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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도치의 회고록
알랭 마방쿠 지음, 이세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알랭 마방쿠?! 작가의 이름이 너무나도 생소하다. 그럼에도 이 책에 눈길이 가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2006년 르노도상 수상작이라는 문구와 함께 눈에 들어온 표지가 독특한 느낌을 준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위험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뾰족한 가시들을 몸에 두르고 살아가는 가시도치. 동물을 이야기의 주요 화자로 내세운 것은 분명 작가의 특별한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이리라 생각하며 이 별난 동물의 이야기에 눈길을 두게 된다.
아프리카 설화를 주요 모티브로 한 이 소설은 한낱 동물의 눈을 통해 비춰진 인간들의 본래의 모습을 해학과 풍자로 신랄하게 보여준다. 인간과 동물이 다른 것은 분명 생각하는 사고의 차이, 즉 이성에서 기인한 것이리라. 그럼에도 우리 인간은 오히려 많은 악행과 사고를 저지르고 타인에 대한 비판과 거침없는 행동양식을 보인다. 이야기의 주된 화자인 가시도치는‘키방디’라는 주인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다.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오로지 주인의 뜻에 따라 악랄한 행동을 서슴없이 해야만 하는 존재. 어떻게 보면 참 불쌍하기 짝이 없다.
하나의 우화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의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 그럼에도 초반에는 왜 쉽게 읽히지 않던지. 장황하게 거침없이 이야기를 이어가는 서술 구조 때문이었을까. 주인의 명령으로 무려 아흔 아홉 번의 살인을 저지르고만 가시도치는 자신의 주인의 죽음 뒤에서야 그간의 일을 후회하고 반성한다. 아니, 어쩌면 많은 악랄한 일들을 자행하면서 그 자신은 그 행위들이 가져올 부정적인 반향들을 미리 짐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가시도치는 동물의 탈을 쓰고 있을 뿐 실제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우리 인간들의 양면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든 순한 한 마리 양처럼 선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주인에 인해 자신의 뜻과 달리 다른 이들 앞에서 순간적으로 돌변하여 멈출 줄 모르는 한순간 악의 탈을 쓴 것처럼 보이기도 하니까. 약한 존재 앞에서는 한없이 강해지고 강한 자 앞에서는 속수무책 약해지는 이중적인 우리들의 모습을 비판하는 듯하다.
가시도치가 살아가는 여정은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다. 순간마다 유혹의 손길을 받기도 하고 선한 편에 서기보다 악한 편에 서기도 해야 하는 게 우리들이니까. 자신의 이야기를 회고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그려가기에 독자들은 이야기에 더 쉽게 흡수될 수 있을 것이다. 악행을 저지르도록 강요하는 것은 인간이지만 악행을 직접 저지르며 그 일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껴안는 것은 가시도치 느굼바다. 인간이 가진 본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해주는 이야기에 흠칫 놀랍기도 하고 어렴풋한 나의 과거를 회고해 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