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7
조지 오웰 지음, 김기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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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고등학교 시절 읽었었는데, 처음 보는 듯한 새로운 느낌.

이렇게 심오했구나 하는 깨달음.

명작은 읽을 때마다 얻는게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몇번 더 읽어야 할 책 목록에 넣어야 겠습니다.

같이 들어있는 '런던의 따라지 인생'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가난과 인간에 대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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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쪽-
스퀼러가 그 장면을 이토록 생생하게 묘사하자 동물들은 정말 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
"나는 스노볼이 처음부터 반역자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소." 그는 마침내 말했다. "그가 나중에 한 일은 별개의 문제요. '외양간 전투'에서 스노볼은 훌륭한 전우였소."
스퀼러는 아주 천천히, 그러나 단호한 목소리로 복서의 말을 받았다. "우리의 지도자 나폴레옹 동무는, 던언하건대 - 동무들, 단언하건대 말이오 - 스노볼이 처음부터, 그렇소, 반란을 구상하기 훨씬 오래전부터 존스의 정보원이었다고 말씀하셨소."
"아, 그렇다면 얘기가 다르죠!" 복서가 말했다. "나폴레옹 동무가 그렇게 말했다면 그게 옳겠군요."
77쪽-
~ 옛날 존스 시절에도 이 못지않은 무서운 유혈 광경이 이따금 벌어졌었다. 그러나 오늘 일은 동물들 사이에 벌어진 것이기에 훨씬 더 끔직했다. 농장에서 존스가 쫓겨난 이래 오늘날까지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의 생명을 빼앗은 적은 없었다. 쥐 한 마리조차 죽인 적이 없었다. ~
~ 클로버 나름의 꿈은 이런 것이었다. 모두가 굶주림과 채찍에서 해방되고, 모두가 평등하고, 모두가 자기 능력에 따라 노동을 하는 사회, 메이저의 연설이 있던 날 밤 그녀가 다리를 오므려 새끼 오리들을 감싸 보호해주었듯 강자가 약자를 보호하는 그런 동물 사회였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 그녀는 왜 사태가 이렇게까지 됐는지 알 수 없었다 - 아무도 감히 속에 든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사납게 으르렁거리는 개들이 사방을 휩쓸고 다닐 뿐만 아니라, 친구들이 충격적인 범죄 사실을 자백한 후 조각조각 찢겨 죽는 참상을 목격해야 하는 그런 때가 온 것이었다. 실상 그녀의 마음속에 반란이라든가 불복종이란 있을 수 없었다. 비록 사태가 이렇게 되었을망정 존스 시절보다는 지내기가 훨씬 좋아졌으니 무엇보다도 인간들이 다시 돌아오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여전히 그녀는 충성스럽게 최선을 다해 일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떨어진 명령을 수행하며 나폴레옹의 통치를 받아들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를 비롯한 다른 동물들이 이런 것을 위해서 꿈꾸며 애써온 건 결코 아니었다. 그들이 풍차를 건립하는 것도, 존스의 총탄에 맞서 싸웠던 것도 진정 이런 것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녀는 말로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대충 이런 생각을 했다.
~ 그는 나폴레옹 동무의 특별 훈령에 따라 <영국의 동물들>이 금지되었다고 말했다. 이제부터는 그 노래를 부르는 것을 금한다는 이야기였다. 동물들은 깜짝 놀랐다.
"왜 그러죠?" 뮤리얼이 다급히 물었다.
"그 노래는 이제 필요 없게 되었소, 동무." 스퀼러가 귿은 얼굴로 말했다. "<영국의 동물들>은 반란의 노래입니다. ~ 우리는 <영국의 동물들>에서 다가올 미래에 이룰 더 좋은 사회에 대한 동경을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사회가 이루어졌단 말입니다. 그러니 분명히 이 노래는 더 이상 아무런 목적이 없는 것이지요."
비록 두려웠지만 몇몇 동물들은 도저히 항의하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양들이 늘 그렇듯 "네 발은 좋고, 두발은 나쁘다"를 외쳐대기 시작했다. 그들은 수 분간 계속 외쳐댔고 토론은 결국 막혀버렸다.

