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의 연말 리스트는 매년 사람들의 기대를 모은다. 그의 음악 플레이리스트는 세련된 취향을 보여주며, 다양한 장르와 시대를 아우르는 균형감각이 돋보인다. 이러한 선택이 단순히 개인적 취향의 반영인지, 아니면 포괄적인 메시지를 담은 의도적인 선택인지에 대한 궁금증도 뒤따른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그는 정치 무대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꾸준히 문화적 방향성을 제시하며, 독특하면서도 상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바마의 리스트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다는 점은 분명하다.


책 리스트에서 한강의 이름이 그 리스트에 없다는 점은 아쉬움을 남긴다. 물론, 오바마의 리스트가 늘 모든 것을 포괄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어쩌면 2025년의 그의 리스트에서는 한강의 이름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시간은 책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하기도 하니, 그녀의 작품이 그 리스트에 오르는 날을 기다리는 것도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나만의 ‘연말 리스트’를 만들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기억을 정리하고 체계화하는 일이 예상보다 큰 위안을 준다는 것을 점점 깨닫는다. 음악, 책, 영화 속에서 나를 깊이 흔들었던 순간들을 돌아보며, 그런 기록이 단순한 개인의 저장소를 넘어 누군가에게 작은 영감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결국, 기록은 나 자신을 알아가는 여정이다. 취향을 되돌아보고 확장하는 과정이자,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가 되어 미래를 준비하는 자산이 된다. 무엇보다, 이러한 기록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닿아 새로운 대화의 시작점이 된다면,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올해의 책 



















올해의 음반 













올해의 영화

Dìdi (弟弟)

The Piano Lesson








올해의 시도

알라딘 가입


올해의 운동

걷기


올해의 발견

임윤찬


올해의 행복

사무실


올해의 기쁨

3.974


올해의 슬픔

-2.99


뒤돌아보니, 좋았던 기억들보다 아쉬움과 안 좋았던 기억들이 더 크게 남아 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아쉬움들은 묻어두고, 새롭게 시작된 을사년에는 희망을 품고 나아가고 싶다.


2025년, 내 삶과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가 가득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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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동산 열린책들 세계문학 22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오종우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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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체호프는 인간 내면과 사회적 갈등을 섬세하게 포착한 단편 소설의 대가로, 짧은 이야기 속에 삶의 희로애락을 압축적으로 담아냈다. 그의 마지막 희곡인 『벚꽃동산』은 단편에서 보여준 문학적 정수를 확장된 서사로 풀어낸 작품이다. 벚꽃 동산이라는 상징적 공간을 배경으로, 상실과 변화, 그리고 기억의 복잡성이 얽힌 인간 군상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내가 가장 깊은 울림을 느낀 인물은 다름 아닌 저택의 늙은 하인 피르스다. 그의 존재는 단순히 과거의 잔재를 넘어, 변화에 휩쓸린 인간 조건의 본질을 묵직하게 드러낸다.


피르스는 희곡에서 대사도 많지 않고 사건의 주도권도 없다. 그는 농노 해방 이후에도 여전히 류보비 가문에 충성하며 과거의 흔적 속에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존재 자체가 작품의 정서를 집약한다. 마지막 무대에 홀로 남아, 희미해진 정신 속에서도 과거를 더듬으며 중얼거리는 그의 모습은 단순히 한 시대의 끝을 알리는 것을 넘어, 상실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조건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귀가 어두워지고 무력해진 피르스는 더 이상 자신이 지키려는 세계에 유효하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 그의 행동과 말 속에는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과거의 질서와 관습 속에 갇힌 한 인간의 슬픔과 무력함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특히 그의 마지막 대사, “살긴 살았지만 도무지 산 것 같지가 않아”는 단순히 한 인물의 고독을 넘어, 모든 과거의 유산과 인간 조건의 허망함을 응축한 선언과도 같다. 이 말은 과거를 지키려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삶의 허무함, 그리고 시대의 변화 속에서 소외된 자의 깊은 고독을 절절히 담고 있다.


