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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돼라 - 예술계 하버드, 센트럴 세인트 마틴 대학의 크리에이티브 명강
로드 주드킨스 지음, 이정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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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는 철저히 안정지향적인 사람이다.

항상 가던 길과 노선, 동선으로만 다니며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도 늘 먹던 것으로만 선택한다. 

요리를 할 때에는 계량컵을 이용해 반드시 레시피에서 언급된 정량을 맞춰야 하고,

여행을 가게 되면 여행책에서 조언해주는 코스대로 모든 일정과 동선을 계획한다.

철밥통이면서 노후까지 탄탄한 공무원을 목표로 시험 준비도 두 번이나 했더랬다.

예전에 회사를 다닐 때 가장 싫어했던 말도 '변화'였다.

일할 때도 나만의 메뉴얼이 확실하여 거기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았고,

제품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에는 슬라이드 노트를 작성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달달 외웠다.

나는 그렇게 해야 안심이 되는 유형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남편은 이런 나와 정반대의 사람이다.

운전할 때에는 네비도 사용하지 않고 늘 (더 빠른) 새로운 길을 개척해보려 하고,

요리할 때에는 다른 곳에서 먹어본 맛을 기억해 자신만의 스타일로 만들어보려 한다. (미역국에 오징어를 넣기도 한다)

여행할 때에는 숙박조차도 예약하지 않는다. 현지에 가서 돌아보며 그날그날 잘 곳을 정하면 된다고 한다.

과거 회사에서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을 때도 그는 임기응변에 강한 사람이었다.

모든 직원들이 같은 슬라이드로 프레젠테이션을 해도 즉흥적으로 자신만의 스타일로 대처하곤 했다.   

 

이번에 내가 읽은 책인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돼라>는

남편처럼 새로운 것을 다양하게 시도해보는 이들을 예시로 들며

그들이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된 이유를 '창의력'에서 찾고 있다.

우디 알렌, 스티브 잡스, 살바도르 달리, 아인슈타인, 마크 주커버그, 앤디 워홀, 조지 오웰, 프란츠 카프카, 코코 샤넬 등.

우리가 '천재'라고 부르는 이들은 공통적으로 그들만의 독창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믿기 힘들 정도로 놀라운 상상력과 직관, 지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이러한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훈련받고 그 결과 움츠러든 삶을 살아간다. 학교와 가정, 친구들은 우리가 가진 능력에 대해 제한된 관점으로 우리를 관찰한다. 창의적인 사람들은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주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시도한다. 달리가 다양한 매체에서 도전한 수많은 디자인과 영화, 실험들이 모두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독보적인 창의성을 가진 인간이라는 평가를 받는 데에는 충분한 역할을 했다. (20p)

실패하는 것이 두려워 안정을 택하게 된다. 질서와 규칙, 메뉴얼에서 벗어난 삶은 곧 불안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창의력이 풍부한 사람들도 매번 성공을 거머쥐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새로운 활동을 하나의 실험으로 생각한다. 실패를 과정으로 여긴다.

그러한 시도들이 일반 사람들과 그들을 구분짓게 하고 그들은 그 자체가 고유한 브랜드가 되어 

'대체 불가능한 존재'인 천재로 불리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방안으로 예술 및 문학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위대한 과학자들 가운데에는 헌신적인 연구와 실험으로 빛나는 업적을 이룩하면서도 다양한 예술 분야에 깊은 관심을 나타내는 이들이 많았고, 실제로 소설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연주하거나 조각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매일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어디를 가나 바이올린을 가지고 다녔다. 미국의 수학자이자 인공두뇌학의 창시자인 노버트 위너는 소설을 썼고 다윈은 소설가 메리 셀리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는 셰익스피어를 흠모하고 찬양했다. 문화에 대한 이들의 폭넓은 관심은 각자의 연구 분야를 한층 더 풍요롭게 만들었다. (177p)