111쪽-
여러 해가 흘렀다. 계절이 몇 번 바뀌는 사이 수명이 짧은 동물들은 하나둘씩 세상을 떠났다. 이제 클로버와 벤저민, 갈까마귀 모세, 그리고 여러 마리 돼지들을 제외하고는 '반란' 이전의 옛날을 기억하는 동물은 아무도 없었다.
~ 현재의 생활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은 스퀼러가 읊어대는 숫자 목록을 참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자료는 모든 것이 더욱더 좋아졌다는 사실을 천편일률적으로 나열한 것에 불과했다. 동물들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어찌 되었든 그들은 이제 이런 일들을 생각할 만한 겨를도 없었다. 오직 벤저민 영감만이 자기가 걸어온 긴 생애를 세세히 기억하고서, 더 좋아질 수도 나빠질 수도 없으며 더 좋았던 적도 나빴던 적도 결코 없었노라고 공언했다. 그는 굶주림, 고난, 좌절은 삶의 불변의 법칙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동물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더욱이 그들은 한순간도 자신들의 동물농장의 구성원이라는 명예심과 특권 의식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들은 여전히 이 마을 전체에서 - 아니 영국 전체를 통틀어서! - 동물들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유일한 농장에 살고 있었다. 동물들은 모두, 가장 어린 새끼는 물론 30킬로미터나 떨어진 농장에서 끌려온 신참 동물들마저도 이 점에는 경탄을 표했다.

 

122쪽
이번에도 우레 같은 박수 소리가 들렸고 모두들 술잔을 쭉 들이켰다. 그러나 밖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동물들은 무언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깨달았다. 돼지들의 얼굴이 뭔가 변한 것 같은데 대체 무엇일까? 클로버의 늙고 흐릿한 눈동자가 이 얼굴 저 얼굴로 옮겨다녔다. 어떤 돼지는 턱이 다섯 겹이었고, 어떤 돼지는 네 겹, 또 어떤 돼지는 세 겹이었다. 그런데 그 얼굴이 녹아내려 형태가 변해가고 있는 듯한데 이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 순간 박수 소리가 멎더니 일행은 카드를 들어 중단되었던 게임을 계속했다. 그리고 동물들은 슬그머니 정원을 빠져나갔다.
~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고함을 지르고 식탁을 탕탕 치고 찌를 듯 의심에 찬 눈초리를 번득이며 격렬하게 부정하는 목소리 등이 뒤섞여 온통 난리도 아니었다. 나폴레옹과 필킹턴 씨가 동시에 똑같은 스페이드 에이스를 내놓은 것이 싸움의 발단이었다.
열두 명이 제각기 분노에 찬 음성으로 고함을 치고 있었는데 그 목소리들이 모두 똑같았다. 그러고 보니 돼지들의 얼굴에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 이제 알 수 있었다. 밖에서 지켜보던 동물들의 시선은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인간에게서 돼지로, 또다시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왔다갔다 분주했다. 그러나 누가 돼지이고 누가 사람인지 구별하가란 이미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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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밀란 쿤데라 전집 1
밀란 쿤테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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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농담이 농담으로 통하지 않는 사회.

스스로 검열하도록 만드는 사회.

자신을 스스로 숨기게 만드는 사회.

공포스러운 사회입니다.

이런 사회에서 개인은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남들이 불행해도 나만 잘살면 행복한 걸까요?

루드비크는 이런 사회에서 어쩔수 없이 불행해진 인물입니다.

