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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5평 지상에서 가장 작은 내 방 하나 - 비전향 장기수 7인의 유예된 삶
김선명 외 지음 / 창 / 2000년 8월
평점 :
절판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책 서두에 세계 최장기수 김선명 선생님(45년 복역)의 글을 읽으며 든 의문이었다. 삶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은 확연하게 달라진다. 우리가 야만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실상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범위는 그리 넓지 않다. 부자와 가난한 자, 가진자와 못가진자, 배운자와 배우지 못한자로 나뉘어 있고 그 삶은 후대까지 이어지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독 사상과 이념만큼은 그 사람이 어떤 것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그게 뭔지도 모르고)자본주의 사회에 그저 만족하고 살아간다면 그야말로 ‘선량한’서민들은 ‘편하게’ 살 수 있다. 적어도 어느날 갑자기 국정원에 끌려가거나 하는 일은 없다. 사회주의 사상, 공산주의 이념을 명토박아 있는 사람들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는 가난하건 부자건 가족과 주위 사람과 자기 자신이 크나큰 댓가를 치러야만 한다.
그러니까, 적어도 장기수 선생님들에게는 이념이 가장 중요했던 거다.
하지만, 내가 가장 중요한 것을 다른 사람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서, 전혀 뜻밖의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쳐죽여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난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단식도 하도 데모질하고 글도 쓰지만,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국가보안법이 반드시 존재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다. 밉지는 않다. 그저 뭘 몰라서 그러는 거려니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설상 아는데도 그렇다고 할지라도.. 설득이 안되면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기껏 가장 중요한 게 어디다 팔어먹지도 못하는 사상? 그것도 공산주의? 그런거냐고 이해못할 수 있다.
그래, 무시할 수도 있다. 인정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우리는 빨갱이는 인간도 아니라는 생각을 머릿속에 박아두고 있다. 피도 눈물도 없이 멀쩡한 사람들을 죽창으로 쳐 죽이는 자들로 기억하고 있다.
그렇다고 인간이 인간을 죽이거나 이다지도 괴롭힐 권리가 생기는 건가. 누가 그런 권리를 주었나.
울음같이 책장을 덮고 나니 선생님들의 그 오롯한 투쟁의 역사는 바로 어떻게 이념의 차이가 이 사회에서 어떤 형태로 받아들여지고, 유예되고, 잊혀지는 형벌로 다가오는지 알려주는 현주소다.
이분들의 수기에는 한줄 한줄이 생애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의 줄기다. 이 수기에는 한 문장에서 다른 한 문장으로 넘어가는 시기가 그저 일년도 되고, 십년도 되고, 사십년도 된다. 무심해보일 지경이다. 자신들의 일이라 그런가 왜 이리 덤덤한가. 그 생애를 살아냈으면 피눈물 뚝뚝 묻어나야지 왜 이리 초연한가. (화가 날정도로 초연하다.) 나 같았으면 쓰고 싶어서, 말하고 싶어서, 그 벌거벗겨진 영혼을 토로할 것이다. 거친 글과 말로. 그런데 이분들은 그저 덤덤하다. 오히려 한일도 없이 잡혀 제대로 일도 못하고 갇혀 지낸 세월이 안타까워한다.
진정 조국에 대한 사랑,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경멸, 진정한 평등사회를 원하시는 분들이다.
이분들이 왜 그렇게 유예된 삶을 살았는지, 어떻게 해서 ‘빨갱이’가 되었는지는 접어두기로 하자. 감옥에서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의 인권의식이 얼마나 낮은 것인지 알 수 있다. 대체, 감옥에 갇힌 사람은 인격이 없는가, 감정이 없는가, 사람이 아닌가 말이다.
이분들이 공통적으로 겪었던 감옥에서의 인권유린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십대, 삼십대 한참 젊은 때 잡혀 들어가 출소할 당시 칠순이 넘고 아흔이 넘었다. 밖에서 투쟁했던 세월보다 더 긴 끝도 알 수 없이 길고 긴 갇힌 세월.
난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젊은 시절 국보법과 집시법으로 잡혀 들어가서 몇 년 살고 나와 그걸 훈장으로 달고 국회입성에 기름진 얼굴이 된 그들과 감히 비교하랴.