체호프는 피르스의 마지막 장면을 통해 변화와 상실의 비극을 극대화한다. 텅 빈 무대에 홀로 남은 피르스, 멀리서 들려오는 나무를 찍는 도끼 소리는 낡은 체제의 종말과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암시한다. 그러나 이 도끼 소리는 희망의 서곡이라기보다는, 상실과 쓸쓸함이 스며든 잔향에 가깝다. 피르스는 새로운 시대를 위해 사라져야 했던 과거의 잔해이자,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잊혀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연민의 초상이다.


『벚꽃동산』에서 피르스는 잃어버린 낙원의 희미하게 사라져가는 그림자이자, 변화의 급류에 휩쓸린 과거의 초상이다. 흔히 낡은 시대의 우스꽝스러운 유물로 여겨지지만, 나는 이 작품에서 피르스를 그 이상의 존재로 본다. 무대 위 가장 보잘것 없고 연약해 보이는 노인 피르스는, 역설적으로 『벚꽃동산』의 그 누구보다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무너져가는 과거의 성벽에 기대어 서서, 그 너머로 밀려오는 변화의 파도를 온몸으로 받아낸다. 그의 마지막 독백은 한낱 늙은 하인의 넋두리가 아니다. 그것은 한 시대의 종말에 바치는 애가이자, 소멸해가는 과거의 유산을 향한 경건한 묵념이다.


체호프는 피르스를 통해 변화가 단지 희망만을 약속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의 침묵과 고독은 섣부른 낙관 뒤에 드리운 허망함과 상실의 깊이를 드러내며, 『벚꽃동산』이 품고 있는 비극적 아름다움을 정점으로 끌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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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24-27


1. 오늘은 동정녀 마리아의 무염시태 성축일일 것이다. 그녀는 축복받은 동정녀에게 면류관을 씌우도록 선발되었을 것이다. 그녀 자신도 죄가 없고 순수하며 그의 가슴이 순결할 것이다. 그녀는 침묵할 것이다. 자주. 거의 언제나, 아닌 때보다는 대부분 언제나. 너무나도 자주.

--> Today is the Feast of the Immaculate Conception of the Virgin Mary. She would have been chosen to place the crown on the Blessed Virgin. She is without sin and pure, and her heart is spotless. She will remain silent. Often. Almost always, more often than not. So very often.


2. "오 나의 하느님, 당신을 욕되게 했음을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당신의 마땅한 벌 때문에 나의 모든 죄를 혐오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의 죄는 당신 하느님, 오직 선하며 나의 모든 사랑을 마땅히 받으셔야 할 당신을 모독하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기를 그리고 죄를 지을 듯한 경우를 피할 것을 하느님 은총에 힘입어 굳게 결심합니다. 아멘."

--> "O my God, I sincerely apologize for having offended You. I detest all my sins because of Your just punishments, but most of all because my sins have offended You, my God, who are all good and deserving of all my love. With the help of Your grace, I firmly resolve to sin no more and avoid the near occasion of sin. Amen."


3. 거의 죄를 지을 듯한 경우. --> Situations that might lead to sin.


4. 프랑스는 전에는 삼십이 도로 나뉘어 있었다. 예를 들어 브르타뉴, 프오방스, 프랑슈콩트 등으로, 그러나 천칠백팔십구 년 혁명 이후로는, 팔십육 군으로 나뉘었다. 군에 주어진 이름들은 거의 다 그 군을 통과하는 강의 이름에서 나온다. 루아르, 센 등; 어떤 것들은 산의 이름에서 빌려온 것이고, 소수의 이름은 위치에서, 예를 들어 북쪽의 군, 또는 토질에서 따오기도 했다. 각 군은 지사에 의하여 행정 관리가 이루어진다. 파리는 프랑스의 수도일뿐만 아니라, 전 셰계의 수도다. 파리에는 약 만 명의 미국인이 있는데, 이들은 천국을 가기 위해서라면 이 세상을 등지겠다고 하는 것을 아는가?

--> France was once divided into thirty-two provinces, such as Brittany, Provence, and Franche-Comté. However, after the Revolution of 1789, it was reorganized into eighty-six departments. Most of these departments were named after the rivers flowing through them, such as the Loire and the Seine. Some were named after mountains, while a few were derived from geographical features like the department of Nord (North) or natural elements like forests. Each department is governed administratively by a prefect. Paris is not only the capital of France but also regarded by many as the world's capital. Did you know that about ten thousand Americans live in Paris, and they claim they would rather leave this world to enter heaven only if it required them to leave Paris?


