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의 편지 (어나더커버 특별판, 양장)
조현아 지음 / 손봄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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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편지'를 검색한다. 누군가의 편지가 세상에 나왔을까 싶어서. 편지를 공부하는 사람으로 놓치는 편지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돈을 벌어 편지책들을 사 모은다. 그러나 구입한다고 그 자리에서 바로 읽지는 못한다. 편지책을 읽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삐집고 들어오는 것들이 삼백만 삼천개 정도는 되니까. 그래서 늘 책상 주변은 새로 들인 책들로 산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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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부터인가, 편지책을 검색하면 <연의 편지>가 가장 먼저 보였다. 실존 인물의 편지가 아닌것 같아서, 내가 알아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패스하다, 어제 갑자기 궁금했다. 도대체 무슨 책이이길래 이렇게 인기가 많은 거야? 책을 클릭했더니... 만화책이었다. 그런데 그 밑에 달린 댓글이 칭찬일색. '학교폭력을 다루는 이야기인데, 너무 따뜻하다'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구입을 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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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권의 책과 함께 <연의 편지>가 도착했다. 만화책이니까 후루룩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책을 펼쳤다. 하.. 그림 참 좋다. 일단 표지그림이 좋았다. 고장난 버스 안을 개조해서 만든 따뜻한 공간. 무슨 이야기가 펼쳐질까 기대하며 책장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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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이소리. 반에서 다른 친구들에게 공격당하는 친구를 돕기 위해 나섰다가 공격받는 대상이 된다. 그러나 자신이 도왔던 친구가 전학을 가고, 소리 또한 학교를 옮기게 된다. 어린 시절을 보냈던 동네로 돌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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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새로 학교를 다니게 된 곳은 '청량중학교'. 2학기가 시작되는 날 전학을 온 소리는 엄청 긴장한다. 예전 학교에서 당했던 일들을 똑같이 당하는 건 아닐까 두려워하면서. 그러다 책상 밑에 붙어 있는 편지 한 통을 발견한다. 새로 전학 온 소리를 위해서 누군가 쓴 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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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소리가 편지를 찾으러 다니면서 펼쳐진다. 학교 폭력과 우정이 편지와 사연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하...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책을 읽는 동안 마음이 따뜻했다. 그리고 또 믿게됐다. 누군가를 향한 편지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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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실존인물의 편지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아름다운 편지관련 만화를 찾아내야겠다. 편지가 얼마나 아름다울수 있는지! 누군가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수 있는지 전해야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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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의 편지>를 모두에게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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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것들은 모두 나를 울게 한다 - 사랑, 삶 그리고 시 날마다 인문학 2
김경민 지음 / 포르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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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콘서트에서 <서른 즈음에>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그 때 20대 초반이었다. 그가 아주 덤덤한 목소리로 “또 하루 멀어져간다”하다가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하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스물의 청춘이 서른의 삶에 대해 뭘 안다고... 머리는 그 삶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가슴이 그걸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매일 이별하는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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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것들은 모두 나를 울게 한다』를 펼쳐들고 울컥 한건, ‘이별’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몇 개의 이별이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아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별을 문 앞에 세워두고 있는가. 만남과 함께 나란히 찾아와 기다리고 있지만, 언제나 그의 존재가 ‘느닷없다’고 느껴지는, 그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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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것들은 모두 나를 울게 한다』를 쓴 김경민 작가는 이별에 관한 시를 <이별과 상실 그 이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 된다>로 나누었다. 그가 나눠놓은 작은 소제목들을 보면서 내게 이별은 이렇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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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이 ‘도착’해 그 ‘능력’을 보여주면, 우리는 ‘애도’하며 ‘이별의 태도’를 관찰한다고. 그렇게 한 발짝 떨어져 이별을 관찰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면 어김없이 이별은 ‘완성’되며,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 된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삶을 시작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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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넘기다 내 마음을 붙잡은 건 ‘이별의 태도’에 실린 <교차로에서 잠깐 멈추다>는 시였다. 양애경 시인, 그가 쓴 시를 읽으며 무너진 마음을 추슬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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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로에서 잠깐 멈추다> - 양애경 -

