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것들은 모두 나를 울게 한다 - 사랑, 삶 그리고 시 날마다 인문학 2
김경민 지음 / 포르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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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콘서트에서 <서른 즈음에>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그 때 20대 초반이었다. 그가 아주 덤덤한 목소리로 “또 하루 멀어져간다”하다가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하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스물의 청춘이 서른의 삶에 대해 뭘 안다고... 머리는 그 삶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가슴이 그걸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매일 이별하는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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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것들은 모두 나를 울게 한다』를 펼쳐들고 울컥 한건, ‘이별’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몇 개의 이별이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아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별을 문 앞에 세워두고 있는가. 만남과 함께 나란히 찾아와 기다리고 있지만, 언제나 그의 존재가 ‘느닷없다’고 느껴지는, 그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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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것들은 모두 나를 울게 한다』를 쓴 김경민 작가는 이별에 관한 시를 <이별과 상실 그 이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 된다>로 나누었다. 그가 나눠놓은 작은 소제목들을 보면서 내게 이별은 이렇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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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이 ‘도착’해 그 ‘능력’을 보여주면, 우리는 ‘애도’하며 ‘이별의 태도’를 관찰한다고. 그렇게 한 발짝 떨어져 이별을 관찰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면 어김없이 이별은 ‘완성’되며,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 된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삶을 시작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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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넘기다 내 마음을 붙잡은 건 ‘이별의 태도’에 실린 <교차로에서 잠깐 멈추다>는 시였다. 양애경 시인, 그가 쓴 시를 읽으며 무너진 마음을 추슬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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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로에서 잠깐 멈추다> - 양애경 -

우리가 사랑하면
같은 길을 가는 거라고 믿었지
한 차에 타고 나란히
같은 전경을 바라보는 거라고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 봐
너는 네 길을 따라 흐르고
나는 내 길을 따라 흐르다
우연히 한 교차로에 멈춰 서면
서로 차장을 내리고
- 안녕, 오랜만이네
보고 싶었어
라고 말하는 것도 사랑인가 봐
사랑은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영원히 계속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렇게 쉽게 끊어지는 끈도 아니고
이걸 알게 되기까지
왜 그리 오래 걸렸을까
오래 고통스러웠지
아, 신호가 바뀌었군
다음 만날 지점까지 이 생이 아닐지라도
잘 가, 내 사랑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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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만으로도 눈물이 차고 넘쳤는데, 이 시를 읽고 작가 쓴 에세이를 읽으며 엉엉 울었다. ‘행위 예술계의 대모’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울라이가 나눈 ‘1분의 눈빛’ 때문에. 어느 가슴 속에나 그런 사랑과 이별이 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가슴이 눈물을 밀어내 어쩔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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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시집을 읽으면서 이렇게 많이 울어 본 적이 있던가? ‘이별의 완성’에 실린 성미정 시인의 <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도, ‘관계는 공감으로부터’에 있는 정현종의 <방문객>도, ‘사랑은 수용으로부터’에 있는 정윤천의 <천천히 와>도, 황동규의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도… 나를 울게 했다. 『내가 사랑한 것들은 모두 나를 울게 한다』는 책 제목처럼, 내가 사랑했던 모든 기억들이 나를 울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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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가 책을 읽으며 울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작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 된다>고 했던 것처럼, 나 또한 계속 될 삶에 대해 생각했다. 그가 윤동주의 <눈 오는 지도>를 소개하면서 쓴 에세이를 읽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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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는 ‘고유의 영토가 생’기고, ‘고유의 지도를 갖게 된다’고 썼다. 그 지도는 ‘둘 말고는 아무도 가질 수 없으며 제삼자는 해독할 수 없는 지도’라고. 그리고 덧붙였다. ‘이별이란, 이 영토의 소멸, 지도의 분실에 다름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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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영토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봤으며, 얼마나 많은 지도를 분실했는가? 그러나 우리는 또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또 다른 영토를 또 다른 지도를 잃어갈 것이다. 어쩌면 삶이란 ‘잃어가는 것의 연속’이라는 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야 하는 것은 작가가 마지막 에세이에 인용한 것처럼 “삶이 행복보다 더 위대‘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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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장을 덮으며 다짐했다. 문 앞에 어떤 이별이 와서 기다리고 있어도, 어느 날 ‘느닷없이’ 문을 밀고 들어오는 이별을 만나도, 결코 삶을 포기하지는 않겠다고. 행복보다 더 위대한 것이 삶이니,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수많은 이별을 건너면서 지금의 내가 되었듯, 앞으로 만날 수많은 이별을 건너 나의 삶을 만들겠다고. 매일 이별하는 삶도 위대할 수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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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새삼 깨달았다. ‘내가 사랑한 것들은 모두 나를 울게’하지만, 내가 사랑한 것들은 모두 나를 살게도 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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