그의 주변사람들도 모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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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쪽 (헬레나)
아니, 하긴, 그들이 맞는지도 모르지, 어쩌면 난 악독한 여자인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든 정말 마음대로 내버려둬야 하는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도 개인적인 일에 끼어들 권리는 없다, 우리는 우리가 존재하는 이 세상 전체를 정말로 잘못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어쩌면 정말로 자기와 전혀 상관도 없는 일들에 참견하는 혐오스러운 순경일지도 모른다, 다만 나, 나는 그냥 이렇고 언제나 느끼는 대로 행동할 뿐이다, 바뀌기에는 이제 너무 늦었다, 인간은 둘로 나뉠 수 없다고 나는 항상 생각했다, 오직 부르주아만이 속임수를 써서 공적 존재와 사적 존재로 자신을 양분한다, 이것이 나의 신조다, 나는 언제나 그에 따라 행동해 왔다,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56쪽 (루드비크)
이 마지막 얼굴이 진짜였을까?
아니다. 모든 것이 진짜였다. 위선자들처럼 내게 진짜 얼굴 하나와 가짜 얼굴 하나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나는 젊었고, 내가 누구인지 누가 되고 싶은지 자신도 몰랐기 대문에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얼굴들 사이에 존재하는 부조화가 내게 두려움을 주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나는 그중 어느 것에도 꼭 들어맞질 않았고, 그저 그 얼굴들 뒤를 맹목적으로 이리저리 헤매 다니고 있었다.)

133쪽 (루드비크)
~ 그때 이래로 나는 새로 사람들을 알게 될 때마다 남자든 여자든, 새 친구든 애인이 될지 모를 여자든, 머릿속에서 그들을 그 시대 그 강당에 옮겨 놓고 그들이 손을 들 것인가 자문해 보게 된다. 그 누구도 이 검사에 통과한 사람은 없다. 예전에 내 친구들이나 아는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 얼른, 또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확신에 의해서 혹은 두려워서) 그랬던 것처럼 그들 모두가 손을 들고 만다. 그러니 인정하시라. 당신을 유배 보내거나 사형할 태세인 이들과 같이 산다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그들과 아주 친해지기가, 그들을 사랑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 오랫동안 나는 그런 상황에서 결코 다른 사람들처럼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확신시키려고 애써 보았다. 그렇지만 결국 그런 자신을 비웃을 수 있을만큼은 정직하다. 그러니까 나 혼자 손을 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유일하게 정의로운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전혀 그렇지 않다. 내가 다른 이들보다 더 낫다는 그 어떤 보장도 내게서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타인과 나의 관계에 무슨 변화를 줄 수 있는가? 나 자신의 한심함을 인식한다고 해서 나와 비슷한 이들의 한심함과 내가 화해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타인에게서 자기 자신의 비천함을 발견하고 사람들이 서로 형제처럼 결속된다든가 하는 일만큼 내게 역겨운 것은 없다. 그런 메스꺼운 형제애는 사양한다.

152쪽
젊은이란 참혹한 것이다. 그것은 어린아이들이 희랍 비극 배우의 장화를 신고 다양한 무대 의상 차림으로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면서 광적으로 신봉하는 대사들을 외워서 읊으며 누비고 다니는 그런 무대다. 역사 또한, 미숙한 이들에게 너무도 자주 놀이터가 되어 주는 이 역사 또한 끔찍한 것이다.