우리가 사랑하면
같은 길을 가는 거라고 믿었지
한 차에 타고 나란히
같은 전경을 바라보는 거라고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 봐
너는 네 길을 따라 흐르고
나는 내 길을 따라 흐르다
우연히 한 교차로에 멈춰 서면
서로 차장을 내리고
- 안녕, 오랜만이네
보고 싶었어
라고 말하는 것도 사랑인가 봐
사랑은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영원히 계속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렇게 쉽게 끊어지는 끈도 아니고
이걸 알게 되기까지
왜 그리 오래 걸렸을까
오래 고통스러웠지
아, 신호가 바뀌었군
다음 만날 지점까지 이 생이 아닐지라도
잘 가, 내 사랑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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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만으로도 눈물이 차고 넘쳤는데, 이 시를 읽고 작가 쓴 에세이를 읽으며 엉엉 울었다. ‘행위 예술계의 대모’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울라이가 나눈 ‘1분의 눈빛’ 때문에. 어느 가슴 속에나 그런 사랑과 이별이 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가슴이 눈물을 밀어내 어쩔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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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시집을 읽으면서 이렇게 많이 울어 본 적이 있던가? ‘이별의 완성’에 실린 성미정 시인의 <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도, ‘관계는 공감으로부터’에 있는 정현종의 <방문객>도, ‘사랑은 수용으로부터’에 있는 정윤천의 <천천히 와>도, 황동규의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도… 나를 울게 했다. 『내가 사랑한 것들은 모두 나를 울게 한다』는 책 제목처럼, 내가 사랑했던 모든 기억들이 나를 울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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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가 책을 읽으며 울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작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 된다>고 했던 것처럼, 나 또한 계속 될 삶에 대해 생각했다. 그가 윤동주의 <눈 오는 지도>를 소개하면서 쓴 에세이를 읽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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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는 ‘고유의 영토가 생’기고, ‘고유의 지도를 갖게 된다’고 썼다. 그 지도는 ‘둘 말고는 아무도 가질 수 없으며 제삼자는 해독할 수 없는 지도’라고. 그리고 덧붙였다. ‘이별이란, 이 영토의 소멸, 지도의 분실에 다름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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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영토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봤으며, 얼마나 많은 지도를 분실했는가? 그러나 우리는 또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또 다른 영토를 또 다른 지도를 잃어갈 것이다. 어쩌면 삶이란 ‘잃어가는 것의 연속’이라는 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야 하는 것은 작가가 마지막 에세이에 인용한 것처럼 “삶이 행복보다 더 위대‘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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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장을 덮으며 다짐했다. 문 앞에 어떤 이별이 와서 기다리고 있어도, 어느 날 ‘느닷없이’ 문을 밀고 들어오는 이별을 만나도, 결코 삶을 포기하지는 않겠다고. 행복보다 더 위대한 것이 삶이니,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수많은 이별을 건너면서 지금의 내가 되었듯, 앞으로 만날 수많은 이별을 건너 나의 삶을 만들겠다고. 매일 이별하는 삶도 위대할 수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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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새삼 깨달았다. ‘내가 사랑한 것들은 모두 나를 울게’하지만, 내가 사랑한 것들은 모두 나를 살게도 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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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바다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해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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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요셉이었던 당신에게

 

가끔 가슴에 통증을 느끼며 잠에서 깹니다. 그럼 나는 한 손을 가슴에 올리고 토닥거려요. 그렇게 밤사이 당신이 두고 간 흔적을 잠재웁니다. 이상하게 당신이 꿈에 나오면 가슴이 아픕니다. 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하지도 못하면서, 통증을 느낍니다. 호흡이 곤란하거나 부정맥처럼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게 아니라, 뭐랄까. ‘가슴이 시리다고 할까요? 심장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가 텅 빈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시린 가슴을 데우려고 커피도 마셔보고, 음악도 들어보고, 책도 읽어보지만 통증은 멍처럼 오래 남습니다. 하지만 결국 사라져요. 언제 그랬냐는 듯 흔적도 없이. 혈관에서 빠져나온 적혈구가 사라지듯 추억 속에서 빠져나온 당신도 사라지고, 나는 일상을 살아갑니다.

