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잣거리의 목소리들 - 1900년, 여기 사람이 있다
이승원 지음 / 천년의상상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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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제목인 '저잣거리의 목소리들'은 바로 대한제국 시절 <대한민보>에 실린 시사만평과 당시 발행된 여러 신문 즉 <독립신문>, <협성회회보>, <매일신문> 등의 3면의 사회 기사의  내용을 바탕으로 다시 사람들의 세상살이와 그들의 목소리를 그려내고 있다. 110년 전의 우리 민족의 세상살이가 어떠했을지 우리는 늘 궁금해한다. 더구나 그 시기는 급박한 13년이라는 대한 제국과 맞물려 있다. 우리가 교과서로 배웠던 내용은 우리나라도 전근대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근대 계몽과 개혁의 시대로 돌입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무지몽매한 백성들은 쉽게 전근대적인 생활과 사고 방식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으므로 결국은 근대와 전근대가 같이 공존할 수밖에 없는 시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재미있었던 내용 중의 하나가 바로 고종이 관우를 신앙으로 받아들여 관왕묘를 여러군데에 지었다는 것이다. 계몽을 부르짖는 시기에 무당과 점쟁이를 궁궐에 들이고, 심지어는 고종과 명성황후를 등에 없고 권력을 행사하기까지 했다고 하니 당시의 사회 분위기가 얼마나 불안했던가를 알 수 있는 한 단면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극장이었던 원각사. 그런데 그 이면에는 원각사가 부적절한 남녀의 만남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다는 것은 놀라웠다. 공연 문화를 보기위한 것이 아니라  이성과의 만남을 위해, 더 나아가 성매매를 하기 위해 몰려들었다고하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목적으로 출입했으면 사복 경찰이 단속을 위해 잠입했다는 기사가 실렸겠는가? 

 

  어찌보면 그 당시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되는 일도 많다. 결국은 우리 인간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세상이니까말이다. 한탕주의는 예나 지금이나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키는 사건의 하나이고, 도박에 빠져 패가망신한 일도 비일비재했다. 화투도 이 시기에 들어왔는데 주로 고관대작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퍼져나갔다한다. 110년 후인 지금까지도 화투가 많은 사람들의 놀이로 사랑받고(?) 있으니 화투의 끈질긴 생명력이 참으로 놀랍다.  

 

  대한제국 13년은 혼돈의 시대였다. <대한민보>에 실린 시사만평들은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풍자와 반어, 언어유희를 통해 조롱과 비판을 하고 있다. 어찌보면 지금보다도 더 자유롭게 기고를 하는 분위기가 이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속시원하게 백성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있었다. 바로 이런 시사만평이 대한제국의 진짜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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