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통
장승욱 지음 / 박영률출판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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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식 시인의 시 中 “슬픈 날은 술퍼, 술푼 날은 슬퍼”


현대 사회에서 술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20살의 성인식,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 회사 회식자리 혹은 애인과의 결별후 위로차, 사람과의 어울리는 자리에까지 어김없이 등장하는 술은 이제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인생의 고락을 함께 하는 매개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술을 좋아하는 사람을 애주가라고 부른다. 이 책의 저자 장승욱을 그렇게 표현할 수 있으리라. 그에게 있어 술은 인생의 철학이자 삶의 이유라고 단언해도 좋을 것이다. 이 책은 월간 PAPER에 연재된 ‘취생록’이라는 제목의 글들을 모아 한권의 책으로 펴낸 것이다. 저자 장승욱의 술 이야기, 그에 관한 에피소드가 소소히 담겨있다.


예상치 못한 두께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의 이야기에는 구수한 청국장 냄새와 소박하고 정겨움이 고스란히 녹아있어 지루할 틈 없이 술~술~ 읽혀졌다. 학창시절에 공부보다는 술을 벗삼아 잠을 취미삼아 생활했던 그. 유유상종이라고 했던가? 그의 주변 친구들도 못지않게 술을 즐기고 좋아하는 무리들, 일명 주당이었던 것이다.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듯 싶다. 그들과 함께 매주 수요일을 그들의 주일(酒日)로 삼아 술을 즐겼다고 한다.정말 황당하리만치 웃음이 나는 장승욱식‘물교’교리는 다음과 같다.

「술은 곧 물이요, 물은 곧 하늘이니 술은 하늘의 현신에 다름 아니며,

  술을 마신다는 것은 하늘을 우리 몸 안으로 모시는 경건한 접신 행위인 것이다.」- P 55


고등학생 장승욱부터 연대생이었을 당시 친구들과 함께 한 술에 대한 추억담이 그려져 있으며 지나온 시절에 대한 그리움도 엿볼 수 있다. 또한 그의 화려한 이력만큼이나 평범치 않은 군대생활 이야기, 복학생으로써의 생활, 그 이후 기자로써의 사회인인 그의 모습까지 세월의 흐름과 함께 변해온 그의 모습속에서도 술만은 여전히 그와 함께 해왔던 것이다.


친구들과 함께한 자전거 무전 여행이야기가 가장 재미있고 흥미롭게 들렸다. 언젠가 대학생 국토횡단을 해보는 것이 나의 목표이자 꿈이었는데 아직 실현하지 못한 것이 무척이나 아쉽다. 젊음의 한 시절, 청춘! 무엇이든 도전할 기회가 있고 시간이 허락된 그 때, 비록 실패하여 쓴잔을 맛보더라도 아쉬움 없는 날들, 저자는 돈 주고도 얻지 못할 경험을 한 것이다.


내가 보기에 그는 소위 평범한 인물은 아닌 것 같다. 군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 누구의 가르침도 없이 네 살에 한글을 마스터하고 학창시절 뒤에서 두 번째 등수는 맡아두었던 그가 대입을 한달여 앞두고 공부하여 연대생이 된 것만 봐도 그렇다. 두 번의 아이큐 검사에서 150이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하는데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할 순 없을 듯 싶다. 또한 편안하고 안정된 삶을 추구하는 이들과 달리 교사 자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문사 편집기자, 방송사 공채 기자로의 이직, 출판사 대표, 여행가이드까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 앞에서 멈칫하지 않고 당당히 도전하는 삶을 사는 그가 무척이나 놀랍고 부럽기까지 하다.


술을 마시는 이유 또한 저마다 다르듯이 그는 술에 대한 확고한 주관도 가지고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술은 당연히 소주고, 으뜸으로 싫어하는 술은 맥주다. 양주 가운데서는 테킬라, 그 다음으로 보드카와 럼이 내 입맛에 맞는 편이다. 위스키 중에서는 스카치보다 버번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며 폭탄주는 역시 스카치위스키로 만들어야 제 맛이 나는 것 같다」- P 319


# 고은 시인과의 인터뷰 질문을 자신에게 던졌을 때, 그의 답변은 이러했다.


왜 술을 마십니까?

나는 술이라는 무기형을 선고받은 무기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술은 나의 존재 이유이며, 존재 증명입니다. 내가 술이고, 술이 나입니다.


술꾼은 누구나 고갈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단 한번도 내 술의 샘이 마를 것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또 말라본 적도 없습니다. 아마 나는 죽어서도 술을 마시고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데 필요한 의식주를 옷과 밥 그리고 술이라 자신 있게 말할 줄 아는 사람.

술을 예닐곱 병은 기본이요, 보통 사람보다 배는 마셔도 그 다음날이면 일상에 별지장 없는 그는 술을 먹고 난 후 요상하게도 책으로 해장을 한다고 한다. 몇 시간씩 부동자세로 책에 몰두한다는 그의 모습을 상상해보려니 우습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그답게 술버릇 또한 독특하다.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전화하기, 예쁜 여자 따라가기, 옆에 앉은 여자에게 뽀뽀하기, 길바닥에서 춤추기, 철길 베고 잠자기, 공중전화 부수기 등 이 얼마나 황당하기 이를데  없는 술버릇이란 말인가. 그의 행동이나 삶의 가치관을 통해 색다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그가 주로 드나들던 오래된 낡고 황폐화된 풍경이 드리운 단골집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학교 앞 철길, 청송대 근처 노천술집들, 신촌의 술집들, 광화문의 단골집 가을과 서라벌, 감격시대와 왕갈비 등 그 이름부터 얼마나 소박하고 정겨운가. 그 시절 삶의 자취를 그대로 느끼게 해주는 낭만과 추억이 드리운 이야기들을 듣고 있노라면 이내 푸근한 감성이 깃든다. 저자가 말하길 아쉽게도 그 시절 단골집의 모습은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고 한다.


“술통”은 술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술을 통해 맺어진 인연들의 이야기(친구, 선후배, 동료 등)일 수도 있고 저자 자신이 살아온 삶의 모습일 수도 있다. 술이 없는 인생은 그에게 총알 없는 총이요, 실없는 바늘이지 않을까. 그 만큼 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술이야기. 술과 함께 걸어온 인생, 술로써 꽃피워온 삶의 면모를 통해 사람살이의 정과 추억, 인생의 苦樂을 이야기한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모두 하나의 공감대에 고개 끄덕이게 만드는 저자의 탁월한 글솜씨에 반하게 된다. 장승욱, 그와 같은 세대인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글읽는 즐거움을 느끼게 할 것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홀연히 앉아 아니 그의 주당 친구들 ~팔이로 불렸던 이들과 함께 인생을 논하고 있지 않을까. 더불어 산울림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를 부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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