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아침
파스칼 키냐르 지음, 류재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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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나는 죽을 때까지 알지 못할 것 같은 

음악의 깊이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는 짧은 소설이다.  

거친 바람 소리에서 아리아의 저음을 듣고,  

살아가는 기쁨을 추억하며 물, 물풀, 쑥, 살아 있는 작은 송충이에 음악을 짓고, 

공휴일도 없이 그저 묵묵히 음악으로 자신을 운명을 완성한다는 생트 콜롱브씨.

누구도 짐작 못하는 치열하고 열정적인 내면의 삶을 묵묵히 견디며,

말 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운명의 임무를 완수하고,

마지막 순간 제자와 함께 연주하며 눈물 흘리는 모습에 묵직한 감동을 느꼈다.   

짧은 문장을 읽으면서 그의 주름살과 검버섯 핀 메마른 손이 보이고, 

음악이 아련히 들리는 듯했다. 

경험할 수 없는 것을 경험하게 해주는 소설의 힘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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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쪽-

~ "선생님, 마지막 수업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마레 씨가 갑자기 활기를 띠며 물었다.

"내가 첫 수업을 해도 되겠소?" 생트 콜롱브 씨는 잘 들리지 않는 소리고 대꾸했다.

마레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트 콜롱브 씨는 헛기침을 했고,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그는 거칠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은 어려운 일일세. 음악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해 그저 거기 있는 거라네. 그런 의미에서 음악은 반드시 인간의 것이라고 할 수 없지. 음악이 왕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알았는가?"

~  두 사람은 포도주병과 비올라 다 감바와 포도주잔들과 접시를 가지고 오두막으로 다시 돌아왔다. 마레 씨는 검은 케이프와 양털 가죽을 벗어서 바닥에 던져놓았고, 생트 콜롱브 씨는 자리를 만들고 오두막 한가운데, 하얀 달이 보이는 천장 가까이, 글 쓰는 탁자 바로 옆에 앉았다. 그는 손가락을 입술에 스쳐 침을 묻히더니 접시 바로 옆 짚에 싸인 포도주 항아리에서 떨어진 붉은 포도주 두 방울을 닦았다. 생트 콜롱브 씨는 붉은 모로코가죽 장정의 음악 노트를 펼쳤고, 마레 씨는 그의 잔에 잘 익은 붉은 포도주를 약간 따랐다. 마레 씨는 촛대를 음악 노트 가까이에 놓았다. 그들은 노트를 바라보고, 다시 덮고, 앉아서, 조율했다. 생트 콜롱브 씨는 허공에서 손을 저으며 박자를 세었다. 그들은 손가락으로 현을 짚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눈물들」을 연주했다. 두 비올라 다 감바의 선율이 올라가는 순간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천장을 뚫고 들어온 빛이 오두막 안에 퍼졌고 그 빛은 어느새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눈물이 코에, 뺨에, 입술에 천천히 흘러내릴 때 두 사람은 동시에 웃었다. 마레 씨가 베르사유로 돌아간 것은 새벽녘이 되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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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 - 피해자 없는 범죄, 성폭력 수사 관행 고발 보고서
T. 크리스천 밀러.켄 암스트롱 지음, 노지양 옮김 / 반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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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성희롱, 성폭력과 관련한 사회적 문제 인식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우리 주위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이 책처럼 소설보다 더 소설 같고, 진실을 알고 나면 답답하고 억울하고, 

무력함에 화나는 묻히고 외면당한 이야기가 수도 없을 것입니다. 

아무도 내가 당한 억울함과 고통을 믿어주지도 들어주지도 않는 상황에서,

제정신으로 버틸 힘이 우리에게 있을까요.

우연히 드러난 진실로 다시 삶의 정상 궤도로 올라선 마리의 삶이 기적 같은 이유입니다.

