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그곳은 아름다울지도
야콥 하인 지음, 배수아 옮김 / 영림카디널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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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 어머니의 죽음으로 내가 느낀 감정은 그 어떤 것과도 달랐다. 그 어떤 죽음도 내게 이런 슬픔이 존재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것은 커다란 공허감이다. 사방이 온통 막힌, 깊고 검은 공허감. 그 바닥없는 깊은 허공으로의 추락을 피하는데만 나는 몸과 마음의 온 힘을 죽기 직전까지 짜내야 했다. 그러면서 나는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 일임을. 어머니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신을 놓지는 않았으며, 계속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왜냐하면 나는 그래야 하므로. 삶이 언제까지나 예전과 똑같을 수는 없는 일이니까. 내 인생에는 이제 어머니는 함께하지 않는다. 그 점은 절대로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 p212』


우리가 반복적인 매일의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내일에 대한 희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날들에 대한 새로운 기대와 의욕은 내게 살아 숨 쉴 기회를 제공하고 잠자고 있던 나의 무지함을 일깨운다. 그런데 여기 삶의 사형선고라 할 수 있는 지독히도 아프고 처절한 병을 선고받은 이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크리스티아네 하인.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다는 것만큼 허망하고 슬픈 일이 또 있으랴마는, 우리는 죽음을 선고받은 당사자의 마음 백분의 일도 헤아리지 못할 것이다. 독일의 작가 야콥 하인은 자신의 실제 경험담을 소재로 가장 아름다웠고 한편으론 가장 슬프기도 했던 사랑하는 어머니와의 이별을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자신이 바라본 어머니의 모습과 삶에서부터 그 당시 시대적인 배경까지 현실적이고 담대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게 되는 것은 훗날 우리에게도 찾아올 이별의 순간을 그려볼 수 있고 준비해야 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준비 없이 맞이하는 이별보다야 순간의 추억을 가슴에 담아두며 매일의 일상에서 책을 펼치듯 기억의 회로에서 꺼내어 울고 웃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한 위안은 없을 것이기에. 한없이 크고 강인한 어머니의 모습이 점차 작고 소외된 그림자처럼 형상만 갖추었을 뿐 내 눈에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았을 때 우리는 비로소 슬픈 현실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믿고 싶지 않지만 믿어야만 하는 진실 앞에서 더없이 자아가 강했던 아들은 과거 어머니가 살아온 과정을 따라가며 감성적인 유대관계를 그려나간다.


최근에 본 영화‘북랙북’에서도 과거 독일인 그 중에서도 유대인들을 향한 강한 조롱과 비난이 얼마나 사회적, 정치적으로 문제가 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데 야콥 하인의 어머니인 크리스티아네 하인 역시 유대인 사생아로 태어나 힘들고 거친 갈등의 시기를 겪어왔음을 상기시킨다. 허락된 시간이 얼마 남아있지 않다는 의사의 진단 그리고 더 이상 어떠한 처방도 약도 해줄 수 없는 상황에서 그의 마음이 어떠하였는지는 자식의 입장에서 충분히 헤아릴 수 있으리라. 단순하게 암환자인 어머니에게 초점을 맞춰 장황한 투병기를 그린 것이 아닌 작가 본래의 입장과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인 듯하다.


‘어머니’하면 강하고 위대한 분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언제나 나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실 분. 알고 보면 우리가 태어나고 성장하는 동안 어머니는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과 헌신으로 인해 그 만큼 더 작고 약해지신 존재라는 사실을 우리는 미처 깨닫지 못한 채 쉽게 잊고 살아간다. 그리고 미처 준비하지 못한 이별의 순간에 들어서야 우리의 슬픔은 최고조에 달한다.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숭고한 사랑과 헌신 그리고 그들이 살아간 삶의 자리를 추억하는 야콥 하인은 절제된 슬픔을 글로 승화하여 보여준다.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쉽게 지고 마는 꽃잎처럼 어느 순간 내 곁에서 멀어져 갈 나의 어머니. 당신과의 영원한 소통을 위해서라도 나는 빛과 희망의 존재가 될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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