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요슈 선집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사이토 모키치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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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일왕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연호를 사용합니다. (물론 일반 날짜 표기인 서력도 함께 사용하고 있죠.) 관공서나 은행, 계약서 등에도 연호를 쓰는 일본! 그래서 연호가 바뀌면 문서 양식을 포함해 많은 것이 바뀌죠.

연호란 왕(군주)의 즉위 후 통치 기간을 일컫는 역법입니다. 기원전 140년 중국 한무제가 ‘건원(建元)’이란 연호를 처음 쓴 이후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에서 연호를 썼으나 지금은 일본만 쓰고 있습니다.

2019년 5월 1일에 일본의 새 연호 ‘레이와’가 선포되었습니다. 아키히토 일왕이 2019년 4월 30일 퇴위하면서 약 31년간 사용된 '헤이세이(平成)' 연호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나루히토가 취임한 이후 ‘레이와’ 연호가 사용 되고 있습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지금은 아닌)는 새 연호 발표 기자회견에서 만요슈를 “우리의 풍요로운 국민 문화와 오랜 전통을 상징하는 국서”라고 부르며, “강추위를 뚫고 봄에 피는 매화처럼 일본인이 내일에 대한 희망과 함께 각각의 꽃을 크게 피울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그는 연호에 사람들이 아름다운 마음을 맞대어서 문화가 태어나 자란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도 뜻을 설명했죠.

레이와의 출처인 만요슈도 재조명받았습니다. 만요슈는 1200년 전에 편찬된, 일본 시가집 중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총 20권으로 구성됐으며, 약 350년에 걸쳐 시가 4500여편이 들어 있어요. 일왕과 귀족뿐 아니라 관리, 농민 등 다양한 계층에서 읊은 작품이 다양하게 섞여 있습니다. 그러니 그 시대의 생활사나 역사도 읽을 수 있죠.

새 연호 레이와는 만요슈의 권5, ‘매화를 노래한 32수’ 서문에서 가져왔다고 해요.

‘때는 이른 봄날의 상서로운 달,
아름다운 분위기에 바람은 온화하다.’

레이와의 뜻은 레이는 ‘명령하다, 법도, 훈계’ 그리고 ‘길하다 아름답다 바람직하다.’ 인데요. 와를 이으면 ‘아름답고 온화하다’, ‘바람직하고 편안한 모습’ 정도로 해석합니다.

제가 읽은 사이토 모키치의 ‘만요슈 선집’에는 약 359수가 실려 있습니다. 이 책은 ‘시류에 아첨하지 않고 시국과 대치한다’는 이념으로 1938년에 창간된 이와나미신서 라인업 20권 중 하나라고 해요. 80년이 넘게 일본에서 꾸준히 판매되는 스테디 셀러입니다.

친숙하게 읽을 수 있는 걸작만 모은 책입니다. 비평과 주석이 달려서 읽기에 편리합니다. 특히 일본 역사나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책입니다.

만요슈는 문장이 고풍스럽고 장면이 저절로 그려지는 느낌이 듭니다. 인내, 배려, 기다림 등 인간이 품은 아름다운 감정들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짧은 문장들에서 인생의 짙은 향기가 느껴집니다.

제 마음에 들어온 부분을 몇 가지 소개해드릴게요.

‘드넓은 바다 웅대한 구름 위로 석양 비치니
오늘 밤 뜨는 달은 분명 청명하리니’

‘물가에 있는 신성한 바위들에 이끼 없듯이
항상 변치 마소서 영원한 소녀처럼’

‘파도 가득한 이라고섬 근처를 노 젓는 배에
그녀 타고 있을까 거친 섬 주위 돌며’

‘어쩔 수 없고 괴롭기 그지없어
뛰쳐나가서 세상 등질까 해도 자식 눈에 밟히네’

이 글귀 뒤에 어떤 숨은 의미가 있는지.. 정치적 역사적 해석은 잠시 밀어두고 싶습니다.

그저 아름다운 글을 보고 인간이 느낄 수 있는 풍요로운 감성을 만끽하고 싶습니다. 책을 읽는 방식은 저마다 다른 법이니까요.

그런데 해석을 읽고 나면 ‘아, 이런 상황에서 이런 뜻을 품고 노래했구나!’하면서 두번째 감상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분이라면, 일본 국민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긴다는 가집 만요슈도 접해보세요.

국가를 대표하는 작품, 시대를 넘어 사랑받는 작품은 역시 읽어볼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 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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