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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버 (양장) - 제15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나혜림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든 상상이 이루어지는 곳에
온 걸 환영해, 소년.
만약에.
그 한마디면 신세계를 맛볼 수 있어.
선택은 인간이 하는 거야."
평범하고 싶지만
십몇 년차 인생에 참을 것이 너무도 많은,
평범하지 않은 중학생, 정인.
폐지를 주워 생계를 이어가는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으며
그저 백만원을 모으는 게 꿈이다.
지옥에서 휴가를 나온 악마, 헬렐에게
정인의 삶은 무너뜨리기 쉬운
먹잇감으로 보인다.
그저 인간의 욕망을 흔들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맹랑한 소년이
한마디도 안 진다는 걸 알기 전까진!

누구보다 수학을 잘 하던 정인
현실로부터 셈을 배워 셈이 밝아져 버렸다고 한다
정인을 보며 어김없이 안타까움 같은 마음을 느꼈는데,
일찍 철이 들어버린 아이들을 보면 느끼는 마음이었다
복지관 선생님이 권하는 후원에 대해
날을 세우고 벽을 치는 정인을 보며
기꺼이 도움을 받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흔들림 많은 주변 환경들 속에서도
흔들림없이 굳건하게 본인을 지켜내는 정인을 보며
어느새 정인을 응원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믿고 단단함을 유지하는 것
말은 쉬워보여도 현실로 다가오면 결코 쉽지 않은 일들을
어린 정인에게 배우기도 했다
/
친구인 재아에게 설렘을 느끼는 정인
헬렐 벤 샤하르(악마)의 말들을 재치있게 받아치는 정인
을 보며 요즘 학생들의 당돌한 모습을 보는 듯 했다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정인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잠시 접고
영락없는 중학생의 모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장면들이었다
/
결국 정인은 유혹을 이겨내고 자신만의 길을 간다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든다
청소년문학 이나 영어덜트문학 은 20대 후반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주는 문학이 되었다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청소년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문학들을 읽고 어떤 감상을 내어놓을지 궁금해진다

하지만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었으니, 녀석은 어둠 속에 웅크린 채 누군가 자신과 눈을 마주치길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 검은 고양이는 정인을 떠나 또 다른 정인을 찾아다니고 있다
책을 받았을 당시 선물이라고 생각했던 예쁜 엽서와
그 뒤에 담긴 헬렐 벤 샤하르의 편지
어쩌면 선물이 아니었을지도......
(언제든 나에게도 찾아 올 수 있다는 재밌는 생각을 했다)

* 출판사 창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썼습니다 *
존재하는 사람은 때때로 잊히지만 존재했는지조차 의문인 사람은 오래 기억된다. - P9
"악은 손끝이 섬세하니까. 바닷물을 반으로 가르는 거대한 이벤트성 기적은 보기에만 그럴듯하지. 정말로 효과가 있는 건 사소한 섬세함이거든. 그럴듯하게 모사해서 삶에 녹아드는 거 말이야. 환경 호르몬이나 미세먼지, 미세 플라스틱처럼." - P105
"말이 좋지 그냥 괴롭히는 거잖아요." "그럼 그 애가 한 짓은? 죄의 대가는 뭘로 치르지?" "에이. 그게 중요한가요? 눈에는 눈 하다간 온 세상 눈이 다 멀 텐데." (...) "이게 세상이야, 소년. 세상은 미움을 먹고 잔인함을 열매로 맺지. 인간은 그 열매로 술을 담그고. 괴롭다면 조금 취한 채로 사는 것도 괜찮아." - P109
그냥, 그게 할머니와 정인의 방식이었다. 자신이 못나 보인다 싶으면 학교 뒤꼍에 숨었고 약해졌다 싶으면 그림자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안 보이는 척, 모르는 척, 슬쩍 덮어놓고 살다 보면 지나갔다. 어떻게든 살아졌다. - P156
"응달에서 피는 꽃도 있어요."
‘꼭 꽃을 피워.‘ 그래. 그 클로버처럼. - P226
(작가의말) 사람들은 극복하는 인간을 좋아한다지만 사실 저는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극복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그냥 하세요. 뭐 어떻습니까, 딱히 다른 할 일도 없잖아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피어날 겁니다. 응달에서도 꽃은 피니까요. -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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