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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
헤르만 헤세 지음, 김윤미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2월
평점 :
최근에 클래식 연주회를 감상하고 왔는데요. 좋아하던 음악을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들으니 참 좋더라고요.
코로나 이후에 심란하던 마음이 청량해지는 기분이 들었는데.. 아쉽게도 그 좋은 감정을 글로 표현하지 못하겠더라고요.
‘참 좋았다. 귀호강했다.’ 이 정도의 언어력밖에 없어서 답답했습니다. 이런 저의 아쉬움을 달래는 좋은 책을 만났습니다.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입니다.
헤르만 헤세는 세계에 많은 독자들이 좋아하는 작가죠. 1946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이고요.
그는 음악에도 조예가 깊은 클래식 애호가였습니다. 음악은 헤세의 문학 세계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글은 아름다운 음악을 더욱더 근사하게 묘사합니다. 마치 이 세계의 것이 아닌 천상의 것을 그린다는 생각이 들게 해요.
밤에, 한 목소리가 노래한다.
밤에, 그 목소리가 두려워하는 밤에
노래한다. 두려움과 용기를.
노래로 밤을 길들인다.
노래하면 다 괜찮아.
두 번째 목소리가 노래를 시작해
다른 목소리와 발맞추어 걷고
다른 목소리에 응답하고 웃는다.
둘이서 밤에 노래하면
기쁨이 솟아나니까.
세 번째 목소리 들어와
조화로이 춤추고 걷는다.
밤에 함께. 셋은.
별빛이 되고
마법이 되고.
-3성부 음악 중에서-
책의 후반부에는 헤르만 헤세의 서신도 만날 수 있어요.
‘일요일, 이제 곧 정오야. 물먹은 함박눈이 하염없이 내려서 집 주위에도 소복하게 쌓였어. 내 감각과 사유는 대개 열정도 없고 활기도 없는데 지금은 아주 밝고 씩씩해. 방금 라디오에서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두 곡을 잇따라 들었거든. 연주가 귀와 마음을 깨끗하게 쓸어주었어. 한 곡은 <5번 협주곡>이었어. 너무도 대담한 곡이지. 이 곡에서는 기교적 완벽성과 자기 성찰, 우울함과 씩씩함이 사랑스러우면서도 치열하게 격투를 벌여. 위대한 악사는 몇 번이고 염세적 실존철학의 한계에 이를 때까지 끌려가 고립되었다가, 몇 번이고 내향성의 우울한 늪에서 있는 힘껏 빠져나와 우주적이고 신적인 질서로 되돌아가…
-299p, 1950년경 알브레히트 괴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서신을 읽으면서 제가 수신인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졌죠. 이런 답장을 적어 보기도 합니다.
‘지금은 늦은 오후에요. 요즘 저는 물먹은 함박눈처럼 하염없이 쏟아져 내리는 우울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어요. 제가 있는 이 시대 2022년은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라는 터널에 갇혀 있어요. 매일 괜찮다. 조금 더 버티자. 라는 말을 떠올리며 힘을 내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나의 영혼은 너무나 연약하여 신께 기도하는 일조차 지쳐가요. 닿을 수 없는 어느 먼 별을 바라보며 홀로 가슴앓이 하는 일처럼 하루하루가 먹먹해요. 이런 내가 과거의 어느 날에 당신이 들었을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5번은 역시.. 우울한 상황에서도 애써 씩씩함을 잃지 않는 감정이 사랑스럽게 와닿네요. 당신이 나라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아마도 이 시대를 위로하는 힘있는 글을 쓰고 있을까요…
-2022년 2월경 나-’
헤르만 헤세의 글은 저를 거대하고 고풍스러운 연주홀에 데려다 놓았습니다. 음악을 틀지 않았는데도 귓가에 멜로디가 흘러 들어오게 했습니다.
위대한 작가의 능력이 지쳐있던 영혼을 치유하고 위로하는 따스한 마법을 발휘한 것입니다.
비록 작가의 육신은 만날 수 없지만, 그의 언어가 남아서 저와 영혼의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라운 기적입니다.
저도 글을 쓰는 사람이다 보니, 위대한 작가들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많습니다. 특히 그들이 영감을 얻는 방법에 대해서 알고 싶죠.
헤르만 헤세의 경우에는 음악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을 것 같아요. 그렇게 하여 탄생한 글은 후세의 음악가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전하였죠.
이 교류, 순환의 과정이 우주를 알아가는 일처럼 신비롭게 느껴집니다.
어느 누가 모차르트를, 쇼팽을, 내밀하고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있는 사람. 바로 헤르만 헤세죠.
몸에 전율이 일어나는 좋은 문장들이 가득 들어있는 영혼의 영양제 같은 책입니다.
또한 헤르만 헤시의 시가 음악으로 탄생한 사례도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음악을 느끼는 새로운 매력적인 방법을 알아가는 기회를 제공해요.
이런 책은 페스트 푸드처럼 금방 먹을 수 없죠. 오래 곁에 두고 천천히 음미하면서 열어보는 소중한 책이 될 것 같아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