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진 - 은하수문고 140
양미정 / 계림닷컴 / 199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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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운동가인 김좌진.. 그는 충청 남도 홍성에서 태어났다. 15세 때 집안의 종들을 해방시키고 소작인들에게 토지를 나누어 주는 등 근대화 운동에 힘썼고, 홍성에 호명 학교를 세웠다. 일본의 잦은 침략이 있자 분노를 느끼고 1913년 대한 광복단에 들어가 독립 운동 자금을 모으다가 붙잡혀 3년간 옥살이를 하였다. 1917년 만주로 건너가 북로군정서라는 독립군사단을 조직하고, 사관 연성소를 설치하여 독립군 간부를 양성하였다. 1920년에 김좌진이 이끄는 독립군은 청산리에서 일본군 2개 사단을 무찔러 독립군 사상 최대의 승리르 거두었다. 그 후 그는 오로지 항일 투쟁에만 온 힘을 쏟았으며 1929년에는 한족 연합회 회장으로 흩어져 사는 동포의 단결을 위해 노력하다가 1930년 지난 날 그의 부하였던 고려 공산 청년회의 박상실 등에게 암살 당했다. 우리나라를 위해 힘쓰신 분이지만, 안타까운 마지막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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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 난초를 닮은 서화가 어린이미술관 2
안성희 지음 / 나무숲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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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는 조선 말기의 학자이면서 서예가이다. 호는 완당 또는 추사이다. 1819년 문과에 급제한 후 규장각 대교, 대사성을 거쳐 이조참판의 벼슬까지 지냈다. 순조 때 청나라의 북경에 들어가 청나라의 여러 학자들과 문화 교류에 힘썼다. 서예에 있어서 그는 역대의 명필을 연구하여 독특한 글씨체인 추사체를 만들어 냈으며, 화가로도 유명해 난초, 대나무, 산수화에 능했다. 또한 비석 등에 새겨진 문자를 연구하는 금석학에 밝아 무학 대사의 비로 여겨왔던 북한산 비봉의 비석이 신라 진흥왕의 순수비라는 것을 밝혀 냈다. 학문 연구에 있어서 그는 사실에 토대를 두고 과학적이며 객관적인 방법으로 진리를 탐구하였다. 그는 묵주도, 묵란도 등의 유명한 그림을 많이 그렸을 뿐만 아니라 추사체를 개발하여 우리나라의 문학에도 많은 발전을 기한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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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와 대동여지도 - 학습파워북 9
장길수 지음 / 계림닷컴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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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지리학자인 김정호.. 황해도에서 태어나 서울로 이사와 살았다. 그는 비록 비천한 집안에서 자랐으나 열심히 학문을 닦고, 보다 정밀하고 실용성 있는 지도를 그리기 위하여 전국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30여 년 간 노력한 끝에 청구도 2첩을 완성하였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다시 노력하여 1861년에는 대동여지도 2첩을 완성하였고, 대동지지를 썼으며, 지구도도 만들어 냈다. 그가 대동여지도를 손수 그려 목판으로 찍어 내서 흥선대원군에게 바치자 그 정밀함에 놀란 대원군은 칭찬은 고사하고 나라의 기밀을 누설했다는 죄목으로 나무판과 지도를 불태우고는 그를 옥에 가두고 심한 고문을 하여 결국 옥에서 죽게 하였다. 그렇게 정밀한 지도를 만든 사람을 죽게한 대목에서는 정말 화가 났다. 김정호는 우리 민족의 기억에서 기리기리 기억될 지리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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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영 김일손의 문학과 사상
민족무나화연구소 / 영남대학교출판부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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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손은 조선 초기의 학자이자 문신이다. 김굉필, 정여창과 더불어 김종직의 가르침을 받았고, 1486년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에 등영되었다가 후에 이조정량이 되었다. 성종 때 춘추관 기사관이 되어 성종실록의 사조를 썼으며, 1498년 성종실록이 편찬 될 때 사국 당상곤으로 있던 훈구파의 이극돈은 김일손이 쓴 사초에 세조 찬탈을 풍자한 김종직의 조의 제문이 실려있음을 알고 같은 훈구파의 유자광 및 대신인 윤필상, 노사신 등과 함께 본래 문인을 싫어하던 연산군에게 일러바쳐 무오사화를 일으켜 김일손은 김종직을 비롯한 영남 학파의 여러 학자들과 함께 처형 되었다. 그는 일찍 스승으로 섬긴 김종직을 닮아 능했으며, 당시 고관들의 부패와 불의 를 규탄하며 부조리 없는 바른 정치를 하기 위해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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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육 - 실학사상독본 2 실학사상독본 2
김육 / 한길사 / 199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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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육은 조선 효종 때의 정승이다. 1605년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나, 광해군의 미움을 받아 가평에 있는 잠곡에 가서 10년간 숨어 살다가 인조반정후 다시 벼슬길에 올랐다. 1636년에 사신으로 청나라를 다녀온 후 충청도 관찰사, 부제학, 도승지 등을 지내고 표종 때에는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다. 그는 경제 분야에 뛰어난 지식이 있어 곡물과 천으로 세금을 내는 대동법 실시를 주장하여 1651년에는 충청도 지방과 6년 뒤에는 전라도 연안 지방에서 이를 실시하는데 성공하였다. 그의 경제학은 실학자 유형원에게 큰 영행을 끼쳐 실학의 선구자적 역할을 했으며, 오늘날 이런 경제체제의 밑거름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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