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타일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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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128*188mm, 312쪽

이 책이 속한 분야(교보문고 기준)

국내도서> 소설> 한국소설> 한국소설일반

정식 출간 전 창비로부터 가제본을 받았다

(지금은 정식 출간 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선물같았던 김금희 작가의 신작 《크리스마스 타일》을 읽으며

나의 한 해는 어땠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열심히 일을 하다 도망치듯 회사를 나왔다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처음 해보는 운동을 시작했다

여러 병원에 다니며 건강을 챙겼다

코로나 이후 3년 만에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다사다난 했던 올 한 해, 하지만 나쁘지만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 기꺼이 지난 시간을 보내고

일상의 타일들을 이어붙여 꿋꿋하게 채워지는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

메리 크리스마스


/


누구나 아슬한 줄 하나쯤은 가지고 산다고 생각한다

그 줄 위에 올라 나름 줄을 잘 타기도 하고

가끔은 위태롭게 흔들리기도 하며

그렇게 줄 위의 감각을 느끼고 버티며 살아간다

《크리스마스 타일》은 일상을 살아내는 마음에 생긴 조그마한 생채기를

따뜻한 손바닥으로 어루만져주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총 일곱편의 연작소설에는

조금씩 연결되어있는 인물들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각각 담았다

울 것 같은 마음을 꾹 눌러 참고 있을 때

누군가의 위로를 받으면 왈칵 눈물이 쏟아져 버리는

아이같은 마음이 된다

그 위로는 각자가 가진 일상과 아픔을 공유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당신 개 좀 안아봐도 될까요>는 일곱편의 이야기 중 가장 좋았던 이야기다

이십년 가까이 함께 한 반려견을 떠나보내고 상실을 견디고자 애쓰는 세미의 이야기를 담았다

강아지의 조건 없는 사랑과 존재가 주는 따스한 온기를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그 생명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언젠가, 그리고 많은 확률로 나보다 먼저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온마음으로 기꺼이 그 생명을 사랑해버리고야 마는 마음은 설명할 방법이 없다

사랑하는 강아지의 생각이 많이 나서

일곱편의 이야기 중 유독 이 이야기를 읽을 때 눈물을 많이 흘렸다

세미는 반려견 설기를 보내주는 과정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해 개를 보여달라는 부탁을 한다

모두가 기꺼이 약속 장소에 나와주는 것만으로

덤덤하게 사랑하는 마음을 공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덤덤한 마음은 왠지 모르게 나를 더 아프게 했다



김금희 작가의 편지와 좋아하는 두 분의 추천사를 붙여요


여러분, 안녕하세요, 김금희입니다.

열 번째 책 《크리스마스 타일》을 펴내면서 여러분께 겨울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한해를 정리하며 며칠 전 다이어리를 살펴보았는데요,

달마다 적혀 있는 문장들에서 일년을 보내는 흐름을 읽어볼 수 있었어요.

2월에는 "계단을 하나하나씩 밟으면 실현될 수 있겠지"라고 적었고

9월에는 "회의가 들 때가 있더라도 이 마음을 오래 가져가고 싶다"라고 썼더라고요.

"정말 괜찮아서 여기 있는 건가 잘은 모르겠네"라는 4월의 말과

어느 책에서 옮겨 적었는지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

"그녀는 그에 대한 존경심을 잃고 자신에 대한 존경심도 잃은 상태였죠"라는 문장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대부분 불안하고 작아지고 혼자인 듯한 마음을 이겨보고 싶어서 스스로에게 사인을 보냈던 것이겠지요.

여러분의 일년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정말 수고하셨어요.

우리가 채워나갔던 이 일상의 타일들로 다시 꿋꿋하게 채워지는 2023년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저 역시 그 일상의 구원을 위해 더 힘을 내겠습니다.

평화를 빕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2022년 11월

김금희 드림.


김이나 작사가

지금이라도 주변 풍경에 현미경을 갖다 대면 훔쳐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이 이야기들은

온몸에 힘을 풀고도 단숨에 읽을 수 있는 편안하고 묘한 흡인력을 가졌다.