5. 그녀는 전화하다 그녀는 믿다 그녀는 누구에게 전화하다 대답이 없으니까 계속 전화하다 그녀는 믿다 그녀는 전화하고 상대편은 반드시 들어야 한다. 상대편은 반대쪽이 느끼는 것을 꼭 알아야 한다. 

그녀는 종잇장들을 받다 모모씨 방 앞으로 보내진 절대로 보여서는 안 될 읽혀서도 안 될 알려져서도 안 될 만약 이름이 이름이 알려지면 만약 이름만이라도 보이고 들리고 언급되고 읽히면 안 되지 절대로 그녀는 감추다 필수적인 말들을 주어와 동사를 연결 짓는 말들 그녀는 감추어 적는다 꼭 필요한 말들은 위장되어야 한다 발명되어야 한다 그녀는 다른 영상들을 시험해 보다 필수적이고 보이지 않는

--> She calls, she believes she's reaching someone. No answer, so she calls again and again. She believes she calls, and the other person has to listen. They need to understand what she feels.  

She receives sheets of paper sent to Mr. So-and-so's room, papers that must never be seen, read, or known, if the name, even just the name, becomes known, if it appears, is heard, mentioned, or read, it must not happen, not at all, she hides essential words, the words that connect subjects and verbs, she conceals and writes them, the essential words must be disguised, invented, she experiments with other images, essential and invisible


6. 우리는 런던을 일곱 시 반에 떠나 두 시간의 여행 후에 도버에 도착했다. 배는 열 시에 항구를 떠났다. 해협을 건너는 여행은 단지 한 시간 반이 걸릴 뿐이었다. 바다는 고요했고 아무런 요동도 느끼지 않았다. 칼레에서 한 시간을 쉬면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은 좀 비쌌지만 대접을 잘 받았다. 저녁 여섯 시에 우리는 파리에 닿았다. 여행 전체는 열 시간 남짓 그리고 비용은 오십 프랑밖에 안 드는 일이었다.

--> We left London at half past seven and arrived in Dover after a two-hour journey. The ship left the harbor at ten o'clock. The trip across the Channel took only an hour and a half. The sea was calm, and we felt no motion at all. We rested for an hour in Calais and had lunch. The lunch was a bit expensive, but the service was excellent. At six in the evening, we arrived in Paris. The entire journey took just over ten hours, and the cost was only fifty francs.


7. 잊으면 잊힐 것이고 눈을 감으면 잊힐 것이고 말을 하지 않으면 잊힐 것이고 시인하지 않으면 잊힐 것이고 죄처럼 말을 하면 그것들은 다 용서되어 잊힐 것이고 그리고 다 잊힐 것이다.

--> If you forget, it will be forgotten. Close your eyes, and it will be forgotten. Say nothing, and it will be forgotten. Deny it, and it will be forgotten. Speak of it as a sin, and it will be forgotten and forgiven. All will be forgotten.


8.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아멘. 신부님 저를 축복하여주십시오, 저는 죄를 지었습니다. 저의 마지막 고백성사는... 기억이 안 납니다. 몇이나 되는지 대봐요; 한. 두. 세. 주 달 해. 

모든 죄명을 말하시오. 

모든 대죄의 죄명과 있다면, 몇이나 있는지. 

모든 소죄의 죄명을 말하고, 몇이나 되는지. 

고행을 받을 것. 

신부님 감사합니다를 말할 것. 

고행을 다 말할 것.

--> In the name of the Father, and of the Son, and of the Holy Spirit. Amen. Father, please bless me, for I have sinned. I cannot remember when my last confession was. Guess how long it has been: a day, a week, a month, a year. 

Name all the sins. 

Name all the mortal sins and, if any, how many there are. 

Name all the venial sins and how many there are. 

You will receive penance. 

You must thank Father. 

You must recount all the penance.


***영어에서는 'Father'라는 단어가 성부(하느님)와 신부(사제)를 모두 가리킬 수 있다. 성부를 뜻할 때는 보통 대문자 'Father'로 표기하며, 이는 삼위일체 중 하느님을 의미한다. 반면, 신부를 뜻하는 'Father'는 직함으로 사용되며, 맥락에 따라 자연스럽게 구분된다. 예를 들어, 'In the name of the Father'는 하느님을 의미하고, 'Father, please bless me'는 신부를 지칭한다.