~ 그렇다면 누가 잘못한 것이란 말인가? 역사 자체가? 그 신성한, 합리적인 역사가? 그런데 왜 그런 실수들이 역사 탓이라고 해야만 할 것인가? 인간으로서의 나의 이성에만 그렇게 보일뿐, 만일 역사에 자기 고유의 이성이 있다면, 무엇 때문에 그 이성이 인간들의 이해를 신경쓸 것이며 여선생처럼 꼭 진지해야 하겠는가? 그리고 만일 역사가 장난을 한다면?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이, 그리고 내 인생 전체가 훨신 더 광대하고 전적으로 철회 불가능한 농담 (나를 넘어서는) 속에 포함되어 있는 이상, 나 자신의 농담을 아예 없던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 그렇다, 갑자기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사람들 대부분은 두 가지 헛된 믿음에 빠져 있다. 기억(사람, 사물, 행위, 민족 등에 대한 기억)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과 (행위, 실수, 죄, 잘못 등을) 고쳐 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다. 이것은 둘 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믿음이다. 진실은 오히려 정반대다. 모든 것은 잊히고, 고쳐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 (복수에 의해서 그리고 용서에 의해서) 고친다는 일은 망각이 담당할 것이다. 그 누구도 이미 저질러진 잘못을 고치지 못하겠지만 모든 잘못이 잊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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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악어 2014-07-19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는글을만이써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안규남 옮김 / 동녘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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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분명 예전보다 많이 풍족해졌다. 그러나 그에 비례해 빈부의 격차도 날로 커져 가는 것을 체감한다. 함께 나누면 더 풍요로운 유토피아가 될 것 같은데, 가진 자들의 욕심은 점점 도를 넘어서고, 없는 자들은 점점 더 희미하고 힘없는 존재가 되어간다. 평등사회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인가? 그리고 불평등은 왜 점점 심화되어 가는가? 이 책은 사회의 불평등이 어디에서 기원하는지, 우리가 어떻게 불평들에 길들여지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다.

소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소비중심사회가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파괴시키는지에 대해서. 우리가 사회과학 서적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만연해 있는 부조리를 주시할 수 있는 눈을 갖기 위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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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사람은 더 받아 넉넉하게 되겠지만 못 가진 사람은 그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 마태복음 13장 12절

큰 재물에는 반드시 큰 불평등이 따른다. 큰 부자가 한 명이 있으려면, 적어도 오백 명의 가난뱅이가 필요하다. - 애덤 스미스

부자와 권력자에 대해서는 거의 숭배에 가까운 감탄을 표하면서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은 경멸하거나 무시하는 이러한 성향이야말로 우리의 도덕 감정을 타락으로 이끄는 주된 원인이자 가장 일반적인 원인이다. - 애덤 스미스

 

~ 전 세계가 필사적으로 경제성장 근본주의를 밀고 나가고 있는데도, 빈곤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지속된다. 이런 현실 앞에서, 생각 있는 사람들이라면 잠시 멈춰 서서 부의 재분배로 인한 부수적 피해자들 못지않게 직접적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가난한 데다 미래도 없는 사람들과 부유하고 낙천적이며 자신감과 활력이 넘치는 사람들 사이에 가로놓은 심연, 강철 체력을 갖춘 겁 없는 등반가라도 건널 수 없을 만큼 이미 깊은 심연이 날이 갈수록 더 깊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그 자체로 진지한 관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 현재 추세대로라면, 경제성장은 우리 대부분에게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제성장은 이미 압도적 다수인데도 여전히 그 수가 급증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지금보다도 더 심각하고 냉혹한 불평들과 더 불안정한 조건 및 더 많은 추락과 원통함과 모욕과 굴욕을 겪게 될 것임을 예고한다. 즉 사회적 생존을 위한 지금보다 훨씬 더 힘든 싸움을 예고한다. 부자들의 부의 증가는 부와 소득의 위계에서 아래쪽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고사하고 부자들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게조차 '낙수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악명이 자자하지만 그나마도 갈수록 환상이 되어가고 있는 계층 상승의 '사다리'는 오늘날 점점 더 통과할 수 없는 수많은 격자들과 넘을 수 없는 장벽들로 바뀌어 가고 있다. '경제성장'은 소수에게는 부의 증가를 의미하지만, 수많은 대중에게는 사회적 지위와 자존감의 급격한 추락을 의미한다. 갈수록 해로움을 더해가는 집단적 경험을 통해 접하게 되는 '경제성장'은 도처에서 분명히 볼 수 있는 끔직한 사회 문제들에 대한 보편적 해결책이 아니라 그러한 문제들을 지속시키고 심화시키는 주된 원인으로 보인다.

