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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인간 -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50년 독서와 인생
오에 겐자부로 지음, 정수윤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저는 이처럼 독서를 통해 제 인생을 만들어가고 나아가 새로이 길을 내면서, 그전에 생각했던 과정과 다른 방향으로 (제 소설을 쓰는 일에 이끌려) 탈선도 하며 살아왔는데, 노년으로 접어들면서 그런 경향이 한층 두드러졌습니다. 심지어는 책을 읽을 때도, 또 책을 쓸때도 언제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가며 제가 나아갈 길을 결정해왔습니다. 가끔씩 탈선하는 일까지 포함해서요. 정녕 제 인생은 책으로 인해 향방이 정해졌음을, 인생의 끝자락에 다다른 지금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18p)
매일같이 독서 블로그와 카페, 온라인 서점을 들락거린다.
남들이 무슨 책을 읽는지 훔쳐본다. 이 주의 신간을 체크한다.
읽고 싶은 책을 사들인다. 내게 온 책들을 한 권씩 읽는다.
마음에 드는 문장에 밑줄을 긋고 포스트잇을 붙인다. 때로는 블로그와 에버노트에 기록을 한다.
이 정도면 나 또한 `읽는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에 겐자부로가 말하는 `읽는 인간`이기 위해서는
그렇게 읽어 치운 책들이 내 삶의 행보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읽은 책들이 곧 내 인생을 구성하고 `나`라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열심히 읽어댄 책들은 나를 어떻게 키웠을까.
<새의 선물> 진희는 나에게 상실에 대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고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마지막 팬클럽원들은 프로가 되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데미안은 한 차원 높은 세계로의 성장을 위해서는 지금의 현실과 투쟁해야 한다고 말했고
카레닌에게서는 도덕적 관념으로서의 결혼을,
엠마 보바리를 보며 지금 사랑에 충실할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이 밖에도 더 많은 책들이 나에게 말을 걸었고
나는 그들로부터 받은 것들로 나를 만들었고, 또 만들어나가고 있다.
틈틈이 기록한 독서 일지들을 보면 그 것을 알 수 있다.
요즘의 나는 책을 읽어치우기에 급급하다.
육아로 인해 한가로이 책을 읽을 시간이 더더욱 소중해져서
한 권의 책을 읽고 나서, 글을 쓰거나 생각을 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마치 게임하듯 책을 클리어하려고만 하는 것이다.
기록해도 들춰보지 않으면 그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는 마당에
기록하지 않으면 책의 감동은 사라진다.
그러면 지금 나처럼의 `읽는 인간`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 책을 읽었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대략의 줄거리도 이야기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so what?이라고 물으면 멈칫하게 될 지도.
오에 겐자부로의 말한 것처럼 천천히 적은 양의 책을 읽더라도
내 삶의 방향을 결정할지도 모를, 그들의 메시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생각하며 읽는` 인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내가 읽은 책들이 백지에 담긴 글자들이 아니라
내 인생의 조각들이 되기 위해서는.
`나만이 지닌 책의 네트워크가 있다`, `이런 작가들의 책을 읽고 영향을 받으며 살아왔다`와 같은 구조도가 살면서 차츰 생성되는 것이죠. 그게 지속적으로 책을 읽는 것일 터인데, 제 나이쯤 되니 제 삶이 다른 무엇보다 이 책들과 함께해왔다는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이 정도의 질과 양의 책이었구나`, 나아가 `내 생애도 이 정도의 일생이었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동시에, `그래 분명 이런 인생이었지` 하는 그리운 감정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1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