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다니기 어려운 시기입니다. 그러나 여행을 꼭 다리로 다니라는 법은 없죠. 오히려 이런 시기가 독서에 푹 빠질 기회라고 생각해요. 지난밤에 저는 근사한 유럽 여행을 했어요. 능숙한 도슨트가 설명하는 유럽의 미술관 투어를 했습니다. ‘90일 밤의 미술관’은 5명의 도슨트가 함께 쓴 책입니다. 제목이 무척 낭만적이죠? 내용도 마치 세헤라자데의 이야기처럼 흥미로워요. 영국, 프랑스, 스페인, 독일 등 유럽 각지의 미술관에서 오랜 시간 도슨트로 활동한 5명의 저자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작품을 책에 담았어요. 그림을 소장하는 나라별로 구성해서 그 나라를 여행하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예전에 파리에 있는 루브르 박물관에 간 적이 있는데, 너무 넓어서 모나리자만 제대로 보고 다른 작품은 스쳐 지나갔어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는데요. 잘 모르니까 느껴지는 것도 별로 없었죠.이 책을 읽고 갔으면 유럽의 미술관을 아주 알차게 둘러보고 왔을 텐데 아쉽군요. 하지만 지금이라도 이 책을 만나서 다행입니다.책을 읽으면 그림 한 장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느낄 수 있어요. 명화에는 화가의 가치관과 비평적 시선이 들어 있답니다. 스토리가 있기에 더욱더 매력적이죠. 저는 특히 종교화를 좋아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내용을 그림으로 그린 화가들의 믿음이 매우 아름다워요. 종교화 덕분에 글을 몰라서 성경을 읽지 못하는 사람은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어떤 이들은 깊은 울림과 감동을 받죠.웅장한 종교화를 바라보며 찬송가를 들으면 가슴이 벅차올라서 감격의 눈물이 흐를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그림은 렘브란트 반 레인의 자화상이었어요. 런던 내셔널 갤러리의 22번 전시실은 단 한 명의 화가를 위한 공간입니다. 여기에는 렘브란트의 34세 자화상과 63세의 자화상이 놓여 있어요.젊고 혈기 왕성했던 시기의 자신과 늙고 힘이 없어진 자신을 그리는 화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같은 인물이지만 표정이나 눈빛, 포즈까지 섬세하게 다릅니다. 직접 두 장의 그림을 나란히 보고 있으면 다양한 생각이 들 것 같아요. 나의 교만과 욕심, 세속적인 것의 부질없음, 내려놓음과 평안함 등등......이 책을 읽으면 그냥 그림만 보았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화가의 노력이 생생하게 와닿습니다. 한 장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말을 해부하며 해부학책까지 낸 조지 스터브스 같은 화가도 인상적이고, 불행과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프리다 칼로와의 만남도 행복했어요. 고독하고 힘들었을 창작의 과정...... 그 아픔을 견디고 완성한 결과물을 바라보면 마치 내 일처럼 뿌듯하고 자랑스러워요. 책을 일부러 자세히 완독하지 않았어요. 90일까지 걸리지는 않겠지만 밤마다 아껴서 읽을 예정이랍니다. 매일 불면증 때문에 고통스러운 저의 밤에 이 책이 근사한 친구가 되어줄 것 같네요. 역시 명화 이야기를 담은 책을 선택하면 후회가 없어요. 푸석푸석한 상태였던 영혼에 촉촉한 수분을 공급한 것 같아요. 여러분도 오늘 밤에 명화를 감상하는 책을 펼쳐 보시는 건 어떠세요? 밤의 미술관에서 저와 만나요.^^*출판사에서 책을 제공 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