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가니 - Silenced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부끄럽게도 나는 영화<도가니> 관람을 망설였다.
‘아동 성폭행’의 소재가 주는 감당하지 못할 좋지 않은 기분에 대한 일종의 두려움 때문이다.
늘 좋은 것만 보고 듣고 하려는 나의 편협함과 마주한 순간,실화를 바탕으로 한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싸움이라는 것에마음을 내 보았다.
한줄 뉴스거리에 불과한 이야기들은 ‘영화’라는 극적장치를 통해 관객에게 ‘감정이입’을 시킨다. 다른 어느 것보다 영화<도가니>는 탄탄한 원작과 절제된 연출, 특히 사건 발생보다 사건 해결과정의 모습을 한걸음 물러나 보여주며 현 사회의 진실과 마주하게 했다. (참고는 나는 소설<도가니>를 읽지 않았다.)
소설을 처음 구상하게 된 계기가 신문기사 한 줄이었다고 밝힌 공지영 작가는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그들의 가벼운 형량이 수화로 통역되는 순간 법정은 청각장애인들이 내는 알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는 한 줄의 글이 자신을 ‘점령했다’고 말했다. 믿기 힘든 실제 사건 앞에서 공지영 작가는 그 동안 준비해오던 다른 소설을 접고 ‘도가니’ 집필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약점을 가진 자, 표적이 되는 사회
영화 <도가니>에는 다양한 약점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지적장애, 신체적 장애, 과거 도둑의 전과가 있어 취직을 못하는, 아픈 가족이 있는, 부모가 없는, 돈이 없어 당장 먹고살 걱정을 해야 하는, 이들은 누군가에게 가해의 대상이 되고 무엇보다 ‘말’이라는 표현도 억압당한다.
고아, 여자,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고 지적장애를 가진...게다가 8살 어린...
영화를 보는 내 들끓는 분노를 어찌할 바를 몰라 답답한 가슴에 자주 한숨을 쉬어야 했다. 더 큰 문제는 마지막 보류가 되어야 할 학교, 교육청, 경찰, 법원, 변호사, 판사..그 모두가 그들을 외면했다는 것이다. 왜 힘있는 자들은 가난한 자들의 방패가 되지 못하는가. 그 힘이 어디서 나온 것인데...
돈과 권력, 종교가 방패가 되는 사회
인상 깊었던 연출과 편집 장면이 있다. 초반 두려움에 떠는 말 못하는 아이가 고사리 손으로 공유의 옷자락을 잡아끄는 순간. 나는 앞으로 한줄 뉴스에서 이 순간을 떠올릴 것이다.
영화 <도가니>는 우리 사회에 매 순간 자행되고 있는 그간 외면했던 불편한 진실이 어떻게 힘없는 약자들을 짓밟고 있는지 관찰자 강인호를 통해 묵묵히 그려내고 있다. 안타까운 건 약자의 방패는 법도 아닌, 오직 진실을 밝히고자 했던 또 한명의 약자였다는 것이다.
무지랭이 엄마도 느끼는 측은지심
인상 깊었던 연출과 편집 장면이 있다. 초반 두려움에 떠는 말 못하는 아이가 고사리 손으로 공유의 옷자락을 잡아끄는 순간. 나는 앞으로 한줄 뉴스에서 이 순간을 떠올릴 것이다.
난의 흙이 굴러 떨어지며 공유가 약자의 방패가 되기로 한 순간도 잊혀지지 않는다. 촬영된 카메라에 찍힌 이와 보는 이 교차 편집은 영화<도가니>를 통해 영화를 접한 관객들의 마음을 대변하듯 충격적이다. 무엇보다 나를 뭉클하게 했던 것은 무지랭이 엄마의 변화이다. 가진 것도 아는 것도 없이 오직 자식 걱정만 하던 무지랭이 엄마도 느끼는 측은지심을 나도 관객들도 느끼고 있었다.
언론, 소설, 영화...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인권단체 간사인 유진(정유미)은 ‘우리는 지금 세상을 바꾸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세상이 바꾸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거창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소한 자신이 짓밟히지 않기 위한 일, 그들이 삶을 등지지 않기 위한, 생존을 위해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리도 내지 못하는, 듣지도 못하는 이들이 전경들에게 찍히고 끌려가고 물폭탄에 쓰러져갈 때, 멀찌감치 구경하는 이들. 그들이 바로 지금의 우리. 진실을 외면하고 남의 일이라고 구경꾼으로 살아온 우리다.
진실이, 외침이 조금씩 우리에게 다가온다. 진정성 있는 언론을 통해, 작가의 소설, 배우, 감독의 영화를 통해.
분노로 끝낼 일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마음이 바쁘다. 우린 이제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는 이 글로 시작한다. 영화 한편으로 한번 들끓고 말 <도가니>가 되어선 안된다. 실질적 변화를 이끌 행동의몫은 이 영화를 본,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통해 돈을 벌어들일 제작사가 큰 힘을 보태면 좋겠다. 이 사건의 판결을 내린 판사, 변호사, 교육관계자.. 보호해야 할 의무, 제대로 일해야 할 의무를 져버린 간접적 가해자들이 자신들의 용서를 빌고 세상밖으로 진실을 말해주길 바란다.
지금, '안개 속 무진'이 당신들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 아이는,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민수입니다' 또 한명의 공유, 나도 피켓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