음식을 먹는 것조차 최대한 굴욕을 느끼게 했던 그 비참한 현장. 식기도 없이 옷이나 신발에 음식을 담아 손으로 먹는 견딜 수 없는 치욕스런 끼니. 이분들에게는 끼니가 삶의 도구이기도 했지만, 삶을 끝낼만한 명분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우리들이 역사책에서 배운 현대사의 질곡이 이분들에게 얼마나 왜곡되어 드러났던가.
7.4남북공동선언은 마치 통일의 물꼬를 튼 위대한 작업처럼 비쳐졌었다. 적어도 밖에 있었던 나에겐....
그러나 이분들에게는 그대로 칼이 되었다.
그 허울좋은 껍데기에도 불구하고, 남북공동선언이 이분들에게 준 선물은 전향공작일 뿐이다. 어이없이 남쪽에 전향하지 않은 사상범은 씨를 말리라는 지시가 내려오고, 그들은 칼을 맞았다. 이전에도 꾸준히 진행되어 온 전향작업은 이제, 살인자 강간범 조직폭력배와 같은 범죄자들에게 가석방을 조건으로 전향작업을 시킴으로써 비인간적인 것으로 급격하게 야만의 과정을 밟는다. 가족이 있는 분들은 가족을 앞세워, 그들의 현재와 미래를 담보로 전향을 강요한다. 잔혹하게.
무차별적인 폭력앞에서 자살로 저항하기도 하고, 단식으로 저항하기도 하면서 동료들과 함께 하루하루를 버틴다. 살아 있다는 것이 투쟁인 이분들의 삶.
육체의 죽음보다 정신의 죽음을 더 두려워하는 삶.
왜 살아가냐고, 누가 알아준다고 그렇게 처절하게 살아가냐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들을 하셨을까.
사람은 누구나 살아갈 복은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있기 때문에 세상에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이분들의 유예된 삶을 통해 뭔가를 배울 수 있다면, 이분들이 비록 자신들이 그렇게 원하듯이 직접 조국통일을 위해, 노동자 해방을 위해 원없이 투쟁하지는 못했을지언정, 자신의 삶을 바쳐 사상의 자유를 지켜낸 것만으로도, 그 투쟁과정에서 우리 인권의 현주소를 체험해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
육체에 가해지는 작은 고통도 견디질 못하는 내가 한없이 작아지고, 부끄러워지게 만들었고 또, 투쟁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면, 함께 투쟁하는 동료가 있다면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분들도 만약 혼자였다면 이겨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외로움은 인간을 가장 나약하게 만드는 사슬이다.
0.75평 작은 감방에 갇혀서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도, 제대로 운동을 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단식을 한다는 것은 목숨을 건 투쟁이다. 하지만, 이 투쟁도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강제 급식이라는 처절한 대응을 이겨내야 하기 때문이다.
반항하지 못하도록 사지를 붙잡고 식도에 호스를 끼우고 음식물을 강제로 투입하는 것인데, 그 방법의 잔혹성이야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수치스러운 강제 급식을 겪은 후 자살하는 분도 계신 것은 당연하다. 고결한 정신을 가진 분에게 그런 식의 굴욕을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살아남은 분들도 식도를 다치거나 위장을 다치거나 하는 여파를 남긴 잔인한 탄압.
이 책에 담긴 비전향장기수 선생님 일곱분 모두가 다른 형무소에서 그같은 일들을 공통적으로 겪으셨다. 감옥에서의 우리 인권은 어떤지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1990년대 후반 차례로 출소하신 선생들은 2000년 9월 북으로 송환되었다. 그 절절한 심정이야 어떨지 감히 내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갇혀 계셨던 길고긴 세월동안
남쪽의 이 찌들은 자본주의 사회와 다를바 없는 북녘의 비참한 현실을 선생들이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모르겠다.
북은 이제 그분들이 계시던 시절의 사회주의 지향의 사회라기 보다는 일인독재의 전체주의 사회가 아닌가. 남도, 북도 내 조국이라고 모두가 말씀하셨는데... 남도 북도 모두 다 다른 형태로 삐뚤어져 있으니...
다만, 통일을 바라는 마음.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 평등한 사회를 바라는 마음. 인간다운 삶을 바라는 마음으로 치열하게 투쟁하는 것만이 이분들이 남긴 유산을 가치있게 빛내는 일일 것이란 생각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