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환자의 해방운동에서 의식화는 ‘정신의료 시스템‘의 핵심 가설, 즉 누군가는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고, 그들에게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 의료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가설 자체를 해체했다. 토머스 사즈 등에게서 영감을 받은 당시의 담론은 정신의학을 사회적 통제의 한 형태로 보았다. 사회가 달갑게 여기지 않는 행동을 의료화해 ‘치료‘를 위한 구실로 만들고, 정상적인sane 행동 방식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참여자들은 서로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정신의료 시스템이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지않았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 P51
생존자 담론에 함축된 의미는 분명하고 강력하다. ‘환자‘라는 용어, 그리고 그 용어에 담겨 있는 의존성과 취약성의 의미는 생존자 담론에서 마침내 폐지된다. - P57
그리스도교인들은 성서 시대부터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아들‘, ‘성자 하느님‘ 등으로 일컫곤 했다. 그리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세례를 베풀었다. 그러나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곧 예수가 어떤 의미에서 하느님인지, 또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령의 관계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 논의할 여유는 313년 밀라노 칙령 이후에야 비로소 마련되었다. - P149
그리스도교 역사의 첫 몇 세기를 흔히 ‘교부 시대‘ patristic period라고 한다. 교부들은 그리스도교 역사상 처음으로 성서를 주해하는 원칙을 세웠고, 교리를 설명하기 위한 정제된 언어를 확립했다. 또 그리스 철학의 방법론과 풍요로움을 차용하여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것을 보다 깊이 있고 분명하게 이해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 P159
베이는 머릿속으로 그 곡에 맞춰 자신만의 가사를 붙였다. 언젠가는 모든 것이 바다로 떨어지지만 어떤 것들은 다시 기어 나와 새로운 것으로 변한다는 내용의 가사를. - P103
토루 스님이야 성직자다운 말을 해야 하겠지만 삶이 두 개로 쪼개진 마당에 영적 보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나는 죽은 아내가 플라스틱에 갇힌 목소리가 아닌 진짜로 돌아오길 바라고 아들이 다시 나를 사랑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 P216
궁금해졌다. 언제쯤이면 웃음과 망각과 옆 트레일러 거주자와 나누는 슬픈 섹스 외에는 중요한 게 하나도 없는 평행 우주에 한 발을 걸치게 될까.공원에서 일한 지 두 달 되었다는 얘기는 내가 오시리스의 전차에 태워 보낸 아이들이 거의 150명에 이른다는 뜻이었다. - P72
앞 베란다에 서서히 햇살이 가득 들어차면서 웃음의 도시에서 또 하루가 시작되고 있음을 예고했다. 그 순간 우리는 정적에 휩싸였다. 안락사 공원이 기를 쓰고 감추려 했던 엄숙함 같은 게 느껴졌다. - P91
그들은 나 같은 사별 조정관에게 애도 호텔의 꼭대기 층에 있는 원룸을 제공했다. 동료 중에는 세상을 구하고 있다는 순진한 생각을 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건 그저 산처럼 쌓인 채 화장을 기다리고 있는 북극 전염병 희생자들과 스위트룸에서 사랑하는 이들의 시체 옆에 웅크리고 앉아 사별의 상처를 달래고 싶어 하는가족들을 상대하는 벨보이를 좀 좋게 부르는 것에 불과했다. 어느 날이든 지역 병원에서 사망한 이들이 생물재해 자루에 담긴채 지하실 복도에 줄지어 늘어서서 방부 처리의 세 가지 과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멸균, 방부, 항균 가소화 처리. 가족들은 작별인사를 나눌 시간을 벌었겠지만 우리 화장터는 수요를 따라잡느라 고군분투했다. 내가 하는 일은 무슨 로켓 과학도 아니었고 일을 견딜 수만 있다면 보수도 짜지 않았다. 애도 호텔이 문을 열고 장례 시장을 장악한 후 거의 3년 동안 나는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며 내 이야기도 거의 입에 올리지 않은 채 캘리포니아 킹사이즈 침대에서 소각로까지 시체를 날랐다. - P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