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1 - 정민의 다산독본 파란 1
정민 지음 / 천년의상상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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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다산은 ‘거대한 산’ 같은 사람이었다. 너무나 크고 높아서 다가갈 수 없는 존재. 그냥 ‘저기 산이 있구나’하며 조선의 훌륭한 학자 정도로 인식하던 그를 ‘사람’으로 생각하게 된 건 그가 죽은 막내 아들에게 쓴 편지 덕분이었다. 아홉 명의 자녀를 낳아 내리 여섯을 먼저 보낸 아버지 다산이 내게 들어왔을 때, 나는 그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유배지에서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나는 무척 괴롭다’고 토로하는 솔직한 아버지 다산에게 마음을 두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그의 편지를 찾아 읽었고, 나름대로 해석한 것들을 <나는 다산의 편지를 읽으며 “사람이 되기로 했다”>라는 글로 쓰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다산은 신유년 이후 유배지에서 보낸 다산이었다. 시중에 나와 있는 그에 관한 책들도 대게 강진에서 생활하던 다산을 다루는 책이었다. 강진에 있던 다산은 ‘학자’였다.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가르치고 또 가르치는 학자. 그러나 내가 알고 있던 다산은 ‘정약용’이라는 인물의 한 편린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전 생애가 궁금했고, 그에 대한 또 다른 글들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 무렵 한국일보에서 정민 교수가 연재하는 <다산독본>이라는 글을 발견했고, 그 글이 『정민의 다산독본, 파란』이라는 책으로 엮여 나왔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정민의 다산독본, 파란』은 그야말로 내 마음에 파란을 일으켰다. 내가 알던 다산의 모습이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으로 재조립되었다. 책의 소제목처럼 다산에게는 ‘천주와 정조’라는 두 개의 하늘이 있었다. 그동안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은 나를 흥분하게 했다. 정민 교수의 글을 통해서 내안에서 정약용은 입체적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한국천주교회사에 정약용은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다. 조선에 천주교를 뿌리내리게 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들이 모두 그와 엮여있기 때문이다. 서학을 공부하며 ‘천주교’를 가장 먼저 접한 인물인 이벽은 정약용의 사돈이었다. 이벽은 정약용의 큰 형인 정약전의 처남이었다. 북경에 가서 조선인 최초로 세례를 받은 이승훈 베드로는 정약용의 매형이고, 천주교를 믿으며 어머니의 신주를 불태우고 제사를 지내지 않아 사형 당한, 조선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은 정약용의 이종사촌이었다. 어디 그 뿐인가. 정약용의 형인 정약종은 평신도를 이끄는 명도회의 회장이었으며,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몸을 피해 배론 토굴에서 북경에 있는 주교에게 전할 길고 긴 편지를 쓴 황사영은 그의 조카사위였다. 정약용을 둘러싼 수많은 인물들이 조선의 천주교회를 이끌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정약용이 남긴 기록에는 천주교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기록의 삭제. 여기에 의문을 품게 된 정민 교수는 수많은 사료를 찾아 읽으며, 삭제된 기록들을 맞추어 나간다. 퍼즐을 하나 하나 맞춰가며 그는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다산의 글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나 또한 정민 교수가 찾아낸 자료들을 함께 읽으며 전율했다. 어떻게 이렇게 꼼꼼하게 자료를 찾아낼 수 있는지, 어떻게 이런 퍼즐들을 맞출 수 있는지 놀랍고 놀랍고 또 놀라웠다. 정민 교수가 찾아낸 자료들에 의하면 다산은 천주교와 깊은 관계에 있었다. 정민 교수는 밀정이 주문모 신부를 밀고하는 현장에 있다가 그를 대피 시킨 인물도 정약용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막연한 추론이 아니라, 여러 사료들을 통한 새로운 발견이다.


정조와 다산의 관계 또한 새롭게 인식되었다. 다산이 회갑때 직접 작성한 「자찬묘지명」과 다산의 연보를 기록한 『다산의 한 평생』 같은 자료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정조와 다산의 깊고 깊은 우정을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다산을 둘러싼 인물관계에 대한 이해가 생겼고, 젊은 날의 다산이 얼마나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는지 알게 됐다. 다산을 학자의 틀에 가둬놓고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던 나를 반성하게 하는 글이었다.

 
평생을 시기와 질투 속에서 하루도 편할 날 없이 살았던 다산. 그의 파란만장한 삶에 마음이 쓰렸다. 이제야 다산의 편지를 조금 더 깊이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강진으로 오기까지 그가 겪어낸 삶을 살펴볼 수 있어서 감사했다. 아들에게 보낸 편지 덕분에 그가 내게 사람으로 다가왔다면, 정민 교수가 쓴 『정민의 다산독본, 파란』 덕분에, 정약용은 입체적인 사람이 되어 내 앞에 앉게 되었다.

떠오르는 생각들은 너무 많지만, 그래서 긴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다. 정민 교수가 어서 해배 후 다산의 삶을 집필해서 내 앞에 데려다 주기를! 그리하여 완벽한 학자 정약용 말고, 진짜 내가 만나고 싶었던 ‘사람 정약용’을 만나게 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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