9. 라 마르세예즈를 작곡한 젊은 시인은 루제 드 릴이라고 불리는 사람이었다. 그는 천칠백구십이 년 삼월 아니면 사월, 스트라스부르에 있을 때 그것을 썼다. 그는 밤을 새워 이 아름다운 노래를 작곡했다; 그러나 그 이튿날 아침까지는 아무것도 적어놓지 않았다. 그는 작곡한 것을 써놓은 후에, 친구 디트리흐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의 집으로 갔다. 친구들 앞에서 그는 자기의 새 노래를 불렀다. 시장의 부인이 피아노를 반주했다. 모두 박수를 쳤다. 곧 프랑스의 곳곳에서 이 노래가 불렸다. 


"신부님 축복해주십시오, 저는 죄를 지었습니다. 저의 마지막 고백성사는...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 납니다... 이것들이 저의 죄입니다."

--> The young poet who composed La Marseillaise was a man named Rouget de Lisle. He wrote it in March or April of 1792 while in Strasbourg. He spent the entire night composing this beautiful song; however, by the next morning, he had written nothing down. After writing down what he had composed, to show it to him, he went to his friend Dietrich's house. In front of their friends, he sang his new song, accompanied on the piano by the mayor's wife. Everyone applauded. This song was sung all over France soon.


"Father, bless me, for I have sinned. I don't remember when my last confession was... These are my sins."


차학경의 『딕테』발췌문을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은 단순한 언어 변환을 넘어, 차학경의 독특한 문체와 정체성, 역사적 맥락에 대한 성찰을 요구했다. 특히 단편화된 언어, 신학적 언어, 역사적 사실과 개인적 해석의 조화, 잊혀짐과 반복의 역설 등 『딕테』의 주요 특징들은 짧은 번역 과정에서 다양한 고민을 낳았다.


단편화된 언어: 차학경의 텍스트는 문법적 완결성보다는 의도적으로 단편화된 구조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그녀는 전화하다 그녀는 믿다 그녀는 누구에게 전화하다 대답이 없으니까 계속 전화하다"와 같은 구절은 반복과 생략을 통해 독자의 감정적 반응을 유도한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리듬과 어조를 영어로 옮기기 위해 문법적 규칙을 유연하게 적용하고, 원문의 감정을 최대한 살리는 데 집중했다.


신학적 언어: "모든 대죄의 죄명과 있다면, 몇이나 있는지"와 같은 구절은 가톨릭 교리에 대한 이해를 요구했다. "mortal sin"과 "venial sin"과 같은 용어는 단순히 "큰 죄"와 "작은 죄"로 번역될 수 없는 깊이를 지니고 있다. 차학경의 텍스트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고백과 용서의 주제는 그녀가 단순히 종교적 신념에서 비롯된 죄책감 이상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이민자로서의 정체성과 문화적 단절,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경험에 대한 내적 갈등을 암시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텍스트에 담긴 죄책감, 용서, 구원의 정서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교리적 맥락을 고려했다.


역사적 사실과 개인적 해석: 라 마르세예즈 작곡과 관련된 구절은 역사적 사실과 개인적 서술이 결합된 형태를 보여준다. 이를 번역하면서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서술에 담긴 감정적 울림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잊혀짐과 반복: "잊으면 잊힐 것이고"와 같은 반복적인 구절은 차학경이 잊혀짐과 기억의 역설을 탐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번역 과정에서 반복의 리듬과 원문의 암시적인 힘을 영어로 재현하는 데 주력했다. 특히 이 주제는 디아스포라와 정체성의 단절을 탐구하는 차학경의 작품 세계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해석했다.


번역은 재구성: 『딕테』발췌문 번역을 통해 번역이 단순히 언어를 옮기는 작업이 아니라 텍스트의 본질을 재구성하는 창조적 행위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차학경의 문장은 단순한 소통 수단을 넘어 역사, 정체성, 기억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이러한 공간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단어 하나하나에 깊이 몰입해야 했다.


