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한 출판기획 출판기획 시리즈 4
이홍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부쩍 편집자들이 쓴 글을 읽을 기회가 많았다. 그리고 그들의 기기묘묘한 글발에 감탄하면서 반할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작가나 번역가나 시인 또는 글쟁이가 아닌 온갖 직종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쓴 글을 많이 읽었지만 의외로 편집자들이 쓴 글은 별로 접하지 못했다. 그런데 왜 편집자가 편집자인가 하는 뻔 한 명제를 잊고 있었단 반성이 들 정도로 이들은 글을 잘 쓴다. 어쨌든 이 책을 읽자 그런 편집자들이 쓴 까무러칠 것 같은 글발의 정수란 생각에 한껏 즐거워하면서도 웃겨 죽을 것 같은 글 사이사이에 날카로움이 번득이고 있어서 조심스럽게 읽게 되는 또 그런 묘한 맛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묘한 맛도 있는 반면 만만한 출판기획이라고 제목은 그러더니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은 전혀 만만하지 않았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출판기획을 꿈꾸는 편집자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다 보니 나처럼 외서 기획과 쓸 만한 글감을 찾아다니는 허접한 독자로서는 이런 알토란같은 내용이 좀 과하기도 하고, 어떤 면에선 그들만의 리그에 몰래 들어와 본 것 같은 황송한 기분도 들었고, 또 한편으론 번역하면서 만난 편집자들에게 들었던 재미난 출판 이야기들을 보따리 꾸린 책으로 만난 기분도 들었다. 하여간 책에 관한 이야기라면 어떤 이야기든 재미있어 하는 나이지만 이 책의 재미와 통쾌함과 시원함은 두 말하면 입이 아플 지경이었다.


앞서 읽어본 강주헌씨의 '기획에는 국경도 없다'가 같은 번역가로서 공감도 느껴지고 전문 편집자가 아닌 번역가로서의 기획에 대한 시각이란 점에서 치즈케이크 같은 맛이 있었다면 이 책은 그야말로 책을 만드는 일로 잔뼈가 굵은 전문 편집자가 날카롭게 벼린 칼로 생선회를 뜨듯 출판계를 부위별로 해부하며 떠내는 맛이 입속에서 살살 녹으면서도 그 살에 바른 와사비의 매운 맛에 콧등이 화끈거릴 정도였다.




그렇게 혼자 미친 사람처럼 웃으면서 즐거워하기 미안하니 안의 내용을 살짝 보면(딸래미의 분홍색 색연필로 열심히 밑줄 그어 가며 읽은 부분) 출판기획자로서 갖춰야 할 열 가지 습관이 있었는데 비단 기획자가 아니라도 누구라도 갖추면 좋을 덕목이라서 열심히 밑줄 쳤고, 대리 번역과 대필에 목매는 출판계의 관행과,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한 눈물겹고도 가열찬 작전들, 콘텐츠 제작자로서 가장 굼뜨게 움직이고 있는 출판계와 열악한 출판사의 경영구조와 경영 마인드에 대한 일침, 콘셉트와 키워드의 구분, 좋은 원고를 보는 눈을 키우기, 외서 기획과 같은 부분은 그야말로 대입 수험서처럼 밑줄로 난도질을 한 형국이 돼버렸다. 

 

다 읽고 나니 저자에게는 참으로 미안하게도 허무감이 밀려온다. 저자의 글이 허무하다는 것이 아니라 책이라는 것이 인류가 살아있는 한 남아 있을 물건이지만 과연 그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열정 하나만으로 살아야 한다는 실상이 별로 변할 것 같지 않아서였다. 출판계를 둘러싼 문제들과 책을 읽지 않는 독자들의 문제를 제갈공명을 회생시킨들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을 것 같고 슈퍼컴퓨터를 두드린들 해결될 것 같지 않다는 불길한 예감이 진득하게 달라붙는다. 그리고 그 출판동네의 변두리를 오락가락하는 삼류무사인 나 역시 열정만 가지고 살기에는 항상 배가 고픈데 말이다. 결론은, 흠... 쩝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