~ 경쟁의 희생자들이 오히려 경쟁이 초래한 사회적 불평등에 책임이 있는 것으로 공공연히 비난받는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그들이 자존감과 자신감을 희생시키면서까지 공적인 평가에 동의해 자신들을 비난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모욕에다 상처까지 더해지고, 불행으로 입은 상처에 비난의 소금까지 뿌려지는 것이다.

 

~ 약자들이 스스로에게 내린 사회적 열등의 선고는 선고로만 그치지 않고 부정의한 불평등 자체에 대한 반대는 물론이고 가벼운 불만의 속삭임조차 집어삼켜 버릴 뿐만 아니라 승자가 보내는 연민이나 동정도 받아들인다. 이제 상황에 대한 이의 제기와 상황을 지속시키는 생활 방식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는 잃어버린/도둑맞은(하지만 원칙적으로 양도 불가능한) 인권, 즉 존중되고 원칙들을 인정받고 동등하게 대우 받아야 할 인권에 대한 정당한 방어로 간주되지 않는다.

~소비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사물들’은 쾌락을 제공하는 능력이 감소하지 않는 한은 소비자들에게 유용성(사물들의 유일한 존재 이유)를 갖는다. 그 능력이 감소하는 즉시, 그것들은 유용성을 상실한다. 우리는 상점에서 구매하는 상품들, 즉 ‘사물들’에 충성을 맹세하지 않는다. 우리는 상품들이 더 이상 쾌락이나 위안을 주지 않게 되더라도 그것들이 우리가 사는 공간을 어지럽히도록 내버려 두겠다고 보장하기는 커녕 약속도 하지 않는다. 구매된 상품들의 유일한 용도는 약속된 쾌락이나 위안을 제공하는 데 있다. 그것들이 더 이상 쾌락이나 위안을 제공하지 않게 되거나 소유자/사용자들이 다른 데서 더 많은 만족이나 질적으로 더 나은 만족을 얻을 수 있게 되면, 상품들은 폐기되거나 대체될 수 있고 그래야만 하며 대개는 실체로 그렇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일생 동안 인간들 간의 상호작용에 접목되고 소비자 사회에 살고 있는 모든 소비자에게 주입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고객-상품 혹은 사용자-유용성 관계의 패턴이다. 오늘날 인간적 유대가 취약하고 인간들 간의 결사와 파트너십이 쉽게 변하는 것은 주로 이러한 주입 내지 훈련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인간적 유대들의 불안정성과 변화 가능성은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에게 따라붙어 수많은 정신적 불안과 불행을 초래하고 있는 두려움, 배제되고 버려져 혼자 있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들의 영구적 원천이다.

~ 고객-상품 패턴과 달리, 인간 대인간의 관계는 대칭적이다. 여기서 관계의 양측은 각기 ‘주체’인 동시에 ‘객체’이다. 주체와 객체는 서로 분리될 수 없다. 관계의 양측 모두 동기를 가진 행위자인 동시에 자주적 결정의 원천이자 의미의 구성자이다. 둘 모두 능동적 존재로 참여하는 상호작용에서 시나리오의 공저자, 즉 행위를 하는 자이면서 동시에 행위의 대상이 되는 자이기 때문에 장면 설정은 두 면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 만일 상호작용하는 양자가 주체의 역할과 객체의 역할을 모두 맡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두 역할을 모두 맡을 때 반드시 따르는 위험을 감수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완전히 인간적인 관계(주체와 객체의 진정한 만남과 사전 협력이 필요한 관계)는 있을 수 없다.
~ 소비자 시장의 메시지는 다름 아니라 바로 그들에게 인간관계에 따르는 불쾌함과 불편함의 제거(실제로는 고객-상품 관계의 패턴에 의거한 인간관계의 개조)를 약속하기 때문이다. 우리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제안에 매력을 느껴 그것을 전적으로 수용하고는 기쁨에 겨워 그러한 거래가 가져올 손실을 알지 못한 채 올가미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은 바로 이러한 약속 때문이다.
~ 그러한 함정에 빠져 버린 세계는 신뢰와 연대, 호의적 협력에 대체로 우호적이지 않다. 그러한 세계는 사호 의존과 충성, 상호부조, 사심 없는 협력, 우정 등을 평가절하하고 폄하하며, 그렇기 때문에 갈수록 차갑고 낯설고 매력 없는 곳이 된다. 우리는 마치 어떤 사람의 사유지를 방문한 환영받지 못하는 손님과도 같다. 우편함이나 편지함 폴더에는 이미 퇴거 명령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손을 맞잡는 것이 수갑을 채우는 것과 진배없고 친밀한 포옹이 너무도 흔히 감금과 혼동되는 ‘남들보다 한발 앞서기’ 게임을 끊임없이 벌이는 경쟁자드레 둘러싸여 있다고 느낀다. ‘만인은 만인에 대해 늑대다’라는 오래된 속담을 들어 그러한 변화를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해버린다면, 그것은 늑대들에 대한 모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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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그말리온 아이들 창비청소년문학 45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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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롭지 않은 사회, 난무하는 폭력, 부당한 대우, 관계의 단절 등이 일상으로 자리 잡은 곳.