결론적으로, 차학경의 『딕테』는 문학, 역사,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이다. 발췌문 번역은 이 작품의 복잡성과 깊이에 접근하는 특별한 경험이었으며, 번역이 단순한 언어적 연습이 아닌 해석과 창조의 행위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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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18

프랑스어로 쓰시오: 아쉽게도 나는 프랑스어를 전혀 모른다. 그래서 그나마 익숙한 영어로 글을 써보았다. 1976년, 차학경이 프랑스에서 영화 이론을 공부했다고 한다. 어쩌면 그 시기에 그녀도 프랑스어를 배우기 위해 이런 식으로 연습하지 않았을까? 스스로 문장을 만들고, 그것을 다른 언어로 옮겨보는 과정은 언어를 익히는 데 있어 아주 훌륭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문장들은 완벽히 자연스럽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녀를 따라 해본다. 다음에는 프랑스어로 써보고 싶다.


1. 이것을 더 좋아한다면, 즉시 내게 그렇다고 말하세요.

-> If you prefer this, let me know right away.


2. 그 장군은 단지 잠깐 동안 이곳에 남아 있었다.

-> The general stayed here only for a brief moment.


3. 당신이 그렇게 말을 빨리 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당신을 더 잘 이해했을 것이요.

-> If you hadn’t spoken so quickly, they would have understood you better.


4. 나뭇잎들은 아직 떨어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한 며칠 동안은 안 떨어질 것이요.

-> The leaves haven’t fallen yet and won’t fall for several more days.


5. 그것은 당신에게 잘 맞을 것이요.

-> That will suit you well.


6. 이 나라의 국민들은 당신 나라의 국민들보다 덜 행복합니다.

-> The people of this country are less happy than those in your country.


7. 다음 달 십오 일에 다시 오시오, 더 빨리도 더 늦게도 말고.

-> Return on the fifteenth of next month, neither earlier nor later.


8. 나는 그를 우연히 아래층에서 만났습니다.

-> I happened to meet him downstairs.


9. 근면하라: 일을 많이 할수록 더 잘 성공한다.

-> Be diligent: the more you work, the more successful you’ll be.


10. 일이 어려울수록, 더욱 명예로운 노동이다.

-> The more difficult the work, the more honorable it is.


11. 사람은 자신을 칭찬할수록, 남들은 그를 칭찬하고 싶은 마음이 덜 생긴다.

-> The more people praise themselves, the less others feel inclined to praise them.


12. 다음에는 좀 더 조용히 가시오.

-> Next time, please be a bit more qui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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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힛 맨>(Hit Man)은 2023년 개봉한 코미디와 로맨스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작품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된 스토리가 인상적이다. 특히, 프로이드의 이드(id), 자아(ego), 초자아(superego)가 주인공의 삶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는 듯한 전개는 관객의 흥미를 자극한다.


주인공 게리 존슨(글렌 파월 분)은 철학과 심리학을 가르치는 교수이자 경찰서의 IT 담당자로 이중의 삶을 산다. 그는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평범한 인물이지만, 경찰의 함정 수사 작전에 투입되면서 자신의 숨겨진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 설정 자체가 흥미롭다. 철학을 가르치는 인물이 가짜 청부살인업자가 되어 사람의 심리를 꿰뚫고 그에 맞는 캐릭터로 변신한다는 점에서, 그는 마치 무대 위 배우처럼 다양한 인격을 연기하는 존재로 거듭난다. 그의 변화는 니체의 '열정적으로 살아라'는 강의 주제와 맞물리며 영화의 주제의식을 강화한다.


게리는 맡은 임무에서 러시아의 거친 남자, 유럽풍의 세련된 범죄자, 무기를 좋아하는 미국 남부의 남자로 변신하며 각양각색의 캐릭터를 소화해낸다. 특히 "나쁜 파이는 없어(There’s no bad pie)"라는 대사로 대표되는 그의 기조는 그

가 내세우는 가벼운 인생 철학처럼 보이지만, 그의 행동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 본성의 깊이를 시사한다. 그는 단순히 역할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원하는 판타지를 제공하는 동시에 그들을 체포하는 존재로 자리잡는다. 이 과정은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 이론과도 연결된다. 게리가 청부살인업자로서의 새로운 자아 '론'을 만들어내고, 그 과정에서 자아(ego)와 초자아(superego) 사이의 균형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본래의 게리는 자아로서 사회적 규범에 순응하며 살아왔지만, '론'이라는 인격은 그가 억눌러온 이드(id)를 해방시키고 새로운 자아로 재탄생하는 계기가 된다.


