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룡전
쓰카 고헤이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작가의 이름이 낯설 경우에는 나도 모르게 그의 이전 작품들에 눈길이 간다. 잠깐 두 눈으로 힐끗 살펴보니 아직 만나본 작품이 없다. 그냥 지나치려는데 오, 아타미 살인 사건?! 이것은 예전에 기회가 되어 우연히 보았던 연극 아닌가. 한순간 반가운 마음이 피어오르려는데 작가의 이력 또한 참 흥미진진하다. 재일 교포 출신으로 처음 나오키 상을 수상했고 그간 우연인지 필연인지 많은 상을 수상하며 짧은 시일 내 주목을 받고 있는 듯 했다.
우선 이 책의 주요 배경이 되는 시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1970년대 일본이다. 어느 나라든지 그 시기를 살아가는 와중에 서로 대립이 되는 갈등 양상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 당시 일본에서도 우리나라와 같이 일본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사회 운동이 있었던 것이다. 내 이 두 발로 뛰고 걸으며 광주 학생운동에 동참했던 사람들이라면 그 날 그 시간의 뼈아팠던 일들을 기억하게 될 터, 그저‘화려한 휴가’라는 학생운동을 다룬 영화로 과거의 한 역사를 더듬어가는 이 시대의 우리들에게 그 날의 일을 전적으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의 중심은 간바야시 미치코라는 한 여인의 삶에 초점을 두고 있다. 명분상 재벌가의 집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아버지의 밑에서 찬밥 아닌 찬밥 신세 취급을 받으며 자라난 미치코는 의사의 꿈을 품은 채 도쿄로 상경하게 되고 우연히 가쓰라기라는 한 남자의 연설을 통해 운동의 선두에 서게 되고 그를 좋아하게 된다. 한 사람을 향한 마음의 지각 변동은 더 나은 삶에의 희망을 꿈꾸게도 하지만 미치코에겐 절대적인 희생과 강요만을 낳게 하니, 참으로 사랑이라는 것은 알다가도 모를 일인 것 같다. 서로의 마주봄의 사랑이 아닌 어느 한 사람(방향)만의 사랑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절대불면의 진리가 녹아 있는 듯.
그런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내어주려는 한 남자가 있으니 그는 그녀와 정반대의 입장에 있는 야마자키다. 학생들을 모아 그 선두에서 진두지휘해야 하는 입장에 선 그는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않고 모두 내보이지만 자신에게 다가온 한 여자의 본 목적을 알고 나서야 그녀를 증오하게 된다. 내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면, 미치코는 참 어리석은 여자다.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을 그 누구보다 끔찍이 아껴주는 이의 마음에 칼을 댄 꼴이니 여기서도 저기서도 환대받지 못하고 마음에 상처만 받게 되는 것이리라. 그녀만큼의 능력과 기회만 주어졌더라면 충분히 하나만 보고 나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자신을 사랑하는 여자를 이용하려는 한 남자의 비열한 사랑과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를 이용하려 했던 한 어리석은 여자의 사랑 그리고 뒤늦게 깨닫게 되는 참된 사랑의 쓸쓸한 그림자. 이야기의 구성은 단순하지만 그 이면에는 치열했던 일본의 학생 운동의 한 정점을 그리고 있기에 단순한 연애 소설만의 느낌만 남겨주지는 않는다. 그녀의 짧았던 생애가 여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참으로 고단하고 안타깝다. 남들처럼 그저 평범한 한 성공한 의사로서의 입지만을 구축한 채 사랑하는 사람과 알콩 달콩 살아가는 모습이 그려졌더라면 어떠했을까.
이야기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결코 밝지 않다. 희생과 강요에의 삶, 자신을 지키기엔 너무나 처절했던 삶의 원형이 무겁게 마음을 짓누른다. 이야기의 중심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의 시각의 차이가 하나의 갈등 요소로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며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모를, 그 날 그 시간의 일들이 너무나 현실적으로 그려지는 듯해 이내 마음이 먹먹해지기도 하고 사랑의 참된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여지를 남겨준다. 아, 사랑에도 분명 희생이 따르지만 그 희생의 무게를 빛나게 해줄 참된 사랑의 주인공은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