최근 대학의 인문학과들이 실용학과 위주로 통폐합되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정리대상의 일순위 학과가 국문과, 독문과, 불문과라는 사실은 

독문학으로 제 2의 진로를 준비하고 있는 나에게도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모두가 취업을 준비하는 이 시대, 취업이란 곧 '좋은 회사',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이 때에

문학책을 옆에 끼고 캠퍼스를 오간다는 것이 한량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 자체가 인생의 최종목표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직장에 들어간 이후, 일이 적성에 맞는지에 대한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모든 기업은 피라미드 구조이기에 자연히 내 밥그릇이 안정적인지 자문하게 된다.

내가 회사를 그만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실적경쟁이 치열하여 안정적으로 자리 보장을 받지 못하는 직종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내 직무가 '그 누구로도 대체가 불가능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십년 후, 과연 내가 이 회사에서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 수 있을지에 대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나는 언제 어디에서든 일할 수 있는 내 전문 분야를 가지고 싶었고

내 일에 있어서만큼은 스페셜리스트가 되고 싶었기에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서 공부를 더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모두가 비실용적이라는 이유로 예술을 경시하고 문학을 멀리하는 이 때,

이 책은 무시되고 있는 그 것들이 대체 불가능한 존재를 키우는 원동력인 '창의력'의 재료라고 말한다.

스티브 잡스도 인문학을 강조하지 않았던가.

실제로 이 것이 비지니스에 기여한 많은 사례들이 있고 (아이폰이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겠다)

이는 예술과 문학이 말랑말랑한 사고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게 할 것이다. 

 

대체 불가능한 존재는 이미 나있는 길을 남들과 같이 걸어가는 안정지향적인 사람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불안하더라도 남들과 다르게 시도해보는 것, 바로 그 것이 남들과 자신을 구분짓게 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게 성장하는 바탕에는 문학과 예술이 반드시 필요하다.

 

많은 영감을 준 책이다. 열심히 밑줄을 긋고 포스트잇을 붙이며 읽었고

항상 가던 길, 항상 먹던 음식만 먹는 나이지만 당장 오늘 저녁 메뉴부터 새로운 것을 시도해봐야겠다는 생각이다.

또 열심히 읽어대는 소설책들의 상상력을 묵혀두지 말고

현실에서 아이디어로 적용하여 대체 불가능한 나만의 영역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

문학은 어디에서 어떻게든 쓸모가 있다는 내 신념에도 힘이 실린다.

 

애초부터 독창적인 것은 없다.

영감으로 가득하고 상상력을 부추기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빌려오라.

옛날 영화와 새로운 영화, 음악과 책과 시,

그림과 사진 등을 닥치는 대로 탐독하고

꿈속 장면과 사람들의 대화, 건물과 다리와 거리의 이정표,

나무와 구름, 바다와 호수, 빛과 그림자를 무심히 넘기지 말라.

 

_짐 자무쉬 (27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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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꾸는 책 읽기 - 세상 모든 책을 삶의 재료로 쓰는 법
정혜윤 지음 / 민음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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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을 읽다가 문득 내가 이 책을 왜 읽고 있는 것인가,
이걸 어디에 써먹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책뿐만이 아니다. 소위 문학으로 분류되는 소설들을 읽음으로 도대체 무엇을 얻을 수 있는 것일지,
이제까지는 `여유로운 시간을 지적으로 유희하기 위해`라는 명분으로 책을 잡았는데
과연 내 지적인 상태는 발전을 하고 있는 것인지.
특히나 <연인>을 읽으면서 번역체가 어려워 두세번 같은 문장을 읽다보니 짜증이 나기 시작했는데
독서를 놀음으로 생각한 나는 이제, 심지어 유희조차도 할 수 없는 것인지.
나는 왜 소설을 읽고 있는가 라는 아주 근원적인 부분을 자문하게 되었다.

