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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ㅣ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은 문학동네에서 펴낸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시리즈 5권 중 하나다.
1983년부터 5년에 걸쳐 쓴 내용으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서른 넷에서 서른 아홉쯤 되는 시기, 그의 작품으로 살펴보자면 <노르웨이 숲> 발간 전이다. 30여 편의 에세이가 실렸는데, 책 제목은 그 중 하나를 썼다.
'백일몽'이 책 제목이 된 이유는, 하루키의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때문인 듯 하다.
소설이 아닌 에세이로 만나는 30대 일상 속 하루키
하루키, <상실의 시대>를 읽고 와타나베와 미도리가 느끼는 상실감과 나오코의 절대 채울 수 없는 삶의 무게를 느껴본 사람이라면, 그의 작품은 모두 읽을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아니 저자도 언제 끝날지 모를 것 같은 <1Q84>를 ‘속았다’하면서도 또 무작정 기다리면서, 그의 30대 시절을 만나봤다.
하루키의 시시콜콜한 취향과 일상의 사색
소설가의 에세이를 읽는 이유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책을 통해 30대의 하루키를 읽었다.
비프스테이크를 좋아하는, 소설가임에도 어깨뭉침이 없는, 걷는 것을 좋아하고 뭐든 미리 해둬야 직성이 풀려, 밥도 남보다 한 시간정도 일찍 먹고 그나마 빨리 먹고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산책’ 등의 다른 짬을 즐기는.... 해서 ‘연재’는 ‘장기적 정서불안’으로 거부했던..30대의 하루키.
부부사이에 대한 하소연이랄까. 자신과 와이프의 별자리인 ‘염소자리’와 ‘천칭자리’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CF를 보면서 ‘지식의 나눔’과 변화된 세상을 발견하고 이제는 번역하지 않고 쓰는 영화제목이나 음악에 대한 고찰, 스쳐 지나가다 발견한 ‘표어’에 딴지를 걸며 ‘간섭’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테엽 시계에서 전자식 시계로의 전환을 통해 ‘시계의 조촐한 죽음’을 직면하고 자신의 명성과 더 이상 가난이 환대받지 않은 세상에 대한 이야기까지. 평범한 일상 속 까탈스럽고 소심하고 웃긴 하루키를 가감없이 만날 수 있다.
거꾸로 내가 지금 가장 표어를 붙이고 싶은 장소는 러브호텔 방 안이다
"정말 그런 걸 해야 합니까?"
"끝나니까 허무하죠?"
"그래봐야 언제나 똑같지 않습니까"
- 133p
다른 점이라면 이발하는 동안에도 자신에 대한 고찰, '사색'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짧은 순간에 에세이 하나가 나온다.
같은 일상의 장면에서 ‘나’의 태도 상상, 그게 곧 에세이
그의 일상은 누구나 한번쯤 겪어본 이야기다.
나는 어린시절 안방 한구석을 길게 차지하던 테엽 시계를 떠올렸다. 어린 손에 쥐기엔 꽤 컸던 돌림열쇠로 열심히 테엽을 감았던 한 때, 지금 생각해 보니 테엽시계는 왜 그토록 길게 드리운 무거운 추를 달고 있었을까. 어린 나에게 테엽시계는 ‘밥’을 줘야 하는 입 무거운 어른 같지만, 내가 돌봐야할 친구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까지 떠올리게 된다. 물건에 '밥'을 줘야, 움직인다는 생각, 그 정도의 수고로움은 당연시 하던 한 때.. 시계에 더 이상 테엽을 감지 않아도 될 때를 직면한 순간, 나는 어떤 느낌이었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모 이런 식이다. 그의 ‘좁은 일본, 밝은 가정’이라는 표어에 대한 에세이를 읽었을 때는 한국 공원에만 있을 법한 큰 돌에 새긴 ‘착하게 살자’가 생각났다. 아마도 나처럼 많은 이들이 하루키의 에세이를 통해 공통된 추억과 일상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그 때의 감정들을 하나 잡아 깊이있게 들어가면 에세이가 될 수 있겠다 생각한다..
돈과 무관한 즐거움, 가난과 상상력이 작가 힘의 원천 아니었을까
그의 책을 읽으며, 그의 '글쓰는 힘의 원천'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품게 될 것이다.
하루키의 경우를 얘기하자면, 그는 누구처럼 글을 쓰기 위해 전쟁을 피해 여기저기를 여행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챈들러의 글쓰기 방식을 따른다. 책상 하나를 정해 일정한 시간 동안 쓰건 말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방식이다.
그의 작품을 통해 '나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거든 한번 시도해 보시라. 챈들러 방식을.
하루키는 가난이 환영받지 못하는 세태를 아쉬워했다. 가난은 돈과 무관한 즐거움, 상상력을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한 듯 하다.
더위를 '에어컨'으로 바로 해소해 버리는 세대가 아닌, 참고 견디는 시간, 집으로 돌아와 시원한 보리차 한잔을 들이키는 상상을 하는...
가난은 인간을 불편하게 하지만, 뭔가 궁리하게 하고 '소소한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상상하거나 꿈꾸게 한다는 게 아닐까.
잊을 뻔 했다. 그의 에세이에는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이 함께한다. 초등학생의 그림처럼 아주 단순한. 처음엔 이게 대체 뭐지 했는데,
하루키의 에세이를 하나의 그림으로 집약적으로 표현하는 데는 모자람이 없다. 그의 에세이가 못 웃기면,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이 웃기게도 해 준다. 위 그림이 한 예다.
재테크 알아서해 말로 피해버린다. 그래도 당신이 남자잖아 한다. 그야 물론 남자지만, 남자라고 해서 다 세계경제에 정통하게 생겨 먹은 것은 아니죠.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해서 걸으면 차분하게 얘기할 수 있다. 다리가 튼튼한 사람 아니면 나를 상대하기 어렵겠죠. 농담이 아닙니다.
이런 문장들을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까. 번역의 문제인지 의도적인 것이지, 에세이 중간중간 하루키가 독자에게 말을 건네며(독자에게 동의를 구하는 식의) 자꾸만 불쑥 튀어 나오는 것이 운전 중에 느닷없이 만나는 둔턱 같다. 재발간하면서 보완된 것인지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괄호 처리 등을 통해 분리해 내는 것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책을 통해 작가 하루키보다는 일상의 하루키를 통해 '나'를 고찰한다.
나 자신과 일상을 들여다보는 작업, 그게 작가의 출발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