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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지음 / 김영사 / 2020년 5월
평점 :
<죽은 자의 집 청소>는 꼭 한 마디 적고 가지 않을 수 없다. 책 내용은 ‘특별하게 불행한 죽음’의 장소에서 그 특별한 기억과 흔적을 제거하는 역할에 임한 치열한 삶과 사유의 기록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죽음은 낯선 것이 아니고 삶은 죽음을 향해 발짝 씩 다가가고 있는 순간에 불과함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어가는 시기가 오면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정하는 절차에 따라 정리된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평범하게 삶을 마무리하게 된다면 이런 ‘특별한 서비스’는 일반적이지 않고 글자 그대로 특별할 뿐인 것이다.
그런데 나의 죽음을 예측할 수 없듯이 그것을 장담할 수 있는가?
자녀들이 멀거나 다른 이유로 함께하지 않아 소원한 상황, 배우자를 먼저 보내고 홀로 살아가는 이가 불현 듯 떠나게 된다면 유족 대표는 소원하였던 거리만큼 뒷정리에 대한 책임감과 애착이 소홀할 것이고, 이 지점에서라면 이 ‘특별한 서비스’가 일반적 서비스가 될 수도 있다.
이 서비스에 따라 ‘정리되는 입장’에 서 보면 ‘내가 떠나는 그 순간’은 ‘특별한 서비스’가 완료되기 전까지만 살아 있는 세상에 설명될 수 있다. 나의 고립과 상황이 억울하다면 유서가 없더라도 항변의 증거로 작용할 수도 있다. 떠나는 이 입장에서는 세상과 결별하고 난 뒤 그 흔적을 완전히 제거하는 일은 아주 냉혹하고 서운할 수도 있다. 그러나 ‘특별한 서비스’에 임한 자들이야말로 떠나는 이의 마지막을 그 순간을 입장을 검토하고 이해하는 유일한 살아있는 사람일지니 서운하게 볼 수만은 없기도 하다. 죽음의 상황은 주장하고 싶은 내용보다 없애버리고 싶은 부끄러움이 더 많을 것이므로.
나는 혼자 십년을 살던 아버지가 떠나신 후 그 집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쓰시던 침구와 의류만 겨우 분리하였을 뿐 가재도구와 일상용품 들조차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유택과 나의 거주지가 먼 탓도 있지만 가족사 하나하나를 보존과 소멸로 선택하고 분류하는 것은 산업용 쓰레기 포대에 담는 것과 아주 많이 다른 것이다. 첫 해는 슬픔을 추스르는데 당장은 무리라고, 다음 해는 내 삶의 중요한 고비가 있어 잠시 나부터 가다듬고, 다음 해에는 유행병이 번져 먼 지역과 공기교류를 금한다는 국가 질서를 준수하느라, 그럴 듯하게 게으른 변명으로 삼 년이 지나버린 상황이다. 만약 유택이 비싸다면 아주 빨리 정리하였을 수도 있다.
책으로 돌아와서 작가가 그 험난한 직업을 택한 이유가 뭘까? 대면하여야 하는 일반적이지 않은 고난을 자처한 이유가 뭘까? 단지 사회적 역할의 일부로 여긴 돈 되는 생계의 일환이었을까? 특수 기술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닌듯한데 책이 유명해지면 그 일은 그만둘 것인가?
여러 가지 질문이 앞서지만 떠나는 이에 대한 경의와 이해, 즉물적인 사회시스템에 대한 참을성 있는 태도, 깊이 있는 사유와 철학적 고뇌에 박수를 보낸다. 2021-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