논외로 한국문학을 읽을 땐 `언어를 이렇게 아름답게 쓰는 사람들이 있구나` 감탄하게 된다.
작가들의 문장력, 묘사력, 표현력을 모두 내 것으로 훔치고 싶다. 탄탄한 구성과 독창적인 스토리도 탐이 난다.
언젠가 내 이야기도 책으로 만들어질 날을 꿈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재미`가 있다. 말 그대로 유희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문학이 아닌, `고전`으로 불리는 외서를 펼치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일단 번역서이므로 작가보다는 번역자의 문체에 더 가까울테니 문장 하나하나를 주의깊게 보진 않는다.
그렇다면 글에 드러난 작가의 메시지나 전체적인 이야기 흐름에서 무언가를 찾고 싶은데
그 것이 잘 되지 않는 책은, 다 읽고 난 이후에도 내가 무엇을 읽은 것인가,
무엇때문에 이 책을 읽느라 시간을 보낸 것인가 하는 생각에 허무해진다.
(물론 한 번밖에 읽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여러번 곱씹어봐야 알 수도 있을 것이다.)

<연인>을 어떻게 내 것으로 소화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던 차,
사람은 왜 문학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 다른 이들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이 책, <삶을 바꾸는 책읽기>는 이미 이전부터 책장에 꽂혀있던 책이다. 이제서야 나에게 진정으로 다가온 것이다.
프롤로그의 한 문장, 그 것은 독서를 하는 수많은 이유들 중 어떤 것보다 와닿는 한 마디였다.


책을 읽을 때 나의 유일한 관심사,
그건 교양도 아니고 성공도 아니고 스티브 잡스나 이건희처럼 사는 법도 아니고
그저 이 몸으로 잘 사는 법이었습니다. (9p)


이 몸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고민하는 이들에게
책은 중요한 대화상대가 되어준다는 것이다. 내가 보고 있는 세상은 아주 작기 때문에
책을 통해 내가 겪고 있는 일들을 다른 사람은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
혹은 어째서 헤쳐 나가지 못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이는 동시에 이 시대 가장 위대한 작가들과 조우하며 세상의 온갖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는 것과도 같다.

또한 책을 읽으며 우리는 어린아이를 기르듯, 한 그루 나무를 가꾸듯 물도 주고 거름도 주면서 자신을 키운다.
책은 `마치 남의 일처럼 보는 내 이야기`이다. 타인의 모습인 양 나타나는 그 안에서
어느 순간 자신의 모습을 대면하게 된다. 그러면 자신이 겪는 일을 조금 더 잘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독서란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의 삶에 비추어보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저자 정혜윤은 라디오 PD이다.
요즘은 책 많이 읽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고 얄팍한 지식으로 책에 대한 언급을 하기도 하니
독서 에세이를 고를 땐 저자의 약력을 철저하게 보는 편이다.
그런데 이 책을 고를 땐, 저자보다는 제목에 끌렸더랬다.
책 앞부분 출판사가 화려하게 서술한 약력은
다소 뜬구름 잡는 얘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그다지 저자에 대한 신뢰는 없었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저자의 방대한 독서량과 상황에 맞는 책 귀절 처방은
놀라울 정도라 읽는 내내 감탄스러웠다.
마치 백과사전과도 같은 해박한 지식과 지혜들은
머릿 속에 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이런 사람의 독서리스트라면 나 또한 모조리 갖고 싶은 마음에 저자의 다른 책 <침대와 책>도 바로 주문했다.)

사실 아주 새로운 의견은 아니다. 처음 들은 이야기 또한 아니며,
나 또한 이러한 이유로 책을 신뢰하고 그 것에 의존하기 때문에 틈나는대로 독서를 계속해오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저자 덕분에 내가 왜 책을 읽는지, 읽어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차근차근 말로 정리할 수 있게 되어 후련하고,
독서란 이 몸으로 잘 살 수 있도록 내 삶의 재료가 되는 행위라는 것을 다시금 한번 깨닫는다.

