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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 (윈터 리미티드 에디션) ㅣ 세계문학의 천재들 1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들녘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이 사람들이 지금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면, 경악의 원인은 간단명료하지 않을까? 나는 밤을 새운 얼굴로 아침의 태양을 마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들은 인생이 가볍든 힘들든 가난하든 부유하든 관계없이, 더 많은 삶의 요소를 원한다. 끝나고 나면 모자라는 인생을 더 이상 그리워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이들은 삶이 끝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509p)
10월 한 달 내내 이 책을 읽었다.
책 두께도 어마어마했지만
문장 하나하나가 눈으로 쉽게 읽고 넘어갈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인생의 대부분을 문헌학자로, 고등학교 고전학 교사로 살아온 그레고리우스의 일탈. 또는 자아를 찾아가는 여행.
이름도 모르는 포르투갈 여자의 자살 시도를 우연히 막게 된 어느 날
헌책방에서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한 포르투갈인의 책을 발견하게 되고,
책방 주인이 번역해주는 그 책의 짧은 문장 몇 개를 들으며
저자의 인생을 알고 싶어진 그는 무작정 리스본으로 떠난다.
여행 중 그는 사전을 찾아가며 계속 책을 읽고, 영감을 얻으며, 자신이 만나야 할 사람을 하나 하나 찾아간다.
그렇게 만나게 되는 많은 사람들. 그들의 인생 이야기. 그리고 생면부지의 그들과 함께 하는 자신의 이야기.
그레고리우스는 그들을 통해 자신의 삶을 뒤흔드는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과거에 갇혀 현실을 살지 못하던 이들의 삶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책의 문장들은 언어의 연금술사답게 아름다울 뿐 아니라 많은 성찰과 고심 끝에 나온 사유들이다.
경험, 두려움, 마음의 강물, 실망, 신에 대한 반박, 인생의 방향전환, 죽음에 대한 공포, 진실한 이별 등.
이제껏 무난하게, 안정되게 살아온 그레고리우스의 잔잔한 인생에 돌을 던지는 글일 뿐 아니라
큰 동요없이 편안하게 살고 있는 나에게도, 내 자아에게도 함께 질문을 던진다.
움직이는 기차에서처럼, 내 안에 사는 나. 내가 원해서 탄 기차가 아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아직 목적지조차 모른다. 먼 옛날 언젠가 이 기차 칸에서 잠이 깼고, 바퀴 소리를 들었다. 난 흥분했다. 덜컥거리는 바퀴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머리를 내밀어 바람을 맞으며 사물들이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속도감을 즐겼다. 기차가 멎지 않기를 바랐다. 영원히 멈추어버리지 말기를, 절대 그런 일이 없기를. (..)
가끔 기차가 언제든지 탈선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그렇다. 나를 놀라게 하는 생각은 대부분 이것이다. 그러나 가끔 작렬하는 어떤 순간에는 이 생각이 마치 복을 내리는 번갯불처럼 나를 뚫고 지나간다. (..)
여행은 길다. 이 여행이 끝나지 않기를 바랄 때도 있다. 아주 드물게 존재하는, 소중한 날들이다. 다른 날에는 기차가 영원히 멈추어 설 마지막 터널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
(473~476p)
내 기차의 목적지는 어디이며,
나는 내 칸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으며,
앞으로 살면서 과연 몇 번의 탈선을 하게 될 것인지,
영원히 멈추어 설 마지막 터널을 나 또한 안도감으로 맞이할 수 있을지.
집안일을 하고, 요리를 하고, 라디오를 듣고, 책을 읽고,
이따금 수업을 들으러 학교를 가는 평온하고 평범한 일상.
파동없는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한 삶. 그리고 이 것에 만족하고 있는 나.
과연 나는 내 칸에서 해야 하는, 할 수 있는 일들을 후회없이 하고 있는지.
아니면 나른한 권태에 빠져 내 기차를 탈선에 이르게 하는 것은 아닌지.
이 책에 담긴 인생에 대한 성찰 이외에도
단어, 언어, 외국어, 번역에 집착하는 그레고리우스의 모습은 너무나도 매력적이다.
두껍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읽고 생각하게 될 책이다.
읽을 때마다 얻게 되는 깨달음은 아마도 매번 다를 것 같다.
이 책을 읽기 전,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보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는데
자꾸 졸게 되는 바람에..실패했더랬다.
책을 읽고 난 지금은 영화도 꽤나 인상적일 것 같다. 챙겨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