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허버트 단편 걸작선 1962-1985 - 생명의 씨앗 프랭크 허버트 단편 걸작선
프랭크 허버트 지음, 유혜인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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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의 가장 큰 매력 인간됨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점이다."


뒤표지에 적혀있는 허버트의 글귀다. SF를 읽는 이유가 뭘까? 이 물음은 더 나아가 문학의 의미까지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문학 의의는 시대에 따라 변했다. 근대 시기에는 계몽과 선전의 역할을 맡았고, 군사독재 시기에는 자유를 속삭였다. 그렇다면, 현대에는 어떨까? 이제 거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문학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개인적인 얘기, 소소한 얘기를 다루는 문학이 많아졌다. 개인으로 초점이 맞춰진 문학은 좋은 점도 있지만, 지나치게 내부로 매몰되는 경우도 보이는 것 같다. 외부로 열기가 빠지지 않으면 곪아서 염증이 생길 뿐이다.


다시 돌아가서, 그렇다면 SF는 어떨까? 본인이 생각하기에 거대한 이야기 속 '개인'을 그려내는 것이 SF소설의 묘미인 것 같다. 거대한 이야기란 SF소설의 주요 장치 '과학적 요소'라 본다. 과학은 세세하지만, 결국 인류로 펼쳐진다. 최근 <삼체>를 읽었다.

조만간 넷플릭스에서 <삼체> 드라마가 개봉된다. 세세하게 말하면 스포일러이기 때문에 간단히 말하겠다. <삼체> 속에 등장하는 인류는 하나의 '개인'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류는 하나의 개인이 아니라, 거대한 집단이다. 프랭크가 말했듯이 SF는 거대한 이야기 속에서 '인간됨'을 보여준다.


표제작 <생명의 씨앗> 고향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에 정착한 '지구인' 이야기다. 행성에 도착한 지구인들은 3년이 지났지만, 제대로 식민지화하지 못했다. 지구에서 가져온 자원은 바닥이 났고, 사람들은 병들고 있다.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지구'기준으로 달갑지 않은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다. 꿈도 희망도 없는 얘기 같지만 마지막에 인간의 의지로 보여줬다.


"크로다는 호나다의 손을 잡고 다시 평원을 가로지르는 길로 이끌었다. 나란히 걸으며 크로다가 말했다. '이곳에 이름을 붙여야 해요.'

'당신이 돌아온 후에요.' 호나다가 말했다."


때론 직접적인 표현보다 간접적인 표현이 큰 울림을 줄 때가 있다.


최근 <듄 PART2>가 개봉했다. 원작에서 생략된 얘기가 많았지만, 충분히 원작을 잘 담아냈다고 생각한다. 주인공 '폴'은 고뇌에 빠진다. 프랭크의 말마따나 인간됨을 생각하는 것일까? 수록작 <듄으로 가는 길>은 하나의 안내서다. 삽입되어 있는 일러스트는 '듄'에 방문한 관광객 입장을 느끼게 해준다.


<프랭크 허버트 단편 걸작선 1962~1985>는 충분히 읽을 만하다. 듄의 유일한 단편집이 수록됐다는 점도 있지만, <원시인>, <생명의 씨앗>, <존재의 기계>, <GM 효과> 등 프랭크 허버트의 세계관을 잘 담아낸 수록작들을 읽을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프랭크 허버트의 두꺼운 <듄> 읽기가 망설여진다면, 이번 '황금가지'에서 출판된 <프랭크 허버트 단편 걸작선>을 먼저 접해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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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허버트 단편 걸작선 1962-1985 - 생명의 씨앗 프랭크 허버트 단편 걸작선
프랭크 허버트 지음, 유혜인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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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허버트의 작품 세계관을 볼 수 있다. 어떤 단편은 다소 불친절하지만, 상상하는 작업은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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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도덕경 - 비움의 길, 다스림의 길 이용주의 고전 강독 2
이용주 지음 / 이학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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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도덕경>은 이용주 학자가 정성 어린 해설을 담은 역작이다. 보통 철학 원문 해설서는 두께와 빽빽한 텍스트 때문에 읽기가 버겁다. 하지만, 이번 "이학사"에서 출판된 <노자 도덕경>은 번역-원문-독음을 보기 쉽게 편집해서 독서에 큰 피로감을 느끼지 못했다. 또한, 이용주 학자는 어려운 용어로 해설하지 않고, 문외한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간편한 문체를 사용했다. 제법 두꺼운 철학서이지만, 부담스럽지 않다.


노자는 우선 '도'가 어떤 것인지 말한다. 물론 노자는 '도'란 하나로 정의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용주 학자는 이런 해설을 덧붙인다.