가끔씩 하루하루 미세하게 흠집이 나서 그만큼 비뚤어진 채로 아슬한 균형을 잡고 있는 마음을

끄집어내어 닦고 주물러서 다시 집어넣고 싶을 때가 있다.

김금희 작가는 이야기를 통해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들었다.

박정민 배우

꼬마전구와 캐럴을 끄고 난 이 계절이 얼마나 말랐는지, 그럼에도 얼마나 포근한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은 겨울을 작가는 온몸으로 받아내며 글을 적어내린 것 같다. 책을 덮고 한참을 되새겼다. 잎은 지지만 관계는 익어 짓물러가는 것이 겨울이라고. 옷깃을 여미는 척 가슴을 오므려 슬픔을 감추는 계절이 찾아왔다고. 동시에 도리어 편안해지기도 했다. 그 계절 안에서 설렘과 그리움을 자각하며 삶을 살아내는 이들로 인해, 내게도 올겨울을 살아낼 자신이 생긴 모양이다. 그들이 건네는 동질감과 위로가 참으로 깊고 뭉근한 덕이다. 그리고 또 하나, 김금희 작가의 언어를 꼭 연기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재차 품게 됐다. 여태껏 망측하고 남사스러워 추천의 글에 이런 표현을 해본 적이 없지만, 늘 가슴속에 품고만 있던 소망이 이번 기회에 소원이 되어 조심스레 적어본다.




* 출판사 창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썼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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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에세이&
백수린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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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117*188mm, 232쪽

이 책이 속한 분야(교보문고 기준)

국내도서> 시/에세이> 나라별에세이> 한국에세이

행복 수집가 🍀 Happiness Collector

: 타인의 말이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나 자신과 평화롭게 있을 수 있는 상태를 찾아가는 사람

행복 수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쓸모 없는 것을 사랑하는 일은

사소한 것까지 사랑할 줄 아는 섬세함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의 글 속에서

평화롭게 산책하며, 내 일상의 행복을 수집해 봤다




"우리는 모서리와 모서리가 만나는 자리마다 놓인

뜻밖의 행운과 불행, 만남과 이별 사이를 그저 묵묵히 걸어나간다.

서로 안의 고독과 연약함을 가만히 응시하고 보듬으면서."

백수린





행복 수집 1


책과 함께 받아 본 작가님의 편지




행복 수집 2


매일매일 끼고 다니던 반지가 끊어졌다

손가락은 허전했고,

함께 반지를 맞췄던 친구들 진진이 생각났다

예전부터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왁스 카빙 원데이 클래스

열심히 서치하고 한 곳을 정해 예약했다

조금은 엉성했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완성 된 반지는 택배로 받았다

송알 원데이 클래스 선생님께서 택배비를 서비스로 해주셨다

허전한 손가락을 다시 채웠고

애정 담뿍 소중한 반지가 생겼다




행복 수집 3


미루고 미루던 치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너무 미룬 탓에(기억도 잘 안 날 정도지만 최소 5년이상 미룸) 입 안은 엉망이 되어버렸다

깨진 치아의 신경치료와 망가진 잇몸을 치료하기 위한 신경치료도 필요하고,

사랑니는 4개 모두 발치, 가벼운 충치도 있다 .....

겁이 많아 스트레스를 왕창 받아버렸다

그리고 치료하는 동안에는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없어서 강제 다이어트까지 ..

(지금은 잠시 먹을 수 있게 됐다!)

요리 척척박사 챈이가 계란죽을 만들어주고 (너무 맛있었다 .. 다 먹어버림)

빵 먹고 싶다는 한 마디에 동한이는 부드러운 빵을 한 가득 사주고

졍은 잇몸케어에 좋다는 치약을 선물해줬다 (임산부들도 쓰기 좋은 거래요!)