 

한 동안 괜찮았던 가슴에 다시 통증이 일어난 건 먼 바다때문입니다. 공지영 작가가 쓴 첫 사랑에 관한 이야기 말이에요. 책이 출판되기 전에 출판사 블로그에 올라오는 연재 글을 보면서 예감했습니다. 책을 읽고 나면 내가 좀 아프겠구나, 하고. 이 책이 추억 속에 있는 당신을 소환해 내리란 걸 알았으니까요.

 

먼 바다는 성당 주일학교에 다니던 미호가 신학생이었던 요셉을 만나러 가는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서울의 어떤 성당에 다니며 서로를 마음에 품었던 두 사람이 40년 의 시간을 건너 뉴욕에서 만나는 이야기로. 40년은 이스라엘 백성이 새로운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 떠돌았던 시간이었습니다. 이집트에서 얻은 습관을 버리고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헤맸던 시간이었죠. 성경을 읽으며 그 시간은 참 긴 시간이구나 했는데, 미호와 요셉이 만나기로 한 장소에 있던 공룡을 보니, 40년이 무척 가벼워 보였습니다. 15천 년 전에 이 지상에 살았던 공룡 앞에서 40년은 지나간 어제같았으니까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시간을 건너 마주한 두 사람은 서로의 추억을 나누고 기억의 퍼즐을 맞춰갑니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었는데도 서로 다르게 기억하고 있는 일들을 퍼즐 조각을 맞추듯 맞춰 가지요. 두 사람은 서로가 다르게 갖고 있는 조각들을 기억의 퍼즐판 위에 놓으면서 하나의 그림을 완성해갑니다. 뒤늦게, 같은 그림으로 완성된 그들의 퍼즐판을 보면서 궁금했습니다. 내 기억 속의 그 날들과 당신 기억 속의 그날들이 같은 모습일까.

 

언젠가 우리도 오랜 시간을 건너 마주 앉아 기억의 퍼즐을 맞추는 날이 올까요? 한 때는 그런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당신에게는 당신의 길이 있고, 나에게는 내 길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새로운 땅을 향해 걸으며 삶을 깨달았던 것처럼, 나도 내 인생의 새로운 땅에 안착하기 위해 걷고 또 걸으면서 깨달았습니다. 당신은 거기에서, 나는 여기에서 빛나야 한다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통증으로 밀려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네요. 하지만 걱정말아요. 추억으로 밀려온 당신은 내 일상에 부딪혀 사라지니까요. 내가 그 시간의 기억 속에서 당신을 지우지 않는다고 해도, 삶은 당신의 기억을 조금씩 가지고 가니까요.

 

……

 

이제 먼 바다가 데려다준 당신을 보내야겠습니다. 파도처럼 밀려왔던 당신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부디 잘 가시기를. 추억의 먼 바다가 다시 당신을 보내면, 나는 추억 속으로 다시 당신을 보내며 손을 흔들게요. 당신은 거기에서, 나는 여기에서 반짝일 수 있도록.

 

잘 가요, 나의 요셉.

안녕, 나의 첫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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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 열린책들 세계문학 117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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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렌까당신이 제부쉬낀과 주고받은 편지를 읽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 책이었지요러시아의 유명한 작가도스또예프스끼의 데뷔작이고서간체로 된 소설이라서 꽤나 유명세를 탄 책이기도 합니다그러나 저는 이런 류의 책을 읽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러시아 사람들의 이름은 왜그렇게 길고도 긴지그들의 이름을 외우는 것은 고사하고 읽는 것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이야기를 읽은 건내게도 서간체 소설이라는 꿈이 한 자락 있기 때문입니다언젠가 편지로 된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을까편지 이야기를 긴 글로 녹여낼 수 있지 않을까 꿈꾸고 있기 때문이지요당신의 이야기가 내게 어떤 아이디어를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당신의 편지가 실린 책을 펼쳤습니다.