범죄자 자녀나 고아 등 불우한 아이들을 모아 최상의 무상교육으로 각자의 재능을 개발해 준다는 로젠탈 스쿨.

외딴 섬에 자리 잡은 이 학교에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마피디와 촬영기사가 들어가면서 책이 시작된다. 

심상찮은 분위기로 정상적이지 않음을 감지한 마피디는 은휘의 은밀한 도움으로 부조리를 파헤치지만, 결국은 아무런 변화도 이루어 내지 못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마치 우리 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해피엔딩으로 끝났더라도 다시 반복될 것을 알기에 같은 기분이었으리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수단화 하고, 도구화 하는 사회이다.

나와 남을 분리하여 생각하도록 교육과 제도가 우리를 점점 불의에 눈감게 만든다.

잘못된 일을 눈앞에 보면서도 외면이 일상화된 사회, 바로 여기가 로젠탈 스쿨이라고 생각한다.

잘못을 발견한 사람에게 질타를 보내고 외면하기를 강요하는 사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오히려 떳떳하게 소리치고 군림하는 사회.

부조리는 고쳐져야 하며, 이를 소리내어 다른 사람에게 알려야 하고, 그리고 함께 고치려 노력 하는 사회가 되기위한 교육이, 경쟁이 아닌 정의로움을 가르치는 교육이 자리잡아야 한다!!!

우울하고 부조리한 대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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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특별히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일이 아니라 그런 과정을 겪고 변색되는 게 인간관계의 본질이거나 때로는 전부이기도 하다는 것을, 마는 조금 더 세월이 지나고서 알았다. 나아가 사회인이 된다는 건 - 어떤 직업을 가지고 경제 활동을 하는 사회 구성원이 된다는 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삭막한 섬을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한다는 걸 깨달아 온 시간이었다.

 238쪽-

~(마피디)

- 검사님, 정말 모르시겠어요? 누가 책임자인지! 누구를 제일 먼저 끌고 나가야 하는지 모르시겠냐고요!

나머지 교사들과, 무엇보다도 교장과 함께 아이들을 이 섬에 두고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되자 마는 온몸에 아드레릴린이 솟구쳤다. 학생들 가운데 심각한 인명 피해자가 나오지 않고 누구도 그에 대해 입을 열지 않는 이상은 교장의 교육 방식을 문제 삼아 즉시 구속 가능한 법은 없었다.

~ - 너희들 정말 그것뿐이야? 더 할 말 없냐고! 이대로 이 섬에 처박혀 있으면 이 아저씨들 여기 다시는 못 올지도 모른다고! 지금 아니면 기회가......

