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않는 진주
이시다 이라 지음, 박승애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너는 아주 좋은 진주 같은 여자야. 화려하게 빛을 내뿜는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빛을 내면으로 끌어들여 소중하게 간직하는 진주 같은 여자란 말이지. 남자들이 몰라본다고 해도 실망하면 안돼. 좋은 안목을 가진 남자는 매우 드물거든. -p 308』


《이케부쿠로 웨스트게이트 파크》라는 소설로 국내에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작가‘이시다 이로’, 그의 연애 소설은 어떤 느낌일까. 전작들이 일본의 현 사회를 객관적으로 통찰하고 비판하고 있다면 이 연애 소설의 두 주인공들은 자신들이 놓인 상황과 현실을 스스로 주시하고 인생의 방향점을 찾아 스스로 한계를 정해서 나아간다는 점이 차이일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우리의 내면과 삶에 이토록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칸트가 남긴 행복의 원칙은 첫째, 어떤 일을 할 것. 둘째, 어떤 사람을 사랑할 것. 셋째, 어떤 일에 희망을 가질 것이다. 우리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도 사랑이라는 명제는 함께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긍정의 엔돌핀을 주는 사랑에는 과연 어떤 장애물도 필요 없을까. 타인의 사랑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하면서도 내게 닥친 사랑 앞에서는 주춤거리며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편견을 뛰어넘는 이들의 사랑의 모습을 만나보자.


독신으로 자신의 일을 통해 극도의 외로움을 이겨내고 있는 마흔다섯의 판화가 우치다 사요코는 자신이 자주 가는 단골 카페에서 어느 날 영화감독 지망생인 모토키를 만나게 된다. 갑작스러운 갱년기 장애, 핫플래시 증상이 나타나면서 온몸에 땀이 비오듯 흐르고 열이 나고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쓰러지는 사요코. 모토키에게 신세를 지게 된 이후 고마움의 인사를 건네지만 그는 사요코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다며 인터뷰를 부탁해온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설렘과 호감을 느끼지만 17년의 나이차로 인해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진정 나이라는 것은 사랑에 걸림돌이 되는 것일까. 쉽게 단정할 순 없는 문제라 생각되지만 어떤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그(녀)를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면 어떨까.


사요코에게는 동년배이자 화상 일을 하는 불륜의 상대인 다쿠지가 있다. 본 부인 이외에도 수많은 여자들과의 관계를 맺고 있는 그와 종종 육체적인 사랑을 나누는 그녀. 그를 사랑하는 스토커적인 기질이 있는 한 여인에게 협박의 편지를 받게 되면서 심적인 불안함을 느끼게 되고 모토키에 대한 자신의 진심을 알게 된 그녀는 그와의 관계를 정리한다. 모토키와 인터뷰를 진행해가면서 서로에 대한 벽을 자연스럽게 허물며 다가가는 두 사람의 사랑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단순히 사랑만을 생각하기엔 넘어야 할 산이 많은 이들. 주변의 우려와 시선 그리고 그들이 진정 해야하고 이루어야 할 일들이 눈앞에 있다. 촉망받는 영화감독, 모토키의 앞날을 위해 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상대가 우울하게 틀어박혀 있는 것을 모토키는 옆에서 조용히 ?봐주었다. 무리하게 힘을 내라고 격려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조용히 손을 잡아주었을 뿐이었다. 스물여덟의 건강한 욕망을 누르고 묵묵히 곁을 지켰다. -p 177』


그녀는 예술가로써 인정받으며 이상적인 생활을 해오고 있었지만 내면의 고독은 늘 밑바닥에 있었고 앞으로 남은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하고 있다. 결코 적지 않은 나이차를 극복하고 진심어린 마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서로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수반된 사랑이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작가는 이들의 사랑이 결코 헛되거나 부정적인 것이 아닌 우리가 한번쯤은 꿈꾸었을 사랑에 대한 추억 혹은 환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독자들 스스로가 열린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섬세하게 그들의 내면을 표현하고 있다.


교복을 입은 소녀가 언젠가 내게도 영화나 책 속의 멋진 여주인공이 되어 운명같은 사랑을 만나리라 꿈꾸었던 것처럼 오랜만에 만난 연애 소설은 사뭇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설렘과 떨림 그리고 이들의 만남이 과연 성공적인 결말을 맺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긴장 속에 사랑이라는 것은 결국 서로에 대한 믿음과 배려 속에 완성되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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