그런 의미에서 <연인>은 다시 한번 정독해봐야겠다.
나의 가치관과 너무 다른 이 발칙한 소녀를 나와 다른 존재로 이해하기 위해
그녀를 비난해야 할지 연민의 눈으로 바라봐야 할지 생각해봐야겠다.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이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줌으로 이 소설에서 재발견하게 된 나의 모습을
조급해말고 차근차근 찾아봐야지. 분명히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독서란 한가로운 책놀음만이 아닌 궁극적으로 나를 잘 살아가게 하는 시간이며, 재료라는 것임을 재확신한 지금,
저자처럼 풍부한 내공의 독서가가 되어 `더 잘 살아가는` 삶을 기대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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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살 직장인, 책읽기를 배우다 - 지식에서 행동을 이끄는 독서력
구본준.김미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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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이란 시험 과목과 범위가 정해지는 학교 공부와 달리 모든 지식을 총체적으로 동원하고 종합해서 스스로 판단하고 문제 해결법을 찾아 풀어야 하는 인생 종합시험이다. 이 시험을 잘 치르기 위한 공부는 새로운 생각과 정보를 꾸준히 접하면서 자기 생각과 태도를 늘 갈고 다듬어 예리하게 만드는 것뿐이다. 당신이 읽고 싶은 모든 책들이 이 공부에 필요한 참고서다. 읽으면 공부가 되면서 동시에 휴식이 된다. 이게 바로 죽어도 책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다. (206p)

직장인에게 책읽기가 정말 필요한 것일까.
당장의 수면시간도 부족한 이들에게, 책 읽을 한가로운 시간이 어디 있으며,
읽는다고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대부분의 직장인이라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나 또한 직장생활 초반에는 책읽기에 무심했더랬다.
책을 읽는 호기를 부리느니, 잠을 한 숨 더 자고, 사람들과 어울리는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내가 읽은 책은 아마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이다.
그마저도 회사에서 (강제로) 읽으라던 경영서적, 자기계발서 종류.
나의 독서력은 고등학교 때 부터 입사 2년차 때까지는 거의 단절된 상태이다.
부지런히 책을 사다 주시던 부모님 덕에 시도 때도 없이 게걸스레 읽어댔던
이동하는 차 안에서도 책을 놓지 않았던 문학소녀의 의지는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나이가 되며 사그라들었고,
사회에서 지성인이라고 부른다는 대학생의 신분이 된 이후에도
(책을 안 읽던 나쁜 습관의) 관성의 법칙 때문인지 열심히 놀기만 했다.
그 것이 회사원이 된 이후에까지도 이어졌던 것이다. 그야말로 내 독서 인생의 암흑기가 아닐 수 없다.
(너무 긴 시간을 허비해버렸다..)

다시 책을 잡게 된 것은 신입사원이라는 꼬리표를 슬슬 떼고 있을 때였다.
회사에서 추천하던 경영서적들 (억지로 머리에 우겨넣던 정보들..),
잡지 가십기사처럼 읽어치우고 말던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나에게 진정한 독서의 물꼬를 다시 트게해준 책은 이덕일의 `조선 왕을 말하다`였다.
일단 재미있는 책이었다. 우리가 정도라고 알고 있던 역사에 의문을 제기하는 내용이 흥미로울뿐 아니라
저자의 필력 또한 거침없이 책을 읽어가게 만들었다. 강요된 독서가 아니었는데도 꽤 공을 들여 완독했더랬다.
그리고 나서 독서가 이런 맛이었지 마침내 쐐기를 박은 책이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자들의 도시`였다.
비현실적 상황설정, 그 와중 드러나는 현실적 인간세상의 어두운 단면들,
허구와 실제를 오가며 진행되는 이야기와 시시각각 터지는 사건들은 읽는 내내 긴장감을 놓을 수 없게 만들고
마지막 반전까지, 작가는 독자들을 완전히 자신의 손 안에서 가지고 놀고 있는 것이었다.
거친 회사생활, 치이는 사람관계에 공허하고 지친 마음을 달래느라 미드로 밤을 샌 적은 많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아침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었던 경험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 책을 통해 다시 찾게 된 것은 그간 잃어버렸던 나의 독서에의 욕망이었다.