 

4월 8제부쉬낀이 당신에게 쓴 편지로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당신의 집 건너편에 사는 중년의 하급 관리인 제부쉬낀그는 당신에게 부성애를 앞세워 다가가고당신도 그의 우정을 받아들입니다그러나 제부쉬낀과 당신은 가난한 사람들’. 하루하루 연명해가는 것이 지상최대의 과제인 사람들이지요제부쉬낀이 묘사하는 하숙집의 풍경을 읽는 내내 나는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지하실 집을 떠올렸습니다습한 냄새가 진동하는 어둠의 공간제부쉬낀이 사는 곳은 그런 이미지였으니까요형편없는 집에 살면서도 제부쉬낀은 당신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합니다자신의 외투 하나 사지 못하면서 당신에게 설탕을 주고돈을 주지요당신은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그런 것들을 받고뭐가 더 필요하다고 거리낌 없이 이야기를 합니다나는 당신의 심리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제부쉬낀이 당신을 사랑하는 만큼당신도 그를 사랑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어쩌면 당신은 그를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당신이 제부쉬낀과의 관계에서 수없이 밀고 당기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습한 냄새를 몸에 휘감은듯한 마음으로 당신들의 편지를 읽었습니다저는 당신과 제부쉬낀이 서로 반대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제부쉬낀은 감정의 과잉을 보여주는 사람이었고당신은 감정의 절제를 보여주는 사람이었으니까요제부쉬낀의 편지들은 읽기가 버거웠습니다정돈되지 않은 이야기들을 끝도 없이 늘어놓는 수다쟁이 같았지요반면 당신의 글은 깔끔했습니다특히 당신이 노트에 써놓았다는 자전적 이야기는 흡인력이 좋았어요그 뒷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궁금할 정도였지요어쩌면 제부쉬낀과 같은 집에 살던 소설가보다 당신이 글을 더 잘 쓰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군요.

 

제부쉬낀과 당신의 편지를 읽으면서작가가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짐작하기 어려웠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실상을 보여주려고 한 것인지아니면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문학적 빈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는지 이해하기가 힘들었지요제부쉬낀은 문학적으로 빈곤한 사람이었고그나마 당신은 문학을 찾아 읽는 사람이었으니까요당신도 문학적 풍요를 누린 사람은 아니었습니다만제부쉬낀과 나란히 서 있으니 당신이 더 풍요로운 삶을 사는 사람 같더군요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당신은 풍요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풍요로운 삶을 꿈꾼 사람이었지요그랬기 때문에 당신은 부유한 비꼬프와 결혼할 생각을 했겠지요. ‘소설 따위가 여자를 다 버린다고 말하는 그 사람 말이에요!

 

그래요나도 알아요어쩌면 당신의 상황에서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걸그러나 마지막까지 제부쉬낀에게 이런 저런 일들을 부탁하는 당신의 모습을 보면서 화가 났습니다당신은 알았겠지요제부쉬낀이 당신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리라는 걸. <가난한 사람들사이에서도 먹이사슬이 존재한다는 걸당신 덕분에 새삼 깨달았습니다.

 

당신과 제부쉬낀의 편지는 내게 많은 생각을 던져주었습니다여전히 정리 되지 못한 생각이 많은 걸 보니당신들의 편지가 왜 고전으로 불리며 백년이 넘는 시간 동안 흘러 내려오고 있는지 알 것 같군요아마도 당신의 편지는 오랜 시간 동안 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질문을 던질 것 것입니다.

 

