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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꾸는 책 읽기 - 세상 모든 책을 삶의 재료로 쓰는 법
정혜윤 지음 / 민음사 / 2012년 6월
평점 :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을 읽다가 문득 내가 이 책을 왜 읽고 있는 것인가,
이걸 어디에 써먹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책뿐만이 아니다. 소위 문학으로 분류되는 소설들을 읽음으로 도대체 무엇을 얻을 수 있는 것일지,
이제까지는 `여유로운 시간을 지적으로 유희하기 위해`라는 명분으로 책을 잡았는데
과연 내 지적인 상태는 발전을 하고 있는 것인지.
특히나 <연인>을 읽으면서 번역체가 어려워 두세번 같은 문장을 읽다보니 짜증이 나기 시작했는데
독서를 놀음으로 생각한 나는 이제, 심지어 유희조차도 할 수 없는 것인지.
나는 왜 소설을 읽고 있는가 라는 아주 근원적인 부분을 자문하게 되었다.
논외로 한국문학을 읽을 땐 `언어를 이렇게 아름답게 쓰는 사람들이 있구나` 감탄하게 된다.
작가들의 문장력, 묘사력, 표현력을 모두 내 것으로 훔치고 싶다. 탄탄한 구성과 독창적인 스토리도 탐이 난다.
언젠가 내 이야기도 책으로 만들어질 날을 꿈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재미`가 있다. 말 그대로 유희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문학이 아닌, `고전`으로 불리는 외서를 펼치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일단 번역서이므로 작가보다는 번역자의 문체에 더 가까울테니 문장 하나하나를 주의깊게 보진 않는다.
그렇다면 글에 드러난 작가의 메시지나 전체적인 이야기 흐름에서 무언가를 찾고 싶은데
그 것이 잘 되지 않는 책은, 다 읽고 난 이후에도 내가 무엇을 읽은 것인가,
무엇때문에 이 책을 읽느라 시간을 보낸 것인가 하는 생각에 허무해진다.
(물론 한 번밖에 읽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여러번 곱씹어봐야 알 수도 있을 것이다.)
<연인>을 어떻게 내 것으로 소화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던 차,
사람은 왜 문학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 다른 이들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이 책, <삶을 바꾸는 책읽기>는 이미 이전부터 책장에 꽂혀있던 책이다. 이제서야 나에게 진정으로 다가온 것이다.
프롤로그의 한 문장, 그 것은 독서를 하는 수많은 이유들 중 어떤 것보다 와닿는 한 마디였다.
책을 읽을 때 나의 유일한 관심사,
그건 교양도 아니고 성공도 아니고 스티브 잡스나 이건희처럼 사는 법도 아니고
그저 이 몸으로 잘 사는 법이었습니다. (9p)
이 몸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고민하는 이들에게
책은 중요한 대화상대가 되어준다는 것이다. 내가 보고 있는 세상은 아주 작기 때문에
책을 통해 내가 겪고 있는 일들을 다른 사람은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
혹은 어째서 헤쳐 나가지 못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이는 동시에 이 시대 가장 위대한 작가들과 조우하며 세상의 온갖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는 것과도 같다.
또한 책을 읽으며 우리는 어린아이를 기르듯, 한 그루 나무를 가꾸듯 물도 주고 거름도 주면서 자신을 키운다.
책은 `마치 남의 일처럼 보는 내 이야기`이다. 타인의 모습인 양 나타나는 그 안에서
어느 순간 자신의 모습을 대면하게 된다. 그러면 자신이 겪는 일을 조금 더 잘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독서란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의 삶에 비추어보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저자 정혜윤은 라디오 PD이다.
요즘은 책 많이 읽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고 얄팍한 지식으로 책에 대한 언급을 하기도 하니
독서 에세이를 고를 땐 저자의 약력을 철저하게 보는 편이다.
그런데 이 책을 고를 땐, 저자보다는 제목에 끌렸더랬다.
책 앞부분 출판사가 화려하게 서술한 약력은
다소 뜬구름 잡는 얘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그다지 저자에 대한 신뢰는 없었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저자의 방대한 독서량과 상황에 맞는 책 귀절 처방은
놀라울 정도라 읽는 내내 감탄스러웠다.
마치 백과사전과도 같은 해박한 지식과 지혜들은
머릿 속에 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이런 사람의 독서리스트라면 나 또한 모조리 갖고 싶은 마음에 저자의 다른 책 <침대와 책>도 바로 주문했다.)
사실 아주 새로운 의견은 아니다. 처음 들은 이야기 또한 아니며,
나 또한 이러한 이유로 책을 신뢰하고 그 것에 의존하기 때문에 틈나는대로 독서를 계속해오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저자 덕분에 내가 왜 책을 읽는지, 읽어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차근차근 말로 정리할 수 있게 되어 후련하고,
독서란 이 몸으로 잘 살 수 있도록 내 삶의 재료가 되는 행위라는 것을 다시금 한번 깨닫는다.
그런 의미에서 <연인>은 다시 한번 정독해봐야겠다.
나의 가치관과 너무 다른 이 발칙한 소녀를 나와 다른 존재로 이해하기 위해
그녀를 비난해야 할지 연민의 눈으로 바라봐야 할지 생각해봐야겠다.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이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줌으로 이 소설에서 재발견하게 된 나의 모습을
조급해말고 차근차근 찾아봐야지. 분명히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독서란 한가로운 책놀음만이 아닌 궁극적으로 나를 잘 살아가게 하는 시간이며, 재료라는 것임을 재확신한 지금,
저자처럼 풍부한 내공의 독서가가 되어 `더 잘 살아가는` 삶을 기대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