역가는 엄청난 내공으로 이런 이름 하나하나마다 그 뜻을 주석으로 달아주는데, 명료해서 알아듣기 쉽고 의역은 설명도 해주어서 주석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오랜시간 공부하셨다고 하는데 그 내공이 얼마일지 상상하기도 힘들다.


역사와 철학에 대한 주석도 좋았다. 토머스 모어는 자신이 살아가던 시대의 영국과 유럽의 모습을 비판하며 유토피아의 모습을 제시했는데, 작품에서 비판하는 시대상이 어떤 것들인지도 주석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유토피아 사람들의 종교와 철학에 관한 부분에서는 주석을 통해 이것이 어떤 철학 학파들을 결합한 것인지 알려주어서 그 점도 유익했다.



2. 책의 구성



번역가가 라틴어 원전을 기반으로 여러 영역본을 참고했다고 하는데, 현재와 과거의 영어까지 달하는 그 엄청난 실력도 놀랍지만 이 책에서 시와 서신들의 순서를 정렬한 것도 좋았다고 느꼈다.


판본마다 실린 시와 서신들도 다르고 순서도 달랐다고 하는데, 지금 정렬된 순서로는 1권이 본격적인 이야기 전에 소개하는 구조이고, 2권이 본문, 그 뒤의 시와 서신들은 작품을 칭찬하는 추천사나 리뷰 같은 느낌이어서 읽기 좋았다. 용어정리, 번역가의 해제가 실린 것도 정성스러웠다.



책의 디자인적 면에서는 본문 옆의 보조란 같은 날개 부분에 간단한 키워드 요약이 되어 있는 것도 보기 편했다. 비록 이 책이 '소책자'라고 명명되었을 정도로 긴 분량은 아니지만, 내용을 찾아 읽을 때는 색인이 있는 것도 편리할 것이다.



3. 내용과 감상



유토피아라는 이상 국가에 대해 읽고 난 후 전반적인 감상은, 유일신 종교에 기반한 거대한 수도원 같다는 느낌이었다. 초반에 사유재산을 갖지 않는 무욕적인 사고방식에 대해 읽으면서는 대단하기도 하고 다들 도인인가 싶기도 했는데, 읽어내려가며 그것이 종교적인 사고방식-영혼불멸과 내세의 권선징악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조금 갑갑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번역자도 해제에서 말했듯 '유토피아는 수도원을 확대해 놓은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동을 중시하고, 그 토대 위에서 정신적 자유를 추구하는 유토피아 사람들의 삶은 당시 유럽과 영국의 귀족들이 아무 노동도 하지 않으면서 사치스럽게 살아가는 것에 대한 비판이기도 했다. (...) 전체주의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통제적이고 금욕적인 내용이 나오는데 이는 사실 토머스 모어가 가톨릭 신앙 안에서 추구한 수도원적인 금욕주의를 기초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 인문주의 사상이 결합되면서, 이성을 토대로 한 정신적 자유와 자기계발의 추구라는 측면이 더해진다.'(p283)


유토피아는 겉으로 보기에는 종교의 자유를 표방하지만, 우주와 만물을 창조해 다스리는 최고 유일신인 '미트라스' 이외의 존재를 신으로 부르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 미트라스에 대한 신앙을 기반으로 이름이나 약간의 교리만 다른 종교들을 허용한다고 말하지만 모두가 같은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린다는 점도 이들의 신앙은 일신교로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종교적 기반을 탄탄하게 두고 투명성과 신뢰, 성실성을 도구로 사회를 만들어간 유토피아 사람들의 모습은 정말 꿈만 같다. 모든 면에서 이상적이고 완벽한 모습을 보였지만, 특히 여행을 가더라도 하루 이상 머물게 되면 그곳에서 일을 해야 식사를 할 수 있고, 일손이 늘어나니 여행지의 사람들도 여행객들을 환영한다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금은보화를 하잘 것 없는 것으로 여기게 만든 유토피아 사람들의 방식이었다. 여기에는 종교적 사고방식보다는 인간의 심리를 활용한 기술이 활용된 것 같아 흥미로웠다. 유토피아에서는 2년 이상의 잉여 생산물을 백업으로 남겨두고 남은 것들은 주변 국가와의 교역을 통해 철, 금과 은 등으로 교환을 하는데, 이들에게 금과 은은 전쟁 상황에 피해를 줄이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유토피아 사람들은 금과 은에 대한 집착이 생겨나는 것을 막기 위해, 잘 쓰지 않는 도구나 죄수들에게 다는 족쇄를 금으로 만드는 식으로 금에 대한 사회적 동경을 줄이고, 반짝이는 보석도 철없는 어린 아이 때나 갖고 노는 장난감이라는 식의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금은보화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사람을 한심한 눈초리로 쳐다보게 만든다. 그럼에도 전쟁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금은을 영리하고 교묘하게 사용한다는 점도 대단하다.