나는 얼마나 편견에 파묻혀 있는지 늘 성찰하고 되짚어 봐야 함을 날카롭게 지적해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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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360쪽-

페기와 조던이 그녀를 믿지 않았다는 말을 경찰이 했을 때 "가슴이 무너졌다."고 마리는 말했다. 그녀 스스로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때때로 자신이 진짜로 이야기를 지어낸 것이 아닐까 혼란스러웠다. 어쩌면 내가 꿈을 꾼 건지도 몰라. 거짓말을 했다고 자백했을 때는 "모든 걸 잃었죠." 자기 자신도 잃었다. 새로운 시작을 향한 열망으로 가득했던 18세 소녀는 사라졌다. 우울증이 그녀를 잡아먹었다. 


~ 두 사람은 15분 정도로만 짧게 통화했는데 마리가 원한 것, 마리에게 진정 필요했던 것은 그저 갤브레이스 형사가 해준 일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 알리는 것뿐이라 시간은 상관 없었다. 오리어리가 체포되기 전에 마리의 인생은 출구가 없는 막다른 길 같았다. 

운전면허조차 따지 못했다.

"그분 덕분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으니까요."마리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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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바벨의 도서관 27
허먼 멜빌 지음, 김세미 옮김, 이승수 해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바다출판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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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 일탈] 바틀비의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라는 말의 의미와 사연이 내내 궁굼하다. 바틀비는 나약한 사람 인건지, 자신의 의지를 끝까지 고집한 강한 사람인건지, 반항적인 사람인건지, 슬픈 사람인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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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각본 살인 사건 2 백탑파 시리즈 1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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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교양이 녹아 있는 조선시대 추리활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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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ggy1 2020-02-01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장 머릿글
(아버지 박지원께서는) 선과 악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선이란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원래 몸에 있는 이치거늘 신명이 굽어 본다 할지라도 사람들이 행하는 선에 따라 일일이 복을 내려 주지는 않는다. 왜 그런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므로 딱히 훌륭하다 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악은 단 한 자리라도 행하면 반드시 재앙이 따른다. 이는 어재서 일까? 마땅히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이므로 미워하고 노여워할 만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선을 행하여 복을 받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고 오직 악을 제거하여 죄를 면할 방도를 생각함이 옳다.˝ -박총채 <과정록>
21장 머릿글
~ 군주가 이른바 강하다는 것은 용감하고 힘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쓰이도록 애쓰게 한다는 말이다. 그 의지가 충분하면 천하 사람들은 군주를 돕는다. 의지가 충분치 않아도 천하 사람들은 군주를 즐거워한다.
천하 사람들을 의지하는 군주는 천하 사람들이 버리며, 스스로를 의지하는 군주는 천하를 얻는다. 천하를 얻는 군주는 먼저 스스로를 얻는 사람이며, 강한 적을 이길 수 있는 군주는 먼저 자기를 이기는 사람이다. - 상앙 <상군서>
 
방각본 살인 사건 1 백탑파 시리즈 1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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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을 연구하던 북학파의 사상과 조선시대의 사회상이 어우러진 흥미진진한 추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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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ggy1 2020-02-01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 169
박제가가 덧붙였다.
˝신선술을 익힌다 하여 특별하게 여길 까닭도 없으이. 형암 형님은 언젠가 신선이란 이런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네. ‘마음이 담백하여 때에 얽매임이 없으면 도가 이미 원숙해지고 금단이 거의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니, 저 허공을 날아오르고 껍질을 벗고 변화한다는 것이 억지로 하는 말일 뿐이다. 만약 내가 잠깐이라도 얽매임이 없다고 한다면 이는 그 잠깐 동안 신선인 것이요. 반나절 동안 그러하다면 반나절 동안 신선이 된 것이다. 내 비록 오래도록 신선이 되지는 못해도 하루 가운데 거의 서너 번씩은 신선이 되곤 한다. 대저 발아래에서 뽀얀 붉은 먼지가 풀풀 일어나는 자는 일생 동안 단 한 번도 신선이 되지 못하리라.‘ 과연 옳은 지적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