너무 큰 행복을 수집해버렸다

고맙습니다 .. 🍀💚




* 출판사 창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썼습니다 *

미래 쪽으로만 흐르는 시간은 어떤 기억들을 희미하게 만들어버리기도 하지만,
장소는 어김없이 우리의 기억을 붙들고
느닷없이 곁을 떠난 사랑하는 것들을 우리 앞에 번번이 데려다놓는다. <장소의 기억, 기억의 장소> - P21

생의 의지를 가지고 태어난 각각의 것들이 자라나면 자라나는 대로 그냥 두고 보는 것.
이것이 게으른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원예 방식이다. <마당 없는 집> - P46

강아지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볼 때면,
나는 이 넓은 우주에서 우리가 만나
이렇게 서로에게 특별해질 수 있게 만든 힘이 무엇일지 궁금해지곤 했다.
우리의 존재가 서로에게 깃들고,
이렇게 서로를 비춰주는 조그만 빛이 될 수 있게 해준 그 힘이. <사랑의 날들> - P104

나는 내가 나의 등 뒤에 남겨두고 떠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도 못했고,
삶과 죽음 중 무엇이 더 두려운 것인지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5월>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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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버 (양장) - 제15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나혜림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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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든 상상이 이루어지는 곳에

온 걸 환영해, 소년.

만약에.

그 한마디면 신세계를 맛볼 수 있어.

선택은 인간이 하는 거야."

평범하고 싶지만

십몇 년차 인생에 참을 것이 너무도 많은,

평범하지 않은 중학생, 정인.

폐지를 주워 생계를 이어가는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으며

그저 백만원을 모으는 게 꿈이다.

지옥에서 휴가를 나온 악마, 헬렐에게

정인의 삶은 무너뜨리기 쉬운

먹잇감으로 보인다.

그저 인간의 욕망을 흔들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맹랑한 소년이

한마디도 안 진다는 걸 알기 전까진!




누구보다 수학을 잘 하던 정인

현실로부터 셈을 배워 셈이 밝아져 버렸다고 한다

정인을 보며 어김없이 안타까움 같은 마음을 느꼈는데,

일찍 철이 들어버린 아이들을 보면 느끼는 마음이었다

복지관 선생님이 권하는 후원에 대해

날을 세우고 벽을 치는 정인을 보며

기꺼이 도움을 받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흔들림 많은 주변 환경들 속에서도

흔들림없이 굳건하게 본인을 지켜내는 정인을 보며

어느새 정인을 응원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믿고 단단함을 유지하는 것

말은 쉬워보여도 현실로 다가오면 결코 쉽지 않은 일들을

어린 정인에게 배우기도 했다

/

친구인 재아에게 설렘을 느끼는 정인

헬렐 벤 샤하르(악마)의 말들을 재치있게 받아치는 정인

을 보며 요즘 학생들의 당돌한 모습을 보는 듯 했다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정인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잠시 접고

영락없는 중학생의 모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장면들이었다


/

결국 정인은 유혹을 이겨내고 자신만의 길을 간다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든다

청소년문학 이나 영어덜트문학 은 20대 후반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주는 문학이 되었다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청소년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문학들을 읽고 어떤 감상을 내어놓을지 궁금해진다




하지만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었으니, 녀석은 어둠 속에 웅크린 채 누군가 자신과 눈을 마주치길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 검은 고양이는 정인을 떠나 또 다른 정인을 찾아다니고 있다

책을 받았을 당시 선물이라고 생각했던 예쁜 엽서와

그 뒤에 담긴 헬렐 벤 샤하르의 편지

어쩌면 선물이 아니었을지도......

(언제든 나에게도 찾아 올 수 있다는 재밌는 생각을 했다)


* 출판사 창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썼습니다 *

존재하는 사람은 때때로 잊히지만 존재했는지조차 의문인 사람은 오래 기억된다. - P9

"악은 손끝이 섬세하니까.
바닷물을 반으로 가르는 거대한 이벤트성 기적은 보기에만 그럴듯하지.
정말로 효과가 있는 건 사소한 섬세함이거든.
그럴듯하게 모사해서 삶에 녹아드는 거 말이야.
환경 호르몬이나 미세먼지, 미세 플라스틱처럼." - P105

"말이 좋지 그냥 괴롭히는 거잖아요."
"그럼 그 애가 한 짓은? 죄의 대가는 뭘로 치르지?"
"에이. 그게 중요한가요? 눈에는 눈 하다간 온 세상 눈이 다 멀 텐데."
(...)
"이게 세상이야, 소년.
세상은 미움을 먹고 잔인함을 열매로 맺지.
인간은 그 열매로 술을 담그고.
괴롭다면 조금 취한 채로 사는 것도 괜찮아." - P109

그냥, 그게 할머니와 정인의 방식이었다.
자신이 못나 보인다 싶으면 학교 뒤꼍에 숨었고 약해졌다 싶으면 그림자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안 보이는 척, 모르는 척, 슬쩍 덮어놓고 살다 보면 지나갔다.
어떻게든 살아졌다. - P156

"응달에서 피는 꽃도 있어요."

