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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과 영혼의 경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오근영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아무 생각 없이 살면 못쓴다. 열심히 공부하고 남을 배려하면서 살다 보면 저절로 모든 걸 알게 되지. 인간은 그 사람이 아니고는 해낼 수 없는 사명이라는 것을 갖고 태어나는 법이란다. 누구나 그런 걸 갖고 태어나는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p35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명인‘히가시노 게이고’그의 책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어쩜 이리도 흡입력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내는지 그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의 한사람으로써 참으로 감사하다. 추리소설의 성격상 사건에 대한 진범을 밝히는 과정 안에서의 세밀한 구성과 등장인물들의 연계성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중심축이 되기 때문에 어설픈 설정이나 과도한 흐름은 오히려 극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것과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한 편의 메디컬 드라마를 시청한 느낌을 전해준다.
데이도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수련의인 유키와 사회적으로 명성이 높은 심장외과 전문의인 니시조노 그리고 그와 오묘한 관계에 놓여있는 유키의 어머니, 이들의 복잡 미묘한 관계가 전반적인 극의 흐름을 주도한다. 또한 그 병원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어린 나이에 잃어야 했던 유키가 그 수술에 대한 의혹을 조금씩 마음에 품기 시작하면서 등장인물과 전반적인 이야기의 흐름이 연계되며 긴장감을 유발시킨다. 단순히 한 개인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에서 벗어나 작가는 하나의 큰 획을 넌지시 던져 놓고 독자들이 무엇에 눈높이를 맞춰 사건을 바라보고 이해해야하는지 한시도 책을 놓을 수 없게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야 하는 슬픔을 그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그것도 쉽게 용납할 수 없는 이유에서라면? 아마도 마음에 독을 품지 않는 이는 없을 터, 자신의 사랑하는 애인을 자동차 사고의 결함으로 인한 사고로 잃어야 했던 세상에서 가장 참혹한 슬픔을 경험한 한 남자가 여기 있다. 그의 복수심은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환자와 보호자가 공존하는 병원이라는 공간을 일순간 두려움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는 그 아픔이 모종의 복수심이 되어 이유도 모른 채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되고 만 것이다.
사회적으로 문제시 될 수 있는 부분의 병폐까지 꼬집어내는 그만의 시각과 더불어 범인을 초반부터 등장시켜 그 일을 계획하게 된 배후과정을 세밀히 보여주어 공감을 이끌어낸다. 그저 단순하고 악한 동기로 누군가를 희생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게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조심스럽게 끄집어내 그만의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의 소설은 그저 한순간의 재미를 위한 것이 아닌 이렇듯 우리 인간 내면에 담긴 면면을 성찰할 수 있게 해주기에 독자의 입장에서 더 없이 만족스럽다.
악행을 자행하려는 범인의 의도 어두운 의도조차 사회의 부조리로 인한 것으로 치부하고 우리 각자에게 놓인 사명을 다할 때에야 그 어느 누구도 소중한 생명을 담보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우리들의 삶임을 깨닫게 한다. 의사로써의 사명, 사회에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기업인으로써의 사명, 그리고 내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인지를 한번쯤 생각해보게 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의도를 생각하며 다시 한 번 감탄을 한다. 한번 잡으면 쉽게 놓을 수 없게 만드는 그만의 능력, 참으로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