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시스터즈 키퍼 - 쌍둥이별
조디 피콜트 지음, 곽영미 옮김 / 이레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설명할 게 너무 많다. 내 피가 언니의 혈관으로 스며들고 있다는 것, 언니에게 줄 백혈구를 뽑기 위해 간호사들이 날 꼼짝없이 누른다는 것, 의사가 한 번으로는 안 된다고 말한 것. 또 골수를 뽑고 나면 멍이 들고 뼈가 욱신댄다는 것, 언니에게 줄 여분을 만들려고 내 몸속 줄기세포를 더 많이 발화시키는 주사를 맞는다는 것, 나는 아프지 않지만 차라리 아픈 게 낫겠다는 사실. 내가 태어난 이유는 언니를 위한 결과물일 뿐이라는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에 대한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의견을 말할 자격이 있는 당사자에게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는 사실. 그래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설명을 한다. “신이 아니에요. 부모님이에요. 내 몸의 권리를 찾기 위해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어요.”p24-25』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이루고 싶은 것도 많을 열세 살의 어린 소녀가 자신의 권리를 되찾고자 진리를 규명하고자 부모를 상대로 법 앞에서 소송을 걸었다. 과연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하고 궁금증을 가진 것도 잠시, 아니 어떻게?! 라는 말 뒤에 물음표만 생겨났다. 부모 된 입장에서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있을까마는, 한명의 자식을 살리고자 또 한명의 자식을 희생 제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은 쉽게 이해될 수 없는 논지 중의 논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 모든 이가 자신의 운명을 선택해 태어날 수만 있다면 모든 고난과 시련 앞에 쓰러지지 않고 다시금 일어서 걸어 나갈 수 있을 테지만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하늘이 내려준 인연으로 양자 간의 선택이 있을 순 없다.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이들 가족에겐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늘 드리워져 있다. 백혈병에 걸린 딸 케이트로 인해 1분 1초도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수 없을 만큼 급박한 순간순간을 맞이하고 있고 그런 언니를 살리기 위해 유전자의 조합으로 태어난 아이인 안나는 제대혈부터 백혈구, 골수 등 지금까지 언니를 살리기 위한 도구로 자신의 존재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가족 내에서 자신은 오로지 언니를 떼어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한낱 미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셈이다. 누가 보기에도 어린 소녀가 혼자 감당하기엔 버거운 그래서 더 안타까운 상황들의 연속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언니가 나아지리라는 보장도 없는 이 끝없는 줄다리기 속에서 이 소녀는 세상을 향해 소리치고 있다. 나를 찾고 싶다고!




『전통적으로 부모는 아마도 자식을 위한 최선이라는 명목으로 자식에 대한 결정을 할 것이다. 그러나 부모가 자식들 중 한 아이만 위하다보면 그 질서는 무너지고 만다. 그리고 그 무너진 돌덩이들 밑에는 안나 같은 희생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문제는, 이 아이는 자신의 의료에 대해 본인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이 소송을 제기한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울고 있을 때 부모님이 한 번이라도 그 울음을 들어주기를 원하기 때문일까?』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최선책이었다고 말을 하는 이들에게 사실상 그게 당신의 사안이라는 전제를 둔다면, 윤리적인 면을 앞세워 그건 정당치 못하다고 쉽게 단정할 수도 없는 법이다. 그 어느 쪽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에 앞서 이 사건은 많은 윤리적․ 법적인 문제를 동시다발적으로 껴안고 있는 중대 사안이기 때문이다. 자식의 못 다한 삶을 조금이라도 연장해주고 싶은 부모의 심정이야 말을 다해 무엇 할까마는 이렇듯 사라와 브라이언의 마음과 정신 모두가 케이트에게 가 있으니 그들 곁에서 보호받고 관심 받아야 할 제시마저 가족 내의 또 다른 고립을 경험하며 방황의 시기를 보내게 된다. 부모의 역할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그 반경이란 우리가 예상하는 그 이상으로 크고 넓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 책은 처음부터 각각의 등장인물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고 있다. 자식과 부모의 입장에서 그리고 이들의 소송을 담당하는 캠벨과 안나의 법정 후견이기도 한 줄리아의 입장까지. 자신의 위치에서 느끼는 바와 상황들을 이야기함으로써 독자들이 조금 더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사실 이야기를 읽어가면서도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고 내 스스로 판단하기도 쉽지 않았다. 작가의 상상만으로 그려진 이야기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내 입장을 피력할 수 있을 테지만, 현실에서 이와 수반된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없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일까. 그들의 이야기가 곧 우리 사회의 이야기인 것만 같았다.




정답이 없는 문제의 답을 찾기란 얼마나 어려운 걸까. 이 책을 읽으며 내내 묻고 또 묻게 된다. 사회적으로 이슈화 될 수 있는 소재를 저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담대하게 이끌어나간다. 그래서 독자의 한 사람으로 이들 가족의 위태로운 문제들이 단지 그 복잡한 갈등구조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조금은 안정된 방향으로 해결책을 모색해 나가길 조심스럽게 바라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선택권과 선택권이 결렬된 희생 앞에 이야기의 결말은 조금 지지 부진한 상태로 일단락되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쉽게 책장을 덮을 수 없었다. 이 책은 열세 살 어린 소녀 안나의 자전적인 성장 이야기임과 동시에 사회적인 문제들을 꼬집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다양한 논지들을 모두가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좋은 모티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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