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집
전경린 지음 / 열림원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엄마와 딸은 서로에게 있어서 이 세상 그 어떤 관계보다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기에는 아직 많이 모자라고 나만의 자아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았을 때, 때론 친구처럼 언니처럼 그저 모든 것을 포용하고 보듬어 줄 수 있는 특별한 존재가 바로 엄마다. 나 역시 엄마에게 있어서는 하나밖에 없는 딸로 언제 어디서나 서로에게 의지처가 되고 있기에 전경린 작가가 보여주는 이 소설 속의 엄마 윤진과 딸 호은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나 또는 우리 이웃의 이야기로 바라보며 또 많은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얼마 전 읽었던 공지영 작가의“즐거운 우리 집”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엄마와 딸, 그리고 타인의 눈에는 조금 특별하게 비춰질 이들 가족의 이야기를 보여줌으로써 현 시대에 존재하는 가족의 모습과 그 의미는 무엇인지 독자들에게 자문할 기회를 주었다. 전경린 작가는 십대의 딸 호은의 눈으로 그녀들이 맞닿은 현실과 삶의 고충들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들 역시 타인의 눈에는 정상의 범주를 넘어선 조금은 특별한 관계 안에서 생활하는 새로운 전형의 한 가족의 모습으로 비춰질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사랑이라는 개념의 자를 가지고 들이대는 순간, 사랑은 없단다. 어디에도 없어. 지금이라면, 난 사랑에 억압되지도 않고 기대하지도 않고 꿈꾸지도 않고 기만당하지 않았을 거야. 내가 하는 게 무엇인지 규정하지 않고 어떤 형태로든 네 아빠와 헤어지지 않고 세상의 높은 곳과 낮은 곳을 흘러갔을 거야. 사랑이든 아니든, 사랑에 도달하지 못하든 혹은 사랑을 지나가버렸든, 사랑이라는 개념 따윈 버리고 둘이 함께 있는 것을 믿을 거야. 네 아빠와 난, 그것에 실패했어.”-p206』




불과 얼마 전만해도 여자들은 누군가의 아내, 며느리, 엄마라는 이중 삼중고의 관계의 틀에 얽매여 이도저도 하지 못한 채 묵묵히 살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러한 모습은 하나의 전형된 여자의 삶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 시대의 나(엄마)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그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으며 자유의 날개를 통해 제 2의 행복을 꿈꾸려한다. 어느 날 홀연히 자신을 두고 떠난 엄마에 대한 원망과 미움보다는 현재의 엄마의 모습에 만족하고 자신과 동등한 하나의 여자로 바라보고 또 받아들인다.




『우울은 어디에서 오는지, 잠속의 꿈은 어디에서 오는지, 그리고 삶은 또 어디에서 오는지…. 내 청춘의 문제들은 성적 정체성, 진로, 몸무게, 영어, 학점, 가족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존재적 외로움과 괴로움과 그리움…. -p210』




한편으론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에 그 누구의 따스한 보호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무책임한 행동을 일삼는 어른들의 모습을 그 어떤 용서와 화해의 손길도 없이 그저 덤덤히 눈앞의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을 호은의 입장을 생각하니 마음 한 편이 안쓰럽고 애잔하게 느껴진다. 나라면 눈물로 매일 밤을 지새웠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책망할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은 딸에게 아빠는 어느 날 홀연히 나타나 재혼하여 낳은 딸 승지를 두고 사라지니 언감생심 놀라지 않을 수 있으랴.




『사태의 복잡성, 관계의 복잡성, 해결할 수 없이 유보되는 문제들, 모호한 분노와 은폐되는 진실들, 그 위에서 출렁대는 유동적인 현실, 그 현실 위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나…. 이 모든 것을 회피하지 않고 응시하는 슬프고 지성적인 나의 두 눈동자여…. -p48』




어떻게 보면 이들 관계 안에서 호은과 승지는 희생자다. 부모라는 가장 큰 힘이 되어야 할 존재감의 상실로 어찌되었든, 이들은 마음에 상처를 입었고 심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타인의 눈에 이들은 아직도 결핍된 가정의 자식이라 치부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이들은 그런 편견에서 벗어나 가족이라는 이름의 울타리에 서로를 끌어당기며 보듬어 안는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그들은 서로의 가슴에 자리한 아픔을 아는 것이다. 조금은 오랜 시간이 필요했고 더 많이 아팠지만 이제는 함께 하기에 행복하다.




『우린 무언가를 할 때마다 실패도 하고 상처도 입고 후회도 하지. 마음이 무너지기도 해. 사는 동안 몇 번이고 마음이 무너지지. 하지만 중요한 건 다시 하는 거야…"(중략) 그럴 때, 난 쉬운 일만 해. 심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만 하지. 쉬운 일도 규칙적으로, 지속적으로 하다 보면, 힘이 생겨. 그리고 시간이 가면, 그게 무엇이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어. 걱정 마, 곧 그렇게 될 거야.  -p122』




현대사회에서 가족은 이토록 가장 가까우면서도 한순간 손을 놓으면 더 멀어질 수밖에 없는 관계다. 서로가 서로를 동등한 위치에서 바라보며 각자가 가진 삶의 가치관을 존중해줄 때 진정한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전경린 작가는 이 책을 통해 해체된 가족 안에서 누군가가 받아야 할 상처와 아픔이 어떻게 치유되는지 관계 안에서 이들을 조명하며 용서와 화해로 다시금 서있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 여성이 일군 또 하나의 가족 그리고 그들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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