"그렇다면 '도'란 무엇인가? 도는 어떤 초월적인 장소에 존재하는 형이상학적 본질인가? 아니면 도는 항상 '사물의 도'로서 구체적인 사물과 존재하는가? '도'는 그 제는 항상 존재한다. 동시에 그 도는 '만물의 도'로서 존재한다. (중략) 그런 의미에서 도는 '일자'이면서 동시에 '다자'다. '일즉다. 다즉일'의 논리가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자. 나와 네가 다르고, 개와 고양이도 다르다. 서로 다른 '도'를 갖고 있다. 그런데 노자는 어떻게 일자 이면서 다자라 말하는 걸까? 생각해 보면 단순하다. 서로 다른 '도'를 갖고 있다는 것은 '같은' 도를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저자의 말을 빌려보자면, 우린 "생명의 도"를 공유하고 있다. "다르지만 동시에 모두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유튜브 <충코의 철학>에서 이용주 학자의 인터뷰를 들으면, 학자들 사이에서 <도덕경>이 정치적 해석과 도덕적 해석으로 갈리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저자는 단순하게 한 쪽만 생각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고전은 시대에 따라 다르게 읽히고, 독자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 이것이 고전의 참맛이 아닐까 싶다. 인터뷰를 들으면서 독자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에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고, 평생에 걸쳐 조금씩 도덕경을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실천하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잡게 된다."

위무위, 즉무불치(爲無爲 則無不治)

"인위적인 작위, 함부로 개입하고 간섭하는 정치, 즉 '망작'의 정치를 할수록 세상은 혼란스러워진다. 법이 번잡해지고 규칙이 복잡해질수록 세상은 더욱더 혼란으로 빠져든다. 문제가 생겨도 어디서 잘못되었는지 모른다. 따라서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알 수 없다. 이럴 때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손을 대면 댈수록 더 꼬인다. 규칙과 제도가 너무 복잡하고, 규칙과 제대로 규제하려는 현실도 너무 복잡해서 어디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물론 정치를 하는 데 있어서 손을 대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면 노자는 어떤 무위, 즉 '손을 대지 않음'을 말하는 것일까? 복잡한 현대 세상은 이미 많은 손때가 탔다. 노자가 말한 '도'는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빛이 바랜 거 같다.


66장은 "무위정치는 백성과 이익을 다투지 않는 것이다."라 말하고 있다. 정치에 관한 구절 중 제일 인상 깊어서 전문을 실어 보겠다.


1) 강과 바다가 모든 계곡의 왕이 되는 이유는

아래로 가는 것을 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계곡의 왕이 될 수 있다.

2) 따라서 성인은 백성 위에 서려고 할 때

반드시 말을 그들 아래에 둔다.

또 백성의 앞에 가려고 할 때

반드시 몸을 그들 뒤에 둔다.

3) 따라서 성인이 위에 있어도 백성은 무겁게 여기지 않고,

앞에 있어도 백성은 해롭다 여기지 않는다.

천하는 기꺼이 그를 추대하고 미워하지 않는다.

4) 그는 다투지 않기 때문에

천하가 그와 더불어 다투지 않는다.


무위란 이런 것이 아닐까? 사회에 손을 대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위는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아니라, 국민(백성)에게 과도한 제재를 하지 않는 것이다. 지도자가 있지만 느껴지지 않고, 질서가 있지만 엄격하지 않고, 규제가 있지만 과도하지 않는 것. 그것이 노자가 말한 무위의 정치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무위의 통치를 실행하는 성인의 정치는 정치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거나, 통치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따라서 백성은 기쁜 마음으로 그를 통치자로 받들고, 그의 존재를 거부하지 않는다."


동양철학의 묘미는 "치우침이 없다."에 있는 것 같다. 명쾌한 해답을 주지 않는 것 같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명쾌하게 받아들이면 된다. 물론 그 또한 편파적이면 안 된다. <도덕경>은 할아버지가 담배 피우던 시절에나 읽는 고전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현대 사회는 혐오가 가득 찼다. 여기저기 뻗치는 손길은 사람의 분노를 키우고, 혐오를 가지게 만들었다. 나는 당신을 죽이려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당신은 나를 죽이려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조금 더 예민하게 말해볼까?

여당은 야당을 죽이고, 야당은 여당을 죽인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혐오하고 사랑을 잃었다. 노자가 현대 사회를 바라봤다면, 이것이야말로 '망작'이라 하지 않을까?


<도덕경>은 읽기 지루하고,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이용주의 <노자 도덕경>은 깔끔한 문체로 해설을 곁들었다. 이용주 학자의 해설은 현학적이지 않고, 현대인이 어떻게 하면 <도덕경>을 편파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의미 있게 받아들일지 고심한 흔적을 보여준다. 1장부터 차근차근 읽지 않아도 좋다.(본인은 1장-6장까지는 순서대로 읽는 것을 추천한다. 노자의 '도'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을 알 수 있다.) 하루에 한 장씩 읽는 것이 좋겠다. 차근차근, 그것이 비움의 길, 다스림의 길. <노자 도덕경>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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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도덕경 - 비움의 길, 다스림의 길 이용주의 고전 강독 2
이용주 지음 / 이학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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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좋다. 깔끔한 편집과 어렵지 않은 내용, 현학적인 표현도 없다. 주역의 예지도 읽어보려고 한다. 이용주의 고전 강독 시리즈가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 다음에 어떤 것이 나올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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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전쟁과 신세계질서
이해영 지음 / 사계절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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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옳고그름에 문제가 아니라, 이런 시각도 있구나, 이렇게 보는 학자도 있구나 라고 생각해야 한다. 우린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세상에 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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