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이긴 사람들…하워드 진 | 난장
 

미국 역사학자 하워드 진에게 역사를 기술하는 것은 결코 중립적 행위가 아니다. 그는 역사를 씀으로써 인종차별, 성(性) 편견, 계급불평등 그리고 국가의 오만함 같은 문제가 중요하다는 점을 끊임없이 환기시킨다. 그의 작업은 권력과 체제에 맞선 민중들과 흑인들의 알려지지 않은 저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35편의 칼럼과 에세이를 묶어놓은 책은 그의 그런 인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대표적 저서 ‘미국민중사’에서 번득이는 시선이 책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다만 그 시선이 투시하는 곳이 먼 과거가 아니라 21세기 몇 년간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점령에 반대하는 전·현직 참전군인들과 군무원들의 단체인 ‘전쟁에 반대하는 이라크 참전용사들’이 지난 3월 워싱턴 DC에서 전쟁에 반대하는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는 모습.

저자는 미국 역사교과서에서 보편화된 영웅숭배에 직격탄을 날린다. 건국의 아버지, 위대한 사상가, 전쟁 영웅 따위가 부각되는 역사는 후세들에게 잘못된 가치를 주입한다는 것이 이유다. 가령 정치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마지못해 대세를 따라 노예제 폐지를 주창한 링컨보다 노예제에 맞서 투쟁한 시민이 더 가치있는 인물이라는 주장이다. 저자는 “불의와의 전쟁에 몸던진 무수한 시민 영웅이 있지 않은가”라고 되물으며 역사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 코드 핑크, 신디 시핸과 같은 시민의 힘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역사책에는 없는 ‘기념되지 않는 영웅’을 기억하고 주변에서 그런 영웅을 끊임없이 찾고 기리는 노력을 주문한다.



저자는 미국의 역사가 군사적 성공을 기뻐하고 국가 지도자들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식의 감정적 만족으로 가득 차 있다고 꼬집는다. 그런 감정은 잘못된 애국주의를 낳게 된다고 한다.

정부의 정책에 아무런 의문을 던지지 않고 그 정책을 지지하는 경우가 그런 애국주의다. 그렇게 되면 국가와 정부를 동일시하게 되고 무조건적 복종과 애국주의를 혼동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이라크 전쟁에 보낸 미국인의 ‘이해못할’ 지지가 그 가운데 하나이다. 이라크 전쟁 희생자는 정부를 위해 죽은 것이지 국가를 위해 죽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 저자의 해석이다. 차라리 부시를 위해 죽은 것이라는 표현이 더 맞다고 한다. 일방적 전쟁과 같은 타자를 배척하는 애국주의는 미국 역사가 영웅을 잘못 선정했기 때문에 빚어진 현상이기도 한 것이다.

책은 곳곳에서 미국 역사의 오만함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최근에는 이라크 전쟁이 대표적이다. 이라크 전쟁은 ‘제국의 오만’으로 정의된다. 그 오만함은 미국의 역사에서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미국은 독립전쟁 이후 대외관계에서 줄기차게 오만함을 과시해 왔다. 미국이 발을 담근 모든 전쟁들은 오만함의 결정체다.

저자는 오만함의 배경에 권위주의 철학이 깔려있음을 내다본다. 권위주의 철학은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토대로 한다. 한국전쟁에서 300만명이 죽은 것은 북한의 위협을 차단한다는 이유로, 그레나다 침공은 미국 의대생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1차 걸프전쟁은 쿠웨이트를 해방시킨다는 이유로, 이라크 전쟁은 테러 보복이라는 이유로 정당화했다. 하지만 전쟁의 이유는 꾸며낸 논리일 뿐이다.

저자는 전쟁의 진정한 배후에 ‘대통령의 정치 생명 연장’이라는 흉측한 의도가 깔려있다고 주장한다. 그런 의도를 언론과 지식사회는 외면한다. 따라서 비판이 실종되고 전쟁의 논리는 힘을 얻는다. 미국 역사에서 그런 장면이 적지 않다고 말한다.

혹자는 저자를 반미주의자로 규정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미국의 잘못된 가치와 행동에 반기를 드는 것이야말로 역사를 바로세우는 첩경이라고 말한다. 문강형준 옮김. 1만7000원

<서영찬기자 akira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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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 인문학계 변화의 바람] 지행네트워크 오창은·하승우 연구원
지식인·시민사회단체·시민연대 폐쇄적 지식인 사회 한계 타파
 

앞서 소개한 대안지식공동체 중 지행네트워크는 문학평론가 오창은, 이명원 씨와 한양대 연구교수 하승우 씨가 만든 대안지식공동체다. 2007년 활동을 시작한 이 세 사람은 최근 지행네트워크의 활동과 대안지식공동체에 관한 글을 모아 책 <나는 순응주의자가 아닙니다>(도서출판 난장)를 냈다.

