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와 비밀의 부채 1
리사 시 지음, 양선아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보다 진하고 운명보다 질긴 두 여자의 우정. 부채위에 쓴 비밀의 문자 누슈에 담긴 여자의 일생.”이 책의 주된 스토리는 이렇다. 남자들 간의 우정을 소위 의리로 이야기한다면 여자들의 우정은 같은 공감대 안에서 시작될 것이다. 나에게도 십년지기 친구가 있다. 나리와 설화가 비밀 문자 누슈로 서로에 대한 소식을 전하며 진한 우정을 주고 받았듯이 학창시절의 나는 교환일기를 통해 우리만의 표현방식으로 서로의 우정을 키웠으리라. 누군가와 오랜 시간 함께 한다는 것은 서로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기반이 되어야 하는 일이다.


통코우 마을의 가난한 농부의 딸이었던 설화와 푸웨이 마을의 뼈대있는 부유한 집안의 딸인 나리는 중매쟁이 왕부인을 통해 라오통이라는 관계를 맺게 된다. 라오통이란 어떤 일이 있어도 갈라설 수 없는 마음의 결합을 의미했다. 서로 떨어져 있는 물리적인 거리, 의견의 차이, 외로움 그 외 어떤 이도 갈라놓을 수 없는 결합인 것이다.


『우리는 다정한 말로 서로를 위로할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편하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여자들 방에서 함께 속삭이고 수를 놓을 것입니다. 우리는 三從과 四德을 행할 것입니다. 우리는 행실을 바르게 하고 유교의 가르침을 따를 것입니다. 우리는 진실만을 말하며 우리의 결속을 맹세합니다. 천리를 가는 동안 하나의 강으로 합쳐지는 두 개의 개울과 같을 것입니다. 우리는 한걸음도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우리 사이에 거친 말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죽을 때가지 단짝일 것입니다. 우리 마음은 지금 기쁩니다.』-1권 p104


얼마 전 종영한 소울메이트라는 드라마에서처럼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을 다음 생에서도 만나고 그 다음 생에서도 만나며 전생에서도 이어온 인연. 운명의 끈으로 이어져 온 관계처럼 설화와 나리의 라오통 관계도 그런 의미이리라. 삶이 절망의 늪에서도 오직 나를 이해해주고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힘이 되는 존재. 내 안의 외로움과 번뇌와 속절없는 괴로움 속에서도 나를 일으켜줄 수 있는 설화와 나리의 관계가 바로 소울메이트인 것이다.


과거 우리 어머니 세대들에서와 같이 그 당시 중국에서도 여자들의 삶이란 많은 희생과 인내가 필요했다. 결혼하여 아들을 낳는 것이 곧 자신의 신분을 보장받는 일이며 집안에서의 권리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여자들에게는 어떠한 선택권도 없으며 오로지 누군가를 위한 삶을 살아야 하는 희생의 전유물인 것이다.


『우리는 네가 결코 떠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모든 딸들은 출가를 한다. 모두가 알고 그렇게 해. 너는 울면서 친정집으로 오고 싶다고 빌고, 우리는 네가 떠난 것을 슬퍼할 수 있지만 너는 그리고 우리는 선택권이 없다. 옛 속담에 이런 말이 있지.‘산불이 산을 태우지 않으면 땅이 비옥해지지 않듯이, 딸자식이 시집가지 않으면 딸은 쓸모가 없다’』-1권 p156


19세기 중국여성들에게는 또 하나의 관습이 있었다. 일곱 살이 된 딸들은 전족을 통해 발을 작고 예쁘게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지금 시대에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고 안타깝고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 그 당시엔 꼭 해야 할 의무이자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보다 나은 여성이 되고 누군가를 위해 꼭 행해야할 일이었던 것이니 이를 받아들여할 여성들의 고충이 컸을까. 설화와 나리도 많은 시간 고통을 감내하며 순순히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진정한 숙녀는 자기 인생에 어떠한 누추함도 들이지 않는 법이다. 오로지 고통을 통해서만 아름다움을 얻을 수 있단다. 오직 인내를 통해서만 평화를 찾을 수 있어. 네 발을 이렇게 감싸고 묶는 사람은 나지만 보상은 네가 받을 거야.』


오로지 딸들의 미래를 위해 엄마들도 이런 모진 말을 되풀이 하였을 것이다. 딸을 향한 동정과 가여움의 감정이 왜 없겠는가? 어떠한 감정도 배제한 채 딸이 좀 더 좋은 조건으로 시집을 가서 좀 더 재능 있고 능력 있고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받는 신분을 보장받길 원하는 것이리라. 얼굴도 보지 못한 남편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시어른들게 복종하며 오직 아들을 낳아 대를 잇게 하는 여자로의 삶. 그래야만 자신의 지위를 보존할 수 있는 그 시대의 모습이 우리의 과거를 생각하게 하고 구구 절절히 설화와 나리의 삶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


라오퉁 관계를 통해 맺어진 어린 소녀 설화와 나리는 서로 시집을 간 후에도 지속적으로 서로의 안위를 묻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만남을 계속해간다. 금련으로 나리는 부유하고 좋은 곳으로 시집을 가게 되고, 한때는 부유한 가문의 소생이었으나 아버지의 아편중독과 무지한 어머니로 인해 집이 기울게 된 설화는 백정에게 시집을 가게 되면서 설화와 나리의 모습은 결과적으로 상반된 인생의 굴곡을 보여준다. 또한 설화가 의자매를 들이고 자신을 버린 것으로 오해한 나리로 인해 설화는 많은 상처를 받게 되지만 결국 진실된 마음은 둘을 하나로 통합하게 된다. 시기와 오해가 주는 상처가 얼마나 큰 결과를 낳는지를 볼 수 있다.


후난성의 작은 마을에서 1000년이라는 시간동안 전해서 내려온 여성들에게만 전해진 비밀의 문자 누슈가 그들의 고된 삶에서도 서로를 잊지 않고 안부를 전하며 심적으로 얼마나 많은 의지와 힘을 주었는가. 비밀 문자를 통해 그들은 서로를 기억하고 바라보았을 것이다. 시어머니의 모진 구박과 질책도 남편의 이유 없이 계속되는 폭력과 폭언도 서로의 끈끈한 우정이 버팀목이 되어 새로운 희망을 꿈꿀 수 있게 하고 이겨낼 수 있게 했으리라.


중국 여성들의 삶의 여정과 그 시대의 배경을 통해 현재 우리의 삶이 주는 행복을 생각해 볼 수 있으며 두 소녀의 백합보다 아름다운 우정의 향이 내 가슴에 와 닿는다. 안타깝기도 하고 한편으론 숭고하리만큼 절절한 그들의 관계. 의자매라고 하기엔 너무나 서로를 끔찍이 진실로 사랑했던 여인들. 나리와 설화의 삶이 소설이 아닌 현실세계에 살아 숨쉬는 듯 하다. 아직도 그 시대의 관습이 이어져 오고 있을 우리의 손이 닿지 않는 곳들도 많으리라 생각한다. 절대적으로 모든 걸 강요하고 인내해야만 했던 그 시대 여성들의 위대함에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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