그 때 이후였던 것 같다. 다시 내가 책에 빠지게 된 것이.
퇴근 후 집 앞 카페에서 책을 읽고
스트레스를 받은 날 서점에서 무더기 책 쇼핑을 하고
한가한 평일 저녁이면 책과 관련된 출판사 강의를 쫓아다녔다.
평생 책만 읽으면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고
결정적으로 진로를 바꿔 대학원에 진학했다.
(물론 대학원 공부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기는 하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내 회사생활 동안의 책읽기가 떠올랐다.
돌이켜보니, 직장인에게 책읽기는 꼭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나는 다른 꿈을 꾸고 최종적으로 직장을 떠났지만, 회사생활을 하면서의 나의 책읽기도 꽤 쓸모가 있었다.
내가 만나는 고객들 중에는 독서가가 많았고, 그 때문에 책 이야기가 종종 화제로 나오기도 했다.
내가 읽은 책을 추천하는 사내메일도 종종 썼다.
(우리 팀장님은 나에게 자꾸 헤르만 헤세 작품에 대해 얘기하곤 했었다)
사장님이 다독가였을 때는 점수따기도 쉬웠다. (안타깝게도 내가 회사 다니는 동안 사장님이 3번 바뀌었다)
무엇보다도 일희일비하던 나의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 책 만한 것이 없었다.
(아, 물론 내가 가진 종교와 무한도전도 빼놓을 수는 없다)
밤 열한 시부터는 모든 일을 접고 잠들기 전까지 책을 읽었다.
나에게 그 정도의 여유도 허용하지 못하는 인생이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책에 관심이 가니, 다른 물건들(옷, 가방, 구두, 화장품 등등)에 대한 쇼핑욕도 사라졌다. 돈도 열심히 모았다.
가방 한 개 값으로 얻는 내 영혼의 즐거움은 아마 평생에 넘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에서는, 직장인들이 책을 읽음으로 `나`라는 기업의 지식경영을 해야한다고 말한다.
제목도 제목이지만 저자들이 기자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보니
아무래도 직종에 도움이 되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싶어한 것처럼 보인다.
그 와중 많은 독서가들이 `문학읽기`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는다.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이기도 하다)


젊은 독서가들의 경우 실용적인 책들을 선호하여 소설을 읽지 않는 경향이 강한데, 자기계발을 하는 데는 소설 역시 꼭 필요하다고 독서달인들은 조언한다. 그 이유는 소설이 여러 가지를 다양하게 생각하게 하는 힘을 길러주기 때문이다. 때로는 애매모호하고 명확하지 않은 이야기 속 상황에 대해 독자들은 계속해서 의문을 가지고 생각해보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독자들은 깊은 사고 과정을 거치며 생각의 날카로움과 폭이 깊고 넓어진다. 질문력을 키워 말랑말랑한 사고력이 생긴다. (228p)


열심히 책을 읽어대는 나에게도 힘이 되는 이야기이지만
소설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남편에게 더 권하고 싶다.