영화의 로맨스 요소는 매력적인 서브플롯으로 작용한다. 게리가 매디슨(아드리아 아르호나 분)을 만나면서 그의 인생은 다시 한 번 전환점을 맞이한다. 매디슨은 남편을 제거하기 위해 '청부살인업자'를 고용하지만, 게리는 단순한 함정 수사를 넘어 그녀의 삶에 개입한다. 게리는 매디슨에게 그녀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다른 선택지를 제시하며 스스로의 정체성에도 변화를 일으킨다. 그녀의 존재는 게리의 숨겨진 '론'이라는 새로운 자아를 더욱 확립시킨다. 관객은 그가 단순히 범죄자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로만 보지 않게 된다. 오히려 그는 타인의 삶을 바꾸는 존재로, 자신의 인생마저 바꾸는 역설적인 인물이 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 중 하나는, "청부살인업자는 영화에서만 존재한다"는 메시지다. 이는 다소 충격적인 인식의 전환을 가져온다. 많은 사람들은 영화나 드라마의 영향으로 청부살인업자가 현실에도 존재한다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영화는 유머와 아이러니로 전달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 존재를 믿고 싶어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절박한 심정이 그들에게 그런 판타지를 부여한다. 영화는 단순한 코미디로 끝나지 않고, 사람들의 은밀한 욕망과 무기력감을 비추는 거울로 기능한다.


게리의 변화는 칸트의 자아 이론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인간의 자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환경과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유동적 존재라는 인식이 영화 전반에 깔려 있다. 게리라는 평범한 인물이 '론'이라는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내고, 그 자아가 다시 그의 삶을 지배하는 과정은 자아의 유동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평범한 대학 교수였던 게리가 사람들이 선망하는 매력적인 인물로 변신하는 과정은 단순히 외형의 변화만이 아니라 내면의 변화를 상징한다.


또한, 글렌 파월의 연기력은 이 영화의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이전의 그에 대한 인상은 다소 밋밋하고 자만심이 느껴지는 이미지였으나, 영화에서 그는 능청스러운 코미디와 진중한 철학적 탐구의 경계를 절묘하게 넘나든다. 특히, 그가 각본을 공동 집필했다는 점도 그의 잠재력을 입증하는 요소다. 단순히 외모와 매력으로만 소비되던 배우가 작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면서, 배우의 스펙트럼이 훨씬 넓어졌음을 보여준다. 특히, 그의 어머니가 들고 있던 "Stop Trying To Make Glen Powell Happen"이라는 피켓은 배우로서의 자기 인식과 유머 감각을 드러내는 장치로 작용하며, 관객에게 그에 대한 호감을 불러일으킨다.


영화 <힛 맨>은 단순한 범죄 코미디 이상이다. 그것은 인간의 자아와 정체성의 복잡한 문제, 삶의 열정과 억압된 욕망의 충돌을 다룬다. 로맨스와 범죄, 코미디와 철학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이 작품은 사람들에게 단순한 웃음 그 이상을 선사한다. 과연 우리 내면에는 어떤 또 다른 자아가 숨어 있을까? 그 자아는 언제, 어떻게 깨어날까? 게리는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눈에 띄지 않는 옷을 입고, 평범한 혼다를 모는 인물이다. 혼다는 많은 사람들이 모는 가장 흔한 자동차 중 하나로, 특별히 주목받을 일이 없다. 게리는 이러한 평범함을 선택함으로써 외부의 시선을 피하고자 한다. 평범함을 선택한 그의 삶은 단조로워 보이지만, 그는 자신의 내면에 숨어 있던 또 다른 자아 '론'을 깨우며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게리의 변화를 통해 그 가능성을 상상하게 만든다. 화려함이나 과시보다 내 안에 숨은 가능성을 찾아내는 삶. 그 가능성은 어쩌면 이미 내 안에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유머와 진지함의 균형을 유지하며, 관객에게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탁월한 성취를 이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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