‘꼭 꽃을 피워.‘
그래. 그 클로버처럼. - P226

(작가의말)
사람들은 극복하는 인간을 좋아한다지만 사실 저는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극복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그냥 하세요.
뭐 어떻습니까, 딱히 다른 할 일도 없잖아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피어날 겁니다.
응달에서도 꽃은 피니까요. -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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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미래에 보내는 편지 - 소멸하는 지구에서 살아간다는 것
대니얼 셰럴 지음, 허형은 옮김 / 창비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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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그리고 언젠가의 나의 가족을 위해



지은이 대니얼 섀럴이 겪고 실천했던 일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느낀 솔직한 감정에 대한 책.

판형 140*210mm, 356쪽

이 책이 속한 분야(교보문고 기준)

정치/사회> 사회문제/복지> 사회문제> 환경문제

시/에세이> 나라별 에세이> 영미에세이


우리는 며칠 전 시간당 100mm 이상의 기록적인 폭우를 경험했다.

도림천이 흘러 넘치고, 강남역은 물바다로 변하고, 지하철 역이 침수되는 바람에 운행을 중지했다.

강남역 제네시스나 신림동 펠프스같은 밈들이 유머로 퍼지는 동안

반지하 가족은 침수되는 집을 탈출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너무나도 이상한 이 기상현상들은 앞으로 계속해서 반복될지도 모른다.

5년 후? 아니면 돌아오는 여름? 당장 내일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문제'는 당장 내 앞에 닥치지 않으면 크게 깨닫기 힘들다.

직접 몸으로 겪어본 후에나 깨달을 수 있게 된다.

'그 문제'가 내 앞으로 다가오기 전에 조금씩 실천해야 한다.






지방에 갈 일이 생겨 기차 안에서 읽을 책을 챙겼다.

《뜨거운 미래에 보내는 편지》

환경에 대한 책을 읽고 작은 행동으로나마 조금씩 실천해야겠다고 깨닫는 순간에도

나는 카페에서 커피를 사고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받고 있었다.

부끄러웠다.

카페에 갈 때 텀블러를 꼭 챙겨 커피를 담아달라고 부탁하는 작은 습관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즘 푹 빠진 그릭요거트를 구매할 때 집에서 직접 용기를 챙겨 받아왔다.

집에선 엄마의 영향으로 아주 철저한 분리수거를 하고 있다.

당장 사회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것 같더라도

내 작은 행동, 작은 습관들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사소한 짜릿함이 있다.

사소한 습관으로 '그 문제'를 직시해보려 한다.





책을 읽다가 발견한 것이 있다.

표지 질감이 좋다거나 후가공을 예쁘게 잘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뒷면 모퉁이에 '재생종이로 만든 책' 표시였다.

출판사 창비가 책을 만들면서 무엇을 전하고자 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대니얼 섀럴의 말이 더 잘 전달되는 듯 했다.




p 46 - p 47

그 감정은 내가 꿨던 특정한 유의 꿈들을 새삼 떠올리게 했어.

꿈에서 나는 어딘지 모를 물에 풍덩 뛰어드는데 곧 내가 가라앉고 있다는 걸 알아채.

나는 처음엔 아무렇지 않게, 이내 점점 다급하게 사지를 허우적대며 기를 쓰고 헤엄쳐.

그런데 아무리 힘껏 발길질을 해도 수면은 멀어져만 가고 물은 점점 새카매져.

그러다 결국 내가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봤다는 생각, 조금 있으면 익사할 거라는 생각이 퍼뜩 들어.

내 마음이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그것을 또다른 형태에 욱여넣어 거기에서 마지막 희망 몇방울을 짜내려 애쓰는 게 느껴져.