노동 시간에 대한 점도 좋았다. 모두가 쓸모 있는 일에 종사하기 때문에 장시간 일하지 않아도 충분히 넘치는 생산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오전에 세 시간 일하고 점심 식사 후 두 시간 쉬다가 오후에 세 시간 일한 후에는 자유시간이라는 점은 정말 파격적이고 멋졌다. 유토피아를 읽다 보면 내가 이 사회에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자연히 하게 되는데, 이 부분이 가장 기분좋은 부분이었다.



반면 답답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모두가 관청에 모여 잘 준비된 식사를 하는데, 연령대와 성별 등에 따라 자리가 정해져 있는 데다가, 젊은 사람들은 안쪽에 앉아서 연장자들이 둘러싸 앉는 방식인데 이는 방자한 언행 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라는 점이 갑갑하게 느껴졌다. 사회에 기여하는 고귀한 행동과 정신적 쾌락을 최고의 미덕으로 꼽고 모두가 이것을 추구한다는 점도 조금 답답하고 일면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사유재산이 없고 자연히 개인 공간도 없는 곳이라는 점도 답답하게 느껴졌고, 범죄자들도 노예로 전락하여 '수치'스러운 삶을 사느니보다는 사형이 낫다고 여기는 곳이라는 점이 이 사회의 구성원들이 얼마나 남의 시선에 민감한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21세기의 한국인의 눈으로 보면 이렇게 장단점이 공존하는 유토피아 사회지만, 그럼에도 유토피아는 아직까지 전세계 모든 사회에 시사하는 점들이 아주 많다고 생각한다. 번역자가 해제에서 말했듯 이 <유토피아>와 함께, 이 작품의 기반이 된 플라톤의 <국가>, 이 작품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함께 놓고 앞으로의 자본주의가 나아갈 길에 대해 토론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이 리뷰는 네이버 이북카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올빼미 눈의 여자
박해로 지음 / 네오픽션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전에 작가의 전작인 <살 : 피할 수 없는 상갓집의 저주>를 흥미롭게 읽었던 터라,

이번에 나온 <올빼미 눈의 여자>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입 공무원이 연수원 기간 중에 겪는 이야기라는 점도 흥미로웠고,

무속신앙과 연결되어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했다.


카페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읽어내려가는 세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 느낌이었다.


전반적인 느낌은 마치 영화 <곡성>을 보는 것 같았다.


박해로 작가의 문장은 현실에 대한 관찰을 토대로 마치 내 주위 사람의 이야기를 쓴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주위에 한 명쯤 있을법한 평범한 청년 주인공 기성의 시선을 따라가며 공감하기도 하고, 그를 한심해하기도 하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니 어느 순간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혼란스러운 감정에 빠져들었다.

숲을 걷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늪에 빠져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늪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라도 페이지를 술술 넘기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혼란스러운 감정은 정말 영화 <곡성>을 본 이후로는 오랜만에 느끼는 것이어서,

한편으로는 책으로도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흥미진진하고 재밌었다.


<곡성>과 달리 좋았던 점은, <올빼미 눈의 여자>는 그래도 마지막에 그 혼란의 원인을 잘 풀어내 준다는 점이었다.

원인을 모르면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는 재미가 있긴 하지만,

나는 그보다는 명확하게 풀리는 걸 좋아하는 타입이라, 혼란을 즐기다 풀려나가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작가의 생생한 묘사 덕분에 아연하고 아찔한 무속신앙의 장에 정말 다녀온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영화로 비유하자면 생생한 4D로 무속신앙 현장에 다녀온 것 같달까? 그보다 더 생생한 느낌이었다.

이런 한정없는 생생함은 아마 책이라는 매체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인 것 같다.


더운 날씨에 훌훌 넘겨볼 스릴러 책이 필요할 때,

주인공의 이름도 문화도 낯선 외국 스릴러 책이 지겨워질 때

순식간에 빠져들 수 있는 우리나라 스릴러 책으로 제격이라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