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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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소설에는‘동성 간의 사랑’이라는 소재가 줄곧 등장한다. 이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소위 모두가 인정하는 정상적인 성의 범주를 넘나들며 사랑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아직까지도 타인의 편견과 날카로운 시선은 그들에게는 분명 아픈 상처가 될 것이다. 이런 회색 창연한 사랑을 더 없이 아름답게 포장하여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작가가 바로 에쿠니 가오리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바로‘낙하하는 저녁’인데 아직까지 많은 작품을 접해보진 않았으나 우리들의 일상을 따스하고 잔잔하게 채색하듯 그리고 있는 문체가 마음에 든다.

우리가 소위‘사랑’이라 부르는 이것은 분명 다양한 색깔이 품고 있는 듯하다. 남녀 간의 사랑을 필두로 하여 가족과의 사랑, 친구와의 우정, 선후배간의 정까지 모두 사랑이라는 감정의 뿌리를 타고 관계와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성에 대해 많이 오픈된 시대라고 해도 내가 아닌 제 3자의 사랑에 우리는 마치 나의 일인 것처럼 좌지우지 손가락질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혼이라는 것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오랜 시간 자라온 A와 B가 하나의 꿈을 안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첫 걸음이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들의 만남이 이루어진 것을 보면 조금은 놀랍기까지 하다. 동성연애자인 호모 남편 무츠키와 알코올 중독인 아내 쇼코 그리고 이들 사이에 또 한명의 예기치 못한 존재인 곤까지 등장하는 것만 보더라도 기존의 평범한 부부를 떠올리기엔 뭔가 석연치 않다.

그런 이들은 예상외로 독자들의 기우와는 달리 서로를 한계선을 넘어서지 않으며 동등한 위치의 결혼생활을 영위해나간다. 여성에게 결혼생활이 주는 의미는 얼마나 큰 것일까. 쇼코는 무츠키와 곤과의 관계를 넌지시 바라보면서도 어느새 내면 깊은 곳에서 떨쳐버릴 수 없는 외로움을 느끼게 되고 이로 인해 더 큰 혼란의 순간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런 슬픔이 앙금으로 남아 오래도록 간직되고 큰 상처가 되어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기도 한다. 이들 사이에는 눈에 보일만큼의 긴장감은 보이지 않으나 각각의 상황에서 느끼는 인물들의 심리를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얼마 전‘메종 드 히미코’라는 일본 영화를 본 기억이 있다. 어떤 사전 정보도 없이 보게 된 영화라 처음 동성애라는 소재를 알게 되었을 때는 분명 나 또한 약간이 거부감이 있었지만 자신과 어머니를 버리고 또 다른 남자 연인을 찾아 떠났던 아버지를 혐오하는 딸이 점차 성에 있어서만큼 자유로울 수 없었던 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이해하고 화해해가는 과정을 보니 분명 그들도 우리와 다름없는 사랑을 꿈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더라.

현실에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사랑의 단면이 에쿠니 가오리가 들려주는 세상에서는 한 치의 거부감 없이 애잔하고 섬세하게 그려진다. 다만 분명한 것은 보통의 이들과 다른 방식으로 서로 사랑을 받고 사랑을 줄 수도 있는 인간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아프지만 절대적인 아픔이 아닌 고독하지만 절대적인 고독이 아닌 이들의 관계, 그 안의 사랑이야기가 눈부시도록 투명하고 반짝반짝 빛난다.

평범함을 거부한 이들의 관점에서 그들이 진정으로 서로가 원하는 것을 알아가고 이해하는 과정을 우리의 현실에서와 다른 사랑의 또 다른 한 면을 보여준 작가 에쿠니 가오리. 그녀만의 매력이 절절히 느껴지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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