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의 거짓말
제수알도 부팔리노 지음, 이승수 옮김 / 이레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을 즐겨 읽으면서도 유럽 국가의 책을 접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 무엇이라고는 딱히 설명할 수 없는 공간적 혹은 문화적 거리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스트레가 상’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이 나의 호기심을 이끌었고 더불어 20세기 이탈리아 대표 문학으로 손꼽히는 이유에 대한 궁금증이 스멀스멀 피어 오른 것이다. 누구나 삶에 대한 대략적인 방향을 정해놓고 매일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미리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그에 대한 준비를 하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오늘밤 눈을 감으면 자연스럽게 내일의 빛이 드리워지듯이, 그렇게 언제나 나에게 허락될 것만 같은 매일의 삶이 단 하룻밤 사이에 끝이 난다면? 상상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지고 앞이 캄캄해질 것이다.




외모, 출신, 나이, 직업 어느 것 하나 동일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이미 죽음이 예견되어 있다. 말 그대로 사형수라는 안타까운 입장에 처해있는데 과연 무슨 죄목으로 극한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는 것일까. 이야기의 배경은 시칠리아 왕국의 외딴 섬이다. 이들은 모두 국왕 암살 음모라는 공통된 죄로 감옥신세를 지게 된 것이다. 인생의 막다른 길에 선 뒤에야 인간은 자신의 지난날들에 대한 회고의 시간을 비로소 갖게 되는 듯하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누리게 되는 모든 것들은 영원히 내 것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모든 게 한시적일 뿐인데 이를 깨닫게 되는 것은 항상 마지막 순간일 뿐이다.    




감옥의 사령관이 그들에게 내건 한가지의 제안으로 인해 죽음을 목전에 둔 짧은 시간 앞에 그 누구보다 치열한 자신과의 감정과 맞대면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된다. 남작 인가푸, 시인 살림베니, 병사 아제실라오, 학생 나르시스. 이들 중 한명이라도 실제 음모의 주모자를 발설한다면 나머지 사람은 모두 살려주고 만약 아무도 응하지 않을 경우엔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대로 직고하여 나의 목숨을 보전할 것이냐? 아니면 정의로운 죽음을 택할 것이냐? 하는 양자 선택의 길 위에 놓인 이들은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될까. 죽음을 앞에 둔 극적인 공포 앞에서 인간의 실제적인 내면과 심리를 이야기하려는 듯하다.    

극한의 상황에 놓였을 때 인간은 가장 인간다워지는 듯하다. 감출 것 없이 자신의 모든 과거를 돌이켜보고 반성하고 지난 시간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느끼기도 하고 가장 행복했던 날들을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는 것 같다. 이들 역시, 자신들의 실제적인 삶을 하나씩 떠올리며 솔직한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갖게 되니까. 이들과 함께 하게 된 치릴로 수도사라는 인물도 주목할 만하다. 무슨 연유로 네 명의 사형수와 함께 수도사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독자들은 이 점을 생각하며 읽어보면 더욱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떤 이야기든 반전이 있어야 극의 긴장감을 고조시켜 더욱 흥미롭게 전개되는 듯하다. 그것은 이야기의 구조를 통해 혹은 곳곳에 담긴 복선 내지는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통해서도 나타날 수 있으리라. 이를 포착하는 것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다. 누가 진실을 말하는 것이며 누가 거짓으로 허황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인지는 읽는 동안에는 쉽게 분별이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독자들이 바라는 확고한 결론을 내려주지 않아서 마음 한 켠이 답답해져 올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획일화된 결론으로 치부하지 않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더 나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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