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힛 맨>(Hit Man)은 2023년 개봉한 코미디와 로맨스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작품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된 스토리가 인상적이다. 특히, 프로이드의 이드(id), 자아(ego), 초자아(superego)가 주인공의 삶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는 듯한 전개는 관객의 흥미를 자극한다.


주인공 게리 존슨(글렌 파월 분)은 철학과 심리학을 가르치는 교수이자 경찰서의 IT 담당자로 이중의 삶을 산다. 그는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평범한 인물이지만, 경찰의 함정 수사 작전에 투입되면서 자신의 숨겨진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 설정 자체가 흥미롭다. 철학을 가르치는 인물이 가짜 청부살인업자가 되어 사람의 심리를 꿰뚫고 그에 맞는 캐릭터로 변신한다는 점에서, 그는 마치 무대 위 배우처럼 다양한 인격을 연기하는 존재로 거듭난다. 그의 변화는 니체의 '열정적으로 살아라'는 강의 주제와 맞물리며 영화의 주제의식을 강화한다.


게리는 맡은 임무에서 러시아의 거친 남자, 유럽풍의 세련된 범죄자, 무기를 좋아하는 미국 남부의 남자로 변신하며 각양각색의 캐릭터를 소화해낸다. 특히 "나쁜 파이는 없어(There’s no bad pie)"라는 대사로 대표되는 그의 기조는 그

가 내세우는 가벼운 인생 철학처럼 보이지만, 그의 행동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 본성의 깊이를 시사한다. 그는 단순히 역할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원하는 판타지를 제공하는 동시에 그들을 체포하는 존재로 자리잡는다. 이 과정은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 이론과도 연결된다. 게리가 청부살인업자로서의 새로운 자아 '론'을 만들어내고, 그 과정에서 자아(ego)와 초자아(superego) 사이의 균형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본래의 게리는 자아로서 사회적 규범에 순응하며 살아왔지만, '론'이라는 인격은 그가 억눌러온 이드(id)를 해방시키고 새로운 자아로 재탄생하는 계기가 된다.


영화의 로맨스 요소는 매력적인 서브플롯으로 작용한다. 게리가 매디슨(아드리아 아르호나 분)을 만나면서 그의 인생은 다시 한 번 전환점을 맞이한다. 매디슨은 남편을 제거하기 위해 '청부살인업자'를 고용하지만, 게리는 단순한 함정 수사를 넘어 그녀의 삶에 개입한다. 게리는 매디슨에게 그녀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다른 선택지를 제시하며 스스로의 정체성에도 변화를 일으킨다. 그녀의 존재는 게리의 숨겨진 '론'이라는 새로운 자아를 더욱 확립시킨다. 관객은 그가 단순히 범죄자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로만 보지 않게 된다. 오히려 그는 타인의 삶을 바꾸는 존재로, 자신의 인생마저 바꾸는 역설적인 인물이 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 중 하나는, "청부살인업자는 영화에서만 존재한다"는 메시지다. 이는 다소 충격적인 인식의 전환을 가져온다. 많은 사람들은 영화나 드라마의 영향으로 청부살인업자가 현실에도 존재한다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영화는 유머와 아이러니로 전달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 존재를 믿고 싶어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절박한 심정이 그들에게 그런 판타지를 부여한다. 영화는 단순한 코미디로 끝나지 않고, 사람들의 은밀한 욕망과 무기력감을 비추는 거울로 기능한다.


게리의 변화는 칸트의 자아 이론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인간의 자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환경과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유동적 존재라는 인식이 영화 전반에 깔려 있다. 게리라는 평범한 인물이 '론'이라는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내고, 그 자아가 다시 그의 삶을 지배하는 과정은 자아의 유동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평범한 대학 교수였던 게리가 사람들이 선망하는 매력적인 인물로 변신하는 과정은 단순히 외형의 변화만이 아니라 내면의 변화를 상징한다.


또한, 글렌 파월의 연기력은 이 영화의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이전의 그에 대한 인상은 다소 밋밋하고 자만심이 느껴지는 이미지였으나, 영화에서 그는 능청스러운 코미디와 진중한 철학적 탐구의 경계를 절묘하게 넘나든다. 특히, 그가 각본을 공동 집필했다는 점도 그의 잠재력을 입증하는 요소다. 단순히 외모와 매력으로만 소비되던 배우가 작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면서, 배우의 스펙트럼이 훨씬 넓어졌음을 보여준다. 특히, 그의 어머니가 들고 있던 "Stop Trying To Make Glen Powell Happen"이라는 피켓은 배우로서의 자기 인식과 유머 감각을 드러내는 장치로 작용하며, 관객에게 그에 대한 호감을 불러일으킨다.


영화 <힛 맨>은 단순한 범죄 코미디 이상이다. 그것은 인간의 자아와 정체성의 복잡한 문제, 삶의 열정과 억압된 욕망의 충돌을 다룬다. 로맨스와 범죄, 코미디와 철학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이 작품은 사람들에게 단순한 웃음 그 이상을 선사한다. 과연 우리 내면에는 어떤 또 다른 자아가 숨어 있을까? 그 자아는 언제, 어떻게 깨어날까? 게리는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눈에 띄지 않는 옷을 입고, 평범한 혼다를 모는 인물이다. 혼다는 많은 사람들이 모는 가장 흔한 자동차 중 하나로, 특별히 주목받을 일이 없다. 게리는 이러한 평범함을 선택함으로써 외부의 시선을 피하고자 한다. 평범함을 선택한 그의 삶은 단조로워 보이지만, 그는 자신의 내면에 숨어 있던 또 다른 자아 '론'을 깨우며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게리의 변화를 통해 그 가능성을 상상하게 만든다. 화려함이나 과시보다 내 안에 숨은 가능성을 찾아내는 삶. 그 가능성은 어쩌면 이미 내 안에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유머와 진지함의 균형을 유지하며, 관객에게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탁월한 성취를 이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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