저자는 책에서 한국사회에는 “통합적이고 유기적 지식을 생산하고 실천하는 보편적 지식인은 사라지고 협소한 영역의 탐구에만 매몰된 전문가, 기술 관료만 넘쳐난다”고 말한다.

그리고 폐쇄적인 지식인 사회의 한계를 타파하는 하나의 대안으로 지식인과 시민사회단체, 일반 시민이 연대하는 ‘지식협동조합’을 제시한다. 저자이자 지행네트워크(이하 지행)의 연구원인 오창은, 하승우 씨를 만났다.

- 대안지식공동체 중에서도 지행은 독특한 경우다. 어떻게 생겨났나?

오창은) 처음 지행을 시작할 때는 ‘지식인 사랑방’을 만들자는 생각이었다. 여성학, 역사학, 문학, 정치학, 경제학 전공자들이 세대 간 소통하는 학문적 공동체를 만들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막상 문을 열고나서는 일반 대중과 함께 하는 공적 실천의 영역으로 나아갔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 정치, 사회 강좌인 <콜로키움>이나 재소자를 위한 인문학 강연을 시작했다. 다른 대안지식공동체가 공간을 중심으로 지적 담론이 형성됐다면, 지행은 연구소 밖으로 나아가는 활동이 많았다.

- 해외에서 대안지식공동체 사례가 있나?

하승우) 외국의 경우 반(半)제도적 형태가 많다. 예를 들어 대학에서 지원을 받는 지식공동체나 연구단체들이 많은 성과를 낸다. 우리처럼 비(非)제도권으로 만든 대안지식공동체가 있는 것 같진 않다. 여기에는 한국적인 특수성이 있다. 대학이 특정 학문을 배제하고 제도권에서 튕겨 나온 지식인들이 따로 커뮤니티를 만든다.

제도권의 지식인들도 비제도권 지식운동을 위해서는 제도를 벗어나야 한다. 예를 들어 철학아카데미를 운영하는 철학자 이정우 씨의 경우 교수직을 그만 두지 않나.

- 책에서도 밝혔지만, 대학의 인문학 강좌가 폐강되는 등 제도권 내 인문학이 홀대받는 반면, 비제도권에서 인문학 수요는 점점 더 늘고 있다. 지행의 <콜로키움>도 원래 시민단체 활동가를 중심으로 개설했지만, 일반인들의 관심과 참여가 더 많다. 이 괴리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오창은) 인문학의 위기는 대학의 위기 때문인 듯도 하다. 대학의 인문 정신이 없어진 상황에서 사람들의 욕구가 늘어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모든 학문의 목적이 자본의 창출에 집중되면서 인문학이 도태되는 현상, 김종철 선생의 말을 빌리자면 ‘영성이 사라진 시대’에 이중적인 결과로 귀결되는 듯하다.

리호이나키(미국 정치학 박사, 국내 출간된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나아가다>가 있다)의 책을 봐도 그렇고, 이런 건 전 지구적인 상황인 듯하다.

- 대안지식공동체의 활동 방향으로 ‘지식협동조합’을 제안했다. 기존의 대안지식공동체와 어떤 점이 다른가? 그리고 지행이 지식협동조합을 추구할 건가?

하승우) “주식회사는 주주들이 투자금을 내고 이윤을 배분하는 형식이다. 협동조합은 출자자가 조직 내부의 경영에 관여한다. 예를 들어 지행이 지식협동조합의 형식을 띠게 된다면, 어떤 강의를 진행할 것인지, 어떤 강의 형태로 나갈 것인지 모든 출자자들이 함께 고민하게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수평적 네트워크를 지향한다. 몇몇 지식인이 머리 역할을 하고 나머지 사람들이 팔다리가 되는 게 아니라, 출자자 모두 같은 권리와 책임을 갖는다. 책의 후반에 지식협동조합을 제안했지만, 지행이 이런 형태로 나아갈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8~9월 내부 논의 후에 결정할 것이다.”

이윤지 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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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먹고사니즘만이 횡행
<무례한 복음>의 저자 이택광
 




 
2007년 12월 4일부터 2009년 2월 13일까지의 대한민국. 문화평론가 이택광(41ㆍ사진) 경희대 영미문화전공 교수가 쓴 비평집 <무례한 복음>(난장 발행)의 평론 대상이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강마에와 용산참사와 ‘디자인 서울’과 김연아에 열광하는 40대 아저씨들이 한 두름으로 엮여 도마에 오른다. 정신분석의 방법론을 회칼 삼아 이 교수가 가른 대한민국은, 비릿한 쾌락과 ‘먹고사니즘’으로 뱃속을 채우고 있다.


“지금 사회에서 정치는 실종됐습니다. 자본주의가 주는 쾌락을 누리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어요. 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비평이 사회를 대상으로 삼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이 교수는 “숨어 있는 문화의 구조를 드러내는 것은 즐거움”이지만 문화비평이 거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에서 영화 비평, 음악 비평과 같은 장르 비평은 이미 설 자리를 잃었다”며 비평의 책무, 또는 존재 가치를 사회에 대한 ‘개입’에서 찾았다.