박이 마의 어깨를 두드리면 눈짓을 보냈다. 처음에는 이제 그만해라, 충분히 애썼다는 격려의 표시인 듯했는데 점덤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지금 이렇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까지 내가 얼마나 권한 밖의 일을 많이 저질렀으며 갖은 인맥을 동원했는지 알기냐 하느냐는 뜻이 담겨 있었다. 기껏 네놈 하나 살려 주려 왔는데 일 크게 만들지 말고 떠나자, 응? 마지막에 가서는 거의 으름장이었다.

~(교장)

- 그런 얘기를 하자는 게 아닙니다. 지금도 보세요. 피디님은 말도 안 된다고 펄펄 뛰기만 할 뿐 그렇게 흥분하는 데에 상응하는 대책은 없으시죠. 이 아이들은 모두 갈 데가 없습니다. 성인이 되고 자립하기까지, 여기가 집입니다. 뼛속 깊이 여기에 적응하고 있어요. 어느 쪽이 아이들을 위하는 길인지 생각해 보시지요. 어디가 풀려나는 곳이고 어디가 묶여 있는 곳인지를요. 다시 말하지만, 아무런 대안 없이 이 아이들을 길바닥에 풀어 놔 보았자 갈 곳은 없습니다....... 아이들은 여기서 자신들의 능력껏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가끔 기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거나 기대 목표를 성취하지 못해서 일정 부분 제재를 가하는 일이 없지야 않겠지만 다른 학교라도 그러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기준과 방식에 따라 생활하는데 당신들의 기준을 우리한테 갖다 끼워 맞추고서 그것이 폭력이니 아니니를 따진다는 건 무의미합니다.

~ 은휘는 처음부터 자신의 소임이 오지랖 떨다 위기에 놓은 외부인을 무사히 돌려보내는 데까지였다는 듯, 초월에 가까운 불가해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수그린 마의 고개 위로 체념과 환멸이 몰려왔다. 큰소리쳤던 기세와는 달리 결국 단 한 명도 구할 수 없었고 손에 쥔 거라곤 그 자체로 어떤 결정적 단서가 되지 못하는 동영상 자료와, 전문가한테가 아니면 숫자 암호로밖에 안 보이는 엑셀 파일들뿐이었다.

 

~ 그 뒤로 로젠탈 스쿨은 다시 철저한 비공개 상태로 돌아갔기에 거기 있는 아이들이 어떻게 되었으며 교장과 보건의 이하 교사들이 여전히 거기서 근무하고 있는지, 인사이동은 없었는지 등을 더 이상 알아볼 만한 경로가 마에게는 없었다. 무엇보다 섬세하고 내밀한 키를 쥐고 있었던, 해경의 도움을 얻는 데에 직접적인 역할을 한 은휘가 그 섬에서 아직 무사한지가 초조할 만큼 궁금했고 윤과 정이 구속되는 데 한몫 보탠 혼모와 지하실의 아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거기에 두 교사의 이후 조사 내역과 행적은 역시 이사장이 비밀로 부쳐서 그들이 섬으로 돌아갔는지 여부도 알 수 없었고 만일 귀가 조치되었다면 돌아가서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했을지는 더욱 짐작조차 힘들었다.

 

~ 그러나 자신보다 어리고 약한 아이들이 단 한 가지만은 알려 주었다. 그들이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다만 한 사람을 살리는 데에 어설프게나마 협동함으로써, 오히려 어설프기에 계산이나 의도가 담겨 있지 않은 순순한 마음을 보여 주었다. 그 도움을 본인들에게 돌려주지 못한다면 다른 이에게 줄 것이다. 누군가가 건져 준 삶으로 표면에 드러난 매끈한 피사체만을 찍는 일은 사양할 것이다. 그의 파인더가 포착해야 할 것은 뒷면에 웅크린, 불분명한 부피와 형체를 갖고 있음에도 육감이나 촉각으로 알 수 있는 어떤 음각이다. 그는 앞으로 몇 번을 땅에 구기박질리더라도 다시는 그 누구도 모른 척하지 않을 것이다.

다음 촬영을 오래도록 기다리던 학생이 지친 목소리로 불렀다.