우리의 존재는 우리가 읽은 책으로 이루어진다고 책에서는 말한다.
회사생활에도 도움이 되었던 책읽기였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나라는 존재를 완성하기 위해서. 오늘도 나는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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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 (윈터 리미티드 에디션) 세계문학의 천재들 1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들녘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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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들이 지금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면, 경악의 원인은 간단명료하지 않을까? 나는 밤을 새운 얼굴로 아침의 태양을 마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들은 인생이 가볍든 힘들든 가난하든 부유하든 관계없이, 더 많은 삶의 요소를 원한다. 끝나고 나면 모자라는 인생을 더 이상 그리워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이들은 삶이 끝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509p)

10월 한 달 내내 이 책을 읽었다.
책 두께도 어마어마했지만
문장 하나하나가 눈으로 쉽게 읽고 넘어갈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인생의 대부분을 문헌학자로, 고등학교 고전학 교사로 살아온 그레고리우스의 일탈. 또는 자아를 찾아가는 여행.
이름도 모르는 포르투갈 여자의 자살 시도를 우연히 막게 된 어느 날
헌책방에서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한 포르투갈인의 책을 발견하게 되고,
책방 주인이 번역해주는 그 책의 짧은 문장 몇 개를 들으며
저자의 인생을 알고 싶어진 그는 무작정 리스본으로 떠난다.
여행 중 그는 사전을 찾아가며 계속 책을 읽고, 영감을 얻으며, 자신이 만나야 할 사람을 하나 하나 찾아간다.
그렇게 만나게 되는 많은 사람들. 그들의 인생 이야기. 그리고 생면부지의 그들과 함께 하는 자신의 이야기.
그레고리우스는 그들을 통해 자신의 삶을 뒤흔드는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과거에 갇혀 현실을 살지 못하던 이들의 삶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책의 문장들은 언어의 연금술사답게 아름다울 뿐 아니라 많은 성찰과 고심 끝에 나온 사유들이다.
경험, 두려움, 마음의 강물, 실망, 신에 대한 반박, 인생의 방향전환, 죽음에 대한 공포, 진실한 이별 등.
이제껏 무난하게, 안정되게 살아온 그레고리우스의 잔잔한 인생에 돌을 던지는 글일 뿐 아니라
큰 동요없이 편안하게 살고 있는 나에게도, 내 자아에게도 함께 질문을 던진다.



움직이는 기차에서처럼, 내 안에 사는 나. 내가 원해서 탄 기차가 아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아직 목적지조차 모른다. 먼 옛날 언젠가 이 기차 칸에서 잠이 깼고, 바퀴 소리를 들었다. 난 흥분했다. 덜컥거리는 바퀴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머리를 내밀어 바람을 맞으며 사물들이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속도감을 즐겼다. 기차가 멎지 않기를 바랐다. 영원히 멈추어버리지 말기를, 절대 그런 일이 없기를. (..)

가끔 기차가 언제든지 탈선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그렇다. 나를 놀라게 하는 생각은 대부분 이것이다. 그러나 가끔 작렬하는 어떤 순간에는 이 생각이 마치 복을 내리는 번갯불처럼 나를 뚫고 지나간다. (..)

여행은 길다. 이 여행이 끝나지 않기를 바랄 때도 있다. 아주 드물게 존재하는, 소중한 날들이다. 다른 날에는 기차가 영원히 멈추어 설 마지막 터널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

(473~476p)



내 기차의 목적지는 어디이며,
나는 내 칸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으며,
앞으로 살면서 과연 몇 번의 탈선을 하게 될 것인지,
영원히 멈추어 설 마지막 터널을 나 또한 안도감으로 맞이할 수 있을지.

집안일을 하고, 요리를 하고, 라디오를 듣고, 책을 읽고,
이따금 수업을 들으러 학교를 가는 평온하고 평범한 일상.
파동없는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한 삶. 그리고 이 것에 만족하고 있는 나.
과연 나는 내 칸에서 해야 하는, 할 수 있는 일들을 후회없이 하고 있는지.
아니면 나른한 권태에 빠져 내 기차를 탈선에 이르게 하는 것은 아닌지.