“나는 문화적인 것에서 정치적인 것을 발굴해내는 것을 비평의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문화비평은 이론의 자기지시성을 벗어나 그 이론의 대상을 현실로 돌려세우는 실천적이고 수행적인 작업입니다.” 예컨대 원더걸스에 대한 열광에서 이 교수는 귀엽고 섹시한 이미지를 ‘나눠 갖는’ 방식에 주목한다. 각 세대가 원더걸스에 열광하는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원더걸스야말로 한국 사회에서 ‘10대의 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다는 것이 이 교수의 시각이다. 10대가 ‘어른들’의 시선을 받으려면 원더걸스처럼 기성세대의 감수성에 맞는 존재로 태어나거나, 아니면 기성 사회가 강조하는 ‘쓸모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해석이다.

 

“우리 사회에는 ‘네가 즐기는 만큼 나도 즐겨야 한다’는 쾌락의 평등주의, 그리고 ‘나도 먹고 살아야되지 않겠느냐’는 먹고사니즘이 시대정신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실용과 경제를 구원이라 외치는 ‘무례한 복음’이 너무도 강렬하게 파고들고 있어요. 문화비평의 역할은 대중에게 그러한 진실을 간파하는 감식안을 제공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유상호 기자 | shy@hk.co.kr )

[출처] 이택광, <무례한 복음>, 한국일보 저자인터뷰|작성자 난장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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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광 <무례한 복음> 국제신문 서평 

연아에 열광하는 어른 심리는
무례한 복음/이택광 지음/난장/1만7000원



‘대중문화 분석을 통해 정치·사회 문제를 해명하는 작업.’ 경희대 이택광(영미문화 전공) 교수의 관심영역이다. 부산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면서 시를 썼고 영국 워릭대학에서 철학으로 석사를, 셰필드대학에서 문화이론으로 박사를 받은 그는 영화 미술 정신분석 문화이론 등을 오가며 활발한 비평 작업을 벌여왔다.

<무례한 복음>의 부제는 ‘쾌도난마 한국문화 2008~2009.’ 2007년 12월~2009년 2월 사이 문화적인 일 속에서 ‘정치적인 것’을 발굴해내는 발칙하고 성실한 작업의 산물이다. 김연아와 소녀시대에 열광하는 어른들의 심리에서 ‘부조리한 현실을 개선할 의향도 자질도 없기에 10대가 김연아나 원더걸스처럼 알아서 잘 해주거나 자신들의 말을 잘 들어주기만을 바라는 책임전가’를 읽어낸다. ‘MB 정부’의 한국 사회는 경제가 자신을 키운 정치 논리까지 잡아먹고, “나도 좀 먹고 살아야 되지 않겠냐”는 논리로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먹고사니즘’이 득세했다. 저자는 이를 무례한 복음이라 칭한다.

[출처] 이택광, <무례한 복음>, 국제신문 서평|작성자 난장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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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세상에 뛰어든 ‘불량 청년들’
<나는 순응주의자가 아닙니다>(지행네트워크 지음 | 도서출판 난장·1만7000원)


 “새로운 정치공동체를 몽상하는 ~.”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씨가 ‘이들’에게 붙여준 수식어다. 이들은 이명원과 오창은, 하승우씨다. 학계 부조리와 문화권력에 도전해온 ‘불량 청년들’은 2년 전 의기투합해 지행네트워크(이하 지행)를 꾸렸다. <나는 순응주의자가 아닙니다>는 지행이 그간 얻은 성과와 시행착오의 결과물이다. 손쉽게 타협하지 않는 지행의 지적 작업은 기존의 것들을 흔들고 뒤집는 데 그치지 않는다. 새로운 정치공동체를 꿈꾸고 “실천 가능성을 성실히 모색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김종철) 책의 절반에서 풀뿌리민주주의, 생활정치, 농민공동체, 직접행동 민주주의를 다루는 데서 알 수 있다. 에필로그에서는 국가와 시장의 극복을 위한 협동조합 모델을 제시하고 지식협동조합을 제안한다. 지행도 그 실험 가운데 하나다. 

‘불량 청년들’의 실험은 전일적 자본주의에 포섭된 ‘앎과 삶이 분리된 지식인’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다. 하여 공부의 즐거움에 함몰될 기미를 보이는 기존의 비제도적 지식공동체와도 차별성을 지닌다. 이들에게 대중을 향한 실천을 떼놓은 앎은 의미가 적거나 무의미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현실에 대항해 지식인들은 자신이 유착한 지배엘리트 그룹과 단절을 감행하는 동시에, 자신이 관심을 닫은 대중들을 향해 지적 실천을 개방해야 한다”(이명원)고 선언한다. 이 책은 모두를 위한 책은 아니다. 술술 읽히는 책도 아니다. 하지만 순응주의자가 되고 싶지 않다면, 시장과 국가의 권력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동체를 몽상하고 싶다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류이근 기자 |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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