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전달자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0
로이스 로리 지음, 장은수 옮김 / 비룡소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태초부터 저마다 자신만의 삶을 부여받았고 자신의 의지대로 주체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이 생(生)에 태어나면서부터 바로 오늘날까지 매 시간을‘나’라는 1인자가 주인이 되어 하나부터 열까지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고 갖가지 과정을 거치며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삶이 나에게 주는 당연한 권리이자 필연적인 일이지만 이 책의 주인공 조너스가 사는 세상에서는 안타깝게도 결코 꿈꿀 수 없는 일임이 자명하다.




기억이라는 것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주는 하나의 연결 고리가 되어주는 것인데 이마저도 허용되지 않은 곳이라면 아니, 기억과 동반되는 모든 일이 허용되지 않는 세상이라면 얼마나 허무할까. 상상만으로도 언뜻 소름이 끼치는 세상이 여기에는 존재한다. 그 어떤 것도 자신의 의사대로 행할 수 없고 오히려 타인에 의해 이미 정해진 규칙대로 마치 그 길이 내 길인냥 당연하다는 듯이 살아가야 하는 세상인 것이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상대방에게 개인의 개성과 삶을 대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그 어떤 터치를 받지 않고 오히려 인정받고 자신만의 끼와 능력을 표출하며 살아가지만 조너스가 살아가는 그 곳의 시공간에서는 인간들이 가지게 될 훗날의 어떤 고통과 상처, 아픔과 멸시를 염려하며 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가차 없이 모든 것을 동일시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다원화적인 시각을 배제하고 오로지 주어진 삶에 순응하는 이들의 모습만을 인정하는 또 다른 세상의 모습에 조금은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아파하는 이들에 대해 행해지는 불합리한 부분까지도 작가는 넌지시 이야기의 흐름에 내포시켜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나는 그 순간 장애인이라는 꼬리표를 제 이름보다도 먼저 가지고 태어나야만 했던 이에게 가해지는 무자비한 행동들.




단순히 좋은 의미로 삶에 대한 모든 규칙과 사회를 구성해나가는 데 있어서의 모든 행로를 차단한 것이 결국은 모든 이들의 자유의지와 평온한 삶에 있어서의 기본적인 가치마저 약탈한 것임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쉽게 발설하고 해결하지 못할 우리 사회의 갖가지 문제점들도 넌지시 꼬집어내고 그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려고 한 작가의 의도가 다분히 엿보인다.




단순히 허울만 좋게 포장하여 보여줄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선택하고 비판하고 행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삶의 보장권부터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12살의 어린 나이에 ‘기억 보유자’가 되어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지금까지 최상의 삶이라고 믿었던 세계가 억압과 통제로 일관된 어둠의 공간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조너스의 입장을 생각해보니 안타까움 마음 금할 길이 없다.




가끔은‘익숙함’이란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당연하게 여겨왔던 모든 일들이 어느 순간 기계적으로 행해왔던 악순환의 고리라면? 이 얼마나 소름끼치는 일인가.  그 어떤 행위도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면서까지 위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기억보유자가 된 조너스는 그 지위를 부여받음으로써 앞으로 그 스스로 숙고해야 할 임무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타인이 깨닫지 못하는 사실을 알면서 얻게 되는 플러스적인 혜택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해결해야 할 과제가 그에게 부여된 것이니 이마저도 쉽지만은 않은 자리인 것이다.




나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지 잘 판단할 수 있을까. 내가 나로써 살아갈 수 있는 발판이 확고부동하게 자리 잡혀 있는 것일까. 그 어떤 선택도 기대도 쉽지 않은 세상, 그럼에도 누군가는 선택하고 살아가야만 하는 세상이다. 앞으로의 나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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