그런데 바렌까가난한 삶에서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한 당신경제적인 가난을 버리고 정신적인 가난을 택한 당신안녕한가요당신의 안부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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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1 - 정민의 다산독본 파란 1
정민 지음 / 천년의상상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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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다산은 ‘거대한 산’ 같은 사람이었다. 너무나 크고 높아서 다가갈 수 없는 존재. 그냥 ‘저기 산이 있구나’하며 조선의 훌륭한 학자 정도로 인식하던 그를 ‘사람’으로 생각하게 된 건 그가 죽은 막내 아들에게 쓴 편지 덕분이었다. 아홉 명의 자녀를 낳아 내리 여섯을 먼저 보낸 아버지 다산이 내게 들어왔을 때, 나는 그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유배지에서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나는 무척 괴롭다’고 토로하는 솔직한 아버지 다산에게 마음을 두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그의 편지를 찾아 읽었고, 나름대로 해석한 것들을 <나는 다산의 편지를 읽으며 “사람이 되기로 했다”>라는 글로 쓰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다산은 신유년 이후 유배지에서 보낸 다산이었다. 시중에 나와 있는 그에 관한 책들도 대게 강진에서 생활하던 다산을 다루는 책이었다. 강진에 있던 다산은 ‘학자’였다.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가르치고 또 가르치는 학자. 그러나 내가 알고 있던 다산은 ‘정약용’이라는 인물의 한 편린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전 생애가 궁금했고, 그에 대한 또 다른 글들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 무렵 한국일보에서 정민 교수가 연재하는 <다산독본>이라는 글을 발견했고, 그 글이 『정민의 다산독본, 파란』이라는 책으로 엮여 나왔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정민의 다산독본, 파란』은 그야말로 내 마음에 파란을 일으켰다. 내가 알던 다산의 모습이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으로 재조립되었다. 책의 소제목처럼 다산에게는 ‘천주와 정조’라는 두 개의 하늘이 있었다. 그동안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은 나를 흥분하게 했다. 정민 교수의 글을 통해서 내안에서 정약용은 입체적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한국천주교회사에 정약용은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다. 조선에 천주교를 뿌리내리게 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들이 모두 그와 엮여있기 때문이다. 서학을 공부하며 ‘천주교’를 가장 먼저 접한 인물인 이벽은 정약용의 사돈이었다. 이벽은 정약용의 큰 형인 정약전의 처남이었다. 북경에 가서 조선인 최초로 세례를 받은 이승훈 베드로는 정약용의 매형이고, 천주교를 믿으며 어머니의 신주를 불태우고 제사를 지내지 않아 사형 당한, 조선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은 정약용의 이종사촌이었다. 어디 그 뿐인가. 정약용의 형인 정약종은 평신도를 이끄는 명도회의 회장이었으며,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몸을 피해 배론 토굴에서 북경에 있는 주교에게 전할 길고 긴 편지를 쓴 황사영은 그의 조카사위였다. 정약용을 둘러싼 수많은 인물들이 조선의 천주교회를 이끌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정약용이 남긴 기록에는 천주교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기록의 삭제. 여기에 의문을 품게 된 정민 교수는 수많은 사료를 찾아 읽으며, 삭제된 기록들을 맞추어 나간다. 퍼즐을 하나 하나 맞춰가며 그는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다산의 글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나 또한 정민 교수가 찾아낸 자료들을 함께 읽으며 전율했다. 어떻게 이렇게 꼼꼼하게 자료를 찾아낼 수 있는지, 어떻게 이런 퍼즐들을 맞출 수 있는지 놀랍고 놀랍고 또 놀라웠다. 정민 교수가 찾아낸 자료들에 의하면 다산은 천주교와 깊은 관계에 있었다. 정민 교수는 밀정이 주문모 신부를 밀고하는 현장에 있다가 그를 대피 시킨 인물도 정약용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막연한 추론이 아니라, 여러 사료들을 통한 새로운 발견이다.


정조와 다산의 관계 또한 새롭게 인식되었다. 다산이 회갑때 직접 작성한 「자찬묘지명」과 다산의 연보를 기록한 『다산의 한 평생』 같은 자료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정조와 다산의 깊고 깊은 우정을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다산을 둘러싼 인물관계에 대한 이해가 생겼고, 젊은 날의 다산이 얼마나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는지 알게 됐다. 다산을 학자의 틀에 가둬놓고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던 나를 반성하게 하는 글이었다.

 
평생을 시기와 질투 속에서 하루도 편할 날 없이 살았던 다산. 그의 파란만장한 삶에 마음이 쓰렸다. 이제야 다산의 편지를 조금 더 깊이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강진으로 오기까지 그가 겪어낸 삶을 살펴볼 수 있어서 감사했다. 아들에게 보낸 편지 덕분에 그가 내게 사람으로 다가왔다면, 정민 교수가 쓴 『정민의 다산독본, 파란』 덕분에, 정약용은 입체적인 사람이 되어 내 앞에 앉게 되었다.

떠오르는 생각들은 너무 많지만, 그래서 긴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다. 정민 교수가 어서 해배 후 다산의 삶을 집필해서 내 앞에 데려다 주기를! 그리하여 완벽한 학자 정약용 말고, 진짜 내가 만나고 싶었던 ‘사람 정약용’을 만나게 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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