이 책에 담긴 인생에 대한 성찰 이외에도
단어, 언어, 외국어, 번역에 집착하는 그레고리우스의 모습은 너무나도 매력적이다.
두껍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읽고 생각하게 될 책이다.
읽을 때마다 얻게 되는 깨달음은 아마도 매번 다를 것 같다.
이 책을 읽기 전,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보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는데
자꾸 졸게 되는 바람에..실패했더랬다.
책을 읽고 난 지금은 영화도 꽤나 인상적일 것 같다. 챙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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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인간 -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50년 독서와 인생
오에 겐자부로 지음, 정수윤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저는 이처럼 독서를 통해 제 인생을 만들어가고 나아가 새로이 길을 내면서, 그전에 생각했던 과정과 다른 방향으로 (제 소설을 쓰는 일에 이끌려) 탈선도 하며 살아왔는데, 노년으로 접어들면서 그런 경향이 한층 두드러졌습니다. 심지어는 책을 읽을 때도, 또 책을 쓸때도 언제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가며 제가 나아갈 길을 결정해왔습니다. 가끔씩 탈선하는 일까지 포함해서요. 정녕 제 인생은 책으로 인해 향방이 정해졌음을, 인생의 끝자락에 다다른 지금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18p)

매일같이 독서 블로그와 카페, 온라인 서점을 들락거린다.
남들이 무슨 책을 읽는지 훔쳐본다. 이 주의 신간을 체크한다.
읽고 싶은 책을 사들인다. 내게 온 책들을 한 권씩 읽는다.
마음에 드는 문장에 밑줄을 긋고 포스트잇을 붙인다. 때로는 블로그와 에버노트에 기록을 한다.

이 정도면 나 또한 `읽는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에 겐자부로가 말하는 `읽는 인간`이기 위해서는
그렇게 읽어 치운 책들이 내 삶의 행보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읽은 책들이 곧 내 인생을 구성하고 `나`라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열심히 읽어댄 책들은 나를 어떻게 키웠을까.

<새의 선물> 진희는 나에게 상실에 대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고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마지막 팬클럽원들은 프로가 되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데미안은 한 차원 높은 세계로의 성장을 위해서는 지금의 현실과 투쟁해야 한다고 말했고
카레닌에게서는 도덕적 관념으로서의 결혼을,
엠마 보바리를 보며 지금 사랑에 충실할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이 밖에도 더 많은 책들이 나에게 말을 걸었고
나는 그들로부터 받은 것들로 나를 만들었고, 또 만들어나가고 있다.
틈틈이 기록한 독서 일지들을 보면 그 것을 알 수 있다.

요즘의 나는 책을 읽어치우기에 급급하다.
육아로 인해 한가로이 책을 읽을 시간이 더더욱 소중해져서
한 권의 책을 읽고 나서, 글을 쓰거나 생각을 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마치 게임하듯 책을 클리어하려고만 하는 것이다.

기록해도 들춰보지 않으면 그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는 마당에
기록하지 않으면 책의 감동은 사라진다.
그러면 지금 나처럼의 `읽는 인간`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 책을 읽었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대략의 줄거리도 이야기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so what?이라고 물으면 멈칫하게 될 지도.

오에 겐자부로의 말한 것처럼 천천히 적은 양의 책을 읽더라도
내 삶의 방향을 결정할지도 모를, 그들의 메시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생각하며 읽는` 인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내가 읽은 책들이 백지에 담긴 글자들이 아니라
내 인생의 조각들이 되기 위해서는.

`나만이 지닌 책의 네트워크가 있다`, `이런 작가들의 책을 읽고 영향을 받으며 살아왔다`와 같은 구조도가 살면서 차츰 생성되는 것이죠. 그게 지속적으로 책을 읽는 것일 터인데, 제 나이쯤 되니 제 삶이 다른 무엇보다 이 책들과 함께해왔다는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이 정도의 질과 양의 책이었구나`, 나아가 `내 생애도 이 정도의 일생이었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동시에, `그래 분명 이런 인생이었지` 하는 그리운 감정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1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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