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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
반레 지음, 하재홍 옮김 / 실천문학사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반레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은 방현석의 <랍스터를 먹는 시간>에서였다.
그런 사전정보가 아니더라도 전장에 대한 감상 없는 묘사는 직접 겪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통찰이란 것을 느끼게 해주는 세세하고 치열한 기억력.
많이, 세밀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오래 아플 수 밖에 없는데... 작가의 고통이 어떨지 감히 상상하기조차 두렵다.
전장에서 눈뜨고 뼈와 살같은 동료가 죽어가는 것을 본 사람이 잊지 않기 위해, 그들을 기억하기 위해, 그들과 함께 살기 위해 글을 쓴 것은 참으로 서럽고 슬픈 깨달음이었는데, 그렇게도 담담해보이는 글쓰기라니 더욱 말이다.
작가 방현석은 베트남 '여행기' <하노이에 별이 뜨다>에서도 반레 시인의 삶에 대해, 베트남전에 대해 말해주었었다.
최강대국 미국을, 그 많은 전쟁에서 한번도 지지 않은 미국이 '미개한' 나라 베트남과의 전쟁에서 완전한 패배를 한 이유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 승리의 진정성을 말이다.
반레 소설은 의외성이 빛난다.
고등학교 졸업 직후부터 10년간 전장에 몸을 담고 있었던 용사로서 가질법한 무용담 따위는 전혀 없다.
해방전선의 숭고함에 대한 그 어떤 장황한 설교도 없다.
공산주의 이념에 대한 그 어떤 환상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저 인민의 고통에 대한 애닯음, 베트남을 이어오고 있는 전통 '문화'의 맥을 이어가려는 순박함, 모든 삶의 궁극인 사랑, 그리고 전쟁의 비참함에 대해 말하고 있을 뿐이다.
소설안에서 주인공 빈 상사는 연인 캄이 죽자, 분노에 치달아 적을 쏘아 죽이다가 자신도 총에 맞아 황천길에 오르고만다.
죽은 빈 상사가 회상하는 전쟁터에서 혹시 따이한을 만날까봐 두근두근했다.
'다행히' 초토화된 마을을 만날 때마다 반레는 그저 '적'의 공격이라고 말할 뿐이었다.
이 부채의식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제국주의에 대한 어떤 비난도 없다.
아주 쉽게 말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그저 그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죽어갔는지, 미군이 얼마나 잔인한지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말이다.
하지만 그런 쉬운 선택을 반레는 비켜간다. 어떤 선정성도 소설에는 없다. 심심할 정도로.
베트남 인민은 명예보다는 정의를 정의보다는 삶을 위해 해방전선에 뛰어든 것 뿐이다. 그 대상이 미제라는 것을 굳이 밝히지 않는 것은 오히려 전쟁 자체에 대한 분노에 집중하게 하는 효과를 주었다.
베트남 군대에서도 비열한 자식은 있고, 관료주의에 대한 역겨움을 토하는 이들도 있고, 그저 그런 정치국원도 있고, 살기 위해 뿔뿔이 흩어지는 대원들도 있고, 유난히 순진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실제 전투에서 이들이 어떻게 뭉치고, 어떻게 싸우고, 어떻게 희생하는지 보여주는 장면은 한 인간이 얼마나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해주기도 한다.
이런 작가의 선택으로 인해 헐리웃에서 만든 베트남 전쟁 영화가 얼마나 비열한지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황천강을 건널 노잣돈이 없어 강주변을 맴돌던 빈 상사는 결국,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망각의 죽을 먹지 않기로 결심한다.
잊지 않기로 결심한다.
기억하고 있는 것이 극심한 고통을 주는데도, 모두가 선택하는 환생의 길을 택하지 않는다.
그저 기억하기로 결심한다.
그 슬픈 선택은 어쩌면, 베트남전을 승리로 이끈 전쟁 세대가 전후 세대에게 남긴 과제이자, 베트남에 씻을 수 없는 죄를 남겨 놓았던 우리에게 남겨진 몫을 말하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