그런데 그러지 못하자 내 입이라는 대문이 열리면서 물과 함께 회한이 밀려들어와.

순간적으로 근육이 이완하고, 최후의 우선순위가 재정렬되고, 내가 점쳤던 미래의 한계선들이 손닿는 거리 안으로 되튕겨 와.

그러다 어느 순간 흠칫 잠에서 깨고, 잠시 꼼짝 않고 얼굴 위 어둠을 응시하면서

깨어 있는 동안에는 잡힐 듯 영 잡히지 않는 이 느낌을 붙잡으려 애쓰다가 실패해.

내가 죽을 수도 있으며 사실 죽어가고 있다는 느낌.

p 65

이론상으로는 '그 문제'가 중요하다는 걸 알았지만 그 중요성은 언제나 손 닿지 않는 확연한 먼 곳, 이를테면 각국 수상과 외교관들이 거하는 아득한 창공에나 존재하는 것 같았지.

p 87

바로 그래서 '그 문제'가 이토록 견디기 힘들게 느껴지는 거야.

지독한 익숙함, 감각을 마비시키는 반복성에 지치는 거지.

그 지긋지긋한 광대극을 줄곧 지켜봐야 하는 기분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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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 (양장)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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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출판사 창비에서 박소영 작가님의 <스노볼>을 가제본으로 받아보았습니다.

창비와 카카오 페이지가 함께 하는 영어덜트 장르문학상에서 첫 번째로 대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남에게 휘둘릴 필요도, 나를 숨길 필요도 없어.”

진짜 나로 살아가길 원하는 모든 이를 위한 소설

『스노볼』은 평균 기온이 영하 41도로 혹한이 몰아닥친 세상, 돔으로 둘러쳐진 따뜻한 지역 ‘스노볼’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살기 위해서는 스노볼의 ‘액터’가 되어 바깥세상으로 매일같이 자기 일상을 드라마로 중계해야 한다는 놀랍고도 있을 법한 상상력으로 세워진 무대이다.

주인공은 열여섯 살 ‘전초밤’으로, 스노볼의 바깥세상에서 살고 있는 평범한 인력 발전소 노동자이다.

디렉터가 되어 자기만의 근사한 드라마를 만드는 것이 꿈인 전초밤에게 스노볼은 선망의 세계이다.

그러던 어느 날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온다.

스노볼에서 가장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최상위 액터이자 전초밤이 제일 좋아하는 배우 ‘고해리’가 죽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고해리와 묘하게 닮은 전초밤에게 대신 그녀를 연기해 달라는 거절하기 어려운 제안이 오고,

전초밤이 이를 받아들이고 스노볼에 입성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꿈을 위해 전진하는 동시에 인간성과 자아를 지키려고 분투하는 십 대 전초밤의 모습은

영어덜트 소설의 고민과 갈등을 뛰어나게 표현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선사한다.

타인의 삶과 욕망을 훔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 시대에 ‘지금, 여기’의 모습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현재적인 작품이다.

뒤돌아보지 않는 미친 몰입감, 강렬한 캐릭터가 돋보이는 『스노볼』.







이 소설은 1부 나, 2부 너, 3부 우리라는 이름으로 구성되어있다.

이 목차를 보고 알 수 있었다.

평균 기온이 영하 41도인 미래 사회,

독특한 세계관에서 진행 되는 이야기지만 결국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을.

진짜 자신을 찾기 위해 달리는 인물들을 나도 모르게 응원해버린다.

점점 이 소설에 빠져들다보면 낯선 배경에도 꽤 현실적이게 다가온다.

그렇게 모두를 응원하며 읽다보면 문득 느껴지는 것이 있다.

내가 왠지 스노볼의 인물들과 함께 달리고 있는 기분이라는 것이다.

함께 고민하고 함께 싸우고 함께 달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어쩌면 나도 스노볼을 향해 가는 이들과 같은 것을 원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덜트라는 이름을 가지고 나온 소설이지만

너와 나, 우리의 존재를 깨닫고 진정한 나를 찾고싶은 사람들이라면 모두에게 추천할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영어덜트 장편소설 <스노볼> 박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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