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유괴
덴도 신 지음, 김미령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최근에 모 영화 프로에서 한 예고편을 본 적이 있다. 그 영화의 제목은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 아주 짧은 순간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잔뜩 가지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소재의 신선함이었다. 무려 82세 고령의 할머니가 3인조 유괴단에게 잡혔지만 오히려 이들을 진두지휘한다는 설정,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색다르지 않은가. “에이~ 설마~ 말도 안돼!!!”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영화의 원작인 책의 이야기 안에서는 놀랍도록 생생하게 펼쳐지고 있다.




추리소설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이것이 정녕 추리소설인지 의심이 간다. 물론 일어난 사건에 대한 해결을 위해 추리해가는 과정, 인물들의 치열한 대결구도는 밑바탕에 깔려있지만 그간 자신이 가진 재산을 많은 어려운 이웃들에게 환원하고 자선사업을 해온 할머니를 생각하는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와 연결구도는 참으로 따뜻한 감성을 느끼게 한다. 할머니를 앞세워 엄청난 액수의 몸값을 내세우지만 오히려 할머니에게 제압당하고 마는 조금은 어리숙해 보이는 이들은 어찌 보면 정말 악랄한 목적을 가진 범인의 면모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




「갑부를 노린 범죄자 혹은 인질을 이용해 거액의 돈을 요구하는 파렴치한 인간」 이러한 이야기 자체는 이전에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우리가 많이 접해온 일반적인 소재임에 틀림없다. 다만 덴도 신이 보여주는 이야기에서 유괴를 당한 고령의 할머니는 평소 많은 이들에게 자비를 베푼 자애로운 인간의 본보기이며 이로써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과정에서 더 큰 도움의 손길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나의 일이 아니라면 시선조차 두지 않은 현실에서 나의 어머니이고 나의 이웃의 일이라면서 발 벗고 동조하는 이들의 따스한 관심이 메말랐던 감성마저 자극하는 것 같았다.




‘덴도 신’이라는 작가의 이름 또한 낯설지만 그가 만들어가는 이야기만큼은 기존의 추리소설의 개념을 넘어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견주어보게 한다. 이야기의 빠른 흐름은 독자들의 흥미를 이끌기에 충분하고 범인과 할머니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경찰과 자식들 그리고 많은 이웃들의 관계가 적절한 노선을 유지하며 이어지고 있다.




기존의 틀을 벗어나 색다른 소재와 발상으로 이미 일본에서는 많은 호응을 불러일으켰다고 하니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기발한 시각을 던지는 책을 많이 선보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아주 긴박하고 숨 가쁜 스토리 전개는 아니지만 가족과 이웃 그리고 누군가에게 내가 받은 은혜와 내가 주어야 할 선량한 베품의 의미를 또 다른 시각에서 생각해볼 기회를 제시하는 작가의 시각이 참 좋게 느껴진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살아있는 캐릭터와 성격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마저 참 유쾌하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표지에서 보여주는 조금은 섬뜩하고 신랄한 주제가 이야기를 읽어나가는 과정 안에서는 그리 어둡지 않아서 마음에 든다. 단순한 추리소설의 묘미를 찾기보다는 유쾌함과 기발함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작가의 시선과 따스한 감성까지 많은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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