"아저씨."

그리고 지금, 그게 누구든 간에 등 뒤에서 부르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똑바로 돌아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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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벅 창비청소년문학 12
배유안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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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이 밤낮으로 뛰어가고 있다.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모른채 뒤에서 노려보고 채찍을 들고 있는 어른들이 무서워 힘들어도 쉬지못하고 뛰어간다. 그러다가 너무 지친 일부의 아이들은 쓰러지고 스스로 벼랑을 선택한다. 하지만 참고 뛰어가는 아이들의 미래도 밝지는 않다. 모두 함께 벼랑으로 떨어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뒤에서 채찍을 들고 몰아대며 뛰던 어른들도 같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혹은 아이들이 모두 떨어지는 걸 보고 멈춰서서 후회의 피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

벌써 우리 사회에서는 뛰기지쳐 스스로 소중한 목숨을 내던지는 아이들이 많다. 그래도 어른들은 반성하지 못하고 남은 아이들에게 계속 친구보다 빨리 뛰어가라고 종용하고 있다. 무섭다. 나도 그런 어른의 모습을 갖고 있는 걸 깨달을 때마다 흠칫한다. 모두 멈춰서서 쉬어야 할 때이다. 주위의 맛있는 풀도 함께 뜯어 먹고, 맑은 시냇물도 마시고, 커다란 나무 아래서 함께 낮잠도 자며 쉬어야 할 때이다. 그래야 어디로 뛰어가야 할지 생각을 할 수도 있고, 힘을 내서 단숨에 목표한 곳까지 뛰어갈 수 있을것이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서로 격려하면서. 이 책을 보면서 이런 사회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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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쪽-

"아프리카에 사는 스프링벅이라는 양 이야기 아니?"

작년 학기말 국어시간, 손장하 선생님이 책도 펴지 않고 칠판에 '풀'이라고 크게 쓰더니 뜬금없이 양 이야기를 꺼냈다.

"이 양들은 평소에는 작은 무리를 지어 평화롭게 풀을 뜯다가 점점 큰 무리를 이루게 되면 아주 이상한 습성이 나온다고 해. 무리가 커지면 맨 마지막에 따라가는 양들은 뜯어 먹을 풀어 거의 없게 되지. 그러면 어떻게 하겠어? 좀 더 앞으로 나아가서, 다른 양들이 풀을 다 뜯기 전에 자기도 풀을 먹으려고 하겠지. 그 와중에 또 제일 뒤에 처진 양들은 역시 먹을 풀이 없게 되니, 앞의 양들보다 조금 더 앞으로 나서려 할 테고.

이렇게 뒤의 양들은 앞으로 나아가려 하고, 앞의 양들은 또 뒤처지지 않으려고 더 앞으로 나아가게 돼. 그렇게 되면 맨 앞에 섰던 양들을 포함해서 모든 양들이 서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마구 뛰는 거야.

결국 풀을 뜯어 먹으려던 것도 잊어버리고 오로지 다른 양들보다 앞서겠다는 생각으로 뛰게 되지. 그러다 보니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거야. 자, 정신없이 달리는 양떼를 한번 상상해봐, 웃기지 않니?" ~

"한번 뛰기 시작한 수천 마리의 양 떼는 성난 파도와 같이 산과 들을 넘어 계속 뛰기만 하는 거야. 계속 뛰어, 계속. 여기가 어딘지도 몰라. 풀 같은 건 생각지도 않아. 그냥 뛰어야 해." ~

"뛰어, 뛰어. 정신없이 뛰어.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해안 절벽에 다다르면...... 앗, 절벽! 하지만 못 서지. 수천 마리의 양 떼는 굉장한 속도로 달려왔기 때문에 앞에 바다가 나타났다고 해서 곧바로 멈출 수가 없는 거야. 가속도, 알지? 설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모두 바다에 뛰어들게 되는 거지. 그렇게 해서 한 번에 수천 마리의 양이 익사하는 사태도 발생한다니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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