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을 만드는 여인들
카트린느 벨르 지음, 허지은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이전에 수녀님들의 종신서원식에 다녀온 적이 있다. 가톨릭 믿음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종신 서원식이란 말의 의미는 이렇다. 일생을 마칠 때까지 하느님에게 자신을 온전히 바치기로 서원하는 일, 결과적으로 길고 긴 수련기간을 지나 정식으로 수도자가 되는 것이다. 오랫동안 가톨릭 신자로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종신서원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처음이었고 뭔지 모를 가슴 뭉클함과 함께 마음 가득히 충만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 책의 스토리가 무엇보다 흥미롭게 느껴졌던 것은 한 수녀원을 배경으로 한 수녀님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프랑스 소설이란다. 그간 여타의 일본 소설은 많이 읽어보았지만 프랑스 소설의 참 매력은 아직 느껴보지 못했기에 기대를 한가득 품은 채 읽어 내려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 초반의 기대에 부응이라고 하듯 흡입력이 있어 술술 읽혀지더라. 일반 사람들이 생각했을 때 수녀님들은 매일 기도만 하실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하느님을 섬기고 그 분을 위해 일생을 봉헌하시는 것은 맞지만 각자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재능 또한 특별하고 놀라울 만큼 다재다능하시다.




『수도자들의 생활은 명상의 생활이죠. 침묵은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기 위함이고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것은 남에게 나를 더 잘 열어주려는 것입니다. 또한 소박한 일상을 기쁘게 채워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루하루의 노동도 빼놓을 수 없는 수녀원의 일부이지요.‘제 손으로 노동하는 자들이야말로 진정한 수도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생 줄리앙 수녀원을 존속시켜주는 노동은 단연 초콜릿 제조라 할 수 있지요. -p112』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곳은 생 줄리앙 수녀원으로 이야기의 서두는 황금 카카오 대회에서 이 곳 수녀원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달콤한 초콜릿을 만들어내는 곳으로 인정받는 순간, 즉 이 대회에서 1등을 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허나 현실적으로 이 곳 수녀원은 몇 년째 재정악화로 인해 초콜릿의 원료가 되는 카카오를 구하지 못하는 급박한 상황에 처해있다. 수녀원을 살리기 위한 방법은 오직 한 가지 뿐! 최고의 원료인 남미 콜롬비아에서 재배되는 카카오를 구해오는 것이다. 그 낯설고 기나긴 초행길에 두 명의 수녀가 총대를 메고 떠나게 되는 것이니, 어찌하여 두 어깨가 무겁지 아니할 수 있을까. 이들의 길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예감은 수녀원의 초콜릿 비법을 알아내려는 대기업의 음모가 있기 때문이리라.




『노동으로 자급자족하지 못하는 수녀원은 죽은 수녀원입니다. 오늘, 하늘에서 우리에게 징표를 보낸 거예요. 우리의 마음에서 개인적인 고뇌를 없애야 합니다. 우리의 욕망과 이기적인 두려움까지도. (중략) 명심하세요. 이 사명이야말로 수녀님이 생을 보내기로 선택한 수녀원의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신에게 생을 바치는 것이 수녀님의 진정한 소명이라 해도, 만일 수녀원이 사라진다면 수녀님은 또다시 갈 곳을 잃겠죠? -p62~63』




두 수녀가 함께 하는 콜롬비아 여행길은 결코 만만치 않다. 수도생활만 해온 그녀들이 세상에 발을 내딛은 순간 새롭게 만나게 되는 이들과의 갖가지 사건 사고들은 하나같이 모험이자 놀라움의 연속인 것이다. 조금은 과장된 표현과 에피소드들에 멋쩍은 마음도 들긴 하지만 어차피 소설이니까 무슨 일이든 그려 보일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싶어 이내 안쓰럽고 또 한편으론 유쾌하기도 했다. 현실 속 수녀님들에게 허용되지 않은 로맨스와 서로 다른 매력을 가진 두 수녀의 알콩 달콩한 모습들이 하나의 매력으로 다가와 신선한 양념역할을 한다. 비록 허구적인 성격이 강하지만 그 안에서 그녀들의 참 신앙생활과 수녀로써의 삶, 자신의 소명을 다하려는 면면들이 마음을 따스하게 적신다. 아! 벌써 그리워진다. 안나와 자스민 그리고 생 줄리앙 수녀원의 수녀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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